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표적이 되어 쫓기는 탈북자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1.09.27 16:5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위급 망명자·탈북단체장 등 8명이 ‘A급’북한, 경각심 주기 위해 시범 케이스로 살해하기도

▲ 2002년 3월14일 주중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해 한국행을 요구했던 탈북자 25명이 나흘 뒤 필리핀을 거쳐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있다(왼쪽). ⓒ연합뉴스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들이 위험하다. 최근 주요 탈북자들의 신변 경호에 비상이 걸렸다. 이미 조명철 통일교육연구원장,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김덕홍 전 북한 여광무역연합총회사 총사장 등이 테러 위기를 모면했다. 이들은 모두 북한을 탈출한 고위급 탈북자나 탈북단체의 수장들이다. 북한 당국이 밀파한 검은 그림자들이 호시탐탐 이들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북한 당국의 타깃이 되고 있는 탈북자들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조심은 해야지만 특별한 것은 없다”라며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누구를, 왜 노리는 것일까. 현재 주요 테러 명단에 오른 ‘A급 탈북자’는 8명으로 압축된다. 북한 고위층 탈북자이거나 북한 체제와 김정일 정권을 비판해온 국내외 탈북단체장들이 여기에 속한다.

북한 당국의 ‘암살 1호’는 김정일 정권의 심장부를 노리는 사람이다. 기자가 지난 2008년 평양을 방문했을 때 한 북한 당국자는 “공화국을 배신한 자들은 천벌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반드시 응징한다”라고 말했다. 북한 사람들 정서에 탈북자들은 ‘배신자’이며 반드시 응징할 대상으로 꼽히고 있는 것이다.

실제 북한 당국은 탈북자들에 대해 극도의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 북한 체제를 거부한 ‘배신자’로 낙인을 찍고 ‘공공의 적’으로 삼고 있다. 지난 1997년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처 성혜림씨(사망)의 조카 이한영씨가 암살된 일이 있었다. 이씨는 1978년 모스크바 외국어대 어문학부를 전공한 엘리트 출신으로, 프랑스어 연수를 위해 스위스 제네바로 들어간 뒤 1982년 9월 서방으로 탈출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한국에 망명했다.

이씨는 북한 고위층의 실상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가족, 측근의 생활을 담은 <대동강 로열패밀리>라는 책도 펴냈다. 1997년 2월15일은 이씨의 운명을 갈랐다. 이날 오후 9시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자신의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괴한 2명에 총기로 피격당했고, 얼마 후 사망했다.

이씨의 피격 사건은 지금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누가 왜 이씨를 죽였는지 밝혀진 것이 없다. 다만 이씨는 죽기 전에 ‘간첩’이라고 말했다. 또 살해 현장에서 발견된 탄피가 북한 간첩들이 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를 토대로 북한의 소행으로 추측되고 있을 뿐이다.

이한영씨가 죽은 뒤에 북한 당국의 ‘공공의 적’은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였다. 황씨는 북한의 통치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의 최고 이론가이며, 한때 북한 권력 서열 13위에 올랐던 핵심 권력층이다. 황씨는 김정일과 갈등을 겪다가 이한영씨가 살해된 해인 1997년 베이징 주재 한국 총영사관을 통해 한국으로 망명했다. 지금까지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 가운데 최고위층 인물이다. 망명 후에는 남한 탈북자들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며 강연과 방송 등을 통해 북한 체제와 권력을 비판해왔다.

북한 당국은 황씨의 암살을 최대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황씨를 암살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작조’를 내려보냈다. 지난해 초에는 북한의 정찰총국 요원 두 명을 탈북자로 위장해 남파했다가 우리 정보 당국에 의해 적발되었다. 황씨는 지난해 10월 갑자기 사망했다.

황씨가 사망한 후 북한의 암살 타깃도 바뀌었다. 북한 정권에 반기를 드는 탈북단체들이 ‘테러 1순위’가 되었다. 특히 북한 당국은 대북 전단지를 보내는 단체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이들이 보낸 전단지는 휴전선 인근에서 평양까지 곳곳에 떨어지고 있다. 북한 현지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남한 삐라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고 한다. 급기야 지난 3월에는 “대북 삐라 발원지에 대해 조준 격파하겠다”라고 위협하기까지 했다.

▲ 1997년 2월 괴한들에게 권총으로 저격당한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의 조카 이한영씨(아래 사진)가 수술을 받고 있는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차병원 수술실 앞에서 경찰이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위 사진). ⓒ연합뉴스(아래), ⓒ 연합뉴스(위)

목숨 걸고 활동하는 탈북단체장들

이 중에서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오래전부터 핵심 표적이었다. 박대표는 지난 2000년에 북한을 탈출한 후 2004년부터 대북 전단지를 날리기 시작했다. 주요 이슈가 있을 때마다 북한 접경 지대인 임진각 등에서 대북 전단지를 북한으로 보냈다. 김일성 일가의 3대 세습을 비판하고, 김정일 정권의 허구를 폭로하는 데 앞장섰다.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신변의 위협을 받는 일도 있었다. 집으로 괴전화가 걸려오는가 하면 누군가가 집 문을 두드리고 도망가는 일도 있었다. 그러다 지난 9월3일 위험에 빠졌다. 오래전에 알고 지내던 탈북자가 박대표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대북 전단을 날리는 데 금전적인 후원을 한다며 만나자고 했다.

박대표는 ‘후원’이라는 말에 솔깃해서 약속 장소로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국정원이 “위험하다”라며 막아섰다. 이 때문에 박대표는 죽을 고비를 넘겼다. 박대표와 만나기로 약속한 안 아무개씨(53)는 북한 인민무력부 산하 후방총국 장교 출신이었다. 안씨는 1996년 국내에 들어온 후 안보 강사 등으로 활동하며 자신을 위장했다. 박대표는 “2001년도에 처음으로 만나 4~5년 동안 알고 지내다가 갑자기 소식이 끊겼다. 그러다 올해 2월에 전화를 해 만나자고 했다”라고 말했다. 만약 박대표가 약속 장소에 나갔다면 테러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안씨는 독침과 독총을 소지하고 있었다. 박대표는 현재 모처에서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다.

이민복 기독북한인연합 대표도 북한의 주요 표적이 되고 있다. 이대표는 1995년 2월에 탈북한 후 2003년 10월부터 풍선을 이용해 북한에 전단지를 날리고 있다. 지금의 대형 비닐 풍선을 개발한 것도 이대표이다. 전단지를 종이에서 비닐로 바꾼 것도 그가 처음이었다. 지난해에만 1천5백개의 풍선을 날려보냈다. 지금까지 북한으로 약 4억장의 전단지를 날려 보냈다고 한다. 기독북한인연합의 삐라는 북한 체제의 허구성을 알리는 내용과 개신교 선교용이다. 지난 3월 북한의 ‘조준 격파’ 경고가 나온 이후 백령도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관광객이 줄어들고, 위험하다며 주민들의 반대가 심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민복 대표의 경호도 관할 경찰서에서 맡고 있다. 이대표는 “우리가 행동하는 것이 너무 노출되면 위험하다. 우리 행동은 기관에서만 알아야 하는데, 누구나 다 알 수 있도록 ‘어느 장소에서 풍선을 날리니까 들어오지 마라’라고 하는 것은 정보를 유출하는 것이다. 주민들에게 괜한 불안감을 심어줄 필요도 없다. 그리고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경계하고 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탈북자들이 주축이 된 탈북단체장들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탈북단체장 중에서는 한창권 탈북인단체총연합(탈총련) 대표를 꼽을 수 있다. 탈총련은 국내 30여 개의 탈북자 단체의 연합체이다. 한회장은 탈북단체장 중에서도 최고 강성으로 꼽힌다.

북한 전문 매체의 대표도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현재 대북 매체 중 탈북자가 운영하는 대표적인 곳은 자유북한방송과 NK지식인연대이다. 자유북한방송은 북한군 대위 출신인 김성민 대표가 2004년 4월에 설립해 본 방송을 시작했다. 김대표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생존해 있을 때 가장 가깝게 지낸 측근 인사이다. 사실상 황 전 비서의 집사 역할을 했다. 자유북한방송은 북한측의 방송 중단 요구로 사무실을 옮긴 일도 있었다. 출범 당시의 사무실은 통일문제연구소 내에 있었다. 그런데 남북 장관급회담 때 북한 대표단이 방송 중단을 요구한 후 방송국 사무실을 이전했다.

자유북한방송은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북한 바로 알기와 북한 민주화 등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북한 전역에 현지 통신원을 두고 있다. 김성민 대표는 “처음 방송을 시작할 때부터 (북한 당국으로부터) 폭파하겠다는 협박을 받았다. 위험을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다. 과거 김일성이 김정일에게 후계를 물려줄 때에도 한국인이나 일본인 납치를 주도하는 등의 업적을 쌓으려고 했다. 김정은도 업적을 쌓기 위해 도발할 가능성이 크다.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 끝장을 볼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김성민 대표는 최근 탈북자들에 대한 테러 위협이 있은 후 경호 경찰관이 세 명에서 네 명으로 늘어났다고 말한다. 

탈북자들의 학술단체인 NK지식인연대 김흥광 대표도 북한 정권에는 눈엣가시이다. 김대표는 함흥 소재 컴퓨터기술대 대표를 거쳐 공산대학교 컴퓨터강좌장을 역임했다. 2004년에 중국을 거쳐 남한에 입국했다. 2008년 12월에 북한 출신의 컴퓨터 전문가와 석·박사급 인사 6백여 명을 모아 NK지식인연대를 출범시켰다.

그 후 북한 사회의 변화와 민주화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북한 내부에 현지 통신원들을 운영하며 북한 정보를 수집해 국내외에 알리고 있다. 대북 전문 매체들은 북한 현지인을 통신원으로 고용해 휴대전화를 지급하고 있다. 휴대전화를 통해 북한 내부의 속사정이 남한으로 속속 전달되면서 북한 당국을 긴장하게 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대북 매체들에 대한 북한의 위협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탈북자들 속에 암살자 섞여 있을 수도’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를 노린 탈북자 출신 간첩 안씨는 황장엽 전 비서의 망명 동지였던 김덕홍 전 북한 여광무역연합총회사 총사장도 노렸다. 국정원은 안씨가 김 전 총사장 등 고위 망명객들을 대상으로 암살 작전을 세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안씨가 김 전 총사장에 대한 암살 지령을 받았지만 접근이 쉽지 않자 대상을 박상학 대표로 바꿨다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또 김일성대 교수 출신인 조명철 통일교육원장도 노렸다. 조원장은 탈북자 출신으로 남한의 최고위급에 오른 인물이다. 가장 성공한 탈북자이다. 그는 1994년에 탈북한 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일해왔고, 지난 6월 통일부 산하 통일교육원장에 임명되었다.

북한이 조명철 원장을 노린 것은 탈북자 출신 최고위직 인사라는 상징성 때문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조원장을 암살함으로써 탈북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이들의 반북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한 것이다. 후계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상징적인 업적을 쌓으려는 노림수도 있다”라고 분석한다. 이밖에 북한 체제 폭로에 앞장섰던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와 KAL기 폭파범 김현희씨 등도 테러 대상 범주에 들어 있다. 여러 정황상 북한 당국의 남한 내 주요 탈북 인사들에 대한 암살이나 테러 기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탈북자들 중에 ‘간첩’으로 의심 가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탈북자들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고 말한다. <시사저널>은 제1085호(2010년 8월10일자)에 ‘탈북자 2백여 명 다시 월북했다’라는 기사를 보도한 적이 있었다. 탈북자 중 상당수가 북한으로 재입북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재입북한 탈북자 중에는 ‘간첩’으로 의심되는 인물도 적지 않았다. 문제는 남한 당국에서는 이런 사실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탈북자들의 관리를 맡고 있는 관할 경찰에서도 파악이 안 되고 있었다.

지금의 탈북자 관리에는 엄연한 한계가 있다. 탈북자는 급증하고 있지만 이들을 관리하고 있는 경찰관의 숫자는 적기 때문이다. 현재 경찰 1명이 탈북자 50~70여 명을 관리하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을 경계해야 할까. 한창권 탈총련 회장은 “탈북단체에 관심을 보이고 지나치게 자주 찾아오는 사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가 한참 후에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 ‘후원하겠다’거나 ‘후원자를 소개하겠다’라는 등 과도한 친절을 베풀며 접근해오는 사람 등이 의심 가는 인물이다. 또 남한에서 사라진 뒤 북한에서 목격되는 사람이나 다른 탈북인 단체장들과 ‘호형호제’한다는 등 각별한 친분을 떠벌리는 사람도 의심이 되는 인물이다”라고 보았다.  

이민복 기독북한인연합 대표는 “일단 가까운 사람, 아는 사람, 후원자를 가장 주의해야 한다. 2~3년 전에도 어떤 탈북자가 만나자고 했는데, 그 사람의 전화번호도 나오지 않았다. 실제로 만나지는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잘 대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탈북자를 가장한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순수 탈북자가 아니라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탈북자들 속에 섞여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러나 김대표는 “탈북자들끼리 서로를 무조건 의심하지 말고, 북한의 위협에 위축되지 말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1997년 4월20일 서울로 망명한 황장엽씨(왼쪽). ⓒ연합뉴스
주요 탈북자들에 대한 경호는 관할 경찰에서 맡고 있다. 경찰에서는 지난 2008년 10월부터 고위급 탈북자나 탈북단체장 등에 대해서는 ‘가급’ 경호를 하고 있다. 관할 경찰서 보안과 소속 무장 경찰관 두 명 이상이 24시간 밀착하며 신변 경호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타계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경우 국정원과 경찰이 나서 24시간 ‘특급 경호’를 했다. CCTV와 방탄유리가 설치된 별도의 안전 가옥에서 지냈다. 북한 최고위층 망명자라는 예우를 받은 것이다. 지금은 탈북자들의 경호를 경찰에서 전적으로 맡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황장엽씨가 사망한 후에는 우리가 경호를 맡고 있는 탈북자는 없다”라고 확인해주었다. 

한 대북 심리전 전문가는 “북한 당국은 자신들에게 껄끄러운 탈북자들을 가장 경계한다. 자신들을 자극하면 할수록 타깃으로 삼으려고 한다. 내가 보기에 누군가는 시범 케이스로 삼아 반드시 암살하려고 들 것이다. 진짜로는 정부 요인이 목적인데, 탈북자를 테러하는 것처럼 연막을 피울 수도 있다”라고 경계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