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경찰들, 왜 경비용역업체로?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1.10.0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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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경급 이상은 고문·감사로, 이하는 직원으로 재취업…파악된 현황은 ‘빙산의 일각’일 수도

 

ⓒ전국노점상총연합 제공

 

철거나 파업 현장에 투입되어 사회 문제화하기도 하는 용역업체와 경찰 간의 관계가 ‘인적 고리’를 통해 더욱 밀접해지는 흐름이다.

행정안전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1년도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 자료(2006년~2011년 8월)에 따르면 퇴직 경찰관 중 상당수가 경비업 면허를 취득한 업체로 재취업했다. 행안부가 가부 여부를 심사하는 기업 중에서 경비·용역 업체로 간 퇴직 경찰관은 13명이다. 총경급 이상은 주로 대형 경비업체의 ‘고문’이나 ‘감사’로 자리를 옮겼고, 경사·경위 등은 경비원이나 사원으로 들어갔다.

올해 개정된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공직자들은 퇴직일로부터 2년 동안 퇴직 전 5년 이내 근무한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기업체에서 일할 수 없다. 퇴직 전후의 부정한 청탁이나 알선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경비업체로 옮긴 경찰 공무원들의 재취업은 2년 안에 이루어졌다. 이와 관련해 행안부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것은 퇴직 전 업무와 해당 사기업의 업무적 연관성이다. 심사 결과 업무 관련성이 없었기 때문에 취업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판단이 편협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의 미류 활동가는 “재취업한 퇴직 경찰관들이 해당 사기업에서 실제로 어떤 업무를 수행하는지가 관건이다. 그들이 퇴직 전 5년 동안 경비과에서 근무하지 않았을지라도 경찰과 경비업체 간에 이루어지는 업무에 참여한다면 이것은 공직자윤리법을 어긴 것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한진중 사태 관련 경비업체에도 5명 근무

행안부가 파악하고 있는 퇴직 경찰관들의 용역업체 재취업 실태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행안부는 자본금이 50억원, 외형 거래액이 1백50억원 이상인 사기업체만 조사한다. 그러나 일부를 제외하고 이 기준을 만족하는 용역업체는 거의 없다. 실제로 지난 6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농성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해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장풍HR의 경우 행안부의 기준에 못 미치기 때문에 재취업 현황에서 누락되었다. 그런데 문학진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퇴직 경찰관 다섯 명이 장풍HR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재개발 현장에 투입되는 철거·용역 업체의 경우 실태 파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 지역 현장에서 활동하는 철거업체는 ‘삼오진’ ‘참마루’ ‘호람’ ‘비조’ ‘다원’ 등인데, 이들은 모두 기준 미달로 행안부의 심사 대상 업체가 아니다.

경찰과 용역업체의 내밀한 관계는 용역업체에 대해 경찰이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것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장세환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08년부터 현재까지 철거 또는 노사 분규 현장에서 집시법 위반, 폭력, 퇴거 불능 등으로 경찰에 입건된 사람은 4천1백97명이지만 용역업체 직원의 경우 2백96명에 불과하다. 기소율로 따져보아도 시위자는 90%(3천8백32명)를 넘지만, 용역업체는 약 30%(1백16명)에 그쳤다. 정삼례 전국철거민연합 흑석시장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용산 참사와 관련해 전철연 회원 여덟 명이 형을 살고 있고, 두 명은 건강상의 이유로 집행 대기 중이다. 그러나 용역업체 직원은 고작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쳤다. 경찰은 언제나 용역의 편이었을 뿐이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점조직으로 이루어진 철거업체들의 ‘007식 운영’ 실태 

철거는 이 시간에도 서울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철거에 참여하고 있는 용역업체의 이름도 다채롭다. 전국철거민연합회에 따르면 ‘삼오진’ ‘참마루’ ‘호람’ ‘비조’ ‘다원’ 등 5대 주요 철거업체 외에 ‘거성’ ‘유원’ ‘미현’ ‘상아CNC’ 등 신흥 업체들도 재개발 현장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전철연 관계자들은 업체 이름만 달라졌을 뿐 같은 철거 용역 직원을 다른 철거 현장에서 만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한다. 현장에 투입되는 직원이 한 업체에 매인 몸이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충당되고 있다는 얘기이다.

현장에 투입되는 철거·용역 직원들은 점조직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철거업체의 정직원은 대개 10명 남짓이다. 철거 계약을 맺고 현장에 투입할 인원이 더 필요할 경우, 이들 정직원이 몇몇 사람들에게 연락한다. 그러면 이들이 또 지인들에게 인원 보충을 요청한다. 현재 소규모 철거·용역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김 아무개씨는 “인원 모집은 피라미드식으로 퍼져나간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정직원이 10명의 사람에게 연락하고, 이들 각자가 다시 10명에게 연락하는 식이다. 정직원이 연대장이라고 보면 그 밑은 중대장, 소대장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철거에 가담하는 인맥의 고리는 주로 체대나 운동선수 출신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전철연 관계자는 “최근 철거 현장에서 ‘Y’대학이나 ‘K’대학, ‘P’체육관 출신들을 자주 접한다. 이들의 폭력 행위는 오히려 정직원들 이상이다. 최근 덕이 지구에서는 K대 학생들에게 폭행당한 한 철거민의 딸이 공황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전직 프로복싱 선수 출신으로 현재 철거·용역 작업을 하고 있는 B씨는 이에 대해 “육체적 능력 외에도 운동선수 출신들은 선후배 관계가 엄격하기 때문에 인원을 모집하기가 쉽다. 새로 온 애들의 경우 가장 앞에 세운다. 쉽게 흥분해서 과격한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한번 경험을 하고 나면 ‘다시는 안 한다’는 애들도 많지만,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계속해서 이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구인 광고를 통해 노숙인이나 가출 청소년이 철거 작업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당은 10만~17만원 정도로, 심지어 여고생이 참여하기도 한다.

B씨는 철거 현장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자신들만의 잘못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그는 “계약 기간 내에 철거민들을 다 내보내야 하는데 그들이 버틴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건설 사업은 ‘시간이 돈’인데 계속 그들을 내버려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폭력이 불법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먼저 퇴거에 불응하면서 법을 어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도 수수방관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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