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단만 낳는 전관예우는 사라져야 할 관행이다”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1.10.25 02: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9월 퇴임한 김규헌 전 서울고검 검사

ⓒ시사저널 전영기

전관예우(前官禮遇). 브리태니커 사전에 따르면, 판사나 검사로 재직했던 사람이 변호사로 개업하면서 맡은 사건에 대해서 법원과 검찰에서 유리하게 판결하는 법조계의 관행적 특혜를 말한다. 

지난 9월1일 검찰에 몸담은 지 30년 만에 검찰청사를 떠난 김규헌 전 서울고검 검사는 전관예우를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전관예우는 사라져야 할 관행이다. 검찰에서 퇴임하기 몇 달 전부터 일은 하지 않고 변호사 사무실이나 물색하고 다녔던 검사가 있었다. 심지어 퇴직하기도 전에 사건을 수임받는 경우도 있었다”라며 씁쓸해했다.

퇴임한 지 두 달이 지난 그는 10월 현재까지 변호사 개업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머지않아 변호사의 길로 들어서겠지만 “나는 전관예우를 받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라고 강조했다. 검사 출신으로 하기 힘든 ‘공언’임에도 그는 거침없이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강력 수사통’이었던 그는 1980년대 지방의 최대 조폭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다. 그가 수십 명의 조폭을 검거하는 현장에서 지휘한 일화는 이후 강우석 감독의 영화 <공공의 적 2> 도입부에 각색되어 소개되기도 했다. 

그동안 그의 손을 거쳐간 대형 사건이 적지 않다. 1984년 딸이 친아버지를 도끼로 살해해 당시 세상에 큰 충격을 던졌던 사건부터 1994년 돈 때문에 부모를 살해하고 앞마당에 유기했던 ‘박한상 사건’, 대형 교회 담임목사와 연루된 의혹이 불거졌던 ‘종교연구가 탁명환 살해 사건’ 등이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탁명환 살해 사건 수사 당시에는 “당신 자식들이 아직 어리던데 걱정되지 않느냐”라는 회유와 압력이 직·간접적으로 들어왔고, 교통사고를 위장한 ‘테러’를 당해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진 적도 있었다. 2001년 서울지검 강력부장으로 있을 때는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예계 비리 사건’ 등의 수사를 지휘했다. 당시 언론은 그를 ‘언터쳐블(Untouchable)’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연예계 비리 사건’과 관련해서 김 전 검사는 “수사 당시 여권의 최고 실세와 유명 여배우의 스캔들 첩보가 입수되었는데, 그 여권 최고 실세의 측근들로부터 ‘적당히 수사하라’라는 협박성 전화를 받기도 했다”라고 털어놓았다. “당시 여권의 최고 실세는 지금도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인물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그 사건을 수사하던 중 갑자기 충주지청장으로 발령받았다. 연예계 비리 사건 수사도 자연스럽게 덮어졌다. 당시 그에 대한 인사를 놓고 검찰 안팎에서는 “좌천성 인사이다”라는 말이 나돌았다. 충주지청장 시절에는 ‘음성 꽃동네 오웅진 신부 사건’을 수사해 또 한 차례 파문을 일으켰다. ‘구권 화폐 사기 사건’도 그의 작품이다. 김 전 검사는 “구권 화폐로 아직도 가끔씩 사기 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단언컨대 구권 화폐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잘라 말했다. 한 편의 소설과도 같은 그의 파란만장했던 검사 일대기를 소재로 한 영화를 제작하자는 제의도 들어왔다고 한다. 재즈와 발레 등 예술 분야에도 조예가 깊은 김 전 검사는 지금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