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령’에서 대통령까지 ‘여풍 몰이’?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1.10.0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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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보선 통해 나경원·박영선 등 ‘잠룡’급 위상으로…박근혜 뒤잇는 차세대 리더들도 ‘쑥쑥’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해 9월14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한나라당 여성 의원들과 오찬을 함께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스뱅크이미지

 

정치권에 부는 ‘여풍(女風)’이 거세다. 박근혜 전 대표가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장기 독주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서울시장 보궐 선거를 앞두고 여야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로 여성 정치인들에게 잇따라 ‘구애’하는 모습이 노출되기도 했다. 박원순 변호사와 이석연 전 법제처장 등 이른바 ‘시민 후보’를 자처하는 ‘무당파’ 후보들이 기존의 정치권을 강타하자, 휘청거리던 한나라당은 나경원 최고위원, 민주당은 박영선 정책위의장을 내세웠다.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나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당을 위기에서 구해낸 ‘잔다르크’로 비유되며 한껏 주가를 올렸다. 지난 2004년 총선 때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을 구하면서 일약 대권 주자로 급부상한 박 전 대표의 모습과 오버랩되기도 한다.

‘여성 대통령’에 대한 유권자 의식도 꽤 우호적

지금 여의도 정가에서는 “여야의 잠재적인 차차기 대권 주자로 평가받던 나경원 후보나 박영선 후보가 이번 서울시장 보선을 계기로 확실히 ‘잠룡’으로서 위상을 정립했다”라는 평가가 나온다. 박 전 대표의 뒤를 이을 여성 대권 후보 계보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남성 정치인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라는 자조 섞인 푸념도 들려온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당초 서울시장 후보에 대해 ‘외부 영입’에 무게 중심을 두면서 당내 일각에서 제기되던 ‘나경원 차출론’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으나, 여론조사에서 나후보의 경쟁력이 높게 나타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지난 9월28일 서둘러 공천장을 ‘정중하게’ 전달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 역시 당초 박원순 변호사 영입에 사활을 거는 모습을 보이다가 여의치 않자, 직접 나서서 박영선 의원과 추미애 의원에게 후보 출마에 나서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통령도 여성, ‘소통령’도 여성이 거머쥐는 것이 아니냐”라는 전망이 현실적으로 다가서고 있다.   

 

 

실제 ‘여성 대통령’에 대한 유권자들의 의식은 꽤 우호적이다. 지난 3월16일 미래희망연대 정영희 의원이 여의도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여성 대통령 선호도’ 조사항목에서 ‘선호한다’라는 답변과 ‘성별은 중요치 않다’라는 답변이 각각 36.9%로 동일하게 공동 1위로 나타났다. 조사에 참여한 이들 가운데 74% 정도가 여성 대통령의 등장에 대해 ‘거부감이 없다’라고 답한 셈이다. 반면 거부감을 표시한 ‘시기상조이다’라는 응답은 17.9%에 그쳤다. 

성별로 살펴보아도, 남성 유권자들이 여성 대통령에 대해 거의 거부감이 없다는 것이 잘 드러난다. 남성 응답자의 37.5%가 ‘성별은 중요치 않다’라고 대답했고, ‘선호한다’라는 응답도 무려 33.9%에 달했다. 여성 유권자의 ‘선호한다’(39.7%)와 ‘성별은 중요치 않다’(36.3%)라는 응답 결과와 큰 차이가 없다. ‘시기상조’라는 응답에서는 남성(20.7%)이 여성(15.2%)보다 조금 우세했다.

이같은 현상은 지난 5월과 6월 <시사저널>이 실시한 전국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포착되었다. 지난 5월17일 실시한 부산과 울산·경남 지역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차기 대통령으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느냐’라는 문항에서 박 전 대표는 44.5%의 압도적인 지목률을 나타냈는데, 이를 성별로 보면 여성은 45.2%가, 남성은 43.8%가 각각 박 전 대표를 지목했다. 지난 6월3일 실시한 서울·인천·경기 지역 여론조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박 전 대표가 29.8%의 지목률로 1위를 차지했는데, 성별로 보면 여성은 30.1%, 남성은 29.4%가 박 전 대표를 지목했다. 성별에 따른 지목률 차이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한나라당 친박계의 한 의원은 얼마 전 사석에서 기자에게 이런 에피소드를 전한 적이 있다. “갑자기 박 전 대표의 전화를 받았다. 평소 거의 전화를 않던 분이어서 휴대전화에 박근혜라는 이름이 뜨는 순간, 정말 오금이 저렸다. 나도 모르게 인사를 꾸벅 하면서 전화를 받는 모습에 곁에 있던 보좌관들이 다들 놀라더라.” 여성 정치인이지만 박 전 대표가 남성 정치인들에게 보여주는 카리스마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여성 의원 비율 여전히 낮은 점은 한계

 

‘차세대 리더’로서의 잠재력을 지닌 여성 정치인도 많다. 특히 비례대표로 처음 국회에 입성했다가 역량을 인정받아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되며 입지를 확실히 한 여성 의원들의 활약을 눈여겨볼 만하다. 이미 ‘잠룡’으로 자리매김한 나경원·박영선 후보는 물론 한나라당의 김영선·진수희·전여옥 의원과 민주당의 조배숙 의원 등이 있다. 현재 비례대표 초선이지만, 벌써부터 내년 총선에 대비해 지역구 여기저기서 이름이 거론되는 조윤선 정옥임·배은희(이상 한나라당), 전현희·박선숙(이상 민주당), 박선영(자유선진당), 이정희(민주노동당) 의원 등도 성장 가능성이 큰 여성 정치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정치권에서 여풍이 거세게 몰아치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치가 부패해지면서 여성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라고 진단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김원홍 연구위원은 “여성 정치인이 부각되는 이유는 서울시장 보선을 앞두고 ‘안철수 바람’이 분 것과 일맥상통한다. 식상한 정치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여성이 떠오른 것이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청렴하다는 이미지가 강하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라고 설명했다. 

여성 정치인의 도전 의식을 높게 사는 이도 있다. 동아시아연구원의 정한울 부소장은 “보수적인 한국 정치 사회에서 여성의 위상이 단순히 특혜만 누려서는 이 정도까지 오를 수 없다. 수혜에 안주하지 않고 동등하게 경쟁해서 현재의 위치에 오른 선발 주자들의 노력이 상당히 컸다”라고 말했다. 그는 “박 전 대표만 해도 지난 1998년에 정치에 뛰어들어 수많은 제안을 뿌리치고 2004년에는 당 대표직을 맡기까지 모든 과정이 도전의 연속이었다. 지난 대선 때만 해도 사실 여성이기 때문에 한나라당 후보로 뽑을 수 없다는 의식이 상당히 작용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수용층이 넓어져 ‘대세론’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나. 인식이 이렇게 바뀐 데에는 지난 10년간 박후보의 행보가 뒷받침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에 부는 여풍이 과연 여성 대통령 시대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여전히 현실적인 난관은 있다. 김원홍 연구위원은 “우선 ‘수적 열세’라는 한계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스웨덴이나 독일 등 여성 총리가 나오는 국가는 여성 의원의 비율이 40~50% 정도로 상당히 높은 곳들이다. 세계 평균이 약 19%인 것에 비하면 한국의 여성 의원 비율은 이제 겨우 13%대로 저조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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