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석등’ 불 밝힌 대한제국 상징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1.10.1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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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구단, 일제의 훼손에 이어 광복 후에는 철거 수모까지…주변 호텔에 포위되고 ‘조선호텔 정원’ 전락

▲ 서울 종로구 소공동에 있는 환구단. 앞에 보이는 건물은 웨스틴 조선호텔이다. ⓒ시사저널 이종현

서울시 중구 소공동에 있는 민족의 성지 ‘환구단’이 신음하고 있다. 이곳은 지난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의 자주 독립을 알리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황궁(현재의 덕수궁)과 마주보는 자리에 설치했다. 고종의 황제 즉위식도 이곳에서 열렸다.

그런데 1백14년이 지난 지금 환구단의 모습은 비참하다. 환구단은 인근의 웨스틴 조선호텔, 프레지던트호텔, 롯데호텔에 포위되어 있는 형국이다. 서울시민들도 이곳이 어떤 곳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대부분 조선호텔의 정원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기자가 행인 세 명에게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아느냐”라고 묻자 두 명은 “조선호텔 정원 같다”라고 했으며, 한 명은 “문화재인 것 같은데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했다. 더욱이 환구단은 ‘전통 양식’은 사라지고 ‘일본식’으로 꾸며져 있다. 고종이 지하에서 알면 통곡할 일이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복원 노력 해왔지만 원형 찾기 힘들어

환구단은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면서 철저하게 말살되었다. 일제는 1913년에 환구단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철도호텔을 세웠다. 우리 민족을 비하하고 조선의 맥을 누르려는 의도에서였다. 광복 후에도 환구단은 제 모습을 찾지 못했다. ‘보존’보다는 ‘철거’ 대상이었다. 1967년 철도호텔 자리에 ‘조선호텔’이 재건축되면서 위패를 봉안하던 8각 황궁우와 석고(돌북)단, 삼문 등을 제외한 다른 시설들은 모두 철거되었다.

환구단의 정문은 40년 동안 행방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2007년 8월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서 호텔 출입문으로 사용되던 것이 발견되었다. 서울시는 2009년 12월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지만 설립 당시의 위치와는 많이 어긋나 있다.

환구단은 현재 문화재 사적 157호로 지정되어 있지만 ‘현상 유지 수준’에서 관리되고 있다. 건립 당시의 위상이나 원래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국적 불명’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환구단의 상징은 중앙에 위치한 8각 모양의 황궁우이다. 그 안에는 제단과 위패가 있다. 황궁우를 가운데 두고 주변에는 삥 둘러 담장이 쳐져 있다. 원래는 사각형으로 쌓은 벽돌담 안에 원형 벽돌담을 둘러쳤다. 그 안에 다시 화강석으로 3단의 단을 올렸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지의 이치를 담장에 맞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각형과 원형 벽돌담의 흔적은 사라지고 화강석 3단의 담이 남아 있다. 지금의 담도 아무렇게나 임의로 변형시키다보니 원형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조선호텔 쪽은 삼문을 가운데 두고 일직선으로 바꾸었다. 그렇다 보니 담장 석축 등 석재가 남아서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환구단 담장 안쪽에 있는 해시계는 원래 삼문 밖에 있었다. 정확하게는 삼문과 조선호텔 중간에 있었으나 정원을 정비하면서 안쪽으로 옮겨놓았다.

환구단의 가장 큰 애물단지는 석등이다. 현재 환구단 안에는 석등 20여 개가 설치되어 있다. 원래 환구단에는 석등이 없었다. 고종이 환구단을 짓고 황제 즉위식을 했을 당시에도 석등이 설치되지 않았다. 이런 정황은 일제 강점기나 광복 이후에 남아 있는 사진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화재 보존 원칙과도 크게 어긋나는 것이다. 문제는 이곳에 설치된 석등이 우리의 전통 석등과는 차이가 있는 ‘일본식’ 석등이라는 것이다. 우리 전통 석등은 사찰 대웅전 앞이나 능묘에 하나만 설치할 뿐 여러 개를 동시에 설치한 경우는 없다. 환구단에 설치된 석등은 석등의 간주속(기둥)이나 하대석이 사라진 형태를 하고 있다. 근대 이후 일본의 정원 장식용으로 널리 보급된 일본식 석등과 유사하다. 실제로 간주석(기둥 부분) 밑부분이 생략된 형태의 석등은 일본 신사나 사찰 또는 식당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관리 부실…지반 침하로 균열 우려도

▲ 환구단은 1897년(고종 34)에 고종의 황제 즉위식을 치르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옛 남별궁 터에 조성한 단지이다. 맨 위 사진에 문제가 되고 있는 ‘일본식 석등’이 보인다. 지반 침하를 확인할 수 있는 기단(가운데)과 석고단(맨 아래).

그렇다면 누가, 언제, 왜 환구단에 일본식 석등을 설치한 것일까. 문화재청에 따르면 석등은 1998년에 설치되었다. 조선호텔에서 ‘환구단 주변 현상 변경 허가’를 받고 설치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환구단 석등의 용도에 대해서는 “관람객 등의 통행에 최소한의 도움을 주고자 설치되었다”라고 밝혔다. 그러니까 조선호텔이 야간 조명용으로 석등을 설치한 것이 된다.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 혜문 스님은 “고대 제천 행사의 전통을 계승하고, 근대화된 자주 독립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고종 황제의 꿈이 담긴 장소에 국적 불명의 석등을 세우고 일본 신사풍으로 배치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다. 석등의 설치는 ‘원형 복원과 유지’라는 문화재 보존의 대원칙과도 어긋난다. ‘환구단의 제자리 찾기’를 위해 즉각 철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2012년 국고 보조 사업으로 정비되도록 검토하겠다”라는 입장이다. 석등을 철거하기 위해서는 조선호텔과 협의를 해야 하는 문제도 남아 있다. 환구단의 정원도 일본식이다. 일제는 조선을 강점한 후 중앙에 있는 황궁우 주변에 나무를 심고 돌로 장식했다. 그나마 황궁우와 조선호텔 쪽은 잔디가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으나 뒤쪽에는 잡풀이 무성하고, 잔디가 죽어서 맨 바닥이 드러나는 등 관리가 전혀 안 되고 있다.

환구단의 지반 침하도 심각하다. 중앙에 있는 황궁우는 지반이 침하되면서 한쪽으로 기울고 있다. 일반인의 육안으로도 확연하게 보일 정도였다. 환구단의 지반 침하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지난 2007년 중구청의 ‘환구단 정비 기본 계획 보고서’에 따르면 ‘신세계 아케이드 지하 주차장’이 지반 침하의 원인으로 꼽혔다. 지하 주차장의 면적 가운데 일부가 황궁우 보호 구역과 지상·지하로 겹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구청 김욱진 문화재시설팀 팀장은 “2009년에 지반 침하 문제가 있어서 약 1년 동안 전문 업체를 동원해 정밀하게 관찰했다. 균열이 발생하고 있는지, 떨림이 있는지, 또 반동이 없는지도 살펴보았다. 결론은 안전에 아무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라고 말했다. 환구단을 복원해 민족 정기를 찾자는 주장에 대해 김팀장은 “일각에서는 환구단을 원형처럼 복원해야 한다고 하지만 현실성이 없다. 이럴 경우 조선호텔과 롯데백화점까지 매입해야 하는데, 매입 비용만 해도 엄청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중구청은 2008년도 숭례문 화재가 발생한 이후 환구단 내에 경비 초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8명이 4조 3교대로 24시간 감시하고 있다. 한 경비원은 “환구단 내에 있는 석등과 주변 가로등의 전기를 조선호텔에서 공급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전기를 공급하지 않을 경우 관리하는 데 애로 사항이 있다”라고 말했다.

환구단 정문은 재능교육 노조의 농성장으로 바뀐 지 오래다. 정문 바로 앞에는 노조원들이 취침용으로 스티로폴을 가져다 놓았다. 그 주변에는 시위 용품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어 또 다른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이상근 서울시 문화재찾기 시민위원회 위원은 “환구단은 원형 복원은 아니더라도 우리 민족 정기의 상징인 만큼 제대로 된 관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최대한 최초의 원형에 맞게 재정비하고 보존해야 한다. 지금처럼 호텔의 정원으로 두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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