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검’ 되어 말하는 박근혜 오촌 조카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1.09.20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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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근령 남매 법정 분쟁의 핵심 증인인 박용철씨, 북한산에서 살해당한 채 발견…유족들 “박용수씨가 살해했을 이유 없다”

▲ 2009년 1월4일 서울 능동 어린이 회관 내 육영재단 사무실에 괴한 50여 명이 난입해 각종 서류 등을 챙겨 달아났다. ⓒ연합뉴스

추석을 약 일주일 앞둔 9월6일 서울 우이동 북한산 둘레길 탐방안내센터 인근에서 시신 2구가 발견되었다. 주차장에 세워놓은 자동차의 뒷좌석에서 발견된 시신은 얼굴과 옆구리 등을 흉기로 수차례 가격당한 상태였다. 또 다른 시신 한 구는 3km 떨어진 북한산 용암문 등산로에서 목매단 채로 발견되었다. 이들의 신원을 확인한 결과, 두 사람 모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오촌 조카인 박용철(50)·용수(52) 씨인 것으로 드러났다. 놀라운 점은 용수씨가 사촌 동생인 용철씨를 살해한 후 스스로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이것이 사실일까. 사실이라면 사촌 형제간에 왜 이토록 끔찍한 살인이 저질러진 것일까. 이 사건은 상당한 의문을 남기고 있다.

현재까지의 경찰 수사에 따르면 용수씨가 용철씨를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은 나타나고 있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확보되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강북경찰서는 용수씨의 옷에서 검출된 혈흔이 피살된 용철씨의 유전자와 일치한다고 밝혔다. 또한 용수씨의 것으로 보이는 망치와 칼 등에서도 용철씨의 혈흔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용수씨를 살인자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범행 도구에서는 지문 채취가 불가능했고, 목격자도 없는 상황이다.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박씨 형제와 술자리를 함께했던 황 아무개씨와 김 아무개씨도 둘 사이에 다툼이 전혀 없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진술했다. 이날 박씨 형제를 4·19기념탑 사거리까지 태워주었던 대리기사 역시 둘 사이에 전혀 언쟁이 없었다고 밝혔다.

범행 동기는 더욱 오리무중이다. 경찰은 일단 박씨 형제의 채무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 경찰은 “용수씨가 3년 전쯤 용철씨에게 1억원 상당의 재산상 피해를 입혔고 최근 이 문제로 크게 다퉜다”라는 첩보를 입수해 계좌 추적에 들어간 상태이다. 그러나 유족들의 말은 전혀 다르다. 경찰에 따르면, 용철씨는 망치로 머리를 수차례 얻어 맞고 칼로 몸통을 다섯 군데나 찔린 것으로 밝혀졌는데, 용수씨가 사촌 동생을 이토록 잔인하게 죽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 유족들의 주장이다. 용철씨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한 친지는 “1억원의 빚이 있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며, 채무 관계에 관한 일부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둘은 간혹 만나 술자리를 가질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라고 말했다.

‘제3자에 의한 모살’ 가능성 제기

▲ 박지만씨(왼쪽)와 박근령씨의 남편 신동욱씨(오른쪽)는 살인 교사 사건 등으로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왼쪽), ⓒ 시사저널 이종현(오른쪽)

용철씨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명백히 밝혀지지 않으면서 의혹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용철씨의 갑작스런 죽음이 비상한 관심을 끄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용철씨는  현재 박 전 대표의 친동생들인 근령씨와 지만씨 남매간의 법정 분쟁에 깊숙이 관여되어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최근 결정적인 증언들을 쏟아내고 있었기 때문에 용철씨의 입은 그야말로 ‘태풍의 눈’이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용철씨의 죽음을 둘러싸고 ‘제3자에 의한 모살(謀殺)설’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용철씨는 박지만씨의 측근이었다. 특히 육영재단 운영권을 둘러싼 근령-지만 남매간 폭력 사태의 중심에는 항상 용철씨가 있었다. 용철씨는 지난 2007년 11월28일 지만씨의 비서실장 격인 정 아무개씨 등 한빛복지협회 100여 명과 함께 육영재단을 불법 점거하고, 근령씨와 근령씨측 재단 임직원들을 강제로 내쫓은 혐의로 구속 기소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용철씨는 근령씨의 남편인 신동욱 전 백석문화대 교수가 주장하고 있는 이른바 ‘살인교사’ 사건에도 깊숙이 관여되어 있다. 신씨가 지난해 9월 제출한 고소장에 따르면, 용철씨와 정씨는 지난 2007년 7월 지만씨의 지시에 따라 신씨를 중국으로 납치해 살해하려고 했다. 또한 용철씨는 자신이 신씨와 함께 중국에서 마약을 했다고 경찰에 자수해 신씨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했다. 만약 신씨의 주장대로, 용철씨가 자신의 오촌 당숙인 지만씨의 지시에 따라 이 모든 일을 한 것이라면 용철씨는 지만씨의 심복 중의 심복인 셈이다.

그런데 용철씨가 지난해부터 지만씨에게 불리한 증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용철씨는 근령씨측에게 “지만씨가 육영재단 폭력 사태를 배후 지시했다”라고 증언했고, 근령씨측은 이 녹취록을 결정적인 증거로 삼아 지만씨를 고소했다. 살인 교사 사건에 대한 용철씨의 폭탄 발언도 이어졌다. 용철씨는 “박지만 회장의 비서실장인 정씨가 나에게 신동욱을 납치·살해하라고 지시했다. 정씨는 이것이 ‘회장님의 뜻’이라고 말했다. 정씨와의 통화 내용을 저장한 휴대전화를 캐나다 밴쿠버에 보관하고 있다”라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또한 용철씨는 지만씨가 살인 청부 비용을 직접 통장으로 보내준 증거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용철씨가 갑자기 지만씨에게 등을 돌린 이유는 그가 남긴 녹취록과 법정 진술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육영재단 폭력 사태 후 2008년 5월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관장에 임명되었지만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하고 2009년 2월 물러났다. 용철씨는 “박지만 회장을 위해 열심히 일했건만 오히려 박회장측이 나를 쫓아냈다”라고 섭섭함을 드러냈다.

정씨와의 알력 다툼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여러 증언들도 눈에 띈다. 용철씨는 살인 교사 증언에서 “정씨가 시킨 대로 일을 하면서 억울한 일을 많이 겪었다”라고 밝혔으며, 육영재단 폭력 사태와 관련한 녹취록에서는 “육영재단을 (내가) 정리해줬으면 박회장이 (직접) 운영을 해야지, 사기꾼·피라미 같은 정○○에게 운영을 맡겼다”라며 정씨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용철씨가 어떤 의도에서 갑자기 지만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든 간에,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용철씨의 증언은 재판의 핵심적인 증거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신씨측은 용철씨의 증언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신씨는 현재 육영재단 폭력 사태와 살인 교사 사건과 관련해 박근혜·지만 남매를 무고한 혐의로 피소된 상황이다. 살인 교사 건과 관련해서는 구속되기까지 했다.

신씨측은 오는 9월26일 있을 공판에서 용철씨를 증인으로 요청했었다. 그러나 용철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신씨측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동래의 조성래 대표변호사는 “용철씨는 근혜·근령·지만 3남매의 모든 분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었다. 용철씨의 죽음으로 살인 교사 사건뿐만 아니라 육영재단 폭력 사건 등도 진실을 밝히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용철씨의 죽음과 관련해 아직까지 경찰 조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무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용철씨의 죽음으로 누가 가장 큰 이익을 누리게 될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솔직히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라며 의심 어린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시사저널>은 이와 관련해 지만씨측 의견을 듣고자 정씨에게 여러 차례 전화 통화를 시도했으나 정씨는 “별로 할 말이 없다”라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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