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파·부동층이 흐름 갈랐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1.09.2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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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에 나타난 박근혜·안철수 지지율 분석 / 40대의 표심이 전체 판도 좌우

“올 연말이나 내년 초쯤 해서 대권 판도에 한차례 지각 변동이 일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이처럼 빨리, 또 이처럼 강하게 태풍이 휘몰아칠 줄은 몰랐다. 덕분에 이번 추석은 아주 정신없이 보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의 말이다. 9월 들어서면서 여론조사 전문 기관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쇄도하는 언론사들의 여론조사 의뢰로 인해 마치 폭풍우가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듯한 모습이다. 그 진원지는 바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다. 그가 하루아침에 유력한 대권 주자로 떠오르면서 각 언론사들은 앞다투어 그의 대권 경쟁력을 저울질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가상 맞대결 여론조사 결과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기 시작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3년여 동안 부동의 대선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던 박 전 대표였던 탓에 실제 그동안 여론조사 기관이 내놓은 대권 후보 지지율 조사는 크게 이목을 끌지 못했다. 그나마 관심은 ‘박근혜 대항마’로 누가 유력할 것인가를 놓고 2위 다툼에 관심이 갈 정도였다. 하지만 안철수 원장은 이런 분위기를 일거에 뒤흔들어버렸다. ‘박근혜 대세론’이 9월 들어 급격히 ‘박근혜 위기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안철수 태풍’이 한반도를 향해 서서히 진입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8월 말이었다. 8월24일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투표율 미달로 무산되고, 이틀 후인 26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사퇴한 이후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9월1일 본격적으로 상륙했다. 이날 오후 오마이뉴스가 안철수 원장의 서울시장 출마 결심이 임박했다고 보도하면서부터였다. 안원장이 출마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그는 일거에 유력 서울시장 후보의 ‘대세’를 거머쥐었다. 각 여론조사 기관들은 안원장이 압도적인 지지율로 서울시장 후보 1위를 점하고 있음을 알렸다. 그러나 상황은 9월6일 급반전되었다. 그가 박원순 변호사 지지를 선언하고 불출마 입장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이는 상황 종료가 아닌 새로운 상황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였다. ‘서울시장 불출마’ 선언과 동시에 안철수 원장은 서울시장 후보가 아닌 대선 후보로 격상되었다. 그 첫 신호탄은 CBS가 터뜨렸다. 안원장의 서울시장 불출마 선언 직후 CBS는 리얼미터와 공동으로 전국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안원장을 박근혜 전 대표와 맞대결시킨 것이다. 그 결과 안원장이 43.2%를 얻어 박 전 대표(40.6%)를 약 2.6%포인트 차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차 범위 내였지만 현 정부 출범 이후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박 전 대표를 앞서는 인물이 처음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것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고, 이후 유력 언론사와 여론조사 전문 기관은 경쟁적으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9월8일 MBC 여론조사 결과였다. 안원장이 59.0%로 과반수가 훨씬 넘는 지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에 비해 박 전 대표는 32.6%에 그쳤다. 두 사람의 격차가 무려 26.4%포인트 차로 벌어졌다. 그런데 같은 날 동시에 발표된 SBS 여론조사에서는 거꾸로 박 전 대표(45.9%)가 안원장(38.8%)을 7.1%포인트 차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MBC는 휴대전화 조사 방식을 택했고, SBS는 전통적인 가구 전화 조사 방식이어서 그 결과에 차이가 난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그는 “가구 전화 조사에 응한 사람들이 다소 활동성이 약한 반면, 휴대전화 조사에 응한 사람들은 활동성이 강한 사람들로 표집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활동성이 강한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거나 진보적 성향이 강하다는 가설이 성립할 수도 있다”라고 분석했다.

주목되는 것은 추석 연휴 이후의 변화이다. 18쪽 맨 위 그래프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추석 이전에 실시한 일곱 개 언론사 조사 중 네 개사에서 안원장이 박 전 대표보다 높게 나왔다. 하지만 추석 이후 조사에서는 전체 네 개사에서 모두 박 전 대표가 안원장을 근소하게나마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인 9월14일 중앙일보 조사에서 박 전 대표(47.4%)는 안원장(43.3%)을 4.1%포인트 차로 앞섰다.

‘동여서야’ ‘고여저야’ 뚜렷이 나타나

지역별·연령별로 보면, ‘동여서야(東與西野)’와 ‘고여저야(高與低野)’의 구분이 두 사람 간의 맞대결 결과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박 전 대표는 영남에서, 안원장은 호남에서 우세를 나타냈다. 눈여겨볼 부분은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과 충청권 민심의 변화 양상이다. 서울에서는 안원장이 박 전 대표를 앞섰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폭이 좁혀지는 양상이고, 인천·경기는 추석 이후 박 전 대표의 우세로 역전되었다. 반면 충청 지역에서는 박 전 대표가 앞서기는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안원장에 대한 지지율이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을 잠식해 들어가는 양상을 나타냈다.

연령별로는 20~30대에서는 안원장이, 50~60대 이상에서는 박 전 대표가 각각 확고한 우세를 나타내는 가운데, 40대의 표심이 전체 향방을 좌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의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추석 이전인 9월8일에는 46.1%(박)-46.0%(안)로 초박빙이었으나, 최근 14일 조사에서는 48.9%(박)-41.5%(안)로 박 전 대표가 다소 앞서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안철수 현상’에 대해 윤희웅 실장은 “안철수 원장이 최근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지지율이 높게 나오고 있지만, 이를 아직 ‘지지층’이라고 규정짓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전 대표의 경우, 오랫동안 구축된 견고한 지지층을 갖고 있지만, 안원장은 지지도라기보다는 관심도나 선호도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따라서 안원장이 향후 적극적인 정치 행보를 보이지 않는다면 안원장의 지지율이 점점 하락하면서 두 사람 간의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분석했다. 윤실장은 “하지만 이번 ‘안철수 현상’을 계기로 무당파·부동층 표심의 위력이 입증되었다. 야권에 아직 이렇다 하게 경쟁력이 있는 후보가 없다는 점에서 안원장이 언제든지 대권 도전 가능성만 보인다면 다시 한번 지지율을 반전시킬 가능성이 크다”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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