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철 회장은 누구인가
  • 김지영·안성모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1.09.21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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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경영인? 아니면 정권에 밉보인 희생자?

▲ 싱가포르를 방문 중인 이국철 전 회장.

SLS그룹을 이끌어온 이국철 회장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고졸 신화’의 주인공으로 크게 주목되었다. 지난 2008년 11월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무역진흥확대회의에 참석한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 질의·응답을 주고받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당시 이대통령은 모두 발언에 앞서 이회장에게 “조선 주문 물량이 떨어졌다면서요?”라고 물었고, 이에 이회장은 “그래도 앞으로 3년간 생산 물량이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40대 젊은 나이로 중공업과 조선업 부문 중견 기업을 비롯해 10여 개의 회사를 거느린 그룹사의 회장에 오른 그의 성공담은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성공 신화’를 이루기까지 험로를 걸었다. 이회장의 인생 역정은 그가 지난해 11월과 올해 5월 법원에 제출한 두 건의 ‘반성문’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회장의 고향은 대구이다. 1962년 3남2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한국전쟁 때 평안도에서 월남한 그의 부모가 정착한 곳이다. 그의 부친은 대구 지역에서 건축과 염색, 부동산, 나일론 사업 등을 하면서 한때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으나, 이후  사업 실패로 빈털터리가 되었다. 그가 대구 대봉초등학교 4학년에 다닐 무렵이었다.

결국 그는 서울에 있는 국립 철도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전액 국비로 학교를 다녔다. 고교를 졸업한 1981년 3월 곧바로 서울지방철도청 기능직 9급 공무원으로 취업했다. 10여 년 동안 줄곧 기관차·객차 분야에서 근무했다. 22세 때 최연소 새마을호 기술직 승무원이 되기도 했다.  

직접 사업을 하게 된 계기는 당시 철도청 차량국장이던 학교 선배의 권유 때문이었다. 더 넓은 세상에 나가기로 결심한 그는 1992년 기능직 8급 신분으로 철도청에서 퇴직했다. 처음에는 퇴직금으로 서울 압구정동에서 간판 관련 사업을 하다가, 이듬해 철도 부품 공장인 ‘디자인리미트’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다시 철도 관련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기술 개발에 매달렸다. 1998년 옛 해태중공업 창원 공장을 인수하면서 철도 차량 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갖은 고생을 했지만 그 덕분에 사업은 번창했다. 국내 최초 신형 무궁화 객차를 개발해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2004년에는 국내 및 해외 전동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현대-대우-한진 간의 빅딜 후 ‘로템’이 독점해온 국내 전동차 시장이 경쟁 체제로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SLS라는 그룹명은 ‘바다(Sea), 땅(Land), 하늘(Sky)’에서 큰 족적을 남기는 기업이 되자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그는 2005년 말 경남 통영에 있는 신아조선을 인수했다. 이로써 SLS중공업(철도 차량 제작 및 공급)과 SLS조선(선박 제작 및 공급) 등을 운영하게 되어 그래도 두 가지 뜻은 이룬 셈이었다.

하지만 조선소 인수로 인해 그는 큰 시련을 맞았다. 분식 회계 의혹으로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고, 2009년 9월부터 9개월 동안 검찰 수사를 대대적으로 받았다. 검찰 수사에 이어 2009년 12월 SLS조선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그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회장의 부친은 그 충격으로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지난해 12월14일 급성 간염으로 별세했다. 이회장은 현재 신용불량자 신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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