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힘’, 당중앙군사위가 띄웠다
  • 정성장│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 승인 2011.10.02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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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설 협의 기구로서 한계 지녔던 기관…지난해 9월 이후 권력 승계 뒷받침하는 핵심 기관으로 부상

▲ 2011년 9월2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인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함께 자강도 희천발전소 건설 현장을 찾았다. ⓒ연합뉴스

2010년 9월28일 개최된 북한 노동당 제3차 대표자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삼남 김정은이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당의 최고 군사 지도 기관의 제2인자 자리에 임명되었다. 이로써 북한의 3대 권력 세습이 대외적으로도 공식화되었다. 이후 김정은이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자격으로 각종 공식 활동을 진행함으로써 당중앙군사위가 김정은의 권력 승계를 뒷받침하는 가장 핵심적인 권력 기관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국내에서 이 권력 기관을 심층 연구한 결과물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1962년 중국 마오쩌둥 ‘작품’을 모방해 설치

북한의 당중앙군사위는 북한에만 존재하는 독창적인 조직은 아니다. 이는 중국에서 먼저 창설되어 운영된 조직을 북한이 모방해 설치한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1920년대 중반 제국주의 및 군벌과의 투쟁을 위해 중앙군사위라는 군사 기구를 당내에 설치했다. 마오쩌둥은 1935년 1월 귀저우 준의에서 개최된 당중앙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정치국 상무위원과 군사위원으로 선출되면서 당과 군을 모두 장악하게 되었다.

장기간의 반제·반군벌 투쟁을 통해 당과 군대 간의 일체화가 깊숙이 진행되어 중국 공산당에서 제1인자가 되기 위해서는 군대를 확고히 장악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되었다. 그 결과 당 총서기와 당중앙군사위원장이 다른 상황에서 후자가 더 실세인 경우가 많았다. 2010년 10월 시진핑 당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당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선출됨으로써 후계자 지위를 확고히 굳힌 것도 차기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당뿐만 아니라 군대까지 장악하는 것이 필수적인 중국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같은 중국의 당중앙군사위 모델을 북한이 수용해 당내에 유사한 기구를 설치한 것은 1962년 12월이었다. 당시 북한은 남한에서의 4·19 혁명에 고무되어 유사시 무력으로라도 한반도를 통일하기 위해 경제 건설과 국방 건설 병진 노선을 채택했다. 이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당중앙위에 ‘군사위원회’라는 군사 기구를 설치했다. 이후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는 당의 최고 군사 지도 기관으로서 군대의 지휘 및 통제, 군사 정책 수립, 군 고위 간부의 인사와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김정일도 공식 등장 1년 전 같은 경로 거쳐

북한 당중앙군사위의 역할 중 특히 주목할 점은 이 기구가 김정일의 군대 장악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다. 김일성은 1979년 2월 당중앙군사위를 소집해 인민군대가 김정일을 중심으로 단결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김정일이 1980년 제6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 군사위원에 선출되기 1년 전에 이미 김일성이 당중앙군사위를 통해 김정일에 대한 북한군의 충성을 요구한 것이다.

1982년 6월에 개최된 당중앙군사위 회의는 김정일이 군사·행정적으로까지 군대를 지도·지휘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김일성은 이 회의에서 김정일에게 군대의 ‘모든 군사 사업’을 집중시키고 김정일의 ‘유일적 결론’에 따라 처리해나가도록 필요한 조치들을 취했다. 또한 전군에 김정일의 ‘명령 지휘 체계’를 철저히 수립하도록 했다. 김정일은 1991년 공식적으로 군 최고사령관직에 임명되기 이미 9년 전인 이때에 당중앙군사위를 통해 실질적으로 군대를 지도·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게 된 것이다.

김일성 시대 김정일의 군부 장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당중앙군사위는 오늘날 김정은의 군부 장악을 위해 또다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2009년 여름 북한군 내부에서 배포된 문건 ‘존경하는 김정은 대장 동지의 위대성 교양 자료’(이하 ‘김정은 교양 자료’)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당중앙군사위원회가 군대에 대한 김정은의 지도 체계 수립을 강조하는 부분에서 다시 언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건은 간부들이 김정은의 영도를 충직히 받들 것을 강조하면서, 김정일이 2009년 2월11일 당중앙군사위에서 ‘일꾼들의 혁명화와 전투 준비에 속도를 가하는 데 대한 문제, 부대 지휘·관리를 개선하고 군기를 확립하기 위한 사업’ 등에 대한 과제를 제시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2009년 2월11일은 김정은이 ‘수령의 후계자’로 결정된 지 약 한 달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바로 이날 김정일은 당중앙군사위의 결정으로 리영호 평양방어사령관을 군 총참모장에 임명하는 등 군 상층부의 중대 개편을 단행했다. 이때 군 총참모장에 임명된 리영호가 2010년 9월 개최된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과 함께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직에 임명된 것은, 그가 김정은의 영군체계(領軍體系) 수립을 위해 김정일에 의해 조기에 발탁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과거에 당중앙군사위는 비상설 협의 기구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상설 지도 기관으로 바뀌면서 김정은은 이 기관을 통해 전군을 일상적으로 지도·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김정은의 이름은 2011년 2월15일부터 리영호 정치국 상무위원보다, 3월7일부터는 최영림 정치국 상무위원보다 앞에 호명되어 그가 정치국 상무위원에 해당하는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확인되었다. 이처럼 김정은이 중국 공산당에서처럼 당중앙위와 당중앙군사위에서 핵심적 지위와 요직을 차지함으로써 후계자 지위를 명확하게 굳힌 것은 북한이 ‘주체’를 강조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중국의 권력 승계 모델을 크게 참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제3차 당대표자회 이후 북한 언론에서는 중국 당중앙군사위에 대한 보도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향후 북한과 중국 당중앙군사위 간 협력 강화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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