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드는 금융 위기 그림자 한국 경제는 안전한가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1.10.0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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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에 금융 위기의 먹구름이 다시 몰려들고 있다. 위기에 대한 우려가 시장에 확산되면서 환율은 급등하고, 무역 수지도 적자를 기록하면서 자본 시장은 패닉에 빠져들었다. 다급한 것은 외국 자본의 유출을 &

유럽 재정 위기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고, 미국 경제는 사실상 더블딥(경기 재침체)에 빠졌다. 세계 경제가 위기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필요한 정치적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 유럽, 중국이 ‘제 코가 석자’이다 보니 말잔치만 요란하지 선뜻 위기 타개책을 실행하겠다고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2차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라고 외치는 카산드라가 곳곳에서 출몰하고 있다. 유럽 재정 위기가 그리스 디폴트(채무 불이행), 스페인·이탈리아 위기, 유로존 붕괴로 이어지면 유럽 은행들이 부실해진다.

미국 경제는 더블딥으로 치닫고 신용평가 기관은 은행 신용등급을 잇달아 강등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금융기관이 동반해 부실해지면 세계 경제는 2차 글로벌 금융 위기를 피할 수 없다. 지난 2008년 9월 미국 투자 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 위기가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한국 자본 시장을 패닉(공포)에 빠뜨렸다. 

실물 경제나 금융 시장 영역에서 대외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한국 경제에 2차 글로벌 금융 위기는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국내 금융기관은 외화 차입에 어려움을 겪고 수출 산업은 유럽과 미국으로 가는 수출 물량이 줄어들어 실물 경제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다. 내수가 취약해 수출 감소로 인한 성장률 감소를 상쇄할 수 없다. 벌써부터 국내 거시 경제 지표에는 위기 징후가 뚜렷하다. 국내 외환 시장이 패닉에 빠지고 실물 경제까지 흔들리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천2백원 선에 다가섰다.

▲ 이명박 대통령(맨 오른쪽)이 지난 8월8일 청와대 집현실에서 정부 및 각계 경제 전문가들과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에 따른 경제 금융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환 시장이 최악의 상황에 처할 때 설정한 환율 전망치 상단을 넘어서고 있다. 종합주가지수는 8월1일 2천1백72.31에서 9월29일 1천7백69.29까지 4백3포인트(22.78%) 폭락했다. 물가는 내내 4%를 웃돌더니 8월에는 5.3%까지 치솟았다. 9월 무역 수지는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추산된다.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전월 101에서 91까지 주저앉았다. 기업인을 상대로 경기 전망을 묻는 BSI는 100 이하로 내려가면 경기 하락을 점치는 기업인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요 경제 지표가 정상치에서 벗어나 급등락하고 있는 것이다.   

불현듯 다가온 글로벌 금융 위기의 그림자에 가장 먼저 놀란 곳은 외환 시장이다. 원·달러 환율은 1천1백72원(9월29일 기준)까지 치솟았다. 9월1일 1천62원이었으니 한 달 새 10% 넘게 원화 가치가 폭락했다. 원·달러 환율이 갑작스레 오르면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재정은 건전하고 원화 가치는 저평가되어 있어 한국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평가가 유효했다. 유럽 재정 위기 여파로 인해 안전 자산을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빠르게 치솟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채권 시장에서 빠져나가는 징후가 포착되기 시작했다. 선물 시장에서 채권 매도세가 뚜렷해지고 태국 자금과 핌코 자금까지 빠져나간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태국계 자금은 오히려 한국 채권을 사들이고 핌코는 원화 채권을 갖고 있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으나 유언비어에 흔들릴 정도로 한국 금융 시장은 불안했다. 원·달러 환율이 1천2백원까지 오르면 원화 채권 투자 수익률은 마이너스로 돌아선다. 원화 가치가 떨어질 것이 명확해지면 투자자는 원화 자산을 갖고 있을 이유가 없어진다. 이미 주식시장에서는 외국인 투자자의 ‘엑소더스(탈주)’가 일어나고 있다. 외국인은 지난 8월 한국 주식시장에서 58억 달러를 빼내갔다. 3년7개월 만에 최대치이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당시보다 유출액이 많았다. 

외환 시장, 금융 위기 가능성에 가장 민감

▲ 김석동 금융위원장(위)은 시중 은행에 외환 유동성 확보를 촉구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유럽 재정 위기가 심화되면 빠져나갈 것이 유력한 자금은 역시 유럽계 자금이다. 그리스가 디폴트에 빠지면 그리스 채권을 다량 보유한 유럽 은행이 부실해져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 사태)을 피할 수 없다. 이로 인해 신용 경색이 일어나 유럽 은행이 스페인과 이탈리아 국채 만기를 연장하지 않고 회수하려 들면 유럽 3, 4위 경제 대국마저 디폴트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이준엽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스페인과 이탈리아까지 위기에 빠지면 독일·프랑스·영국·이탈리아 은행은 신용 경색을 우려해 한국에서 투자 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9월 기준 한국 총외채는 3천6백87억 달러이다. 그 가운데 49.6%인 1천8백28억 달러를 유럽으로부터 빌렸다. 유럽계 투자 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한국 외환 시장은 마비되고 자본 시장은 패닉에 빠지면서 금융기관은 외환 유동성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무역 수지 적자 반전으로 위기 징후 커져

이승우 대우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이 원화 채권을 팔고 본격적으로 자금이 빠져나가는 것은, 무역 수지가 적자로 돌아서고 실질 실효 환율 기준으로 통화 가치가 급락할 때이다”라고 전망했다. 올해 상반기 경상 수지는 94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상반기 내내 사상 최고치 행진을 거듭한 수출 덕분이다. 하반기 들어서자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미국과 유럽 시장이 혼란에 빠지면서 유효 수요가 줄어들고 그에 따라 이곳으로 가는 한국 수출 물량이 덩달아 줄었다. 지난달 상품 수지 흑자는 4억8천만 달러로 감소했다.

경상 수지는 4억 달러로 간신히 흑자 기조를 유지했다. 9월 무역 수지는 18억 달러 적자로 전환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1월 이래 월별 기준으로 첫 적자이다.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3% 늘어났으나 수입은 24.8% 폭증했다. 동남아시아 지역 생산과 수출이 8월부터 둔화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의 성장세가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은 통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9월20일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2011년과 2012년의 세계 주요 국가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제조업 지수나 서비스업 지수 같은 주요 경제 지표가 잇달아 부진하게 나오고 있다. 이로 인해 글로벌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 한국 수출은 둔화할 수밖에 없다. 수출이 둔화하면 설비 투자가 줄어든다. 주력 수출 산업인 정보기술(IT)과 자동차 산업이 전체 제조업 설비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44.4%와 7.5%에 이른다. 설비 투자 둔화는 내수 침체와 함께 어우러져 경기 침체를 가속화할 것이다.

지수 비교표  2011년 9월28일 기준 

 

KOSPI

KOSDAQ

원/달러 

종가 

1723.09

434.2

1171.2

1일 

-12.62
(-0.73%)

+0.79
(+0.18%)

-1.90
(-1.90%)

5일 

-131.19
(-7.07%)

-43.31
(-9.07%)

+21.30
(+21.30%)

1개월 

-106.41
(-5.82%)

-49.07
(-10.15%)

+97.20
(+97.20%)


국제통화기금은 2011년 미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3%에서 1.5%로  낮추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국 경제 성장 둔화로 인해) 한국 경제 성장률은 0.3%포인트 떨어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경제 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0.2%포인트 떨어진다. 미국 수출이 줄어드는 것도 있지만,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수출까지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수출하는 신흥국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이나 중간재 상당량을 공급하는 것이 한국 기업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유럽 수출 비중도 15%이다. 유럽 재정 위기로 인해 유럽 수출 물량이 줄어들고 있다.

수출 증가세 둔화와 함께 내수도 부진하다. 민간 소비는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민간 소비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 늘어나는 데 그쳐 같은 기간 경제 성장률 3.8%에 크게 못 미쳤다. 이 와중에 물가는 치솟고 구매력은 떨어지고 있다. 금리는 오르면서 가계 부채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고 있다. 한국 가계 부채는 1천50조원(2분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치이다. 가구당 6천만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2007~11년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 부채 비율은 1백45.8%에서 1백57%로 올랐다. 건설 투자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건설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줄어든 탓이다. 건설 투자는 지난해 3분기부터 4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해 올해 상반기에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0% 감소했다. 위기 타개책으로 경기 부양책을 실행하기도 곤란하다. 물가가 치솟고 재정 부실화가 우려되는 탓이다. 물가는 올해 내내 4% 선을 넘어서더니 8월 5.3%까지 치솟았다. 국가 채무는 2008년 3백9조원에서 2011년 4백35조5천억원으로 41% 늘어났다.

▲ 크리스틴 라가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맨 왼쪽)가 9월25일 유럽 재정 위기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IMF 총회를 주관하고 있다. ⓒ신화통신

외환보유고 믿고 여유만만?

한국 정부는 ‘유럽 재정 위기나 미국 경기 침체 사태가 전개되는 양상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라고 말하지만 아직까지 여유가 느껴진다.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3천100억 달러가 넘는다. 단기외채 비중은 40% 미만이다. 시중 은행도 수개월째 외환을 비축했다. 국가 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5% 미만으로 양호하다. 미국·일본·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같은 선진국은 GDP 대비 100%에 가깝거나 그보다 많은 국가 채무를 지고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한국은 금리 정책을 유효하게 사용할 수 있고 환율이 시장에서 조절되는 체계를 채택하고 있다. 재정은 건전하고 외화 건전성도 과거 어느 때보다 낫다.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형편이 낫다”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가진 낙관론은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경제 지표가 움직인다는 가정에 기초한다. 세계 경제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 대출) 사태와 같은 글로벌 금융 위기에 빠지는 상황이 재발한다면 백약이 무효하다. 한국 경제의 대외 의존도는 90%나 된다. 지난해 GDP 대비 수출입액은 87.9%나 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4개 국가 가운데 8위이다. 세계 경제가 흔들리면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산업이 얼마 견디지 못하고 세계 경제 흐름에 동조화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본 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자본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 비중은 30%에 이른다. 한국과 같은 경제 규모에서 외국인 투자 비중이 30%나 되는 나라는 없다.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보유 비중(6월 말 기준)은 32.2%이다. 자본 시장 개방도가 높은 미국(13.6%)이나 일본(26.7%)보다 훨씬 높다. 외국인 투자자는 유동성이 경색될 기미가 보이면 한국 금융 시장에서 우선적으로 투자금을 회수한다. 오죽하면 한국 금융 시장이 외국인 투자자의 ATM(현금인출기)이라는 별칭까지 얻었겠는가.

2008년 9월15일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외국인 투자자는 원화 채권을 대량으로 팔면서 한국에서 빠져나갔다. 당시 원·달러 환율은 두 달 새 4백원이 올라 2008년 11월 1천5백원 선까지 치솟았다. 세계 경제는 2009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당시 미국과 유로존의 경제 성장률은 -3.5%, -4.3%였다. 세계 경제가 역성장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개별 국가마다 유동성 경색에 시달렸고 실물 경기는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치달으면 뾰족한 대책이 없다. 지금 상황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재현되지 않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개별 경제 주체는 외환 위기 대비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정부는 외환 시장 안정화에 필요한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외환보유고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주요국 중앙 은행과 통화 스와프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기관은 외화를 확보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기업은 환율 변동으로 인한 환차손을 회피하기 위한 헤지(hedge) 전략과 함께 선진국 수출 감소를 상쇄할 신흥국 시장 진출을 늘리고 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 자본이 한국 금융 시장에서 급격히 유출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최악의 상황을 고려한 외환 위기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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