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기만 한 ‘손’ 위의 ‘박’
  • 김형구│세계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1.09.2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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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민주당 대표, 박원순 변호사 영입에 승부 걸어…“최종 목표는 야권 통합 기틀 세우는 것”

▲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지난 9월13일 국회 당 대표실에서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박원순 변호사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2000년 4월 17대 총선을 앞두고 있을 때의 일이다. 참여연대를 핵심 축으로 한 시민단체 연합군인 ‘총선시민연대’가 주도한 낙선 운동이 전국을 강타했다. 당시 박원순 변호사는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있으면서 최열 당시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등과 함께 이 운동을 진두지휘했다. 그때 박변호사가 최사무총장 등 시민운동 수뇌부 인사들에게 신신당부한 얘기가 있다. “절대 정치권에 기웃거려서는 안 된다”라는 ‘경계령’이었다. 정치권과 ‘섞이는’ 순간 낙선 운동의 진정성이 오염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후 굵직한 선거나 정부 개각이 있을 때마다 박변호사는 정치권의 숱한 러브콜에도 시민운동의 ‘대부’ 자리를 꿋꿋이 지켜왔다. 그런 그가 마침내 ‘용틀임’을 시작했다. 그것도 내년 총선과 대선의 전초전으로 격상된 10월26일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 뛰어든 것이다. 그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풍부한 아이디어, 철두철미한 실행 능력 등에 ‘무한 신뢰’를 보낸다. 여의도 정치권에서조차 “콘텐츠가 충실한 시장 후보이다”(원희룡 한나라당 최고위원), “최고의 카드이다”(원혜영 민주당 의원)라는 찬사가 나올 정도이다.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박변호사가 끼어든 이번 서울시장 선거전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손대표가 민주당 소속 박영선 의원과 추미애 의원을 ‘삼고초려’ 하다시피 해 9월25일 시장 후보 경선에 끌어들인 것도 그래서다. 당초 손대표는 ‘박원순 야권 통합 후보’에 미련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낭설로 드러나기는 했지만 한때 두 사람의 회동설이 돌면서 이런 관측이 힘을 얻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박변호사가 손대표의 손을 떠났다”라는 얘기가 나온다. 박변호사가 민주당 경선에 ‘불참’하는 등 선을 분명히 그으면서다. 손대표가 9월25일 치러진 민주당 시장 후보 경선의 ‘흥행’에 사활을 건 것도 이런 흐름에서다. 민주당의 자존심 세우기에 손대표가 직접 앞장선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이다. 박변호사와의 ‘단일화 승부’를 벌여야 한다. 특히 박변호사는 시민사회 진영이 밀고 있는 만큼 이번 단일화 과정이 야권 통합 및 연대의 결정적인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손대표가 민주당 경선의 여세를 몰아 박변호사와 맞붙을 단일화에 전력을 쏟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손대표는 최근에 “민주당 없는 서울시장 선거는 없다”라며 필승 의지를 여러 차례 드러냈다.

그럼에도 ‘손심(孫心·손대표의 의중)’은 여전히 야권 통합 쪽에 무게 중심이 가 있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최근 기자와 만난 손대표의 한 핵심 측근이 전한 얘기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 측근은 “손대표는 야권 통합의 기틀을 올곧게 세우는 데 최종 목표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번 시장 선거전에서 기호 2번 민주당 후보를 앞세워 이기는 것이 당 대표라는 위치에서는 중대한 과제이다. 하지만 ‘야권 통합의 무대’로 승화시켜 내년 정권 교체를 위한 1 대 1 구도를 만드는 기반으로 삼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라는 것이다.

민주당이 끝까지 박변호사를 붙잡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는 듯하다. 손대표는 지난 9월13일 국회에 있는 민주당 대표실을 찾은 박변호사를 만난 자리에서 입당 의사를 우회적으로 타진한 바 있다. 손대표의 이런 생각에는 과거 조순 시장, 고건 시장을 배출한 사례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조순 전 한국은행 총재를 서울시장 후보로 영입하고 고건 전 총리를 내세워 시장 선거에서 승리한 전례를 벤치마킹하겠다는 것이다.

총선·대선 앞두고 벌이는 초반 샅바 싸움

손대표의 또 다른 핵심 측근도 “박변호사가 결국은 민주당에 들어오지 않겠느냐”라며 입당 가능성을 크게 전망했다. 실제로 박변호사를 영입하는 데만 성공하면 손대표의 리더십이 화려하게 재조명받을 것이 자명하다. 박변호사가 만일 입당해 기호 2번 후보로 나서 이번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손대표의 대권 가도에는 청신호가 켜질 수 있다.

 그러나 박변호사가 ‘무소속 완주’를 고수하면 손대표는 다시 시험대에 서야 한다. 즉, 10월 초에 있을 야권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경선이 그것이다. 민주당 후보가 박변호사를 꺾고 야권 단일 후보로 옹립되면 민주당으로서는 자존심을 찾겠지만, 야권 통합의 기반으로 삼고자 했던 손대표의 당초 구상은 흐트러질 수 있다. 거꾸로 박변호사가 단일 후보로 확정되면 손대표의 ‘큰 그림’에는 얼추 맞춰질 수 있지만, 자당 후보를 내지 못한 민주당 내에서 비주류를 중심으로 한 ‘손학규 흔들기’가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과 시소 게임을 벌이는 박변호사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민주당 입당 가능성을 열어두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민주당 쪽에 완전히 기우는 듯한 자세도 아니다. 입당 문제로 인한 논란이 확산되자 그는 9월21일 출마 선언에서 “명실상부한 통합·단일 후보가 되고자 한다. (입당 여부 등) 나머지 문제는 그 이후 고민하겠다”라고 말했다. 야권 단일 후보로 확정된 뒤에는 민주당 입당 여부를 생각해볼 수 있다는 뜻이다.

박변호사로서는 엄존하는 민주당 지지층의 강력한 응집력을 마냥 외면하기 힘든 현실이다. 이와 관련해 박변호사측과 가까운 한 인사는 “지난 8월 무상급식 주민투표 때 투표율 25.7%로 나타난 보수 결집을 보라. 민주당을 등에 업지 않고서는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민주당 입당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라고 했다. 민주당 후보는 아니더라도 민주당의 전략적 지원을 받는 방안 등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듯한 뉘앙스이다.

박변호사를 미는 시민사회 진영과 민주당이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 룰을 둘러싸고 벌이는 신경전은 이런 배경에서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전개하는 초반 샅바 싸움이기도 하다. 민주당은 국민 참여 경선을 주장하는 반면 시민사회 진영은 ‘조직 동원’을 이유로 반대하는 대신 배심원제를 통한 후보 선출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관건은 결국 지지율 추이가 될 듯하다. 민주당 후보가 ‘경선 승리’의 약발을 받아 박변호사와의 격차를 크게 좁힌다면 후보 단일화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다. 그 반대가 되면 통합 경선 과정에서 민주당은 시민사회 진영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해볼 만한 싸움’이다. 지난 9월22일 발표된 서울신문의 여론조사 결과가 불리하지만은 않게 나왔기 때문이다. 양자 구도를 전제로 했을 때 한나라당 나경원 최고위원 대 박변호사의 지지율은 34.7% 대 50.6%였고, 나최고위원 대 민주당 박영선 의원의 지지율은 43.3% 대 36.8%로 나타났다. 아직까지 박변호사의 경쟁력에 밀리기는 했지만, 9월25일 민주당 경선 이후 컨벤션 효과가 극대화되면 이 격차는 순식간에 따라잡을 수 있다고 민주당은 기대하고 있다. 박변호사를 마주한 손학규 대표로서는 이번 서울시장 선거가 대권 가도의 향방을 가늠할 최대 관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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