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진격한 시민운동 미국의 대변화 이끌까
  • 한면택│워싱턴 통신원 ()
  • 승인 2011.10.10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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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의 항의 시위에 노조·시민단체 가세해 미국 전역 확산

미국의 성난 젊은이들이 돈의 상징, 월가를 점령하고 힘의 중심지, 워싱턴D.C.로 진군하고 있다. 미국 금융 자본의 부패와 탐욕에 분노를 표출하는 항의 시위가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 보스턴과 시카고, 이제 워싱턴D.C. 등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Occupy Wall Street(월가를 점령하라)’로 불리는 이번 시위가 미국 내 레프트(진보 진영)의 시민운동으로 발전해 라이트(보수 진영)의 시민운동 단체인 티파티에 맞대응해 균형을 맞추면서 ‘주식회사 미국’을 또 한 번 일대 변화시킬지 주목되고 있다.

“탐욕에 휩싸인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부패한 정치권력 응징하라”…. 분노의 함성과 구호가 갈수록 널리 울려퍼지고 있다. 마치 배낭 여행객 같은 차림으로 맨해튼에 몰려든 미국의 젊은이들은 월스트리트 인근에 진지를 구축하고 ‘Occupy Wall Street’의 함성을 이어가고 있다. 2천여 명의 분노한 젊은이들이 맨해튼 관문이자 상징인 브루그린 다리를 점거하고 격한 시위를 벌이다 이 중 7백여 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9월17일 캐나다 운동가의 캠페인으로 불붙기 시작한 성난 시위는 그 규모가 수백 명에서 수천 명으로 불어나더니 이제는 1만명대의 거센 폭풍우가 되어 몰아치고 있다

위스컨신에서 자동차를 몰고 사흘 길을 달려왔다는 20대의 알렉스는 ‘우리는 99%의 밑바닥층이다’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월가와 기업 좀비에게 빼앗긴 내 일자리를 되찾으러 왔다”라고 외치며 울분을 토했다. 알렉스 주변의 젊은이들도 “더 이상 1%의 탐욕에 놀아날 수 없다” “모두 일어나 우리 것을 되찾자”라고 외쳤다. “부패한 정치권력, 탐욕스런 은행과 기업으로 아메리칸 드림은 죽었다”라고 외치는 젊은이들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돈 먹는 좀비 차림을 하고 행진하고 있다.

▲ 지난 10월5일 미국 뉴욕의 폴리 광장에서 노동계와 시민단체 등이 가세한 시위대가 월가를 향해 가두 행진을 할 준비를 하고 있다. ⓒAP연합

금융 자본의 탐욕·정치의 타락에 분노 폭발

다수의 젊은이는 “전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만들라”라고 외치고 있다. “다음 번 위기는 학자금 융자 빚이 될 것이다”라고 우려하고 있다. 중년의 한 백인 시민은 ‘그들이 돈놀이하고 있을 때 우리는 집을 차압당했다’ ‘그들이 구제 금융을 받자 우리는 돌아버렸다’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침묵 시위를 벌였다.

이처럼 다수의 미국 젊은이는 ‘잃어버린 세대’의 고통과 울분, 두려움을 터뜨리고 있다. 네 명 가운데 한 명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우울한 현실이 청년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대학 4년 동안 융자받은 수만 달러의 학자금 빚은 그대로 있는데 돈을 벌지 못하니 울분이 쌓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직장을 잃고 내 집도 포기한 30~40대들도 대거 몰려들고 있다. 여기에 반전, 환경 보호, 이민 옹호 운동가들이 가세하고 있고 서비스 노조, 철강 노조 등 미국의 대형 노조연합 단체들도 지지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이들은 단지 1%에 해당하면서도 부를 독점하고 있는 백만장자·억장장자들, 돈 놓고 돈 먹는 돈 장사치들, 고용은 외면하고 이익 내기에만 혈안이 된 대기업들, 그들에게 오히려 뒷돈을 대준 타락한 정치인들에게 분노의 화살을 퍼붓고 있다.

이들은 왜 길거리에 몰려나왔나. 금융 자본의 탐욕과 타락한 워싱턴 정치 때문에 경제 살리기에 실패하고 빈부 격차만 심화되고 있다고 생각해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2008년 금융 위기와 불경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뿌리고도 금융 자본의 배만 불렸을 뿐 미국민 99%의 고통은 더욱 심해져 폭발했다는 해석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ED)가 2조4천억 달러, 워싱턴 정치권의 경기 부양책으로 8천3백억 달러 등 지금까지 3조2천3백억 달러를 뿌렸으나 은행과 증시, 대기업들의 배만 불렸다는 지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은행 등 금융기관들은 금융 위기 때에 지원받은 7천억 달러와 그 이후 ‘돈맥경화’ 풀기에 사용하라고 대준 자금 등을 대부분 제 몸집, 체질 강화에 사용해 비난을 받고 있다. 뉴욕 증시는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였던 2009년 3월 초 6천 선대로 주저앉았으나 현재는 1만1천 포인트로 두 배가 되어 있다.

기업들은 불경기가 끝난 이후 이익이 무려 46.6%나 급증해 1조 달러 이상의 자금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일자리 늘리기는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반면 일자리 증가와 개인 소득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개인 대출은 오히려 줄어들어 대다수 미국민은 경기 회복을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불경기 종료 후 지금까지 미국민들의 일자리는 0.4% 늘어나는 데 그쳤다. 불경기가 끝난 지 2년이 지났는데도 실업률은 9.1%, 고용 증가율은 제로를 기록하고 있다. 풀타임을 원하지만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미국인 2천5백만명이 일자리가 없어 떠돌고 있다. 일자리 회복이 더디다 보니 미국 국민 개인 소득도 1.8%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진보 진영 집결…‘티파티’ 대항마 될지 주목

▲ 지난 10월4일 ‘월가를 점령’하려고 모인 미국의 젊은이들이 뉴욕의 주코티 광장에서 노숙하고 있다. ⓒThe New York Times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갑자기 감소해 수많은 미국 국민들이 내 집을 잃었다. 집을 압류당한 가구가 3백만 채를 넘었고 압류 절차에 빠져 있는 가구들도 6백40만 채이다. 게다가 일반 서민들은 은행들이 신용카드 사용 한도와 에큐티론 등을 통한 대출을 불경기 종료 후 오히려 4.1%나 줄이는 바람에 돈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경기 회복이 시작된 후 미국 내 은행들은 신용카드 사용 한도를 3조4백억 달러에서 2조6천9백억 달러로 오히려 줄였으며 홈 에큐티론은 1조3천3백억 달러에서 1조1천5백억 달러로 축소했다. 미국 경제는 이처럼 엄청난 돈을 풀었는데도 97%의 중산층 이하 서민들은 여전히 빈털터리로 신음하고 있다.

‘Occupy Wall Street’ 시위를 이끌고 동참하고 있는 세력들은 대체로 진보적인 운동가들과 젊은이들이다. 노조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진보 진영의 풀뿌리 시민운동으로 발전될지 관심을 끌고 있다. 달리 말해 보수 진영의 시민운동인 티파티와 견줄 대항마가 될 것인지에 시선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처음 뉴욕에서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시작되었을 때에는 진보 진영의 시민운동으로 발전될지 의문시되었다. 애드버스터라는 캐나다의 한 운동가 그룹이 이를 주창한 것으로 알려졌을 뿐 조직적인 움직임은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바로 반전·환경 보호·이민 옹호 단체 등 진보 진영의 운동가들이 집결하고 대형 노조들이 동참하고 나서 티파티에 못지않은 레프트(진보 진영)의 시민운동으로 전개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 여배우 수전 서랜든 등 유명 인사들과 데이비드 패터슨 전 뉴욕 주지사 등이 시위 현장에 나타나 힘을 보탰다.

아직 월가를 점령한 시민운동이 티파티의 대항마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많다. 월가 점령 운동은 티파티와는 달리 첫째로 거대한 군중들이 공유하는 가치와 목표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구체적인 조직이나 운동 방향, 목표 등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 워싱턴의 지지나 미국 언론의 관심을 크게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월가 점령 운동이 티파티와 견줄 대항마가 되기까지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고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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