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황무지를 황금빛 들로 일구다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1.10.25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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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에서 ‘기회의 땅’ 개척하는 한국인 안수익 씨티알인터내셔널 대표

ⓒ시사저널 윤성호

1백60만원. 안수익 씨티알인터내셔널 대표가 지난 2003년 박사 과정을 마치고 현대차 연구소에 입사할 때의 통장 잔고이다. 시간강사 일을 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던 때였다. 그로부터 8년이 흘렀다. 그는 현재 캄보디아의 톤레삽 호수 주변에 2만5천ha(약 7천5백만평) 규모의 쌀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의 절반 정도 크기이다. 국내의 한 대기업도 이 농장의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안수익 대표는 베트남에서 유일하게 공중파 홈쇼핑 채널도 보유하고 있다. 이들 사업체에서 나오는 매출이 연 1천억원대에 달한다. 지난 10월12일 베트남에서 막 귀국한 안대표를 만났다.

그가 자동차 연구원에서 동남아 지역을 아우르는 사업가로 변신한 비결은 간단했다. 돈이 될 만한 사업을 정확히 읽는 눈과 과감한 투자였다. 그는 “한국 사람들의 사업 마인드는 너무 경직되어 있다. 자금이 부족한 사람은 식당부터 차린다. 돈이 있는 사람도 동남아에 넘어오면 부동산을 매입해 건물을 올릴 생각만 한다. 사업 기회가 널려 있음에도 귀를 열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의 절반 크기 쌀 농장 세워 주목

안대표 역시 그동안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는 지난 2003년 2월 인하대 박사 과정을 마치고 뒤늦게 현대차 연구소에 입사했다.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단기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하던 일을 접어야 했기 때문에 아쉬움이 컸다. 머리도 식힐 겸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는 지인을 찾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동남아 지역의 가능성을 보았다. 지난 2006년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현대차 연구소를 나온 이유이다. 그동안 모은 돈과 지인에게 빌린 4억원을 들고 무작정 베트남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동안 사기당할 위기를 여러 차례 넘겼다고 한다. 캄보디아에서 쌀 농장을 개발할 때는 ‘사기꾼’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08년 캄보디아 톤레삽 호수 주변의 농지 2만5천ha(약 7천5백만평)를 매입했다. 이곳은 원래 유네스코가 지정한 보호 구역에 속해 있어 개발 자체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캄보디아 정부가 보호 구역을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이 땅이 매물로 나왔다. 소식을 접한 안대표는 발 빠르게 땅을 매입했다.

투자자를 모으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수익성이 있기 때문에 기업들도 앞다투어 투자를 약속했다. 이런 와중에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졌다. 투자를 약속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그를 외면했다. 서울시 면적의 절반 정도 크기를 쌀 농장으로 개발하려던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어렵게 투자자를 데리고 현장에 갔다. “저 물 아래에 노다지가 있다”라고 말했다가 ‘사기꾼’ 소리만 들어야 했다. 안대표는 소액 투자를 통해 농지 개발을 조금씩 늘려갔다. 사람들의 손때를 전혀 타지 않은 만큼 토지는 비옥했다. 건기 때인 12월에 씨를 뿌리면 3개월 만에 수확이 가능했다. 수익성이 입증되자 다시 투자 문의가 들어왔다. 국내의 한 종합상사도 안대표의 쌀 농장에 30% 지분을 투자했다. 이 회사는 현재 캄보디아에서 수확한 쌀을 전세계에 수출하는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올해 매출만 7백50억원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이 쌀 수입을 시작해 향후 국제 쌀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사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 선글라스를 끼고 수건을 머리에 두른 안수익 대표가 캄보디아에서 운영하는 쌀 농장을 현지 관계자들과 둘러보고 있다.

안대표는 현재 국내의 또 다른 종합상사와 인근 부지를 추가 개발하는 데에 나서고 있다. 이미 부지 매입은 끝난 상태이다. 예정대로 농지 개발이 마무리되면 서울시 면적만큼의 쌀 농장이 완성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올해 쌀 생산량이 4백20만t이다. 이 가운데 5%인 20만t을 현지에서 생산하고 있다. 아직 개발하지 못한 농지까지 합하면 연간 40만t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대기업과 함께 조만간 도정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된 벼를 직접 도정할 경우 값을 세 배 이상 높게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안대표는 캄보디아의 쌀 농장이 정상 궤도에 접어들자 베트남으로 넘어갔다. 그런 와중에 눈에 들어온 것이 홈쇼핑 시장이었다. “베트남의 경우 방송 산업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다. 국영 방송인 VTC는 오는 2015년까지 전국 주요 도시에 디지털 방송을 서비스할 계획이다. 2020년까지 전국으로 확대하게 된다. 방통위로부터 채널 1번에서 18번까지 라이선스를 받은 상태였다. 한 개의 채널을 제외한 나머지는 이미 서비스가 진행되고 있다. 12번 홈쇼핑 채널이 유일하게 비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VTC와 20년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

베트남 공중파 홈쇼핑 채널도 따내 ‘방송 중’

베트남 전역에 방송되는 공중파 홈쇼핑 채널을 손에 넣은 것이다. 이 또한 시장 상황을 면밀하게 관찰하면서 틈새시장을 공략한 결과였다. 이 채널은 현재 시청 가구만 5백만명에 달한다. 최근 현지 정부로부터 종합편성 방송까지 허가를 받은 상태이다. 현지에서 인기가 높은 한국 드라마를 가져다 방송할 예정이다. “국내 대기업인 CJ나 GS홈쇼핑이 현재 베트남에 진출해 있다. 하지만 이들의 경우 지역 케이블TV와의 계약을 통해 홈쇼핑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공중파는 우리가 유일한 만큼 매출 또한 급성장하고 있다.”

그도 처음에는 지역 SO에서 시간을 빌려 홈쇼핑 방송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업 자체가 불안했다.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하는 홈쇼핑은 정통부나 방통위의 인가를 받지 못했다. 안대표는 지역 케이블을 일찌감치 접고 공중파 쪽에 집중했다. 결과는 금방 나타났다. “한국에서는 베트남을 가난한 곳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공산 정권의 영향으로 이곳에서는 저축을 하지 않는다. 대신 금고에다 현금을 쌓아둔다. 겉으로 알려진 것보다 소비성이 좋다. 똑같은 제품을 한국보다 비싸게 책정해 판매하는 데도 꾸준히 팔린다.”

최근의 일이었다. 다이아몬드 코팅 프라이팬을 상품으로 내걸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한 달 분량의 물건이 이틀 만에 동났다. 하지만 새로 물건을 공수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이때부터 안대표는 사업 경험이 있는 대기업과의 제휴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개인이 거대 홈쇼핑을 이끌어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미 사업이 검증된 대기업과 제휴하기 위해 여러 곳과 접촉하고 있다.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시사저널>과의 인터뷰 말미에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최근 들어 동남아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이나 개인이 늘어나고 있는데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존의 사업 마인드를 깰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식당이나 부동산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 지역이나 시장의 특성에 맞게 사업을 준비해야 한다. 내가 인구 1천7백만명의 캄보디아에서 홈쇼핑을 시작했다면 망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땅값만 캄보디아의 다섯 배에 달하는 베트남에서 쌀 농장을 시작했다면 수익률이 많이 떨어질 수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 최근 국내 기업은 저렴한 인건비를 노리고 동남아로 생산 시설을 이전하고 있다. 하지만 동남아의 경우 인건비가 해마다 급상승하고 있다. 어느 순간이 되면 인건비 따먹기는 더 이상 메리트가 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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