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 문자에 꽂힌 호기심이 패가망신 몰고 왔다”
  • 정리·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1.10.31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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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도박으로 수천만 원 날린 30대 직장인 남성의 육성 고백 ‘나는 왜, 어떻게 도박에 빠져들었나’

ⓒ시사저널 윤성호

도박은 중병이다.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한다. 도박은 시대별로 새롭고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고 발전했다. 지금은 온라인 도박의 시대이다. 온라인 도박이 위험한 이유는 간단하다. 접근이 수월하기 때문에 그만큼 중독될 위험이 크다. <시사저널>은 34세의 직장인 남성 김 아무개씨를 만났다. 서울의 중산층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란 그는, 현재 아버지 일을 도우며 신용 회복 중에 있다. 도박으로 생긴 5천만원이 넘는 채무는 그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채무 중 50%는 삭감을 받았고, 나머지 3천만원 정도를 96개월 동안 분납해 갚아야 한다. 채무를 갚아나간 지는 이제 1년쯤 되었다. 기자에게 들려준 김씨의 체험담은 생생하면서도 절절했다. 김씨의 육성 고백을 가감 없이 싣는다.

나는  ‘도박’이라는 말보다  ‘겜블’이라는 용어를 쓴다. 나 스스로가  ‘도박을 했다’고 인정하기 싫은 마음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도박을 처음 접하게 된 때는 8년 전 미국에 어학연수를 갔을 때이다. 함께 연수를 받던 반 친구들과 누구나 한 번쯤 들른다는 라스베이거스로 향했다. 그곳에서 처음 칩을 만져보았고 카드 게임과 룰렛을 배웠다. 호텔과 카지노가 붙어 있어서 그냥 한번 둘러보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딜러들의 예쁜 외모와 화려한 분위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카드 테이블에 털썩 앉게 되었다.

속으로는  ‘딱 50달러만 가지고 놀자’라고 했다. 블랙잭 테이블에서 두 시간 정도 놀고 내가 가지고 나온 돈은 2백30달러였다. 친구들은 환호하며 “의외로 소질이 있다”라고 부추겼다. 나도  ‘욕심만 안 부리면 그렇게 잃을 것 같지 않다’라고 생각했다.

원래 어학연수를 마친 뒤 단과대학 과정에 들어가 학위를 따려고 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지켜지지 못했다. 연수를 마친 뒤 잠깐 즐기려고 간 라스베이거스에서 2천 달러 정도를 잃었다. 그것을 만회하려고 베팅액이 좀 더 높은 테이블에서 게임을 하다가 결국 단과대학 입학금을 거의 다 탕진해버렸다.

당장 한국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부모님께 둘러댈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한 달 뒤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부모님은 항상 나를 신뢰하신다. 학위를 따오지 못한 이유를 ‘여행 때문’이라고 둘러댔다.  “한국에서 쓸모없는 학위 하나 따오는 것보다는 미국 횡단이 나에게 더 의미 있을 것 같아서 한 달간 배낭여행을 했다”라고 거짓말을 했다. 부모님은 이번에도 너그럽게 이해해주셨다. “그럴 것이면 여행을 하겠다고 연락이라도 했어야 사고가 생겨도 걱정 안 할 것 아니냐”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가슴속이 아려왔다.

직장을 구했다. 나쁘지 않은 IT회사에 정규직으로 들어갔다. 직장 생활 중에도 더러 카드를 잡았다. 함께 치는 이들은 회사 동료들이었다. 동기 중 하나가 포커를 즐겼다. 나는 남들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다. 비록 라스베이거스에서 아픔을 맛보았지만 미국 본토에서 나름으로 카지노를 들락날락거렸던 경험자였다. 카드를 잡으면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미국 물 먹은’   고수여야 했다.

강원랜드에서 인터넷으로 방향 틀다

가끔은 동료들과 강원랜드로 향했다. 어떤 날은 100만원씩 따기도 했고 그만큼 잃기도 했다. 따면 따는 대로, 잃으면 잃는 대로 나는 대범하게 행동했다. 동료들은 나에게 “카드를 칠 줄 아는 사나이이다”라고 부추겼다. 대범한 척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돈을 따고 잃는 것에 조금씩 둔해지는 것 같았다. 한번은 2백만원을 잃었는데 ‘다음에 와서 만회하지 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원랜드를 더 이상 갈 수는 없었다. 여자친구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상한선 정하고 하는 레저’라고 설명했지만 그녀는 “카지노 다니는 사람과 결혼할 수는 없어”라고 말했다. 강원랜드에는 ‘출입 정지 신청’  제도가 있다. 내 발로 찾아가 스스로를  ‘출입 정지’시켰다. 강원랜드에 다시는 안 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불행의 씨앗은 지난해 초에 생겨났다. 정초부터 휴대전화 문자에는  ‘실시간 카지노 ○○ 바카라’   ‘확실한 승률 대박 ○○○ 바카라’ 같은 스팸이 날아들었다. 보통은 한두 개에 그치던 스팸 문자가 어떤 날은 10여 개나 되었다. 문득 어떤 시스템으로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바카라(뱅커와 플레이어 중 어느 한 쪽을 택해 9 이하의 높은 점수로 승부하는 카드 게임)도 그럭저럭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한번 구경이나 해보자 싶었다.

회원 가입은 간단했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주민번호도, 그 흔한 휴대전화 인증도 없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등록하면 끝이었다. 사이트 구석의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고객님의 안전이 우리의 안전입니다’  입출금을 할 때도 절대 개인정보가 유출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서버가 해외에 있기 때문에 안전 하나는 책임진다고 했다.

게임을 하려면 입금 요청을 해야 했다. 입금 요청도 의외로 간단했다. 게임을 선택하고 입금자 명과 입금액을 기재하면 ‘끝’이다. 입금할 계좌번호는 사이트에 입력된 콜센터 번호로 전화하면 남자 직원이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처음 전화했을 때 “불법이냐. 위험한 것 아니냐”라고 물어보았다. 남자는 굵은 목소리로 “우리들은 필리핀에서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는데 필리핀에서는 라이브 카지노가 합법이다. 단속하고 싶어도 못 한다”라고 말하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100만원 잃으면 2백만원 걸고…

라이브 바카라를 했다. 컴퓨터 화면에 여자 딜러가 등장한다. 생방송인지 녹화 화면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나 다른 점은 카지노에서 쓰는 카드와 다르게 카드의 크기가 무지 크다. 모니터로 보려면 그래야 한다. 온라인 카지노를 위해 설치된 전용 카지노 같았다.

바카라는 확률 계산으로도 어느 정도 잃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도 가장 승률이 좋았던 게임이 바카라였다. 그런데 첫날 여기에서 승률은 정말 기가 막혔다. 하기만 하면 무조건 땄다. 승률이 대략 80% 정도였다. 25연승까지 해보았으니 말 다했다. 25연승이면 확률로 따질 때 0%에 가깝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갔다. 내가 한 달 동안 딴 돈은 어이없게도 3천만원이나 되었다. 퇴근하고 난 뒤 보통 새벽 3시까지 했다. 하루에 약 6시간 정도를 매일 투자했다. 승률이 좋으면서 점점 높은 금액을 베팅할 수 있는 테이블로 옮겼더니 결과물도 불어났다. 출금 신청을 했다. 신청하니 30분 안에 내가 입력한 통장으로 들어왔다. 직장 다니며 5년 동안 모은 돈이 대략 2천만원 정도였다. 불과 한 달 뒤 통장에 찍힌 숫자는 5천만원으로 바뀌었다.

그 한 달 사이에 내가 접속하던 사이트는 도메인을 바꾸기도 했다. 하루는 접속을 했는데 사이트가 폐쇄되었다고 나왔다. 속으로 ‘단속당한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 날 새벽에 내 휴대전화에는 새로 이전한 주소가 문자로 날아왔다. 그들은 고객 정보를 철저히 관리하고 있었다. 단속에 대한 불안감도 들었지만, 동시에 잃었던 사이트를 되찾았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한 달이 또 지났다. 나는 매일 잃었다. 결국 내가 가지고 있던 2천만원까지 모두 날려버렸다. 어이가 없었다. ‘돈을 얼마만큼 따서 무엇을 하자는 분명한 목표가 없어서 그런가’라는 자책도 들었다. 통장에 5천만원이 꽂혀 있을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순식간에 통장 잔고는 바닥을 드러냈다.

100만원을 잃으면 2백만원을 걸고, 2백만원을 잃으면 4백만원을 걸었다.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3천만원을 빌렸지만 그것조차 열흘을 버티지 못했다. 사기 같았다. 실시간 상담을 하는 담당자에게 “사기 아니냐”라고 항의를 해볼까 생각했지만 내 개인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혹시 해코지를 당할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

결국 돈 나올 구석이 없어서 혼자 살고 있던 빌라 전세를 반전세 형태로 바꾸었다. 그렇게 만든 3천만원도 한 달을 채 버티지 못했다. 회사 사람들은 나에게 “너무 피곤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피곤해도 잃은 돈을 만회해야 했다. 첫달과 같은 그런 승률이면 금세 만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카드를 남발했다. 현금서비스를 최대한 끌어왔다. 그렇게 해서라도 일단 잃은 돈을 회복해야 했다.

회사는 그만두어야 했다. 살이 10㎏ 이상 빠졌고 눈 밑에 다크써클이 심하게 생겼다. 병원을 가보니 갑상선에 이상이 왔다고 했다. 회사에서도 내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챈 것 같았다. 나 역시 회사에 더는 있고 싶지 않았다. 조만간 카드사의 독촉 전화가 걸려올 것이 뻔했다. 돈도 더는 나올 구석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50만원을 들고 다시 라이브바카라를 시작했다. 50만원은 이내 8백만원으로 변했지만 결국 오버베팅을 계속하다 보니 빈털터리가 되었다. 본전을 회복하려는 욕심에 또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만약 1만원짜리 지폐를 손에 쥐고 게임을 했다면 이렇게 허망하게 잃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매번 한다. 그랬으면 더 신중하게 했을 것 같다. 클릭 한 번에 수백만 원 베팅이 가능해지면서 돈에 둔감해진다는 사실은 빈털터리가 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부모님께 무릎 꿇고 울면서 고백했고, 신용 회복 절차를 밟으면서 지금은 절대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금단 현상은 너무나 괴롭다. 차라리 어떻게든 접속 자체를 막아주었으면 하지만 단속은 매번 뒷북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힘든 일이 있으면 더욱 생각나는 것이 도박이다. 그때만큼은 다른 것들을 다 잊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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