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최고 실세에게도 거액 주었다”
  • 김지영·안성모·김회권·조해수 기자 ()
  • 승인 2011.09.2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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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게 지난 10년간 수십억 원대의 금품을 건넸다고 <시사저널>에 최초로 폭로한 이국철 SLS그룹 회장의 폭탄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이회장은 <시사저널> 취재진과 3주간에 걸쳐 여덟 차례 만나 현 정권의 핵심 인사들에 대한 금품 및 향응 제공 사실을 자세히 털어놓았다. <시사저널>이 인터넷판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한 이 내용은 보도되자마자 정치권 등 각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 지난해 8월23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로서 국회 인사청문회에 나설 당시의 신재민 전 차관. ⓒ시사저널 이종현

이명박 정부도 ‘정권 말기 현상’을 피해가지 못하는 것일까. 과거 역대 정권들의 불행했던 정권 말기의 권력형 비리가 현 정부에서도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에 대한 비리 의혹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부산저축은행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마저 최근 금품 수수 의혹에 연루되면서 정부·여당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이국철 SLS그룹 회장(50)은 <시사저널> 취재진에게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게 지난 10년 동안 수십억 원의 금품을 건넸다”라는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이회장의 폭로는 9월21일 <시사저널> 홈페이지 인터넷판을 통해 처음 보도되면서 정국을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민주당은 본지 보도가 나간 직후 공식 성명을 통해 ‘검찰 수사’를 촉구했고, 한나라당은 “이회장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라면서도 ‘대형 악재’에 고심하는 흔적이 역력했다. 검찰 역시 <시사저널> 보도 내용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급기야 지난 9월23일 오후 검찰은 이회장을 전격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이른바 ‘이국철 폭로’가 향후 정국의 핵으로 떠오른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시사저널> 보도 다음 날인 9월22일, 이국철 회장은 서울 신사동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시사저널>의 보도 내용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동시에 “신 전 차관이 여권 실세인 ㄱ씨와 ㅇ씨 등에게 명절 선물을 해야 한다고 해서 5천만원어치의 상품권을 전달하기도 했다”라고 추가 폭로했다. 또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일본 출장 때 5백만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했다고도 주장했다.

문제는 이회장이 지금까지 ‘폭로’한 ‘신재민-박영준-여권 실세 ㄱ씨와 ㅇ씨’ 등 4명 이외에도 거액의 금품을 제공한 여권 실세들이 더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회장도
<시사저널> 취재진에게 ‘제2, 제3의 메가톤급 폭로’가 잇따라 터질 수 있음을 여러 차례 강하게 시사한 바 있다. 회사를 살려주겠다며 정권 실세의 측근들이 찾아와 돈을 받아갔다는 내용 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사 논설위원으로 있을 때 첫 인연 

▲ “청와대가 SLS 사태에 대해 진실 규명에 나서지 않을 경우 ‘여권 최고 실세’와 공무원 등에게 전달된 것을 차례로 공개할 것이다. 신 전 차관에게 건네진 금품은 ‘여권 최고 실세’에게 전달된 것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지난 9월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SLS그룹 사무실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는 이국철 회장. ⓒ시사저널 윤성호

이회장은 <시사저널> 취재진에게 “청와대가 SLS 사태에 대해 진실 규명에 나서지 않을 경우 ‘여권 최고 실세’와 공무원 등에게 전달된 것을 차례로 공개할 것이다. 신 전 차관에게 건네진 금품은 ‘여권 최고 실세’에게 전달된 것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국철 회장은 <시사저널> 취재진과 지난 9월1일 이후부터 최근까지 여덟 차례 만나 신 전 차관에게 수십억 원대에 달하는 현금 및 차량 등 각종 편의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2009년 9월부터 검찰로부터 고강도 조사를 받았다. 현재도 통영해양경찰에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시사저널>은 이회장으로부터 그가 직접 자필로 작성한 A4용지 아홉 장 분량의 문건을 확보했다. 이회장이 취재진에게 직접 밝힌 신 전 차관에 대한 금품 제공 내역과 상황은 상당히 구체적이었다(<표 1> 참조).

이회장은 “지난 2002년 가을 신재민 전 차관이 한국일보 논설위원으로 재직할 때 첫 인연을 맺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당시 이회장이 운영하던 한 회사에서 만든 전동차를 홍보하는 기사를 써준 것에 감사하는 표시로 신 전 차관에게 현금을 건네면서 ‘호형호제’하는 관계로 발전했다고 밝혔다. 그는 “3천만원을 그날 저녁에 신 전 차관에게 직접 갖다주었다. 이를 필두로 신 전 차관에게 언론사 재직 시절 내내 월평균 3백만~5백만원씩을 주었고, 2004년 4월 신 전 차관이 조선일보사로 옮긴 후 2006년 10월 퇴사할 때까지도 월 5백만~1천만원씩을 주었다”라고 주장했다.

“차관 재직 시에도 더 많은 돈 주었다”

이회장은 신 전 차관이 2006년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캠프였던 안국포럼으로 들어간 이후에도 월 1천5백만~1억원씩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이회장은 “당시 신 전 차관이 (이명박 대선) 캠프로 들어가면 생활이 많이 어렵고, 특히 봉급이 거의 없으니 도와달라고 요청했다”라고 말했다. 또 안국포럼에서 써야 한다면서 돈을 받아가기도 했다고 그는 밝혔다.

이회장은 “당시 (노무현 정부에서) 나는 감사원과 국세청 그리고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조사 이유는 내가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자금줄이라는 것이었다. 평균 2년에 한 번씩 긴급체포와 압수수색을 당했다. 그래서 야당인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나는) 오로지 일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신 전 차관이 이명박 후보 캠프에 들어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지지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이회장은 신 전 차관이 2007년 12월 대선 직후부터 2008년 2월까지 대통령 당선자 정무·기획 2팀장으로 있을 때에도 월 1천5백만~5천만원 정도를 받아갔다고 주장했다.

이회장의 주장에 따르면, 신 전 차관이 돈을 받은 것은 공직에 재직할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신 전 차관이 2008년 3월부터 2010년 8월까지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과 제1차관으로 재직할 때에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금품과 편의 등을 제공받았다는 것이다. 이회장은 신 전 차관이 차관으로 재직할 당시 매달 현금으로 1천5백만~2천만원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특히 2008년 추석 때에는 이회장이 백화점 상품권 3천만원어치를 사서 직접 신 전 차관에게 전달했고, 2009년 설날 때에도 이회장의 여비서를 통해 2천만원어치의 상품권을 신 전 차관에게 건넸다고 밝혔다. 이회장은 “당시 신 전 차관이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뿐 아니라 여권 실세인 ㄱ씨와 ㅇ씨 등에게 선물해야 한다고 해서 모두 5천만원어치의 백화점 상품권을 전달했다. 그러나 이 상품권이 그들에게 실제로 전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ㄱ씨와 ㅇ씨는 <시사저널>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회장의 주장은) 사실무근이다”라고 주장했다. ㄱ씨는 9월20일 전화 통화에서 “(이회장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라면서, ‘상품권’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라고 밝혔다. ㅇ씨도 “이회장을 아느냐”라는 기자의 물음에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고, 한 번 본 적이 있다. (상품권은) 받은 적이 없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외부 행사 때 이회장과 인사만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회장은 이보다 앞서 본지 취재진에게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2008년 11월4일 코엑스에서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ㅇ씨를 공식적으로 한 차례 본 적이 있고, 사적인 자리에서도 3~4차례 만난 적이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두 사람의 주장이 다른 셈이다.  

“여행 경비 대고, 법인카드도 3개 제공”

신 전 차관이 2010년 8월 문화체육관광부장관으로 내정되었다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위장 전입 등의 문제로 낙마한 이후에도 이회장의 ‘후원’은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장관 낙마 직후 신 전 차관은 네팔로 트래킹 여행을 떠났는데, 당시 여행 경비 1천만원을 이회장이 지원했다는 것이다.

또한 올해 1월, 신 전 차관이 일본을 여행할 당시에도 5백만원 정도의 경비를 이회장 자신이 댔다고 주장했다. 이회장은 “일본으로 여행을 간다고 해서 일본에서 가장 좋은 기차인 카시오페이아의 승차 비용을 댔고, 별도로 30만 엔을 전달했다”라고 말했다. 이회장은 “관련 영수증 등 자료를 모두 갖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2011년 1월부터 7월까지 신 전 차관이 타고 다녔던 자동차 ‘스포티지R’도 이회장이 매달 100만원씩 내고 렌트한 차량이었다는 것이다. 이회장은 “신 전 차관이 차관직을 그만둔 다음 차량을 지원해달라고 먼저 요구했다”라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신 전 차관은 2006년 안국포럼 시절부터 2010년 8월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서 물러날 때까지 4년여 동안 SLS로지텍 법인카드와 이회장이 사용하던 SLS그룹 법인카드, SLS그룹 싱가포르 지사의 법인카드 등 법인카드 3개를 사용했다고 이회장은 밝혔다. 신 전 차관이 법인카드를 통해 실제 얼마를 썼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시사저널>이 입수한 SLS그룹 싱가포르 법인카드 사용 금액을 통해 신 전 차관이 SLS 법인카드를 얼마나 썼는지 유추할 수밖에 없다. 신 전 차관이 2008년 7월부터 2009년 10월까지 16개월 동안 SLS그룹 싱가포르 법인카드를 썼다는 것이 이회장의 주장이다. 당시에는 신 전 차관이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이회장의 주장대로라면, 16개월 동안 신 전 차관은 모두 12만7천2백 싱가포르 달러(약 1억1천4백48만원)를 법인카드로 결제했다. 월평균 7천9백50 싱가포르 달러, 우리 돈으로 7백15만5천원 정도이다. 한 달 평균 7백만원 정도를 법인카드로 썼다는 이야기이다. 신 전 차관이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 재직한 기간은 모두 30개월이다. 재직 기간 동안 월평균 7백만원 정도를 법인카드로 결제했다면, 차관 시절 30개월 동안에만 법인카드로 2억원 이상을 썼을 것이라는 단순 계산이 나온다(<표 2> 참조). 

이회장은 “신 전 차관을 처음 만난 후 10년 동안 금품과 향응, 편의를 제공해준 것만 수십억 원에 달한다. 그 가운데 일부는 증빙 자료가 있지만, 현금으로 전달된 경우에는 확인하기가 쉽지 않은 부분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회장이 신 전 차관에게 엄청난 금액을 후원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내가 과거에 하도 검찰 수사를 받아 보호를 받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신 전 차관이) 현 정권 실세로 갔으니 나를 보호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시사저널>, 신재민 관련 증거 자료 직접 확인 

<시사저널>의 9월21일 홈페이지 인터넷판 보도 이후 이국철 회장의 ‘증언’이 사실인지, 과연 얼마만큼의 신빙성을 갖고 있는지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우선 이회장이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게 전달한 금품 액수와 관련해 일부 언론은 ‘이회장의 말에 신빙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본지는 신 전차관에게 전달된 금품 액수를 ‘수십억 원’이라고 최초 보도했다. 그런데 본지 보도 이후 이회장이 기자회견 등에서 ‘10억원 정도’라고 말을 바꿨다며 이회장 증언에 의문을 제기했다.

<시사저널>이 이회장의 증언과 그가 갖고 있는 증거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한 <표 1> ‘이국철 회장이 신재민 전 차관에게 건넸다고 주장하는 금품 내역’에 적시된 금액을 합산해보더라도 15억원을 상회한다. 여기에는 신 전 차관이 2006년 안국포럼 시절과 2008년 2월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 정무·기획2팀장 때까지 1년 이상 사용했다는 SLS그룹의 국내 법인카드 사용 금액이 빠진 것이다. 특히 이회장은 본지 취재진에게 “(신 전 차관에게) 실제로 준 금액을 그대로 공개하면 신 전 차관에게 타격이 크니까, 그 금액을 좀 줄여야 되는 것 아니냐”라고 걱정하기도 했다.

또한 일부 언론에서는 ‘이회장이 증거 자료를 갖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회장은 취재진에게 “신 전 차관에게 현금으로 전달된 경우에는 확인하기 쉽지 않지만, 법인카드로 쓴 경우에는 확인할 수 있다”라고 자신했다. 실제로 취재진은 신 전 차관이 사용한 것이라고 이회장이 주장하고 있는 SLS그룹의 국내 법인카드 사용 내역서 가운데 일부를 직접 확인한 바 있다. 그 내역서에는 이회장이 직접 체크한 부분이 있는데, 업소 대부분이 광화문과 과천 등지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회장이 “신 전 차관 이외에 돈을 주었던 여권 실세 2~3명이 더 있다”라고 밝힌 부분에 대해서도 본지 취재진은 이회장으로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여권 실세들’과 관련된 내용을 전해들은 바 있다. <시사저널>은 이와 관련한 후속 취재를 진행 중이다.


▲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시사저널 유장훈
이국철 SLS그룹 회장은 신재민 전 차관에 이어 또 한 명의 현 정부 핵심 실세로 통하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제2차관과 관련된 내용도 폭로했다. 박 전 차관은 ‘왕차관’으로 불릴 정도로 현 정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회장에 따르면, 박 전 차관이 국무총리실 국무차장(2009년 1월부터 2010년 8월까지)으로 근무할 당시 박차장의 비서가 SLS그룹 일본법인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차장님이 일본 출장을 가는데 편의를 봐달라”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에 일본법인 사장은 한국에 있는 이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박영준 차장을 아느냐”라고 물었고, 이회장은 “박영준이 누구인지 모른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회장은 곧바로 계열사 사장들에게 “혹시 박영준 차장을 아느냐”라고 물었더니 모두가 “모른다”라고 답했는데, 한 계열사 사장이 “현 정권의 실세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회장은 “실세이면 실세이지, 왜 나한테 밥을 사라고 하느냐”라며 크게 불쾌해했다고 밝혔다.

당시 이회장은 신 전 차관에게 “박영준이 누구냐”라고 물었고, 신 전 차관이 “실세 중의 실세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서 이회장은 일본법인 사장에게 “돈이 얼마 들지도 않는데 그냥 해줘라”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회장은 “당시 박차장의 일본 출장 때 밥값과 술값, 화장품 선물값 등으로 5백만원 정도를 썼다”라고 주장했다.

이회장은 본지 취재진에게 “아무리 권력 실세라 해도 나하고 생면부지인 사람이 어떻게 밥 사라, 술 사라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박차장은 출장이 끝난 다음 우리에게 감사하다는 전화 한 통도 없었다”라며 울분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 전 차관은 9월20일 <시사저널>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국철 회장을) 모른다”라면서 ‘일본 출장 편의 요청’과 관련해서도 “전혀 모른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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