언론인들, 왜 어깨 겯고 거리 나섰나
  • 곽상아│미디어스 기자 ()
  • 승인 2011.09.2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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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노조, 미디어렙 법안 표류에 맞서 총파업 단행…“정부·여당의 종편 편들기 심각”

▲ 지난 8월23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언론노조 총파업 출정식에서 참가자들이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언론인들이 또다시 ‘총파업’에 나섰다. 이명박 정부 들어 벌써 네 번째이다. 하지만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언론노조)의 총파업에 대한 시민들의 체감 정도는 그다지 크지 않다. 그동안의 총파업이 ‘조·중·동 방송 저지’를 위한 것이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미디어렙’(Media Rep)이라는 다소 ‘전문적인’ 사안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디어렙은 방송사의 위탁을 받아 방송 광고를 대신 판매해주는 ‘방송 광고 판매 대행사’를 뜻한다.

하지만 지난 8월23일 시작된 총파업 역시 기존 ‘조·중·동 방송 저지’의 연장선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2009년 7월 미디어 법안의 국회 처리를 둘러싸고 대리 투표·재투표 논란을 거쳐 기형적으로 탄생한 ‘조·중·동 방송(종편)’의 ‘직접 광고 영업’을 막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종편 먹거리 위해 고의로 입법 회피”

헌법재판소가 지난 30여 년간 유지해온 한국방송공사(코바코)의 지상파 방송 광고 판매 독점 체제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시점은 2008년 11월27일이다. 따라서 국회가 2009년 12월까지 관련 법·제도를 정비해야 했으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되는 탓에 쉽사리 결정되지 못한 채 어영부영 3년여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따라서 관련 법 부재로 인해 연말 개국 예정인 종편 방송이 직접 광고 영업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언론노조는 이를 막기 위해 총파업을 통해 ‘조·중·동 방송(종편)의 직접 광고 영업 금지’를 포함하는 미디어렙 법안의 제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종편의 직접 광고 영업’이 어떠한 위험성을 가지고 있기에 언론노조는 총파업이라는 강경 수단까지 사용해야 했던 것일까. 대다수 언론인과 시민사회, 야당은 “(미디어렙을 통하지 않고) 광고를 직접 판매하면 방송의 영향력을 이용해 광고를 강요할 가능성이 크다”라며 언론 본연의 임무인 ‘권력과 자본에 대한 비판’ 기능이 내팽개쳐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게다가 종편의 경우 ‘유료 방송 의무 재전송’ 지위를 부여받아 전국 방송이 되었고, 편성 내용도 지상파 방송과 동일하기 때문에 지상파 방송과 동일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종편이) 시장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라며 종편의 직접적인 광고 영업을 사실상 허용하겠다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종편에 대해 “걸음마를 뗄 수 있을 때까지 신생 매체로서 각별한 보살핌이 필요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대리 투표·재투표 등 불법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까지 힘들게 탄생시켰던 종편 방송의 ‘먹거리’를 마련해주는 것은 정부·여당으로서도 물러설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여야가 “시급하게 미디어렙법을 제정해야 한다”라고 입을 모으면서도, 실제로는 관련 법 논의가 거의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결정적 이유이다.

지역·종교 방송 “사업 측면에서도 타격 우려”

언론인들은 종편 방송의 연말 개국을 앞두고 한시바삐 미디어렙 법안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으나 이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9월6일 국회 문방위의 법안심사소위 역시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으며 이에 따라 언론인들과 시민사회, 야당이 요구했던 ‘9일 본회의 처리’는 불발되었다. 9월15일 문화부장관 인사청문회 이후 19일부터는 곧바로 국정감사가 시작되어 미디어렙에 대한 논의를 심도 있게 진행할 만한 시·공간도 거의 없는 상황이다.

국회의 직무유기로 방송 광고 시장이 무법 상태로 방치될 경우 언론계는 어떤 타격을 받게 될까. 종편이 1%의 평균 가구 시청률을 낸다고 했을 때, 2012년 기존의 방송 광고 시장은 11% 잠식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최대 피해 매체로 거론되는 지역 방송, 종교 방송, 조·중·동·매경을 제외한 ‘마이너’ 신문 종사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CBS의 한 관계자는 “CBS의 연간 수익은 8백억원 정도인데 이 가운데 코바코가 수주해주는 광고 수익이 40% 정도를 차지한다. (미디어렙 부재 시) 전체 광고 수익 가운데 최소 10%에서 최대 30~40%까지 감소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조·중·동 방송의 눈치를 보느라 미디어렙 입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문방위원들이 아니라 한나라당 지도부급에서 결단을 내려주어야 하는 상황이다”라고 꼬집었다. OBS경인TV의 한 관계자 역시 “OBS가 연간 3백억원의 수익을 낸다고 보았을 때 이 중 최소 20% 이상은 감소될 것이다. 타격이 제일 심한 곳 가운데 한 곳이 바로 OBS이다. 지역 민방, 지역 MBC는 전국적 네트워크라도 갖춰져 있지만 아무것도 없는 OBS는 이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취약 매체들이 걱정하는 대목은 ‘광고 수익’뿐만이 아니다. 이 OBS 관계자는 “지방자치단체도 거대 신문을 등에 업은 종편이 더 무섭지, OBS가 무섭겠느냐. 사업적 측면에서도 타격이 있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정부·여당이 고의로 미디어렙법 입법을 회피하는 사이, 개국을 코앞에 둔 종편 방송은 ‘직접 광고 영업’을 준비하고 있다. 종편이 시동을 걸자 MBC, SBS도 이대로 두고만 볼 수는 없다며 직접 광고 판매 회사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종편의 출현으로 중소 매체들이 몇 년 안에 고사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는 끝내 현실로 나타나게 될 것인가. 다양한 여론을 만들어왔던 중소 매체들의 몰락은 한국 사회 민주주의 기반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해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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