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넓은 재량권부터 부여하라
  • 노성훈 / 경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
  • 승인 2011.10.31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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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 사용만으로 경찰 공권력 약화 막을 수 없어…물리력 사용 허용 범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인천 조폭 사건을 계기로 경찰의 공권력 약화를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지난 5월 관악경찰서 난우파출소에서 발생한 주취자 난동 사건으로 경찰의 공권력 문제가 도마에 오른 지 6개월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다. 사실 이번 사건의 경우 언론의 보도처럼 현장에 있던 경찰관들이 조폭들의 난투극을 정말로 수수방관했는지에 관해서는 아직까지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하지만 장례식장 난동 사건을 바라보는 대다수 국민의 머릿속에는 지난번 난우파출소 CCTV 촬영 장면 속의 무기력한 경찰관들 모습이 오버랩되었을 것이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조현오 경찰청장은 일선 경찰관들에게 적극적인 총기 사용을 지시하고, 더 나아가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해 공권력 행사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경찰의 공권력 실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취한 이들이 파출소에서 난동을 부리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멱살잡이를 하는 것처럼 비교적 경미한 사건에서부터 경찰관을 흉기로 위협하거나 심지어 경찰관의 귀를 물어뜯는 사건까지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 경찰은 정당한 공권력을 행사하는 데 이토록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일까. 치안 총수의 단호한 의지와 ‘전쟁 선포’가 이 어려움을 해쳐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실추된 신뢰 회복도 중요한 과제

경찰 공권력 약화의 첫 번째 원인은 현장 근무자에게 충분한 재량과 권한이 인정되지 않는 데 있다. 현행법상 경찰관은 정당한 법 집행에 저항하는 피의자를 제압하기 위해 경찰 물리력을 사용할 수 있다. 경찰관직무집행법에서 범인의 체포와 도주의 방지, 자기 또는 타인의 생명, 신체에 대한 방호, 공무 집행에 대한 항거의 억제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그 사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해 필요한 한도 내에서 무기 등 경찰 장비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현장 경찰관의 입장에서 보면 원칙은 원칙일 뿐이다. 경찰관이 상대하는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상당한 이유’ ‘합리적 판단’ 그리고 ‘필요한 한도’와 같은 추상적인 법적 요건을 충족했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경찰관이 무기를 사용하게 된 현장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 피의자의 저항은 어느 정도의 수준이었는지에 관한 법적 판단은 사건에 대한 현장 경찰관의 주관적인 인식보다는 법관의 사후적 인식에 의존해 결정된다.

경찰의 총기 사용 매뉴얼 또한 현장 경찰관의 판단을 존중하고 있지 않다. 규정에 의하면 실탄을 쏘기 전에 한 차례 빈 방아쇠를 당기고, 공포탄을 한 번 쏘도록 되어 있다. 신속한 대응을 요구하는 긴박한 상황에서는 현실감이 없는 규정이다.

경찰관의 합리적 판단과 재량을 인정하기보다는 관리와 통제 위주의 접근이라고 하겠다.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는 경찰관에게 총을 지급하는 것은 실제로 쏘라는 것이 아니라 범인에게 총을 던져서 맞혀 잡으라는 뜻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더욱이 경찰의 물리력 사용으로 인명 피해라도 발생하면 인권 침해와 공권력 남용을 비판하는 언론과 여론의 비난 속에서 해당 경찰관은 감찰 조사와 징계 처분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다수 경찰관은 총 한번 잘못 쏘고 경찰 인생을 마감하는 것보다는 가급적 소극적·수동적으로 대응하는 편이 낫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두 번째,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문제이다. 경찰의 공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며 국민이 인정하지 않는 공권력은 존재할 수 없다. 공권력의 객체인 국민이 인정해주지 않는데 경찰 단독으로 공권력의 주체임을 주장하는 것은 메아리 없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그런데 문제는 사법기관으로서 경찰이 마땅히 행사해야 할 공권력을 국민으로부터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데 있다.

과거 역사를 통해서 한국 경찰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광복 후 일제 경찰의 잔재를 청산하는 데 실패했으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집권 세력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 역할을 맡았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경찰은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이미지 개선만으로 경찰 공권력의 정당성이 자동으로 확보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경찰관은 ‘법적 권위의 옷’을 입은 자로서 경찰 공권력의 정당성은 오로지 법으로부터 비롯된다.

▲ 지난 1월12일 서울시 경찰청 본청에서 열린 전국 지휘관회의에서 조현오 경찰청장(맨 앞줄 왼쪽) 등 지휘부가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권을 적극 실현하는 기관으로 거듭나야

그런데 한국 경찰은 정통성이 결여된 정권으로부터 부여받은 과거의 권위와 결별하는 과정에서 법적 권위로의 이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경찰은 국민들로부터 경찰 공권력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일종의 ‘권위의 진공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또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전반적인 법 냉소주의와 더불어 한 번씩 불거져나오는 경찰 부패와 권력 남용의 문제는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경찰로 거듭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경찰의 공권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선 경찰관들에게 폭넓은 재량권을 부여해야 한다. 물리력 사용에 관해서도 현장을 담당한 경찰관의 주관적인 판단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둠 속에서 피의자가 호주머니에서 꺼내는 것이 총기인지 아니면 지갑인지에 대한 판단은 현장의 경찰관이 가장 정확하게 내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와 아울러 피의자의 저항 정도에 비례한 경찰 물리력 사용의 허용 범위를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정형화해 일선 경찰관들에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

피의자가 경찰관의 가슴을 밀치는 경우와 무기를 휘두르며 저항하는 경우 각각 경찰이 사용할 수 있는 물리력의 종류를 미리 규정해놓아 애매모호한 상황을 최소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을 지켰을 때 결과에 상관없이 해당 경찰관에게 어떠한 불이익도 발생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 경찰청장의 일회성 지시가 아니라 일선 경찰관의 재량권을 보장하는 원칙과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이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어야 비로소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공권력 행사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좀 더 중요한 점은 경찰 조직이 우선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고 사법기관으로서의 법적 권위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경찰 자체의 ‘합법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경찰의 법 집행이 법치주의 원칙하에 오로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국민 속에 형성되어야 한다.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갈 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는 사람을 통해 담당 경찰관에게 미리 연락을 하고 가야 안심이 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또한, 경찰의 ‘효과성’이 인정을 받아야 한다. 경찰은 기계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법 집행을 통해 궁극적으로 국민이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 없이 안전한 환경 속에서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발현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경찰은 단순히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극적 의미의 인권뿐만 아니라, 국민이 범죄자의 인권 침해 행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인권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기관이 되어야 할 것이다. 경찰이 범죄자에게 총을 겨눈다고 해서 공권력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수호하는 데 가해자와 피해자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경찰이 모든 국민의 인권을 수호하는 기관으로 거듭날 때 국민은 경찰을 신뢰하고 법적 권위를 인정할 것이다. 모든 형태의 공권력은 결국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경찰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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