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떠난 ‘IT 전선’합종연횡 뜨거워진다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1.10.10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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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IT계를 호령하던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 애플 CEO가 세상을 떠난 후 IT 업계에 전운이 짙어지고 있다. 애플이 ‘메시아’를 잃고 혼란에 빠진 사이 경쟁 업체들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싸움은 이&

ⓒAP연합

‘IT(정보기술) 산업 패권자’ 스티브 잡스가 떠났다. 벌써부터 잡스가 두고 간 업계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IT 대전이 벌어질 조짐이다. 단말기·소프트웨어·서비스 시장에서는 일찌감치 국지전이 발발했고, 최근 전황이 격렬해지고 있다. 애플이 ‘메시아’를 잃고 혼돈에 빠져 생긴 절호의 기회를 경쟁 업체들이 놓칠 리 없기 때문이다. 싸움은 IT 전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잡스 이전에는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 콘텐츠 업체는 각자 시장에서 경쟁했으나 이제 사업 간 경계가 사라지면서 전선이 중첩되거나 다변화하고 있다. 경쟁 양상이 복잡해진 것도 잡스가 남긴 유산이다. 잡스는 혁신형 파괴자였다. 잡스 치하에서 애플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 영역으로 사업 범위를 확장하면서 사업 간 경계를 일시에 허물어뜨렸다. 이제 인터넷 서비스 업체가 하드웨어 업체를 인수해 단말기 제조업체와 경쟁하는가 하면 하드웨어 업체가 인터넷 검색 엔진을 개발해 모바일 검색 시장에서 맞붙고 있다.

애플은 지금 스마트폰 시장에서 노키아나 삼성전자와, 운영체제 시장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MS)나 구글과 싸운다. 음악이나 어플리케이션 시장을 개설해 콘텐츠 유통 시장을 혁신하는가 하면 음성 검색 엔진까지 출시해 구글을 조준한다. 애플은 삼성전자나 HTC 같은 제조업체를 상대로 특허권 침해 소송을 벌이면서 경쟁 무대를 전세계 법정으로까지 확대했다. 그러다 보니 애플은 이제 IT 업계의 판도를 뒤흔들 경쟁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 잡스 생전, 애플은 쉴 새 없이 변화를 추구했다. 애플을 끊임없이 혁신으로 이끈 엔진이 꺼진 상황에서 IT 산업의 판도는 어떻게 재편될까? 얽히고설킨 경쟁 양태를 눈여겨보면 잡스 사후 IT 업계 판도가 점쳐지고 세부 시장 영역에서 승자와 패자를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이승혁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변화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글로벌 경쟁 구도가 변화할 가능성이 커졌다”라고 전망했다.

애플이 시급하게 마무리지어야 할 과제는 특허권 분쟁이다. 독일 뒤셀도르프 법정에서 갤럭시탭 판매 금지 소송에서 승리한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삼성전자가 지난 9월6일 이탈리아와 프랑스 법정에서 아이폰4S 판매 금지 소송을 제기했다. 아이폰4S가 삼성전자가 보유한 통신기술 특허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1993년부터 2011년까지 미국과 유럽에 이동통신 기술 특허 1만1천5백건 이상을 출원했다. 애플은 같은 기간 3천100건을 출원했다. 삼성전자는 LG전자와 함께 차세대 통신기술 LTE(롱텀에볼루션) 관련 특허를 많이 가진 업체로 알려졌다. 애플은 지난 4월에 9억 달러를 들여 캐나다 통신 장비 업체 노텔을 인수했다. 노텔이 보유한 LTE 기술 특허는 LG전자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애플을 상대로 LTE 특허 침해로 소송을 제기하면 아이폰5 출시는 포기해야 할 형편이다. 애플은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통신기술 강자 퀄컴과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클라우드컴퓨팅 경쟁도 더욱 격화돼

▲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 있는 애플스토어. ⓒAP연합

애플은 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 업체이다. 지난 2분기까지 전세계에서 팔린 스마트폰은 8억3천3백77만대(누적치)이다. 애플은 스마트폰 1억2천8백96만대를 팔았다. 지난 2분기에만 2천만대 이상을 팔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9.1%를 차지했다. 애플은 삼성전자로부터 터치스크린, 플래시메모리, 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공급받는다. 삼성전자 매출에서 애플이 차지하는 비중은 5.8%나 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애플은 최대 고객이자 라이벌이다.

단말기 시장에서는 경쟁하지만, 부품 시장에서는 서로가 필요한 존재이다. 그러다 보니 회사 내부에서도 양자 갈등이 최악으로 치달을 것으로는 판단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도 생전에 삼성전자와의 특허권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애썼다. 리차드 루튼 전 애플 특허권 담당자는 지난 9월28일 호주 시드니 연방법원에서 ‘애플 창업자는 법적 분쟁을 해결하고 아이패드용 부품 공급이 차질을 빚는 것을 피하기 위해 2010년 개인적으로 삼성에 전화했다’라고 증언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애플이 보유 특허를 공유하는 크로스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화해하리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 

특허권 분쟁은 업체 간 합종연횡을 유도하기도 한다. 삼성전자는 지난 9월 윈텔 진영(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과 손잡았다. 마이크로소프트와는 통신이나 운영체제 관련 기술 특허를 공유(크로스라이선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모바일 운영체제 윈도를 탑재한 망고(윈도폰7.5)를 출시하는 동시에 삼성전자와 노키아를 윈도 진영으로 끌어들였다. 이와 동시에 삼성전자는 인텔과 협력해 리눅스 기반의 새 운영체제 ‘타이즌(Tizne)’ 개발에 나섰다. 세계 최대 IT업체 삼성전자가 소프트웨어 최강자와 반도체 분야 세계 1위와 손잡고 반(反)애플 연합 전선을 구축한 것이다.

반애플 연합에 애플 못지않게 긴장하는 곳은 구글이다. 삼성전자가 PC 운영체제 최강자인 마이크로소프트와 가까이하는 것은 구글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내세워 모바일 운영체제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인텔과 협력해 새 운영체제를 개발하면 안드로이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삼성전자는 애플과 벌이는 특허권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동시에 언제 적으로 돌변할지 모르는 구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묘수로 반애플 연합을 활용하고 있다.

구글은 지난 8월 모토로라모빌리티를 인수하면서 휴대전화 단말기 시장에 뛰어들었다. 앞으로 구글이 최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모토로라 휴대전화에게만 공급하는 사태가 일어나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제조하는 삼성전자, HTC, LG전자 같은 기업을 졸지에 2류 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 지금까지 안드로이드 진영에서는 상생과 협력의 분위기가 우세하다. 구글은 차세대 모바일OS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를 개발했다. 삼성전자, HTC, 모토로라는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를 탑재한 최신형 스마트폰을 출시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구글은 웹브라우저 크롬을 기초로 클라우드컴퓨팅 운영체제인 크롬OS를 만들었다. 삼성전자는 크롬OS에 기초해 클라우드컴퓨팅 방식의 노트북 ‘크롬북’을 출시해 애플 맥북에어를 압박하고 있다.

클라우드컴퓨팅 전선은 스마트폰, 태블릿PC, 스마트TV까지 확대되고 있다. 컴퓨터, 스마트폰, 태블릿PC, TV까지 클라우드컴퓨팅 네트워크에 연결해 자기 콘텐츠를 어느 기기에서나 내려받거나 편집할 수 있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삼성전자가 자기 사업 영역에서 활발하게 클라우드컴퓨팅 기술을 구현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아이클라우드 서비스를 ‘미래 먹거리’로 정하고 대규모 투자를 벌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반애플 연합이 애플을 공격하면 애플이 이에 응전했다. 방어에 치중하던 애플이 얼마 전부터 공격에 나섰다. 경쟁 업체가 애플과 대치한 전선에 가용 자원을 집중적으로 쏟아붓자 애플은 적진 깊숙이 파고들어 후방을 교란하는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애플은 지난 9월5일 아이폰4S와 함께 ‘시리(Siri)’라는 비밀 병기를 끼워 발표했다. 시리는 애플의 미래 사업이자 웹 검색의 미래로 평가받고 있다. 이 인공 지능 어플리케이션은 음성 명령을 인식해 인터넷을 검색한 뒤 검색 결과를 휴대용 단말기 화면에 출력한다. 애플은 지난해 미국 국방성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개발한 인공 지능 기술을 사들여 시리를 개발했다. 시리는 식당 예약이나 질의 응답이 가능한 인공 지능 어플리케이션이다.

앞으로 무선 컴퓨팅이 발전할수록 시리의 존재감은 커진다. 기존 스마트폰에는 명령어를 입력하거나 검색 기능을 강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시리가 정조준하는 곳은 세계 최대 검색 포털 구글이다. 모바일 검색 시장에서는 구글의 독주를 막겠다는 심산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구글도 안드로이드 버전의 인공 지능 검색 엔진을 개발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검색 엔진 ‘빙’을 ‘의사 결정 엔진’이라 일컬으며 시리와 같은 검색 기능을 구현하려 한다.

▲ 생전의 스티브 잡스가 샌프란시스코 미디어 이벤트 현장에서 신형 애플 아이팟 셔플, 나노, 아이패드 터치 제품(왼쪽부터)을 소개하고 있다. ⓒAP연합

LTE에서 첫 번째 대격돌 벌어질 듯

애플이 모바일 검색이나 소프트웨어, 서비스 시장까지 넘보는 것은 성장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애플은 잡스 사망과 상관없이 앞으로도 ‘감탄할 만한’ 디지털 기기를 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하드웨어 판매로 얻는 이윤은 줄어들 것이다. ‘혁신 기기는 언젠가 일반 상품으로 전락해 초과 이윤이 사라진다’는 것이 IT(정보기술) 산업의 철칙이다. 애플은 앞으로 아이폰 판매보다 소프트웨어나 콘텐츠 서비스로 더 많은 수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 경영대학원 슬론스쿨 소속 마이클 쿠수마노 교수는 “장기적으로 애플이 추구할 최선의 전략은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플랫폼에서 매출과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애플은 도전자이다. 애플의 운영체제 iOS 플랫폼은 미국 스마트폰 OS 시장의 20% 미만을 점유하고 있다. 구글 안드로이드는 시장 점유율 40% 이상을 자랑한다. 애플이 상대적으로 비싼 아이폰3GS와 아이폰4만 출시한다. 애플은 저사양 시장에는 아이폰3GS, 중간 사양 시장에는 아이폰4, 고급 사양 시장에는 아이폰4S를 공급하고 있다. 애플은 오로지 이 세 가지 단말기만 출시하고 있다. 다양한 가격대의 단말기가 없다보니 iOS 플랫폼 보급에 한계가 있다. 이와 달리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은 수십 달러에서 수백 달러까지 갖가지 사양과 가격을 갖춘 단말기 수십 종이 출시되고 있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 싼 기기가 다수 보급된 중국이나 인도 같은 신흥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아이폰 단말기가 비싸다 보니 애플은 신흥 시장 진입에 실패했다. 애플은 뒤늦게 중국 최대 이동통신업체 차이나모바일과 협상하고 있다. 아이폰3GS 같은 저사양 스마트폰을 싸게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잡스가 떠난 IT 시장에서 첫 번째 대격돌은 차세대 통신 서비스 LTE(롱텀에볼루션)에서 벌어질 전망이다. 애플이 지난 9월5일 발표한 아이폰4S로는 차세대 통신 서비스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가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이승혁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아이폰4S의 위력은 크지 않을 것이다. 새 형식이 나오지 않았고 가격대 역시 기존 아이폰4나 경쟁 업체 제품과 다르지 않으며 LTE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4분기에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다소 긍정적인 영업 환경을 맞이한 것이다. 앞으로 애플의 최대 과제는 LTE폰을 얼마나 빨리 출시하느냐에 있다”라고 내다보았다. 

애플은 내년 5월 애플 세계개발자대회(WWDC)에서나 LTE 기반 아이폰5를 발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반해 삼성전자, LG전자, HTC는 잇달아 LTE 기반 단말기를 출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2 LTE, HTC는 레이더스4G, LG전자는 옵티머스LTE를 잇달아 출시해 4세대 통신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반면에 애플은 아이폰5 출시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알려진다. 애플은 스마트폰을 만든 지 4년밖에 되지 않았다. IT 전문가는 ‘애플이 LTE 통신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아이폰5 개발이 늦어지고 있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콜린 길린스 보스턴컨설팅그룹(BCG) 파트너는 “A5칩(아이폰4S에 탑재된 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을 다는 데 16개월이나 걸린 것이냐”라며 아이폰4S에 대한 실망감을 표현했다. 잡스 생전에 애플은 해마다 혁신 제품을 출시했다.

잡스의 리더십이 탁월한 것은 아니었다. 리더십 수준으로 따지면 삼류에 불과하다. 잡스 없는 애플은 상상할 수 없는 탓이다. 최상위 리더는 자기가 없어도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갖추어놓는다. 잡스와 애플은 동일체였다. 잡스의 카리스마와 역량이 애플을 지탱하는 축이었다. 애플은 잡스라는 태양 주위를 도는 위성에 불과하다. 이제 태양을 잃은 위성이 IT계에서 과거와 같은 무게감을 유지할지는 내년 5월 출시될 아이폰5에서 확인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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