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격변, 균열은 이미 시작됐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1.10.10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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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표·손학규 대표 측 모두 확 바뀐 선거 양상에 ‘곤혹’…‘무당파’가 기존 양당 구도 흔들어

▲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지난 9월23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를 하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와 야권 단일 후보인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맞붙고 있다. 그런데 혹시, 한나라당 내에서 나후보가 낙선하기를 바라는 세력이 있다면 믿겠는가? 마찬가지로, 민주당 내에서 박후보가 당선되지 않기를 바라는 세력이 있다면 선뜻 이해할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통하지 않을 듯한 이런 상황이 실제 지금의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다. ‘10·26 서울시장 보궐 선거’가 갖는 의미가 단순히 그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런 복잡한 계산법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 제1, 제2의 정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존립의 위기’에 놓여 있고, 두 정당의 유력 대권 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지금 머리를 싸맨 채 10·26 보선 이후 소용돌이칠 정국의 향방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내년 3월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이 올 것이고, 지금의 정당 정치가 혁명적으로 바뀌는 상황을 맞을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가 당선되면 민주당은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이다.” “‘혁신과 통합’은 이미 하나의 정파 세력이다. 박원순 후보가 당선되면 그들은 그 여세를 몰아 민주당에 ‘50’의 지분을 요구하며 밀고 들어올 것이 뻔하다. 자칫 무력화된 민주당에게 무장 해제를 요구할 수도 있다.”

앞의 말은 보수 진영의 전략가로 통하는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이 10월6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다. 뒤의 말은 민주당 내에서 전략통으로 통하는 손학규 대표의 한 핵심 측근 인사가 10월6일 기자와 전화 통화를 통해 나눈 대화 내용이다. 두 전략가의 시선은 한곳으로 모아진다. 서울시장 보선에서 만약 박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민주당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고, 그 여파는 한나라당에까지 미쳐 정치권 전체에 대지각 변동이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손학규 대표가 지난 10월3일 대표직 사퇴 카드를 꺼내든 것은 준비된 수순이었다. 손대표는 이미 경선 이전부터 박영선 민주당 후보가 패할 경우 사퇴 카드로 위기 정국을 돌파해나간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손대표의 측근 인사는 “변명의 여지가 없이 민주당은 완패했다. ‘반MB’ 정서가 확산된 지금 제1 야당이 서울시장 후보조차 못내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지금의 민주당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 자명해졌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철저히 바뀌어야 한다. 개혁을 해야 한다. 새롭게 전당대회를 해서 새로운 인물들에게 당의 미래를 맡기는 대전환이 필요했다. 그래서 손대표가 그 길을 연 것이다. 그런데 당장 내년 4월 총선이 더 급한 기성 정치인들은 그런 급격한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손대표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는 것이 자신들이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기어이 손대표를 다시 주저앉혔다. 이런 상태라면 민주당의 미래는 없다”라고 단언했다.

이 인사는 향후 야권 통합 논의에서 헤게모니를 ‘혁신과 통합’ 등 외부 세력에서 쥐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금 ‘혁신과 통합’은 이해찬 전 총리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주도하고 있고, 박후보 캠프에도 대거 참여하고 있다. 이 인사는 “솔직히 저들(혁신과 통합)에게 지금 우리(민주당)가 조롱당하는 느낌이다”라고 울분을 표했다.

그는 “저들 눈에는 민주당도 한나라당과 똑같이 ‘구악’으로 보일 뿐이다. 개혁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민주당을 부정하고 뛰쳐나갔던 인사들이 밖에서 마치 혁명군처럼 당을 무장 해제시키겠다는 기세로 밀고 들어올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민주당은 변화는커녕, 과거 ‘양김 시대’에 득세했던 정치인들이 다시 하겠다고 나서는 판이다. 한나라당도 중진 공천 불가론이니 40대 기수론이니 해서 변화에 목을 매는데, 민주당은 거꾸로 가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민주당의 또 다른 인사는 “10월3일 경선 현장에서 충격을 받았다. 오전에 장·노년층이 몰려들 때 안도했다가, 오후에 20~30대 젊은 층이 몰려오자 불안해하는 내 모습을 보고 ‘우리나 한나라당이나 다를 것이 없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서울시장 선거 결과 따라 전략 변화 불가피

손대표의 고민도 여기서 기인한다. 자칫하면 ‘도로 민주당’, 즉 ‘호남당’으로 다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다. 그런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는, 나서봐야 백전백패라는 것이다. 손대표의 대권 플랜은 어떻게 보면 단순 명료하다. 야권의 모든 세력이 ‘반한나라당’ 기치 아래 모여들어야 하고, 그 중심은 민주당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철수이든 문재인이든 장외에서 누가 나서더라도 조직과 검증 면에서 손대표 자신이 비교 우위에 설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안풍(안철수 바람)’과 ‘문풍(문재인 바람)’이 오히려 자신의 대권 가도에 더 큰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는 전략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민주당이 굳건할 때만이 가능하다.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의 지지율이 ‘혁신과 통합’ 등 무당파에 밀리면 이런 전략은 물거품이 된다.

박근혜 전 대표도 서울시장 선거를 바라보는 시선이 매우 복잡하고 고민스러워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친박계의 한 핵심 인사는 10월5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매우 조심스럽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 개인 심정으로는 나경원 후보가 ‘석패’했으면 좋겠다. 아주 간발의 차면 제일 좋다. 아마 (친박계에서)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박 전 대표가 나후보의 선거를 돕겠다고 선뜻 나서지 않는 것은 다른 이런저런 정치적 고려를 해서가 아니다. 그분은 그런 스타일도 아니다. 단지 나후보가 서울시장감으로 썩 마땅치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리더십도 불안하다. 만약 나후보가 서울시장이 되어서 행여나 시정이 혼란에 빠지면 ‘그것 봐라. 아직 여자는 안 돼’라는 소리가 나올 것이 뻔하다. 이는 박 전 대표에게도 악재이다. 반대로 박후보가 당선되어서 좌파 시민단체들과 밀착되면 ‘제2의 노무현’ 얘기가 나올 것이고, 그러면 (대선을 앞둔) 우리에게 오히려 호재가 될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박후보가 당선되면 민주당뿐만 아니라 한나라당까지 기성 정치권이 무너질 수도 있다’라는 전망에 대해, 이 인사는 “한나라당도 영향을 일정 부분 받겠지만, 민주당과는 강도가 확실히 다를 것이다. 우리로서는 가장 우려스러운 것이 ‘새로운 정치가 시대적 요구’라는 명분하에 당내 친이계 일부 세력들이 이탈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당의 존립 자체를 흔들 만큼 대규모는 아닐 것으로 본다. 일정 부분 이탈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고,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경향신문이 지난 9월3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지 정당이 없다’라는 응답이 무려 73.6%에 달했다. 그 이유에 대해  ‘정당 간 차이가 없어서’(41.8%)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박원순 후보는 민주당의 도움은 간절히 원하면서도 민주당 입당은 끝내 거부했다. ‘무당파’ 세력이 점점 정치권의 이너서클로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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