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축구 움직이는 ‘머니게임’의 위력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1.10.02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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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 힘들었던 각 구단들, 외국 대형 자본에 소유권 넘겨

▲ 지난 6월1일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왼쪽)이 카타르 갑부로서 말라가 CF를 인수한 셰이크 압둘라 알 타니 구단주와 함께 유네스코 마크가 찍힌 유니폼을 들고 있다. ⓒEPA 연합

유럽 축구는 흔히 별들의 잔치로 불린다. 세계 각지의 스타플레이어는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유럽으로 삼는다. 클럽 대항전인 UEFA 챔피언스리그는 선수 면면과 경기 수준에서 월드컵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최근 유럽 축구는 별들의 잔치가 아닌 돈의 잔치로 변질되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AC 밀란 등 오랜 역사와 무수한 트로피로 인해 선수들이 동경했던 명문 클럽은 선택에서 차순위가 되었다. 이적 시장에 나온 재능 있는 선수들의 진로에서 우선순위는 막대한 자본력으로 무장한 신흥 강호이다.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돈으로 선수는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역사와 전통은 살 수 없다”라며 현 추세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명문은 선수 영입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제2의 첼시’가 몰려온다

약육강식, 강자와 약자의 경계가 명확했던 유럽 축구에 대변환점을 가져다 준 사건은 2003년 첼시의 변신이다. 당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서 맨유, 아스날, 리버풀에 밀려 다크호스 정도로 꼽히던 첼시는 러시아의 부호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클럽을 인수한 뒤 역사적 전환점을 맞게 된다. 아브라모비치는 젊은 명장 주제 무리뉴를 비롯해 유럽 축구에서 빛을 발하던 숨은 보석을 싹 쓸어와 팀을 리빌딩했다. 그 결과 첼시는 인수 2년 만인 2005년 리그 우승에 성공했고, 이후에도 두 차례 더 리그를 제패하며 맨유와 양강 체제를 구축했다.

첼시의 등장은 유럽 축구에 새로운 국면을 선사했다. 축구 클럽에 대한 투자가 매력이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중계권, 관중 수입, 스폰서로는 치솟는 선수 영입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던 프리미어리그의 클럽은 소유권을 외국 대형 자본에 넘기기 시작했다. 맨유와 리버풀은 미국 자본에 넘어갔고, 아스날도 러시아 자본에 넘어가는 중이다. 중·하위권 클럽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런 모습은 프리미어리그뿐만 아니라 다른 리그로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서는 좀 더 진화한 ‘제2의 첼시’가 등장하고 있다. 바로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 프랑스 리그1의 파리 생제르망(이하 PSG),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말라가가 그들이다.

맨시티는 2008년 여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아부다비 투자그룹에 인수되었다. 같은 연고지를 쓰는 맨유에 가린 채 1, 2부 리그를 오가는 전형적인 중·하위권 클럽이던 맨시티는 세계 10위권의 재력을 지닌 아부다비 투자 그룹의 후광을 등에 업고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한 스타를 영입하기 시작했다. 지난 시즌 맨시티는 리버풀을 밀어내고 빅4의 한 자리를 차지하며 챔피언스리그 출전 티켓을 확보했다. 지난 3년간 그들이 쏟아부은 돈만 5천억원이 넘는다. 맨시티는 올 시즌 개막 후 고공비행을 이어가며 맨유와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다.

말라가와 PSG는 카타르 세력에 인수되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2022년 월드컵 개최권을 따낸 카타르는, 유치전이 한창이던 2009년부터 유럽 클럽 인수를 추진해왔다. 월드컵 홍보 효과와 유럽 축구의 노하우를 자국으로 연결시키겠다는 1석2조의 목적에서였다. 그 결과 스페인의 말라가와 프랑스의 PSG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두 팀 역시 적극적으로 선수를 영입해 전력을 강화했다. 말라가는 판 니스텔로이, 호아킨 산체스 등 베테랑을 주로 영입하며 8백50억원을 썼다. PSG는 첼시, 맨시티, 레알 마드리드 등이 노린 ‘제2의 카카’ 하비에르 파스토레를 영입하며 유럽을 놀라게 했다. 그들 역시 올여름 9백억원 가까운 이적 자금을 썼다. 그 결과 팀 해체 위기를 여러 차례 겪었던 만년 하위팀 말라가는 현재 프리메라리가 6위를 달리고 있다. PSG는 예상대로 리그1에서 선두로 나가는 중이다.

▲ 골을 넣고 기뻐하는 맨체스터 시티 FC의 마리오 발로텔리(왼쪽)와 가레스 배리(오른쪽).

유럽 축구를 손에 쥔 것은 제3세계 자금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재정적으로 흔들리던 유럽 축구의 구세주는 러시아와 미국의 자금이었다. 자본주의가 도입되며 등장한 러시아의 수많은 젊은 재벌은 축구 클럽 인수를 통해 검은돈을 세탁하기도 했다. 첼시의 구단주 아브라모비치는 러시아 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의 정적을 후원했다가 숙청당할 위기에 놓이자 첼시를 통해 자신의 자금을 서방 세계로 옮기기도 했다. 미국의 스포츠 재벌은 자신들의 재정 위기를 자산 가치가 높은 유럽의 명문 축구 클럽 인수를 통해 모면하고 있다. 2005년 맨유를 인수한 글레이저 가문은 미국 내에서 운영 중인 프로스포츠 클럽이 발생한 손해를 맨유가 낸 수익으로 메워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자금난을 타개하기 위해 싱가포르 증시에 1조2천억원 규모의 주식을 상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맨유의 팬들은 경기장 안팎에서 글레이저 가문에 대해 강력한 시위를 펼치고 있다.

▲ 매니저와 악수하는 파리 생제르망 FC의 하비에르 파스토레 (오른쪽). ⓒAP연합

하지만 최근 들어서 유럽 축구로 향하는 자금줄은 제3세계로부터 들어오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중동이다. 오일머니로 통칭되는 무한한 자금력은 기존의 러시아·미국 세력을 압도하고 있다. 그 선두에 있는 것은 최근 세계 경제 지도에서 새로운 주도 세력으로 떠오른 UAE와 카타르이다. 맨시티를 인수한 UAE의 아부다비 투자그룹은 축구 클럽에 대한 단순한 투자를 넘어 맨체스터 시와 협약을 맺고 대대적인 개발에 돌입했다. 아부다비 투자 그룹은 맨시티를 위한 제반 스포츠 시설은 물론 시의 교통·관광·레저 개발에 총 3천억원을 추가로 투입할 계획이다. 카타르는 2022년 월드컵 홍보가 주목적이다. 창단 후 단 한 번도 유니폼에 상업적인 광고를 허용하지 않았던 FC 바르셀로나는 올 시즌부터 카타르 재단의 문구를 새기고 경기에 나서고 있다. 카타르 재단은 그 대가로 5년간 총 2천억원이 넘는 스폰서십을 체결했다. 카타르 왕실과 연계된 기업이 운영하는 PSG와 말라가는 장기적인 발전을 통해 유럽 축구 정상에 진입해 카타르 월드컵을 홍보하겠다는 입장이다.

그 밖에 인도와 동아시아의 자금도 유럽 축구로 유입되고 있다. 프리미어리그의 블랙번은 인도의 농·축산 관련 기업인 벤키스에 인수되었고, 새롭게 승격된 퀸스파크 레인저스는 말레이시아 사업가 토니 페르난데스를 새 구단주로 맞이했다. 외국 자본에 대한 벽이 높기로 유명했던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도 최근 명문 클럽 AS 로마가 미국 자본에 인수되었다.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공동 구단주인 이탈리아계 미국인 사업가 토마스 디베네데토가 로마를 인수함에 따라 오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는 세리에A 클럽도 외국 자본에 대한 빗장을 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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