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춰서 높이는 ‘안전 운행’ 리더십
  • 도쿄·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1.10.25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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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 신임 일본 총리, 취임 후 방한해 조용한 실용 외교 펼쳐

한·일 양국 간 통화 스와프 규모가 현재의 1백30억 달러에서 7백억 달러로 확대되었다. 지난 10월19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취임 이래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통 큰 결정을 했다. 반환하기로 약속한 조선 왕조 도서 다섯 권을 직접 가지고 왔다. 지난 6월10일 발효된 한·일 도서협정에 따라 올 12월10일까지 반환하기로 한 전체 1천2백5책 중 일부이다. 나머지도 적절한 시기에 인도하겠다고 약속했다.

노다 총리는 방한에 앞서 지난 10월17일 일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과 일본은 아주 중요한 인접 국가이며,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의 기본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이다. 때때로 어려운 문제가 일어나지만 대국적 견지에 서서 미래 지향적으로 논의하고 신뢰감과 우호 관계를 돈독히 하고자 한다”라며 한·일 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8월 말 취임 이래 산적한 일본 국내 문제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첫 외국 방문이어서 관심이 높다.

일본 국민, 조용히 일 처리하는 총리 원해

하토야마 유기오·간 나오토 전 총리가 외교 분야에서 이상론과 다소 무관심에 가까웠다면, 노다 총리의 외교 무대 첫 데뷔는 조용한 실용 외교였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취임하자마자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거대한 담론으로 미국과 균열을 보이다가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로 갈등이 고조되었다. 이 문제는 그로 하여금 결국 총리직을 중도 하차하게 만든 이유가 되기도 했다. 한편 국내 문제에 함몰되어 명확한 외교 노선을 보여주지 못한 간 나오토 전 총리의 경우 ‘임기 내 외교 실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외교 문제에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다. 외교적 경험이 일천한 노다 총리 또한 미·일 관계 및 대외 관계에 대해 아직은 뚜렷한 내용이 보이지 않으나 큰 틀은 보인다. 전임 두 총리와는 다르게 조용하게 풀어가겠다는 것이다. 거대한 담론도 아니고 외교를 등한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 대야 관계를 제대로 풀지 못해 사사건건 발목이 잡혀 외교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던 전임 정권을 반면교사로 삼아 야당과의 관계를 대화와 타협으로 이끌고 낮은 자세로 임하며 정국을 풀어가고 있다. 취임 일성으로 ‘미꾸라지 총리’를 언급하며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고 야당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는 약속을 지켜가고 있다. 취임 초기 일부 각료들의 여과되지 않은 발언으로 역시 아마추어 정권이구나 하는 인상을 주었으나 내부 단속을 하면서 지지를 회복해가고 있다. 또 자민당의 집요한 비난에도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대화로 풀어가고 있다. 전임 정부와 다르게 소통을 중시하고,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당내 및 대야 관계를 원만하게 이끌어가고 있다.

하토야마 전 총리의 경우 정권 교체에 지나치게 의미를 두어 완급 조절에 크게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다소 이상주의적인 측면이 강해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간 나오토 전 총리는 관료들과 지나치게 대립각을 세워 관료들의 의견을 경원시한 점이 정권이 실패한 원인이었다. 또 두 사람 다 당내 최대 지분을 가지고 있는 오자와 전 간사장에 대한 차별화를 시도하다 갈등만 키워 임기 내내 집안싸움으로 세월을 보냈다. 민주당의 많은 의원이 간 전 총리 이후 유력한 총리 후보였던 마에하라를 제치고 노다를 총리로 뽑은 것은 더 이상의 분란을 없애고 원만하게 이끌고 갈 수 있는 인물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다 총리는 하나에서 열까지 소리 나지 않게 정국을 운영해나가고 있다. 또, 일본인들이 선호하는 ‘화(和)’ 정신에 충실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은 소신껏 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지지율도 계속 유지해가고 있다. 그만큼 국민들이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정책보다는 현재 산적해 있는 문제에 집중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반증이다.

노다 총리는 최근의 총리 중에 가장 높은 인기를 구가했던 고이즈미 준 이치로 전 총리와 비교된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경우 우정성 개혁이라는 주제에 정권의 사활을 걸었다. 야권뿐만 아니라 당내의 반발로 급기야 국회를 해산하고 선거를 치르는 극한 상황까지 갔지만 선거에 대승해 임기 내내 40%가 넘는 인기를 유지했다. 노다 총리는 아마도 정반대의 길에서 해답을 찾고 있는 듯하다. 화합과 대화 그리고 낮은 자세라는 삼각 축의 안전 운행으로 국민적 신의와 지지를 얻고자 하는 전략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 이후 자민당의 아베, 아소 전 총리 그리고 민주당의 하토야마·간 전 총리 등은 정국 운영 전략에 고이즈미 전 총리와 노다 총리와 같은 명확한 정국 운영 전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 만큼 튀는 것으로 인기를 유지했던 고이즈미 전 총리에 비해 튀지 않으면서 인기와 신의를 얻고자 하는 노다 총리의 길이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 지난 10월19일 방한 중인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 일행이 서울 동작동 현충원을 방문해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당을 어떻게 끌어안을지가 문제

문제는 산적한 현안들을 야당과 더불어 어떻게 풀어가느냐 하는 데 있다. 자민당은 원전 복구 관련 예산에 대해서는 협조하고 있지만 여타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 민주당과 자민당 일부에서 추진했던 연립 정권 구상도 현 시점에서는 쉽지 않다. 자민당은 국회를 해산시키고 정권을 다시 찾아오는 것이 목적이다. 노다 총리의 임기 말인 내년 가을까지는 너무 멀다는 것이다.

향후 정국은 현안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특히 3월11일 발생했던 동일본 대지진 및 원전 피해 복구 문제가 중요하다. 재정 건전화를 주장했던 입장에서 증세는 불가피한데 증세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면 국민들과 야당으로부터 적지 않은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소비세 인상을 주장하다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한 간 나오토 정권의 교훈 때문에 강행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증세안을 본격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하면 야당인 자민당이 이를 호기로 삼아 정권 타도, 국회 해산, 선거 실시로 이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이 문제는 쉽게 언급할 수 없는 지경이다. 오키나와 미군 후톈마 기지 이전 문제도 뜨거운 감자이기는 하지만, 미·일 양국이 시간을 두고 풀어가야 한다는 데 생각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노다 총리는 원전 피해 복구 문제와 더불어 TPP(환태평양 파트너십 협정) 교섭과 같은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방한 목적도 한·일 간의 통화 스와프, FTA(자유무역협정)와 같은 경제 및 통상 문제가 주된 것이었다.

시종일관 안전 운전을 하고 있는 노다 정권에 대해 일부에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없는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이 집권한 이래 당내 싸움과 야당과의 대립·갈등에 지친 많은 국민은 정국을 조용하게 운영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동안 자민당과 민주당 출신 총리들은 가벼움, 무능, 이상론, 극단적 대립 등 이런저런 이유로 국민들의 불신을 샀다. 이 때문에 안정적인 정권, 어떤 의미에서는 모나지 않는 정권이기를 바라는 바람이 강해 노다 정권의 집권 초기는 비교적 순탄하게 가고 있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다 총리가 엔고(高) 문제와 경기 침체, 후쿠시마 원전 대책, 후톈마 기지 문제, TPP 문제, 외교 문제 등을 원만하게 처리해가야 한다. 하지만 당내에서 아직 일치된 의견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유는 민주당 내 파벌들의 자기 집단적 체질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다 총리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새로운 정책을 시도하는 것보다 원전 대책을 비롯해 전임 정권들이 남겨놓은 과제들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노다 정권은 임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노다 정권이 철저히 안전 운행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측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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