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판사’ 배후에 뻔뻔한 ‘식구 감싸기’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1.10.10 22:5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재성 전 광주지법 수석부장판사에 대한 ‘무죄 판결’ 논란 /‘법조 권력-지역 시회-언론 카르텔’ 둘러싼 의혹도

ⓒ연합뉴스

영화 <도가니>의 후폭풍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국회 국정감사 현장에서도 여야 의원 가릴 것 없이 온통 법원의 ‘도가니 판결’에 대한 성토가 무성했다. 양승태 신임 대법원장은 “반성한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장애인 교육시설인 전남 광주의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을 재구성한 이 영화는 10월5일 현재 누적 관객 3백만명을 넘어섰다. <도가니>를 관람한 관객들의 반응은 ‘분노’로 집약된다. 관객들은 성폭행 자체뿐만 아니라 재판 과정에서 나타난 지역 사회 지도층들의 ‘카르텔(담합)’에 치를 떨었다. 판사·변호사는 물론 검사까지 한통속이 되어 재판을 조작하고, 약자인 피해 아이들보다 강자인 사학 재단측을 옹호하는 지역 사회의 모습은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최근 또 하나 주목받는 사례가 등장했다. 선재성 전 광주지법 수석부장판사(휴직 중)가 바로 논란의 주인공이다. 선판사는 지난 6월 뇌물 수수와 변호사법 위반,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선판사는 2005년 8월 고교·대학 동창인 강 아무개 변호사의 소개로 광섬유 제조업체에 5천만원을 투자해 1억원가량의 시세 차익을 남기고, 자신이 맡은 법정 관리 사건의 대리인으로 강변호사와 자신의 친형, 심지어 자신의 운전기사를 선임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직 판사가 형사 재판을 받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 재판에 국민적 관심이 모아졌다. 그러나 1심을 맡은 광주지법은 지난 9월29일 선판사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검찰의 안일한 대처’도 도마에 올라

국민들은 분노했다. 도가니를 통해 사법 권력의 추악한 유착관계를 접했던 국민들은 이번 판결 역시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로 생각하고 있다. 또한 선판사가 광주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이른바 ‘향판(鄕判)’이라는 점도 구설에 오르고 있다. 법조 권력과 지역 시회·언론까지 결합한 거대한 ‘카르텔’이 선판사가 무죄 판결을 받게 된 배경이라는 시각이다.

도가니 파문에 이어 선판사의 무죄 판결에 대한 논란까지 이어지면서 법조계도 상당히 민감해졌다. 법조계 인사들은 대체적으로 이번 선판사 재판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고 말한다. 선판사의 1심 재판을 담당한 곳이 광주지법(형사 2부)이었기 때문에 이런 논란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광주지법은 재판이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 2월까지 선판사가 수석부장판사로 재직했던 곳이다. 즉, 광주지법의 부장판사가 직속 상관인 수석부장판사를 재판하는 셈이 된 것이다. 또한 이번 사건의 재판장인 김태업 부장판사는 선재성 판사의 서울대 후배이며 광주지법에서 몇 달간 함께 근무하기도 했다. 실제 김판사는 재판 과정에서 선판사에 대해 통상 사용하는 ‘피고인’ 대신 ‘선부장판사’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광주지법의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은 수사 초기부터 조짐을 보였다. 광주지법은 지난 3월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 11건을 기각했다. 압수수색의 필요성이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석연치 않은 이유에서였다. 이에 대해 광주지법측은 “지난 7월 ‘선부장판사가 휴직 중이지만 현직 법관 신분이어서 광주지법에서 재판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 공정성을 우려하는 여론이 있다’라며 이 사건의 관할지를 이전하는 데 대한 검찰의 의견을 물었다. 당시 검찰은 재판부를 변경할 사유가 없다며 관할이전 신청을 하지 않았다”라고 밝히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검찰의 안일한 대처가 선판사에 대한 무죄 판결을 이끌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검찰은 지난 10월5일 항소장을 제출하며 항소심을 서울고법으로 옮겨 진행할 수 있도록 대법원에 요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관할지 이전을 신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선판사에 대한 무죄 판결에는 법원뿐만 아니라 광주 지역의 ‘선판사 봐주기’ 분위기가 큰 몫을 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선판사는 1990년 임용된 후 지금까지 21년간의 판사 생활 중 2년간의 대법원 재판연구관 시절을 제외하고는 19년을 광주·전남 지역에서만 근무했다. 광주일고 출신이기도 한 선판사는 전형적인 향판으로서, 차기 광주지법원장 ‘0순위’에 꼽히던 인물이다. 이 때문에 지역 사회에서는 선판사가 호남 지역의 ‘살아 있는 권력’이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선판사에 대한 지역 사회의 평판도 좋은 편이다. 그는 청소년 선도, 장애인·여성 인권 향상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 지역 시민단체와 돈독한 관계를 쌓아왔다고 한다.

막강한 권력과 학연·지연·혈연 등으로 쌓아온 선판사의 인맥은 이번 사건이 터지자 든든한 지원군으로 등장했다. 윤민호 민주노동당 광주시당 위원장은 “선판사와 강변호사 간의 카르텔은 광주 법조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터지자 오히려 지역 사회 지도층을 중심으로 선판사 구명 운동이 암암리에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 ‘선판사가 조그만 실수를 저질렀지만, 이 정도는 봐줄 수 있는 것이 아니냐. 호남 인물을 키워야 하는데 괜히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광주 지역 시민단체와 정당 중 선판사 무죄 판결 후 공식 논평을 발표한 곳은 민노당 광주시당이 유일하다. 지역 사회에 그물망처럼 얽혀 있는 인맥이 편협한 지역 발전론과 온정주의로 변모된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비판했다.

‘향판’ 제도의 부작용 제기되기도

▲ 선재성 전 판사에 대한 항소심이 열릴 예정이었던 광주고등법원. ⓒ연합뉴스
선판사와 관련한 카르텔에는 지역 언론도 동참했다. 윤위원장은 “광주 지역 언론은 선판사 사건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 관계도 보도하지 않았다. 광주 지역 신문의 경우 모기업이 건설회사인 경우가 많은데, 건설회사는 지역 경기가 안 좋다 보니 법정 관리를 신청하는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기업 회생을 담당하는 광주지법 파산부의 재판장이 선판사였다. 지역 언론으로서는 당연히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중앙 언론이 선판사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자 지역 사회에서는 ‘보수 언론이 이용훈 전 대법원장의 광주일고-서울대 직계 후배인 선판사에 대해 계획적으로 ‘죽이기’에 나섰다’는 음모론까지 제기되었다”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선판사 사건은 영화 <도가니>의 실제 사건이 일어난 광주에서 발생했다. 이 때문에 ‘호남 향판’에 대한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익명을 요구한 광주 지역의 한 변호사는 “호남에서 지역 텃세가 심한 것은 사실이다. 사건을 수임하는 데 호남 출신이라는 배경이 한몫한다. 그러나 이런 일이 호남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향판 제도 자체를 개선해야지 호남만을 문제 삼을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지역 법관은 지난 3월 기준 3백33명으로 전체 법관의 13%에 이른다. 지역 법관(향판) 제도는 법관들이 수도권 근무를 선호하면서 지방 재판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2004년 도입되었다. 이 제도에 따라 법관이 연고지 근무를 원할 경우 한 지역에서 최소 10년 이상 머무를 수 있다. 

지역 법관 제도는 현지 사정을 잘 아는 법관이 판결을 한다는 측면에서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선판사의 경우처럼 토착 세력과의 유착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양승태 대법원장은 지난 9월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향판 제도의 폐단이나 부작용을 세심하게 연구하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면서 지역 법관 제도를 개선할 뜻을 내비친 바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