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힘, 헛심이냐 뚝심이냐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11.09.2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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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원장이 지난 9월6일 서울시장 보궐 선거 불출마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정치권을 강타한 ‘안철수 신드롬’의 여파가 심상치 않다.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오면서 시작된 ‘안철수 바람’은 그가 불출마를 선언한 이후에도 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안철수 원장이 당장은 정치권에 거리를 두더라도 결국은 정치에 뛰어들 것으로 예측한다. 그와 더불어 ‘안철수’ 간판을 내세운 신당 창당 여부도 주목되고 있다. 안철수 원장이 지닌 위력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 허와 실을 짚어보았다.

민심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여야 정당에 대한 불신과 새로운 인물에 대한 갈망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에 대한 ‘물갈이 여론’은 어느 때보다 높다. 기득권을 지닌 기존 정치인의 입지는 그만큼 좁아졌다. 내년 총선과 대선은 ‘정초(定礎) 선거’로 규정된다. 정치 질서에 새로운 주춧돌을 놓는 선거라는 의미이다. 두 선거를 계기로 한국의 정치 구조가 확연히 바뀔 가능성이 크다. 향후 만들어나갈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결정짓는다는 측면에서 ‘중대(重大) 선거’이기도 하다.  

벌써부터 정국이 요동치는 것도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변화에 대한 요구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안개 정국’을 만들어내고 있다. 안개 너머 무대 위로 새로운 인물이 속속 등장할 예정이다. 첫 테이프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끊었다.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오면서 형성된 ‘안풍(安風: 안철수 바람)’은 불출마 선언 이후 말 그대로 ‘메카톤급’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불과 닷새 남짓이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안원장은 단숨에 유력 대권 후보 반열에 올랐고,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냈다.

안원장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일부 조사에서는 박 전 대표를 추월하기도 했다.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던 ‘박근혜 대세론’이 정치 입문도 하지 않은 안원장에 의해 흔들린 것이다. 이른바 ‘안철수 신드롬’은 양대 선거를 준비 중인 기존의 정치권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여야 정당은 안원장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추석 연휴가 지난 뒤 안원장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는 지난 9월15일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열린 학장회의에 참석해 “당장은 시장 출마 건과 관련한 일들을 잘 정돈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언론 인터뷰와 외부 강의도 하지 않고 학교에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치적으로 비칠 수 있는 행동은 삼가고, 학교 일에 전념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안철수 열풍’에 휘청거리던 정치권도 점차 ‘평정’을 되찾는 모습이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고, 오는 9월25일 당내 경선을 치를 예정이다. 박영선·천정배·추미애 의원과 신계륜 전 의원이 경선에 나서 4파전을 펼치게 되었다. 한나라당도 10월4일 당내 경선을 가질 예정이다. 나경원 의원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가운데, 이석연 전 법제처장 등 외부 인사들의 참여도 이어질 전망이다.

‘정치인 안철수’ 가능성 키우는 두 가지 요인

▲ 안철수 원장이 지난 9월7일 경상북도 구미시 금오공과대학교에서 청춘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현재 상황만 놓고 본다면 ‘안철수 신드롬’은 조금씩 잦아드는 분위기이다. 추석 이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도 일정 부분 내려간 것으로 나타났다(18~19쪽 기사 참조). 이에 따라 ‘거품이 빠지고 있다’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대다수 정치 전문가는 ‘안풍’을 일시적 현상으로 보는데 동의하지 않고 있다. 안원장 자신은 “한 달만 지나도 다 잊어버릴 것이다”라고 했지만, 그가 불 지펴놓은 변화에 대한 기대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인 안철수’의 가능성을 키우는 요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인물 경쟁력이다. 단순히 정치에 발 담그지 않은 정치 신인의 참신함만으로 이와 같은 신드롬을 불러올 수는 없다. 안원장이 그동안 보여온 경영자로서의 능력, 창의성, 도전, 책임, 희생 등이 시대적 요구와 부합하다고 보기 때문에 ‘안풍’이 폭발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특히 ‘불통 정치’에 불만이 높았던 대중들이 안원장의 ‘소통 리더십’에 거는 기대가 상당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과 ‘유리’되어 있었다면, 새 지도자는 국민과 ‘밀착’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황인상 P&C정책개발원 대표는 “안철수 열풍은, 많은 국민이 우리 정치가 변하기를 원하고 있는데 그동안 그 대안을 찾지 못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정치권이 국민의 현실적인 요구를 해결해주지 못한 측면이 있다. 정치가 실용적이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그러한 불만이 높은 상황에서 안원장을 대안으로 여기는 것이다. 단순한 거품으로 볼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안원장이 여야 정당 대결 구도에서 한 발짝 비켜나 있다는 점도 인물 경쟁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정치권에서는 안원장을 ‘중도’ 성향의 인물로 보고 있다. 진보와 보수의 중간 지점으로서의 중도라기보다는, 진보와 보수를 넘나드는 탈이념으로서의 중도에 가깝다. 안원장에 대한 수도권·젊은 층 지지가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설명이다.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와 대비되는 인물로 자리 잡은 것도 강점으로 거론된다. 안원장이 새로운 정치를 이끌어갈 ‘변화의 기수’로 떠오를수록 박 전 대표에게는 ‘구시대 정치인’ 이미지가 짙어질 수밖에 없다. 야권의 대표 주자로서 1 대 1 대결 구도가 지속된다면 오랜 기간 구축해온 박 전 대표의 아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안철수 바람이 불고 있는 상황에서 박 전 대표를 보면 구시대 인물로 여겨진다. 안원장이 등장하면서 박 전 대표를 식상하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이는 두 인물에 대한 대비 효과 때문인데, 안원장을 통해 새로운 맛을 본 국민은 설령 안원장이 시야에서 사라지더라도 그 맛을 기억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대세론 피로증’이 생길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안원장의 정치권 입성 가능성을 키우는 또 다른 요인은 현재의 정치 환경이다. 내년은 총선과 대선이 치러지는 선거의 해이다. 그만큼 정치 수요가 높다.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으면 기존의 정치 구조에 변화가 요구된다. 그리고 새로운 정치에는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하다. 선거가 본격화하면 안원장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몰려들 것으로 보여진다. 인맥과 조직 등 정치 기반이 취약한 안원장이 대권 주자로 올라설 수 있는 무대가 자연스럽게 마련되는 셈이다.

이러한 정치 환경이 조성될 때 안원장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가 주목된다. 당장은 안원장이 정치권과 거리를 두겠지만, 결국 정치에 뛰어들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다. 그는 이미 정국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다.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정치 행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에서는 그 시기를 서울시장 보궐 선거 전후로 예상하고 있다.

안원장을 중심으로 한 신당 창당 여부도 관심사 중 하나이다. 이와 관련해 안원장 주변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수의 정치권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안원장이 서울시장 출마를 저울질할 무렵 그의 주변에서는 신당 창당 가능성이 검토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의 유력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는 평화재단 내에서 평화교육원장을 맡고 있는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의 역할론이 부각되기도 했다.

윤 전 장관이 주도하고 있는 평화리더십아카데미의 경우 현재 5기 교육을 앞두고 있는데, 강사들의 면면이 ‘안철수 신드롬’ 이후 주목받고 있는 인사들과 상당 부분 겹쳐 있다. 윤 전 장관을 비롯해 평화재단 이사장인 법륜 스님,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최상용 전 주일 대사 등이 강의를 맡았고, 안원장이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양보한 박원순 변호사도 강사로 나섰다. 5기 아카데미에서는 안원장 본인은 물론이고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도 강의를 맡았다. 역시 재단에서 운영하는 청년열린아카데미의 경우에도 안원장과 박변호사, 박원장, 조교수 이외에 배우 김여진씨와 방송인 김제동씨 등이 참여했다.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출신의 한 인사는 “그동안 아카데미를 통해 2백여 명의 전문가 그룹을 양성했다. 교육을 마친 후에도 동문회를 만들어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단순히 유대감을 높이기 위한 모임이 아니라 국가적 이슈를 논의하는 자리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 “윤 전 장관 등이 신당 창당을 실제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온 이후 안원장과 윤 전 장관이 서로 입장 차를 보이면서 신당 창당설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안원장을 간판으로 한 새로운 정치 세력의 출범은 언제든지 그 가능성이 열려 있다. 세력 규모와 참여 인사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그동안 기존 정당에서 간과해온 ‘생활 정치’를 전면에 내세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일단 10월26일 치러질 서울시장 보궐 선거가 1차 관문이 될 전망이다. 안원장이 지지 의사를 밝힌 박원순 변호사의 당선 여부에 따라 정치 환경이 급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 신당’은 떠오를 것인가

▲ 안철수 원장과 박원순 변호사(왼쪽)가 서울시장 보궐 선거 후보 단일화에 관한 입장을 밝힌 후 포옹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정치권에서는 ‘안철수 신당’이 창당할 경우 상당한 파괴력을 가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중도 성향의 유권자층에 어필할 수 있는 세력을 만든다면 내년 총선에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일정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기존 정당이 동요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그는 “새로운 정치판이 형성되면 한나라당 내에서 과거의 보수와 다른 새로운 보수 그룹이 동요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민주당 내에서 ‘좌(左) 클릭’에 부담을 갖고 있는 중도 그룹도 여러 가지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제3 세력의 신당 창당에 대한 비관론도 적지 않다. 우선 안원장이 창당의 구심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의문이 제기된다. 그는 아직까지 정치적 역량을 제대로 검증받지 않았다. 데뷔 무대를 갖기도 전에 첫 곡부터 빅히트를 쳤지만, 노래 한 곡이 유명해졌다고 톱 가수가 될 수는 없다. 최소한 1집 음반 전체를 들어보아야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치인 안철수’로서 검증을 받기 전에는 단지 ‘가능성’일 뿐이라는 것이다.

안원장과 함께할 세력이 구체화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창당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창당을 하더라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기존 정당과 차별화에 매몰되다 보면 정치 기능주의에 빠질 우려도 있다. 이는 실용만을 앞세운 탈정치 현상의 맹점이다. 여기에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내부 변화 여부도 주요 변수 중 하나이다. 두 정당이 위기감에 몰려 결속력을 높인다면 제3 세력이 발 디딜 공간은 그만큼 좁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안철수 신드롬’에 대한 평가와 전망은 엇갈린다. 하지만 이번에 몰아닥친 ‘안풍’이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적 요구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정치권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거대한 쓰나미가 되어 향후 정국을 휩쓸 가능성은 여전하다. 이 경우 안원장에게 대항할 ‘백신’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정치인 안철수’가 한국의 정당 정치에 어떻게 메스를 들이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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