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 과학의 빗장 풀기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1.10.25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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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보다 빠른 물질 존재 증명되면 시공간 개념 달라져

ⓒ일러스트 김일영
얼마 전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를 찾았다’는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실험 결과가 발표되면서 세계 물리학계가 떠들썩하다. 그런데 일반인들의 궁금증은, 만일 이 물질이 입증된다면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기술적인 문제는 어찌 되었든 이론적으로는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어떻게 가능할까.

시간은 무엇이고 공간은 또 무엇일까? 먼 옛날부터 많은 사람을 괴롭혀온 문제이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파악하기 위해 1초와 1m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뉴턴은 ‘시간은 언제 어디서나 일정한 속도로 똑같이 흐른다’는 ‘절대 시간’과 ‘공간은 어느 방향으로도 똑같이 퍼져 있다’는 ‘절대 공간’이라는 개념을 가졌다.

이런 사고방식을 뒤엎은 것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다. 상대성 이론에서는 여태까지 절대적으로 달랐던 시간과 공간을 따로 두지 않고 하나로 묶은 4차원의 ‘시공간’이라는 개념을 등장시켰다. 이것은 시간과 공간은 독립된 것이 아니라 시간의 성질이 공간과 별다를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시간을 논의할 때는 어떻게든 공간의 논의로 연결된다.

또 아인슈타인이 말한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의 시공간은 더욱 이상한 존재로 우리 앞에 다가선다. 운동하는 물체에서는 시간이 느려지고 중력이 강한 곳 주위에서는 공간이 뒤틀리고 휘어진다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일이 일어난다. 마치 시공간이 무대가 아니라 배우처럼 역동적인 존재인 것이다. 이는 공상과학(SF) 소설처럼 느껴지지만 현실 세계에서도 확인된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에는 크게 다른 점이 있다. 공간에서는 앞뒤·상하·좌우 3방향 어디로나 갈 수 있지만,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이동한다. 예를 들어보자. 뜨거운 물과 찬물을 섞으면 열은 뜨거운 쪽에서 차가운 쪽으로 흘러서 마지막에는 물 전체가 같은 온도가 된다. 이 현상을 비디오로 찍어 거꾸로 돌리면 누가 보아도 곧 그 영상이 거꾸로 돌리는 것임을 알게 된다. 똑같은 온도의 물이 뜨거운 물과 찬물로 저절로 나누어지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또 도자기를 땅바닥에 떨어뜨려 깨진 경우는 되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도자기는 질서 잡힌 구조이고, 깨진 파편은 무질서한 구조이다. 질서 잡힌 구조가 시간의 경과와 함께 무질서한 구조로 향하는 것을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말한다. 이 과정은 절대 거꾸로 되돌릴 수 없다. 따라서 시간의 방향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고, 그래서 일단은 시공간에서 거꾸로 갈 수 없다고 정의한다.

그런데 <백 투 더 퓨처>나 <터미네이터> 등의 공상과학 영화에서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하고, <스타트랙>에서는 우주함선이 빛보다 빠른 속도로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야말로 ‘초(超)광속 여행’이다.

과거로 되돌아가거나 미래로 가는 시간 여행만큼 많은 사람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없다. 미래로 가서 현재로 되돌아오지 못해도 좋다면, 언젠가는 시간 여행이 실현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재미가 없다. 미래로 가서 그 정보를 가지고 현재로 되돌아온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시간 여행이 우리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이다.

상대성 이론, ‘빛보다 빨리 움직이면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설명

▲ 영화
그렇다면 실험의 정확성을 떠나 CERN이 발표한 빛보다 빠른 물질을 이용하면 어떻게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일단 빛보다 빨리 달리면 과거로도 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상대성 이론에서는 빛의 속도로 움직일 경우 시간은 흐르지 않고, 이보다 빠르게 움직이면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고 설명하고 있다.

빛보다 빠른 가상의 입자를 ‘타키온(tachyon)’이라 한다. 빛의 속도보다 빠른 입자가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 그 입자에 대해 정해놓은 이름이다. 그 후보 가운데 하나가 우주를 이루는 기본 입자인 중성미자이다. 어쩌면 이번 발견으로 중성미자가 진짜 타키온이 될지도 모른다.

만일 타키온이 존재한다면 미래는 물론 과거로도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달리는 사람이 자신의 시간을 1초만큼 연장시키려면 초당 40만km 속도로 달리면 된다. 빛의 속도(초당 약 30만km)보다 빠를수록 시간은 더 더디게 간다. 따라서 빛보다 훨씬 빠르다면 이론적으로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상황까지 가능해진다.

그런데 그 방법은 일반적인 시공간이 아니라 시공간을 구부려야 가능하다. 이는 중력이 시공간을 휘게 할 수 있다는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에 의해서 가능하다. 굽은 시공간으로는 웜홀(worm hole)이나 우주끈을 들 수 있다.

웜홀은 시공간이 떨어져 있는 두 지점을 연결하는 일종의 ‘지름길’이다. 간단하게 사과 위를 기어가고 있는 벌레에 비유된다. 사과 표면에서만 움직일 수 있는 2차원 공간의 벌레는 표면의 두 점 사이를 표면을 따라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3차원이 허용된다면 두 점을 직선으로 잇는, 즉 사과 속으로 파 들어가는 벌레 구멍이라는 지름길이 생긴다.

모든 지름길이 그렇듯이 지름길이 갈라지는 곳에서는 길이 급하게 꺾어지는 법이다. 즉, 웜홀은 시공간이 급하게 구부러지는 곳에서 시작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별과 별 사이, 또는 우리 은하와 다른 은하 사이에도 이러한 지름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웜홀의 두 개의 출입구를 A와 B라고 하자. 출입구 A를 그대로 두고 출입구 B를 광속으로 가속해서 앞으로 보냈다가(웜홀 속의 C 지점) 바로 감속해 다시 원래의 위치로 되돌린다. 그렇게 하면 출입구 B의 시간은 출입구 A의 시간에 비해 느려진다. 웜홀 속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극단적으로 느려진다. 즉, A는 오후 10시라면 B는 오후 4시가 되는 식이다.

따라서 처음에 같은 시각을 가졌던 두 개의 출입구는 나중에는 다른 시각(B의 시각이 A의 시각보다 과거가 됨)을 가지게 된다. 여기에서 A에 있던 사람이 B로 들어가면, 오후 10시의 세계에 있던 사람이 오후 4시의 세계로 시간 여행을 하는 셈이 된다. 출발한 시각보다 과거가 되는 것이다. 결국 웜홀의 입구와 출구가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 서로 다르다면 그 사이에 시간 터널이 연결되어 있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또는 미래로 갈 수 있다는 얘기이다.

공간을 굽힐 수 있다면 실제 거리가 얼마이든 웜홀의 길이는 일정하게 조절할 수 있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는 38만4천㎞인데, 1m의 웜홀이 생기면 한 발짝만 옮겨도 달에 갈 수 있다. 순간적이기는 하지만 그 과정은 우주를 가로지르는 것이 될 수 있다. SF 영화들이 대부분 이 이론을 채택한다. 하지만 웜홀은 아직 발견된 적이 없다.

그런데 이 문제도 해결되어 천신만고 끝에 타임머신 제작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치자. 그래도 걸리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인과율’이다. 인과율이란 어떤 일이든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생긴다는 법칙이다. 이 불문율이 과거를 바꾸는 문제를 철저하게 막고 있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는 미래 지구를 구할 영웅을 없애기 위해 미래에서 터미네이터가 과거로 가서 어린 그를 죽이려고 하지만 결국 죽이지 못한다. 과거로 가서 어린 그를 죽이게 된다면 미래의 일 자체가 모두 헝클어지기 때문에 그러한 일이 발생할 수가 없을 것이다.

시간 여행으로 과거의 역사를 바꿀 수 없다는 모순은 왜?

마찬가지다. 만약 시간 여행에서 내가 과거로 되돌아가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게 한다면 현재의 나는 태어날 수 없게 되는 역설이 발생하게 된다. 또 만약 과거로 돌아가 할머니를 살해한다면 나에게 어떤 일이 생길까. 어머니도 나도 존재할 수 없게 된다. 다소 유쾌하지 않은 가설이지만, ‘타임머신’이라는 아이디어가 세상에 발표되었을 때의 문제점을 이보다 정확하게 지적한 것은 없다. 그래서 설령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과거에 이미 이루어진 일을 변동시키려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할머니의 역설에 대해 물리학자들은 두 가지 답을 제시한다. 그중 하나는 ‘다세계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하나가 아니라 무한개이다. 따라서 무한개의 세계사가 존재한다. 만약 내가 과거로 되돌아가 역사를 바꿀 경우에 그 시점에서 자신이 온 미래와는 다른 세계, 다른 역사가 시작된다.

즉, 내가 과거로 돌아가서 할머니를 살해하더라도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가 살아서 어머니를 낳고 어머니가 다시 나를 낳는 우주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얘기이다. 다시 말해 과거와 미래를 전체 역사로 보았을 때 이들의 만남이 없던 것처럼 된다. 따라서 이들의 만남으로 생기는 상호 인과 관계의 모순이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다만 다른 우주로 이동해 달라진 역사에 참여했을 뿐, 자신이 온 미래는 어딘가에 다른 평행 세계로 남아 있으므로 모순은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생각은, 역사는 확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더라도 어떤 방해를 해서 역사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론적으로 말해 빛보다 빠른 타임머신을 만들어 떠나는 시간 여행은 곧 한계에 부닥치게 된다. 상대성 이론 자체가 광속을 뛰어넘는 물질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앞뒤가 맞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빛보다 빠른 물질이 있다고 정확히 증명되면 시공간 개념은 크게 바뀔 것이다. 아직까지 이론상으로는 시간 여행이 문제가 없다고 하니 계속 지켜봐야 할 흥미로운 과제이다. 우리에게 과학은 늘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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