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통 몰린 박근혜, ‘등판’ 초읽기
  • 조진범│ 영남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1.09.2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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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적으로 서울시장 보선 지원 위한 ‘모종의 조치’ 지시…위험 부담 최소화 대책 등 논의 중

▲ 한나라당 나경원 최고위원(오른쪽) 주최로 지난 9월14일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열린 여성 의원 오찬간담회에서 박근혜 전 대표(왼쪽)가 식당으로 들어오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의 여왕’이 움직인다. 10월26일 실시될 서울시장 보궐 선거를 맞아 ‘박근혜 등판론’이 현실화되는 분위기이다. 서울시장 보선을 무대로 드디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무대의 전면에 나서는 셈이다. ‘안철수 바람’에 이은 또 한 편의 흥미진진한 정치 드라마가 펼쳐질 예정이다.

박 전 대표의 서울시장 보선 지원의 군불은 일찌감치 지펴졌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면서 박 전 대표의 등판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고, ‘친박계’는 선거 지원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박 전 대표 스스로도 쏟아지는 질문에 “(선거 유세를) 지원하지 않겠다”라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선거 불개입’ 원칙을 강조하며 각종 선거에서 거리를 두었던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박 전 대표가 선거 지원 논란을 부른 경우는 딱 한 번으로 지난 4월 강원도지사 보궐 선거였다. 강원도지사 보선 당시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 평창동계올림픽유치특위 고문 자격으로 얼굴을 내민 적이 있다.

친박계 핵심인 유승민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최근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친박계의 나경원 최고위원 비토설’에 대해 “특정 계파가 당내 예비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비토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고 잘못 알려진 것이다”라고 부인했다. 나최고위원이 한나라당 후보가 되더라도 박 전 대표가 지원하는 부담을 덜어주려는 메시지였다. 박 전 대표 역시도 ‘나경원 비토론’에 대해 “그런 것이 어디 있겠느냐”라고 선을 그었다. 

사실 정치권에서는 친박계가 나경원 최고위원을 마뜩찮게 생각한다는 것이 정설로 통한다. 나최고위원이 오 전 시장을 ‘계백 장군’으로 부를 정도로 무상급식 주민투표 강경론자였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관련해 “지방자치단체의 사정과 형편에 맞춰야 한다”라며 거리를 두었었다.

그런데 한나라당 내에서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꼽히는 나최고위원의 무상급식 관련 입장이 갑자기 유연해졌다. 나최고위원은 지난 9월21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 대해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 앞으로 그에 따른 변화가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시장이 된다면 무상급식 문제에 대해 원점에서부터 논의하겠다”라고 밝혔다. 나최고위원의 의도는 명확하다. 무상급식에 대해 박 전 대표와의 거리를 좁히고, 박 전 대표가 선거를 지원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나최고위원이 무상급식에 대한 입장을 선회하면서 친박계와 이미 교감을 나눈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박 전 대표가 선거를 지원하는 것을 전제로 나최고위원과 친박계가 사전 정지 작업을 했다는 분석이다.

친박계 핵심 의원들은 국정감사 기간 중에도 삼삼오오 모여 서울시장 보선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안철수 바람’에 따른 무당파의 돌풍을 우려하면서도 박 전 대표의 서울시장 보선 ‘역할론’에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친박계 일각에서는 ‘외통수’라고 표현한다. 한 친박계 인사는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섰는데 서울시장 선거에서 완패하면 일정 부분 타격이 불가피하고, 대세론이 흔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선거 지원에 나서지 않은 채 또 뒷짐을 지고 있을 경우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된다. 한나라당 대선 경쟁에서 자칫 출발선에 서지 못하는 사태가 올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친이계’는 절박한 심정으로 ‘박근혜 등판론’을 말한다. 특히 수도권 친이계 의원들은 ‘안철수 바람’에 따른 무당파의 돌풍이 계속되면서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친이계의 ‘박근혜 등판론’은 생존 본능에 따른 절규에 가까운 모양새이다. 박 전 대표의 잠재적 경쟁자로 불리는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조차 “박 전 대표도 이번 서울시장 보선의 중요성을 충분히 알 테니까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직접 나서면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라고 평가했을 정도이다.

박 전 대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서울시장 보선 지원 여부에 대해 아직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지난 9월21일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서울시장 보선 지원과 관련해 “당 지도부에서 알아서 판단하겠죠”라고 말했다. “복지 전반에 대한 당론이 결정되면 지원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봐야죠”라고 즉답을 피했다. 박 전 대표는 이에 앞서  “당이 입장 정리를 하고 있는데 앞서가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순서가 맞지 않다. 당이 어떻게 하면 선거를 잘 치르느냐를 놓고 절차를 고민하는 과정이다. 당 지도부에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친박계, 박 전 대표가 움직일 명분 달라 요청

박 전 대표의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이미 서울시장 보선을 지원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채 ‘수순 밟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지원의 명분과 환경을 조성해달라는 주문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친박계가 이미 당 지도부에 박 전 대표가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계의 한 핵심 인사는 “복지 당론도 당론이지만, 당 지도부가 공식적으로 박 전 대표에게 선거 지원을 요청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지금까지 당 지도부는 언론에 흘리는 식으로 박 전 대표의 도움을 요청했을 뿐이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선대본부장 등 선거 지원에 나설 수 있는 보직도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박 전 대표가 선거 지원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준비에 들어갔다는 말도 나온다. 공식적으로는 유보적 입장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서울시장 보선을 지원하기 위한 ‘모종의 조치’를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선거 지원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대책도 동시에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계의 한 전략가는 “이른바 반박(反朴) 세력이 벌써부터 서울시장 보선 결과의 책임을 박 전 대표에게 몽땅 떠넘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박 전 대표로서도 충분한 대책을 세우고 행보에 나설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서울시장 보선에 전면적으로 나선다면 여권은 처음으로 모든 ‘화력’을 갖추게 된다. 그동안 선거 때마다 튀어나온 ‘박 전 대표가 지원했더라면’이라는 가정 화법이 사라진다. 한나라당이 박 전 대표의 지원을 등에 업고 승리한다면 내년 총선에 대한 암울한 전망을 반전시킬 수 있다. 박 전 대표에게도 새로운 기회이다. 중립 지대인 수도권의 보수와 중도를 흡수할 수 있는 무대이다. 수도권의 지지 기반을 확인한다면 ‘대세론’도 한층 탄력을 받는다.

문제는 결과에 있다. 만약 박 전 대표가 선거를 지원했음에도 여권이 서울시장 보선에서 패할 경우 조금 복잡해진다. ‘대패(大敗)’와 ‘석패(惜敗)’의 의미가 달라진다. 아직 선거 분위기가 여권에 호의적이지는 않다. 지더라도 아깝게 질 경우 한나라당은 희망을 가질 수 있고, 박 전 대표의 경쟁력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게 된다. 대패는 한나라당이나 박 전 대표에게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박근혜 등판론’이 정치권에 던져주는 의미가 갈수록 무게감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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