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 배경으로 한 스릴러 애니메이션…피지배자의 욕망이 권력 움직이는 동력임을 역설
  • 황진미│영화평론가 ()
  • 승인 2011.10.31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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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리뷰 <돼지의 왕>

<돼지의 왕>은 굉장히 센 애니메이션이다. 시작부터 음울한 화면과 기괴한 음향으로 한 젊은이가 경제·정신적으로 파산했음을 알린다. 그는 누군가를 찾는다. 그 역시 일상이 몹시 망가져 있다. 두 명의 중학교 동창생은 15년 만에 만나, 학창 시절을 회상한다. 물론 아름다운 추억이 아니다. 폭력과 권력의 위계에 짓눌렸던 삶. 먹이 피라미드의 가장 밑바닥에 있었던 두 사람에게는 한 명의 친구가 있었다. ‘돼지의 왕’. 그는 굴종하는 피지배 계급의 삶을 ‘돼지’라고 불렀다.

주인이 던져주는 먹이를 먹고 살을 찌우지만, 그 살마저 자기 것이 아닌 주인의 것이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그저 살을 찌우는 데 열중하는 돼지. 죽어 고기가 되는 것만으로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돼지. 그는 주인처럼 강해지기 위해 ‘악(惡)’이라는 무기를 들고 싸우는 ‘돼지의 왕’이었다. 아니, 그를 ‘돼지의 왕’으로 믿은 것은 사실 그가 아니다. 그를 추종하는 친구, ‘나’였다.

<돼지의 왕>은 소설이나, 만화책, 웹툰, 혹은 연극으로 만들어졌어도 좋았음직한 플롯을 지닌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나 <사람의 아들> <이끼> 등이 연상되는 흡입력 강한 서사를 애니메이션으로 접하는 것이 다소 낯설 수 있다. 그러나 <바시르와 왈츠를>에서 보듯이 애니메이션의 세계가 그리 좁지 않다. <돼지의 왕>은 애니메이션 형식을 통해 인물의 몽환적 심리 상태를 자유자재로 드러낸다.

애니메이션이 기억과 환상을 가로지르는 주제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형식임을 알 수 있다. <돼지의 왕>은 단순히 학교 폭력을 고발하는 작품이 아니다. 학교라는 생태계에서 권력이 어떻게 작동되며, 이를 추인하는 동력이 바로 피지배자의 욕망임을 그린다. 이토록 무거운 주제를 섬세한 심리 묘사로 담아낸 것도 놀랍지만, 국내에서 아동물로만 인식되었던 애니메이션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에서도 무척 의미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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