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측근 비리, 국민 인내심 시험하나
  • 유창선 |시사평론가 ()
  • 승인 2011.09.27 17:1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력 비리 없을 것이라던 현 정부의 큰소리 무색해져 대통령이 책임 지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모습 보여야

 ‘MB맨’들의 비리 행각이 줄을 이어 드러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구이자 후원자로 지난 17대 대선에서 공을 세웠던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은 대출 및 세무조사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진작에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역시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BBK 팀장’을 맡아 공을 세웠던 은진수 전 감사위원은 부산저축은행그룹으로부터 구명 로비 대가로 수천만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로비스트 박태규씨로부터 부산저축은행그룹 구명 청탁과 함께 거액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정권 실세들의 연이은 비리 논란은 최근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는 모습이다. <시사저널>은 신 전 차관이 지난 10년 동안 이국철 SLS그룹 회장으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제공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국철 회장은 자신이 2002년부터 최근까지 신 전 차관에게 십수억 원대에 이르는 현금과 법인카드, 차량 등을 제공한 사실을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이회장은 신 전 차관이 언론사에 재직하던 2002년 무렵부터 그에게 돈을 대주었고,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의 선거 조직인 안국포럼에 급전이 필요하다고 해서 돈을 주었다고 폭로했다.

그런가 하면 신 전 차관은 대선 후 대통령 당선인 정무기획팀장으로 있을 때부터 문화부 차관으로 재직할 때까지 SLS그룹의 싱가포르 법인 명의의 법인카드도 제공받았고, 청와대 직원과 정권 핵심 실세에게 선물을 줘야 한다며 상품권 등도 받아 갔다고 이회장은 밝히고 있다. 심지어 차관직에서 물러난 이후인 지난 1월에도 이회장이 일본 여행 경비까지 대주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말문이 막히게 된다. 이 정도면 정권 실세로서 권력의 지위를 이용해 호가호위하며 금품을 뜯어냈다는 얘기가 된다. 사실이라면 죄질이 아주 안 좋은 경우이다. 아직 당사자는 부인하고 있어서 폭로 내용의 진위는 앞으로 수사를 통해 가려져야겠지만, 정권의 실세로 불리며 강경한 언론 정책을 선도했던 인물이 뒤에서는 10년 동안 이런 검은돈을 무차별적으로 받아왔다는 의혹 앞에서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 있어

▲ 지난 9월21일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씨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대검찰청에 소환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문제는 정권 실세들의 비리 행각이 이것이 전부가 아닐 것이라는 인식이 만연한 현실이다. 이미 정치권 안팎에는 다른 정권 실세 인사들과 관련된 또 다른 의혹들이 입에서 입으로 돌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권력 비리는 여기까지로 일단락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시작일지 모른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천신일 회장으로부터 시작해 신재민 전 차관에 이르는 권력 비리의 연장선에서 앞으로 누가 또 등장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이미 이명박 정부는 도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이대통령은 집권 이후 수차례에 걸쳐 현 정부에서는 권력 비리가 없을 것임을 공언했지만, 대통령의 그 말은 허언이 되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권력 비리가 없기는커녕 이전 정권 때보다도 더 많은 권력 비리가 드러나고 있다. 한두 명이 아니라 실세들이 줄줄이 비리에 연루되는 장면이 국민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MB맨’들의 연이은 비리는 당연히 이대통령의 레임덕으로 연결될 것이다. 자신의 임기 중에는 비리가 없을 것이라던 공언을 무색하게 만들고 거꾸로 권력 비리가 창궐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국민의 신뢰와 지지가 유지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현 집권 세력으로부터 등을 돌린 민심은 더 악화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레임덕이 본격화했던 것도 대통령 주변의 비리가 드러나면서였음을 돌아볼 때, 이대통령도 이제 민심 이반의 가속화 속에 내리막길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자신의 측근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또한 그러한 인물들을 걸러내지 못하고 중용한 대통령의 책임이다. 정권 실세들의 잇단 비리와 관련해 이대통령이 져야 할 책임은 실로 크다.

그러나 그동안 자신의 측근들이 비리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던 과정에서 이대통령이 얼마나 책임을 통감하는 모습을 보였는지는 의문이다. 이대통령은 ‘대통령의 사람들’이 비리에 연루된 사실을 계속 접하면서도 국민 앞에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사건이 터져나올 때마다 ‘격노했다’는 식의 전언만 청와대에서 들려올 뿐, 이대통령이 직접 자신의 책임을 거론하며 국민에게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곤 했다.

MB맨들의 비리 행각조차도 그 사람들의 문제이지 대통령 자신의 문제는 아니라는 식의 모습이었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져야 할 책임이 어떠한 것인가를 헤아리지 못한 안이한 대응이었다. 대통령 자신이 더 엄격한 잣대로 스스로를 탓하고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려 했다면 이렇게 줄줄이 사탕처럼 측근 비리가 터져나오는 상황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국민에게 사과할 줄 모르고 자신의 책임을 소홀히 여기는 대통령의 모습은 정권 내부의 도덕적 긴장감을 이완시키는 결과로 이어졌고, 그것이 현재와 같이 연이은 권력 비리를 낳은 것이다.

이제라도 이대통령은 그동안 계속된 측근 비리에 대해 국민에게 고개 숙이고 책임을 통감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통해 최소한의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서는 측근들의 기강을 잡는 일은 어려워진다. 대통령 자신이 측근 비리의 문제를 다름 아닌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는 모습을 보일 때 권력 내부에 있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줄 수 있다.

정권 차원에서 재발 방지책 강구해야

이제 더 이상의 권력 비리는 국민에게 용인되기 어렵다. 지금까지의 비리들도 모자라 권력 내부에서 또 다른 비리들이 불거져나올 경우 국민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하게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로서도 그동안의 둔감증에서 벗어나 권력 비리의 재발 방지를 정권적 차원에서 이루어내야 할 상황이다.

권력 비리의 재발 방지는 단지 권력 내부에 있는 개인들에 대해 경고나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권력 비리는 개인들의 잘못된 행동이 낳은 결과이지만, 잘못된 권력 운영 방식이 낳은 필연적 결과이기도 하다. 권력이 적절하게 견제받지 않은 채 독선적이고 일방적으로 운영될 때, 정권의 실세들에게 과도한 힘이 실리면서 호가호위하는 장면들이 빚어질 때 실세들을 중심으로 권력 비리가 발생한다. 절대 권력이 절대 부패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집권 후반기에 들어 측근들의 비리가 연속적으로 터져나오는 것은 그동안의 권력 운영에 문제가 있었음을 드러내는 일이다. 정부가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었던들, 실세들에게 권력이 집중되지 않았던들, 측근들의 권력 비리가 이처럼 심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더 이상의 권력 비리를 막는 일은 임기 말의 국정 쇄신 여부와 맞물려 있다. 이제 임기 말이 다가오고 있는 때늦은 시점이기는 하지만, 대통령의 측근들이 마음대로 국정을 쥐락펴락하는 식의 국정 운영이 근본적으로 쇄신되어야 그들 내부의 비리도 막아질 수 있을 것이다. 잇달아 터져나오는 권력 비리는 결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과거식 정권 운영 방식이 낳은 퇴행적 결과임을 이명박 대통령이 성찰하기 바란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