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S조선은 왜 워크아웃이 되었나
  • 김회권·조해수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1.09.21 12:5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국철 회장 “주거래 은행이었던 산업은행이 신규 RG를 중단했다” 주장···산은측은 “확인해줄 수 없다”

 

▲ SLS조선은 지난 2009년 12월 워크아웃이 개시되었다. 9월20일 경남 통영에 위치한 SLS조선소의 모습7 ⓒ윤성호

 

경상남도 통영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SLS조선은 지난 2011년 6월1일부터 ‘신아SB’로 회사 이름을 바꿨다. 이국철 SLS회장은 지난 2005년 12월 M&A(인수·합병) 시장에 매물로 나온 ‘신아조선’을 인수했고 2006년 7월 SLS조선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창원지검은 2009년 9월 4백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이회장과 SLS조선에 대해 석 달 동안 강도 높은 수사를 해왔다.

이회장이 검찰에서 풀려난 직후인 2009년 12월24일 산업은행은 SLS조선에 대한 워크아웃(기업 회생 절차)을 개시했다. 그리고 1년6개월 뒤 SLS조선은 돌고 돌아 원래의 ‘신아’라는 이름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이회장은 워크아웃 과정을 ‘강탈’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매출 3천3백억원에 불과한 기업을 2조4천억 원대로 키워놓았는데 강탈당했다”라고 주장했다. 이회장이 제기하는 의혹은 무엇일까.


□ 청와대발 기획 수사?

검찰은 노력했지만 결과는 미약했다. 수사 기간 세 달, 계열사 13곳의 압수수색. 지방에서는 보기 드물게 큰 수사였지만 2009년 12월10일 창원지검은 SLS그룹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회장의 비자금 조성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회장은 “검찰 수사가 끝나서 돌아오고 난 직후에 내가 손 쓸 틈도 없이 김 아무개 부사장에 의해 워크아웃이 신청되었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대신 이회장을 기업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를 허위로 공시한 혐의(주식회사의 외부 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허위 공시를 밝히는 데도 시간과 인력이 많이 투입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수사를 지휘했던 이창세 당시 창원지검장(현 법무부 출입국본부장)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동향 출신이자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지난해 청목회 사건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수사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창원지검으로 내려보내졌다는 점이다. 지난 8월8일 권재진 법무부장관의 인사청문회에서 권장관은 “(민정수석 시절) 확인을 해봤더니 회사가 비자금을 조성해서 공직자들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제보가 있어서 (민정수석실에서) 최소한의 확인을 거친 후에 검찰로 통보했다는 보고를 받았다”라고 인정했다. 공직자 중 기소된 인물은 진의장 전 통영시장이다. 진 전 시장은 이회장에게 재임 중 2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대법원은 이 뇌물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검찰 입장에서는 헛심을 쓴 셈이었다.


□ 산업은행과의 악연 때문?

이국철 회장은 “지난해 12월7일 새벽에 변호사와 검찰 수사를 끝내고 나와 서울로 올라오니 산업은행 출신의 김 아무개 부사장이 주식 포기 각서, 경영권 포기 각서 등을 내밀며 워크아웃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워크아웃은 신청했는데 나는 법인 도장을 찍어준 적이 없고 이사회나 주총도 열린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반면 워크아웃을 진행한 당사자로 지목된 김 전 부사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회장이 워크아웃이 신청된 날보다 며칠 일찍 나왔다. 이국철이가 계열사 사장들을 불러모아 몇 번 비공식 모임을 가졌다. 사장들의 중론이 워크아웃밖에 회사를 살릴 방도가 없다는 쪽으로 모아졌다”라고 말했다. 어느 한 쪽만 진실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SLS 전신인 신아조선은 산은을 주거래 은행으로 정하고 금융지원을 받아왔다. 주거래 은행이 조선업체에 제공하는 금융 지원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금환급보증(RG)이다. 선박 완공에는 보통 수년이 걸리기 때문에 조선업체는 배값 일부를 미리 받아야만 건조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 이때 선주가 제대로 선박을 인수받지 못하게 될 경우 금융기관으로부터 선수금을 대신 받을 수 있는데 이 보증이 RG이다.

조선업체가 RG를 받지 못하면 사실상 수주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조선업체에게 금융회사, 특히 주거래 은행과의 관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아조선의 경우 산은과 상당한 신뢰를 쌓은 것으로 보인다. 신아조선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신아조선이 산은으로부터 받은 RG는 2003년 약 4천3백만 달러, 2004년 약 7천만 달러이다. 특히 2005년 RG는 5억 달러에 이른다. 이와 관련해 이회장은 “산업은행은 신아조선을 운영할 당시(2005년) 연간 매출액이 3천3백억원에 불과했던 회사에 RG를 6억 달러까지 해주었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한 2006년 7월 이후 신규 RG를 중단했다”라고 주장했다.

 

▲ ⓒ유장훈

 

그가 제공한 SLS조선의 RG 발급 현황(2009년 3월31일 기준)에 따르면 다른 은행들은 꾸준히 RG를 발급했지만 산은은 2006년 5월22일 발급한 RG가 마지막이었다. 이와 관련해 SLS조선을 담당하는 산은 관계자에게 이회장이 제공한 RG 발급 현황 자료에 대한 확인을 요청했으나 “RG 관련 자료는 예전 자료를 다시 찾아야 하기 때문에 힘들다. 금융 자료이기 때문에 해당 업체의 요청이 없으면 공개할 수 없다. 확인 역시 해줄 수 없다”라고 말했다.

2007년 3월22일 이회장은 “산은에 선박 6척에 대한 RG를 요청했는데 산은은 이회장이 소유하고 있던 SLS중공업 등의 주식(액면가 약 1백60억원)을 담보로 제공하고, 이회장이 직접 연대 보증 계약을 체결할 것을 요구했다”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5백억원 이상을 증자하고 문제가 생길 경우 경영권을 포기한다는 각서도 추가되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회장은 “이것은 워크아웃보다 더 심한 요구 사항이다. 선수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지만 기업인으로서 굴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사저널>은 이회장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SLS조선과 관계된 복수의 산업은행 관계자와 연락을 취했지만 이들은 “SLS조선과 관련해서 말해줄 생각이 없다. 내가 말해야 할 의무가 없지 않느냐” “너무 오래된 일이기 때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