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철 리스트’ 속 인물 20여 명…매머드급 ‘판도라 상자’ 더 열릴까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1.10.02 15:5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국철 SLS그룹 회장, “내가 입 열면 현직 청와대 직원 최소 10명 옷 벗을 것” 또 다른 주장

 

'이국철 폭로’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9월21일 <시사저널>의 ‘이국철 SLS그룹 회장,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게 수십억 원의 금품을 건넸다’라는 특종 보도는 정치권은 물론 사회 전반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당장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신재민 금품 수수 의혹 사건’이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민주당 등 야권은 연일 “진실을 규명하라”라는 논평을 쏟아내면서 여권을 겨냥해 십자 포화를 퍼붓고 있다. 반면 여권은 김두우·홍상표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이 부산저축은행의 거물급 로비스트 박태규씨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에다 신 전 차관의 거액 금품 수수 의혹까지 겹쳐지면서 충격에 빠져 있다. 임기를 1년5개월 남겨둔 이명박 정부에 ‘레임덕’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는 것이다.

정국 흐름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그동안 측근 비리 의혹에 대해 침묵하던 이명박 대통령은 9월27일 “측근 비리 의혹을 완벽하고도 신속하게 조사하라”라는 엄명을 내렸다. 다음 날 권재진 법무부장관 역시 대통령 측근과 친·인척 비리를 엄정하게 처리할 것을 검찰에 지시했다. <시사저널> 보도가 나간 지 이틀 만인 9월23일 이국철 회장을 한 차례 소환 조사한 후 미온적인 수사 태도를 보였던 검찰도 다시 부산해졌다. 여권의 총체적 위기를 서둘러 정면 돌파하지 않으면 10월26일의 서울시장 보궐 선거뿐 아니라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크게 고전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공’은 일단 검찰로 넘어갔다.

검찰의 수사 방향은 크게 세 갈래로 보인다. 우선 이회장이 실제로 신 전 차관을 비롯한 여권 인사들에게 금품이나 향응 등을 제공했는가에 대해 진위 여부를 밝히는 것이다. 둘째, 이회장이 아직 공개하지 않은 또 다른 로비 리스트가 존재하느냐는 점이다. 세 번째는 이회장이 이끌던 SLS조선(현 신아SB)이 석연치 않은 과정을 거쳐 워크아웃되었고, 그 과정에 실제로 권력이 개입했는지 등이다.

<시사저널> 취재진은 지난 9월 이회장을 여러 차례 만나 구체적인 증언과 함께 일부 증거 자료도 확인했다. 이회장의 증언과 자료 등에 따르면, 이회장은 신 전 차관을 비롯해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여권 실세들에게 금품과 향응 등을 제공한 증거 일부를 가지고 있다. 그 증거들 가운데는 SLS그룹의 국내 법인과 싱가포르 및 일본 법인 등의 법인카드 사용 내역서도 포함되어 있다. 이회장은 “현금으로 전달된 부분에 대해서는 자료가 거의 없으며, 진실 공방을 통해 밝혀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9월 초에 인편 통해 청와대에 ‘최후통첩’

 

▲ 지난 9월15일 강원도 영월군 한 캠핑장에서 기자와 만나고 있는 이국철 SLS그룹 회장(오른쪽). ⓒ시사저널 윤성호

이회장이 이후 추가로 공개할 수도 있는 ‘여권 실세들’과 ‘사정 당국 관계자들’은 여럿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이회장은 이 사건이 보도되기 전인 9월18일 본지 취재진에게 “내가 입을 열면, 현재 청와대에 근무하고 있는 직원 가운데 최소한 10명 정도는 옷을 벗어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만약 이회장의 증언과 자료 등의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면, ‘이국철 리스트’에는 어림잡아 20여 명이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그 리스트가 일목요연하게 하나의 문건으로 작성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페이퍼’가 아닌 이회장의 ‘머릿속’에 모두 저장되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지난 9월 초 이회장은 그 전체 리스트에 포함된 인사들 가운데 일부 여권 인사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그동안 자신이 금품과 향응 등을 제공했던 내역을 담은 진정서를 청와대에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진정서와 함께 이회장은 청와대에 세 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이회장에 따르면, △SLS조선 워크아웃 과정과 관련해 산업은행과 수출보험공사 등을 수사해 진실을 밝혀줄 것 △통영해양경찰이 (이회장 등을) 다시 수사하게 된 배경과 배후 세력을 밝혀줄 것 △SLS그룹을 원상 복귀시킬 것 등이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최근 이회장의 진정서를 접수한 적이 없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회장의 말을 들어보면 이는 당연해 보인다. 이회장은 취재진에게도 ‘청와대의 공식적인 민원 창구를 통해 진정서를 보냈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는 “나의 한 지인이 청와대 핫라인을 통해 전달했다”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민원 우편함이 아닌 ‘맨투맨’으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진정서를 보내면서 이회장은 청와대에 “만약 청와대가 SLS 사태 등에 대해 진실 규명에 나서지 않을 경우, 여권 인사들의 비리 내용을 1차, 2차에 걸쳐 폭로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에서 9월17일까지 나에게 답을 달라”라고 ‘최후통첩’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회장은 “청와대에서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에 이회장은 ‘1차’로 신 전 차관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 임재현 청와대 정책홍보비서관 등 네 명과 관련된 비리 의혹을 공개했다(아래 상자 기사 참조). 현재까지는 이회장이 처음 구상했던 ‘로드맵’대로 가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향후 추가 폭로 가능성이 매우 커 보인다.

“최고 실세 최측근이 먼저 거액 요구해왔다”

 

▲ 이명박 대통령이 9월30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실장 주재 36차 확대비서관회의에 예고 없이 방문해 당부의 말을 하고 있다. 이대통령은 이날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므로 조그마한 허점도 남기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그 가운데는 ‘여권의 최고 실세’가 포함되어 있다. 이회장은 지난 9월 <시사저널> 취재진에게 이렇게 증언했다. “내가 검찰 조사를 받고 있을 때(2009년 9월부터 2010년 5월까지)였다. ‘여권 최고 실세의 최측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그 사람이 만나자고 해서 호텔 방에서 만났다. 그는 ‘회장님, 요즘 어려우시죠? 우리가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먼저 구체적인 금액을 요구했다. 상당한 거액이었다. 그를 만난 다음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알아보니 ‘여권 최고 실세의 최측근’이 맞더라. 그래서 부모님의 집과 패물까지 팔아서 마련한 ‘거액’을 전달했다.” 이와 관련해 이회장은 ‘여권 최고 실세’의 이름은 밝혔지만, 그의 ‘최측근’이 누구이며, 그에게 전달한 ‘거액’이 얼마인지까지는 취재진에게 밝히지 않았다.

순차적으로 밝히겠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다만 이회장은 “신 전 차관에게 건네진 금품은 ‘여권 최고 실세’에게 전달된 것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신 전 차관에게 ‘수십억 원’ 규모의 금품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던 것을 감안하면 100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회장은 지난 9월18일 본지 취재진에게 “만약 이 사실이 공개되면 (사람들이) 뒤로 나자빠질 것이다. 어마어마한 충격일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회장의 주장대로라면, 결과적으로 그의 ‘로비’는 실패했다. ‘여권 최고 실세’ 쪽에서 ‘거액’을 받아갔음에도 이회장을 구명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회장은 사정 당국 관계자들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신 전 차관이 나에게 ‘사정 당국 고위 간부들’과 잘 아는 사람이라며 김 아무개씨를 소개시켜준 적이 있다. 그에게 돈을 건넸으나 실제로 ‘고위 간부들’에게까지 전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이회장은 구명 로비를 위해 대구 지역에서 사업을 하는 이 아무개씨를 SLS그룹 임원으로 앉히기도 했다. 이씨는 이회장에게 “‘여권 실세들’뿐 아니라 ‘사정 당국 고위 인사’도 잘 안다. SLS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라고 자신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사정 당국 고위 인사’를 세 번 만났다”라고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씨의 로비도 통하지 않았다. 이씨가 ‘세 번 만났다’라고 했던 ‘사정 당국 고위 인사’의 측근은 9월29일 <시사저널>과의 전화 통화에서 “‘사정 당국 고위 인사’는 (이씨를) 전혀 알지 못하고, 만난 적도 없다”라고 말했다. 이회장은 현재 이씨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다.  

과연 이국철 회장의 매머드급 ‘판도라의 상자’는 더 열릴 것인가. 이미 활 시위는 이회장의 손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 이국철 SLS그룹 회장이 친필로 작성한 A4 용지 9장 분량의 문건. 이 문건에는 ‘신재민-곽승준-임재현’ 등과 관련된 내용이 적혀 있다. ⓒ시사저널 우태윤

 

이국철 SLS그룹 회장의 주장에 대해 치열한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이회장이 금품 및 향응 등을 제공했다고 주장한 당사자들은 이를 강하게 부인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우선 이회장으로부터 현금 및 달러, 법인카드, 상품권, 여행 경비, 승용차 임대비 등 수십억 원에 달하는 금품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신 전 차관은 적극적인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시사저널>과의 지난 9월20일 전화 통화에서 각종 금품 수수 의혹 등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만 부인했을 뿐이다. 이회장이 렌트해 신 전 차관에게 제공했던 승용차와 관련해 기자가 신 전 차관의 운전기사에게 9월28일 전화를 걸어 <시사저널>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자 “지금 운전 중이니 나중에 통화하자”라고만 했다. 이후에는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신 전 차관과 함께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인사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과 임재현 청와대 비서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세 명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A4용지 9장 분량의 이회장 자필 문건(사진)에 따르면, 이회장은 2008년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신 전 차관과 함께 곽위원장을 서울 시내 P호텔 룸에서 셋이 만났다. 같은 대구 출신이라고 해서 만났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곽위원장은 이회장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회장은 임비서관도 신 전 차관의 소개로 만났다고 밝혔다. 이회장에 따르면, 2007년 12월 대선 당일 서울 선릉역 부근의 한 호텔 지하 룸살롱에서 친한 변호사와 술을 마시고 있는데 밤 11시께 신 전 차관이 합석해 그때부터 이명박 대통령 당선 축하 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이후 자정이 넘어서 임비서관이 도착했고 새벽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회장은 2008년 4월께까지 신 전 차관, 임비서관과 함께 같은 룸살롱에서 여러 차례 술자리를 가졌다고 밝혔다. 임비서관은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고 한 번 본 적이 있다”라고 밝혔다. 신 전 비서관과 함께 술자리를 가진 것에 대해서는 인정했지만, ‘여러 차례 술자리를 했다’라는 이회장 주장과 달리 “이후에는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술자리에서 만난 것이 대선 당일이었느냐’라는 질문에 그는 “취임 전은 맞는데 선거 전인지 후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대선 당일은 아닐 것이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라고 밝혔다. 이회장은 또 2008년 대통령 주재 회의에 참석할 당시 제일 끝에 서 있던 자신을 임비서관이 알아보고 대통령이 입장할 때 제일 앞에 설 수 있게 해주어서 맨 먼저 이대통령과 악수를 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서도 임비서관은 “무역협회에서 하는 행사 때 한 번 온 것 같다. 청와대는 아니고 현장에 가보니 있어서 인사만 했다”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이회장은 본지 취재진에게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2008년 11월4일 코엑스에서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임비서관을 공식적으로 한 차례 본 적이 있고, 그 이전부터 사적인 술자리에서 3~4차례 만난 적이 있다”라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두 사람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셈이다. 이회장은 특히 2008년 추석과 2009년 설 때 신 전 차관이 ‘곽위원장과 임비서관을 비롯해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 등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라고 해서 백화점 상품권 5천만원어치를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신재민-곽승준-임재현’ 세 사람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박영준 전 차관의 경우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으로 근무할 당시 비서가 SLS그룹 일본법인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차장님이 일본 출장을 가는데 편의를 봐달라”라는 요청을 해와서 신 전 차관에게 박 전 차관이 누구인지를 확인한 후 편의를 봐주었다고 한다. 이회장은 “당시 밥값과 술값, 화장품 선물값 등으로 5백만원 정도를 썼다”라고 밝혔다. 박 전 차관은 9월20일 오후 <시사저널>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회장은 물론 SLS그룹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라고 말했다. ‘일본 출장 때 편의를 요청한 적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그는 “전혀 모른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박 전 차관과 통화했던 그날 저녁 이회장은 본지 취재진에게 “2009년 9월 검찰이 SLS그룹을 압수수색할 당시 가져간 압수품 가운데는 SLS 계열사 사장의 다이어리도 있었다. 그 다이어리에는 박 전 차관이 (일본 출장 때) 향응을 요구했다는 기록이 있다. 검찰이 확인해보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일본 출장 때 쓴 법인카드 사용 내역서도 있다”라고 반박했다. 이후 박 전 차관의 말이 바뀌었다. 그는 9월30일 경향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모 대기업의 경영본부장인 지인이 ‘일본 오면 얼굴이라도 보자’고 해서 술자리에 나갔다. 아마 SLS 관계자가 지인과 같이 나왔던 것 같다.

선술집에서 술 한잔 했는데 계산은 내 지인이 했다”라고 말했다. 이회장은 “창원지검이 압수수색을 하면서 신 전 차관, 곽위원장, 임비서관 명함만 놓아두고 나머지는 전부 압수해갔다”라는 주장도 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검찰이 현 정권 실세들은 의도적으로 수사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살 만하다. 공교롭게도 2009년 9월 압수수색 당시 창원지검장은 박 전 차관과 동향(경북 칠곡)이자 대구 오성고 2년 후배인 이창세 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이다. 신 전 차관을 제외한 ‘박영준-곽승준-임재현’ 등 세 명은 9월27일 서울중앙지검에 이회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결국 검찰 수사를 통해 진실이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