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웃어도 속은 쓰라린 ‘상전벽해 쓰촨’
  • 충칭·모종혁│중국 전문 자유기고가 ()
  • 승인 2011.09.25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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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대지진 피해 지역 현지 취재 / 복구는 잘 되었지만 주민들 상처는 여전해

“정말 놀라워요. 그야말로 상전벽해를 이루었네요.” 지난 추석 연휴 때 찾은 중국 쓰촨(四川) 성 원촨(汶川) 현 잉슈(映秀) 진. 휴가를 맞아 가족들과 함께 고향을 찾은 양메이윈 씨(여)는 눈앞에 펼쳐진 잉슈의 변화에 감격했다. 광저우(廣州)에 사는 양 씨가 마지막으로 고향을 찾은 것은 지난 2009년 2월이다. 양 씨는 “도로는 파괴되어 진입하는 데 애를 먹었고, 폐허가 된 마을은 이곳저곳이 공사판으로 변해 복구가 한창이었다”라고 말했다.

잉슈는 14억 중국인이라면 영원히 잊지 못할 장소이다. 바로 2008년 5월12일 중국 전역을 강타한 쓰촨 대지진의 진앙지이기 때문이다. 당시 규모 8.0의 초대형 강진은 사망 6만9천2백77명, 실종 1만7천9백23명, 부상 37만4천6백43명 등 막대한 인명 피해를 냈다. 직접적인 경제 손실도 8천4백52억 위안(약 1백46조6천4백20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규모였다. 지진의 충격은 3천㎞ 떨어진 베이징, 상하이에서도 심하게 느낄 정도로 심각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지진 피해지는 과거의 상처를 모두 털어냈다. 잉슈에서 지진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은 오직 쉔커우 중학교뿐이다. 당시 쉔커우 중학교에서는 교사 8명, 학생 43명, 직원 4명이 사망하고 29명이 다쳤다. 쓰촨 성 정부는 파괴된 쉔커우 중학교를 대신해 칠이(七一) 중학교를 새로이 개설하고, 옛 부지는 지진 유적지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다.

복구된 것은 집과 학교, 마을뿐만이 아니다. 지진 피해지로 통하는 도로와 다리는 과거보다 더욱 넓고 탄탄해졌다. 실제 지진 이후 쓰촨에서는 대규모 건설 붐이 일어나, 건설업 총 생산액은 2008년 8백67억 위안, 2009년 1천33억 위안, 2010년 1천2백38억 위안 등 해마다 19% 이상의 고도 성장을 구가했다. 지난봄에는 쓰촨 성의 수도인 청두(成都)에서 잉슈로 통하는 고속도로가 개통되기도 했다.

ⓒ모종혁

‘지진 관광’의 명소가 된 베이촨 현

▲ 잉슈의 쉔커우 중학교 옛터는 지금 쓰촨 대지진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 현장이자 관광 명소로 바뀌었다. ⓒ모종혁

지난 8월 말 찾은 베이촨(北川) 현도 천지개벽을 이루었다. 지진 당시 베이촨에서만 1만5천6백45명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경제 손실액도 6백70억 위안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 2월 옛 베이촨 현청에서 23㎞ 떨어진 곳에는 신도시가 건설되었다. 한국의 여느 신도시 못지않게 잘 정돈된 새로운 베이촨 신도시에는 이미 7천3백여 가구가 입주했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영원히 번창하라는 의미로 ‘융창(永昌)’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피해가 컸던 옛 베이촨 현청은 지진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중국 정부는 이곳을 ‘살아 있는 지진 박물관’으로 보호하는 한편 일주일 중 토요일에만 개방하고 있다. 필자가 찾은 날은 마침 전날 폭우가 내려 현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 입구를 막아선 무장 경찰은 “일부 건물이 무너질 염려가 있다”라며 진입을 엄격히 통제했다. 이제는 관광 명소가 된 이곳을 찾은 외지인들은 분통을 터뜨렸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쓰촨 대지진 피해지가 단시일 내 복구에 성공한 데는 중국 중앙 정부의 대대적인 원조와 ‘두이커우(對口)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이커우 지원은 잘사는 동부 지방의 성·시가 지진 피해지와 자매결연을 맺고 집중적으로 원조하는 방식이다. 즉, 광둥(廣東) 성은 원촨 현을, 산둥(山東) 성은 베이촨 현을 맡아 적극 지원했다. 이 덕분에 지난해 쓰촨 성의 총 생산액은 전년 대비 15% 성장해 중국 전체 성시 중 8위를 차지했다.

무엇보다 지진 피해지를 관광 자원으로 이용하는 현실은 아이러니하다. 지난 4월 중국 정부는 미국에서 열린 세계주거환경포럼에서 지진 피해 현장을 ‘재해 복구 기획 설계 최고 사례’로 소개했다. 5월에는 쓰촨 성 정부도 60여 개국 6백여 명의 관광산업 인사들을 초청해 지진 피해지를 시찰케 했다. 이에 지난해 쓰촨을 찾은 관광객 수는 2억7천2백46만명에 달했고, 관광 수입도 총 1천8백86억9백만 위안으로 전년보다 28.1% 늘어났다.

겉으로 난 지진의 피해는 말끔히 씻어냈지만, 마음의 상처까지는 치유되지 못했다. 가족과 친척, 친구의 죽음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아야 했던 공포와 절망감은 평생 살아남은 이의 짐이 되고 있다. 지진 당시 베이촨 중학교에 다녔던 주준홍 양(여·19)도 아직 그날의 악몽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주 양은 지진으로 어머니와 외삼촌을 잃었다. 아버지는 산사태 속에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중상을 당해 지금도 거동이 불편하다.

주 양이 다녔던 베이촨 중학교에서는 2천9백명의 학생 중 1천여 명의 희생자를 냈다. 같은 반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 10여 명도 목숨을 잃었다. 주 양은 “요즘도 크고 작은 여진이 지속되고 있어 당시의 기억을 계속 떠오르게 한다. 주변에 공포와 우울증으로 정신적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라고 토로했다.

실제 지진으로 인한 충격으로 만성적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가 수백만 명에 달하고 있다. 베이촨 현 정부 관리 중 40%가 스트레스성 장애를 안고 있다. 쓰촨 성은 중국에서 자살 건수가 가장 많고 이혼율이 최고일 정도이다. 지난해에는 16만9천2백94쌍이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수많은 사람이 한시에 죽는 참상을 보며 겪은 정신적 상처로 심리 상태가 불안한 주민이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지금까지 여진이 빈발하고 있어 현지 주민들을 불안케 하고 있다. 지난 6월5일 베이촨 현과 마오(茂) 현 경계 지점에서 규모 4.3의 지진이 발생했다. 7월 초에는 폭우와 산사태로 두 명이 숨지고 여섯 명이 실종되었다. 당시 원촨은 외부와 연결되는 유일한 국도가 산사태로 막혀 여러 날 고립되었었다. 9월4일에도 원촨과 두장옌(都江堰)에서 규모 4.3의 지진이 일어나 청두에서도 그 진동을 느낄 정도였다.

▲ 살아 있는 지진 박물관으로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옛 베이촨 현청(왼쪽). 붕괴 위험 때문에 토요일에만 외부에 공개하고 있다. 옛 베이촨 현청을 찾은 관광객들(오른쪽). ⓒ모종혁

주민들, 내상 치유·생활고 해결 등 시급

여진이 끊임없이 계속되면서 현지 주민과 일부 전문가는 잉슈 진에서 5.5㎞ 떨어진 쯔핑푸(紫坪鋪) 댐을 대지진의 ‘원흉’으로 지목하고 있다. 쯔핑푸 댐은 2007년 완공되었는데, 높이가 1백56m에 달하고 저수량은 3억1천5백만t에 이른다. 잉슈에서 만난 한 주민은 “민(岷) 강 상류에 크고 작은 댐이 있었지만 쯔핑푸처럼 거대한 저수량을 갖춘 댐은 유사 이래 처음이었다. 댐이 완공된 지 단 1년 만에 대지진이 일어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그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지만 과학자들의 견해는 다르다. 2009년 2월 쓰촨 성 지질광물국과 미국 컬럼비아 대학 합동연구팀은 “지진 단층에서 불과 5백50m 떨어진 쯔핑푸 댐의 물이 바위층에 스며들면서 단층대에 압력을 가했고, 그로 인해 단층이 무너지면서 지진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발표했다.

판샤오(范曉) 쓰촨 성 지질광물국 수석 엔지니어는 “쓰촨이 지진 다발 지역이지만 해당 단층대에서는 지난 수백만 년간 큰 지진 활동이 없었다. 쯔핑푸를 비롯한 대형 댐의 건설이 지질 구조에 심각한 영향을 준 것이 분명하다”라고 말했다. 판 씨는 중국 정부의 압력으로 지속적인 연구가 힘들다면서 “제2의 재앙을 막기 위해서 지금이라도 전면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먹고살 일은 주민들에게 무엇보다 큰 문제이다. 대다수 주민은 빚을 내어 정부가 지어준 아파트에 입주했지만,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장사와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수입원이 없다. 베이촨에서 만난 리궈한 씨는 “매달 대출금을 갚기가 버거워 집 안에는 무상으로 지원받은 생활용품 외에 아무것도 없다.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걱정이다”라며 한숨지었다.

대지진의 피해를 딛고 일어선 쓰촨의 변화는 분명 찾는 이를 감탄케 했다. 하지만 내면에 흐르는 깊은 상처와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영혼에 뿌리박힌 내상은 쉽게 치유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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