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신형 블루칩 ‘선거 펀드’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1.10.0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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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펀드’ 이어 ‘박원순 펀드’까지 성공하면서 관심 고조…새로운 문화로 정착될 가능성 있어

▲ 지난 9월29일 열린 ‘박원순(사진 가운데) 펀드’ 달성 축하 번개 미팅의 모습. ⓒ원순닷컴 제공

옛말에 ‘정치하면 패가망신한다’라는 말이 있다. 선거에 나가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어설프게 뛰어들었다가는 집안 기둥을 빼먹는다고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는 시민운동가답게 그와 같은 정치 논리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돈 없는 사람도 시장에 나올 수 있고 당선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비밀 병기를 공개했다. 이른바 ‘선거 펀드’인 ‘박원순 펀드’였다.

‘박원순 펀드’는 개설한 지 52시간 만에 마감되었다. 동시에 박후보 ‘희망캠프’의 분위기는 들떴다.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 욕구가 너무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놀랐다”라며 잔뜩 고무된 표정이다. 희망캠프측은 “9월26일 낮 12시부터 시작된 ‘박원순 펀드’ 모금이 9월28일 오후 4시에 법정 선거 비용에 도달해 9월30일까지 예정했던 모금을 일찍 마감했다”라고 밝혔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일석이조’ 투자

펀드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사람은 7천2백11명이었지만, 이미 총 약정 금액인 38억8천5백만원을 넘긴 탓에 약 1천4백여 명은 가입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정리해보면 ‘박원순 펀드’에 참여한 투자자는 모두 5천7백78명으로 1인당 평균 67만원  정도를 낸 셈인데, 최소 약정 구좌인 10만원에 가입한 ‘개미 회원’들이 50% 이상을 차지하며 희망캠프 재정의 중추를 맡았다.

투자한 사람들이 ‘박원순’을 알게 된 경위는 다양했다. 참여연대의 회원도 있었고, 그의 강의를 들었던 사람도 있었다. 안철수 교수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감동을 받았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곗돈을 투자하기도 하고, 해외여행 갈 돈을 펀드에 넣은 사람도 있었다. 희망캠프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장을 뽑는다고 서울시민만 펀드에 가입한 것이 아니다. 전주, 순천, 부산 등 전국 곳곳에서 많은 분들이 펀드에 가입했다. 중국 등 해외에서 펀드에 투자한 분도 있다. 펀드를 통해 새로운 정치를 꿈꾸는 국민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 선거에 거는 의미가 단순한 서울시장을 뽑는 것 이상이라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선거 비용 개인 펀드의 첫 발안자는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였다. 유대표가 2010년 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할 무렵 사무실 보증금을 마련하는 문제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팬클럽 ‘시민광장’의 회원들이 나섰다. 그들은 “돈을 빌려줄 테니 선거 뒤 보증금 빼면 갚으라”라고 했다. 유대표는 이 아이디어를 선거 비용으로까지 확대시켰고 ‘선거 펀드’가 탄생했다. ‘선거 자금을 빌린 뒤 선거 비용을 보전받으면 원금 및 확정 이율(연 2.45%)을 보장해 돌려주겠다’라는 내용이었다. 선거법상 유효 득표 수의 15% 이상을 득표한 후보에게는 선거 비용을 100% 보전해주기 때문에, 그리고 그 투자 대상이 전국구 정치인인 유대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해 4월 당시 나흘 동안 40억7천3백만원을 모금한 유대표는 6·10 지방선거에서 낙선했지만 선거 비용은 돌려받았다. 그리고 8월10일부터 약 일주일에 거쳐 ‘유시민 펀드’의 상환을 시작했다. CD(양도성예금증서) 금리 연리 2.45%를 적용했기 때문에 유시민 펀드에 가입했던 투자자는 원금과 0.0245%에 해당하는 이자도 함께 받았다.

박후보 역시 이와 같은 방식을 차용했다. 그는 3개월짜리 CD 금리인 연리 3.58%의 이자를 더해 12월25일 이전에 투자 금액을 상환할 계획이다. 박후보 쪽은 투자자들에게 돌려줄 이자 부담(약 2천만원)을 최소화하기 위해 펀드를 통해 모인 돈을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입금해 관리할 예정이다. CMA 계좌의 경우 하루만 예치해도 이자가 불어나는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펀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정치인 박원순’의 체급이 올라갔다는 평가가 돈다. 수많은 ‘개미’들에게 돈을 받으며 그동안 제기되었던 대중적 인지도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약간 회의적으로 보았는데 유시민 대표에 버금가는 속도로 많은 액수를 모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라고 말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정치인 펀드는 내년 선거에서 새로운 풍속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치 신인들의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투자자인 ‘지지자’ 입장에서는 원금 손실이 없으면서 정치인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껄끄러움도 없다. 공무원이나 교사가 정치 후원금 문제로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펀드는 애초부터 ‘투자’의 개념인 데다 나중에 돌려받기 때문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반면 정치 신인들에게 펀드가 의외로 효과가 없으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말 그대로 펀드는 투자자가 자신의 투자에 대한 위험 부담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관건’은 자신의 후보가 선거 비용 보전의 기준인 15%의 득표율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는지 여부이다. 만약 15%를 넘지 못할 경우 펀드로 조성된 선거 비용은 후보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앞서 언급한 한나라당 초선 의원은 “펀드도 선거 비용 보전이 확실한 현역 의원들이나 원외에 있는 유명 정치인들에게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 신인 중에서 15%를 확실하게 넘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지명도를 가진 몇몇 전직 의원들이 이런 방법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선거 펀드’에 대한 높은 관심이 선거의 해인 2012년까지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는 점이다. 시민운동가에서 외도를 꾀한 ‘정치인 박원순’은 강렬한 흔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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