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악마 만들 수 있는 사고 연발 ‘악마의 편집’
  • 하재근│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1.09.25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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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극대화 위해서라면 출연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

▲ 최근 인기를 끄는 오디션 프로그램 대다수가 출연자들의 ‘스토리’ 만들기에 골몰하고 있다. ⓒM·net 제공
최근 <슈퍼스타K> 시즌 3이 시작하자마자 동시간대 시청률 1위에 오르며 화제를 일으켰다. 시청률이 1%만 넘어도 대박이라던 케이블TV의 프로그램이 10%를 우습게 넘나들며 지상파를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른 것이다. <슈퍼스타K> 시즌 2 당시만 해도 프로그램 중반 이후에야 이런 성과가 나타났었지만 이번에는 초반부터 뜨거운 인기여서 충격적이었다.

일단 <슈퍼스타K>라는 브랜드가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이 이런 인기의 기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거기에 도전자의 실력이 예선에서부터 대단한 수준이었고, 한 명 한 명이 절박한 스토리를 보여준 것이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심사위원의 안정된 예능감과 독설도 프로그램의 재미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결정적인 요인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시청자를 쥐락펴락하는 감각적인 편집이다. <슈퍼스타K>는 원래 재미와 호기심을 극대화하는 편집으로 이름이 높았었는데 이번에는 그 ‘편집신공’이 극에 달했다. 워낙 시청자를 강하게 자극하고 노골적이어서 사람들은 그것을 ‘악마의 편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여기서 악마는 초감각적인 편집 능력과 그것에 담겨진 독기에 빗대어 나온 단어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이 표현을 애칭으로 썼다. 편집 실력과 재미에 대한 찬사였다. 하지만 이렇게 극대화된 재미 속에서 계속 사고가 터지고 있다.

작위성과 인권에 대한 논란 초래

<슈퍼스타K 3>에 도전한 톱스타의 리더에게 네티즌의 비난이 쏟아졌었다. 일부 합격을 거부하고 전체 탈락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런 선택을 한 자신들만의 사정이 있었는데, 프로그램이 그것을 보여주지 않고 전체 탈락을 선택하는 장면만을 내보냈다고 주장했다. <슈퍼스타K>가 자신을 악당으로 보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후에는 제작진이 이슈가 될 만한 사람들이 부각되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 다른 참가자들에게 자는 척하라고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참가자 김소영이 단지 화장실에 다녀왔을 뿐인데 마치 무단 이탈한 것처럼 방송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신지수 논란도 있었다. 슈퍼위크 예선에서 조장을 맡은 신지수가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독단적 행동을 하는 것처럼 방송에 나왔다. 프로그램은 신지수를 악녀로 만들기 위해 작정한 것처럼 보였다. 그것을 본 대중은 신지수를 질타했다. 그 다음에는 예리밴드가 자신들이 악당으로 편집되었다며 촬영을 아예 거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주장은 두 가지 논란을 초래했다. 첫째 작위성 논란, 둘째, 인권 논란이 그것이다. 작위성 논란은 ‘프로그램에서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인가’라는 논란이고, 인권 논란은 ‘출연자들의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인권 침해가 아닌가’라는 논란이다.

제작진은 프로그램 속 그림이 모두 진실이라고 주장한다. 거기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고, 예리밴드가 <슈퍼스타K> 촬영을 거부했을 때도 주로 진실성 여부가 화제의 중심이었다. 한마디로 ‘누구의 말이 맞나’에 대중이 관심을 쏠리는 것이다.

하지만 진실성이 있건 없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인권의 문제이다. 어느 정도 진실이라 하더라도, 예능 프로그램이 노래 경연대회에 참가한 사람의 부정적인 성격을 ‘클로즈업’시켜 국민에게 공개 망신시키는 것이 정당한 일인가? 공격받을 것이 뻔한 성격과 행동을 보여주는 것은 출연자를 대중의 먹이로 내던지는 것과 같다. 사람에게 할 일이 아니다.

▲ ⓒtvN 제공

시청률 경쟁 격화되면서 ‘독한 편집’ 따라 하기도

요즘 인기 있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모두 스토리를 강화하고 있다. 출연자를 하나의 캐릭터로 만들어, 그 캐릭터가 만들어나가는 이야기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것을 정말 잘하는 것이 <슈퍼스타K>의 악마의 편집이고, 그 밖의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대부분 이런 특성을 보인다.

캐릭터화의 기초가 되는 것은 실제 성격과 행동이기 때문에 진실은 진실이다. 하지만 너무 과장되었다. 게다가 그들은 살아 있는 ‘사람’이다. 스스로 캐릭터를 자처하는 연예인도 아니고 일반인이다. 그런 사람들을 프로그램은 과감하게 캐릭터화한다. 인간을 방송 소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인간에 대한 배려는 없다. 바로 그것이 ‘악마의 편집’의 정수이다.

프로그램은 신지수의 한쪽 성격만을 극대화해서 ‘독단적 리더’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다른 팀원들은 희생자로 그려졌다. 신지수가 얼마나 독단적인지를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이런 식으로 극적인 스토리가 짜이면 재미는 있다. 이 사람 저 사람 모두 모호한 것보다, 분명한 선역과 악역이 있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을 때 더욱 몰입이 된다. 하지만 악역을 맡은 사람이 실제 현실에서 받을 피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최근에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짝>에서 종종 비슷한 사고가 터진다. 멀쩡히 인사 잘 하고 간 사람이 야반 도주한 것으로 묘사되었다며 불만이 제기되는 식이다. <코리아 갓 탤런트>는 도전자 최성봉의 인생 스토리를 지나치게 극적으로 부풀렸다가 비난을 당하기도 했다. 하마터면 최성봉이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혀 매장될 뻔한 사건이었다.

시청률 경쟁이 격화되면서 이런 스토리화·캐릭터화에 대한 집착이 더 거세질 것이다. ‘악마의 편집’이 화제가 될수록 그런 독한 편집을 따라 하려는 욕구도 커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제2의 김그림, 제2의 신지수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  

 예능 프로그램을 너그럽게 보자 

출연자를 배려하지 않는 ‘악마의 편집’도 문제이지만, 인간성에 지나치게 예민한 네티즌들도 문제이다. 조금이라도 나쁜 행동을 하면 극단적인 공격을 퍼부으며 매장시키려는 분위기에서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출연자들 가운데서 피해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 인간적인 특성들을 관대하게 봐주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예능 속 스토리나 캐릭터를 현실과 동일시하는 것도 문제이다. 기본적으로 TV에서 잠깐 보이는 것과 실제 성격 사이에는 차이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TV 속 모습을 그 사람의 실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수시로 ‘인간성 심판’이 나타난다.

악마의 편집을 하는 쪽이나 툭하면 매장시키려고 달려드는 쪽이나, 인간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점에서는 같다. 사람을 쉽게 캐릭터로 이용하지 않고, 또 캐릭터화된 사람에게 극단적 공격을 퍼붓지 않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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