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더 하면서 ‘기본’부터 다져나가겠다”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1.11.05 13:3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만수 SK 와이번스 신임 감독 인터뷰 / “기본도 모르면서 기술 배울 수 없다는 것 알아”

감독대행을 맡은 지 두 달 반 만에 팀을 한국시리즈 준우승 자리에 올려놓은 SK 와이번스의 이만수 감독. 시즌이 끝나자마자 그는 마침내 ‘대행’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감독이 되었다. 그의 리더십을 ‘헐크 리더십’이라고 부른다. 야구계는 ‘카리스마’와 ‘권위’로 상징하는 기존 감독의 리더십과 달리 더그아웃에서 끊임없이 선수들을 독려하고 칭찬하는 이감독의 ‘믿음의 리더십’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시즌 감독대행으로 정규 리그를 소화한 그에 대해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역대 감독대행 가운데 이처럼 자신만의 야구 색깔을 확실히 드러낸 이도 없을 것이다. 그의 새로운 리더십이 한국 프로야구를 변화시키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만수 감독을 만나보았다.

요즘 야구계에서 이감독만큼 바쁜 분이 없는 것 같다.

이것도 지나면 하나의 추억이 될 것이다.(웃음)

구단으로부터 언제 정식으로 감독 제의를 받았나?

한국시리즈 5차전이 끝나고, 구단 고위층에서 “내일 보자”라고 했다. 인천 송도의 한 호텔에서 함께 점심을 먹다가 (감독 제안을) 받았다.

▲ 지난 10월29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이만수 당시 SK 감독대행이 마운드에 들어가 투수 교체를 고민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구단이 감독직을 맡기면서 무엇을 당부하던가?

SK답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는 야구를 펼쳐달라’라고 부탁하더라. 그리고 ‘구단의 스포테인먼트에 적극 협조해달라’라고 요청했다. 스포테인먼트라면 나도 늘  생각하던 부분이라서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다.

2007년 SK 수석코치로 부임한 이후 5년 동안 절치부심했다. 이제 이만수만의 야구를 하게 되었는데 구단에 어떤 야구를 펼치고 싶다고 전했는지 궁금하다.

한마디로 “소통하자”라고 했다.

소통?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5년 동안 SK 수석코치를 맡으면서 느낀 것은 ‘우리나라 야구는 현장과 프런트가 따로 논다’라는 것이다. 왜냐? 소통이 없기 때문이다. 서로 대화를 통해 현장에 필요한 것은 프런트가 도와주고, 프런트가 원하는 것은 현장이 들어주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명문 구단이 될 수 있다. 어제 정식 감독이 되어 문학구장에 첫 출근하면서 단장님을 만났다. 둘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나 마무리 캠프와 스프링캠프를 두고 여러 의견을 교환했다. 물론 이견이 있었다. 나는 미국 플로리다 마무리 캠프에 39명을 데려가기를 원했지만, 단장은 “몇몇 선수는 부상 중이니 빼는 것이 어떻겠느냐”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좋다”라고 했다. 대신 “스프링캠프 갈 때는 가능한 한 선수들을 많이 데리고 가고 싶다”라고 했다.

단장이 뭐라던가?

“알았다”라고 했다. 대화가 곧 소화제이다. 위가 막혔을 때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니듯 무언가 문제를 풀려면 소통을 해야 한다. 소통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SK는 5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팀이지만, 전력 보강에는 인색한 팀으로 유명하다. FA(자유계약선수) 획득이라든가, 고액의 외국인 선수 영입에 무척 난색을 나타내왔다. 올 시즌 SK에서 보았듯 ‘고인 물’은 고이다 썩을 뿐이다.

내년 시즌 한국시리즈 우승에 다시 도전하기 위해서는 전력 보강이 시급할 것 같다. 이 문제는 어떻게 소통했나?

구단에 그랬다. “우리 팀에는 중심 타자가 부족하다. 그리고 선발투수가 적다. 그러니 구단에서 좀 도와달라”라고. 구단에서 “적극 도와주겠다”라고 하더라. 전력 보강은 좀 지켜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감독으로 취임한 뒤 많은 변화가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마무리 캠프이다. 2007년 이후 마무리 캠프로 활용하던 일본 고치 대신 미국 플로리다 베로비치 캠프로 마무리 훈련을 떠나기로 했는데.

감독대행으로 한창 한 경기, 한 경기에 집중하고 있을 때 구단에서 “마무리 캠프로 일본이 나을까, 미국이 나을까” 하고 묻더라. 처음에는 어디든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미국을 선택했다. 선수들 사이에서 일본 캠프가 약간 공포의 대상처럼 비치더라. 그래서인지 다들 부담스러워했다. 여기다 선수들에게 꿈과 비전을 주려면 미국 캠프를 한 번쯤 경험하게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비용 문제가 마음에 걸렸는데 구단에서 흔쾌히 “미국 캠프행을 도와주겠다”라고 했다.

베로비치 캠프는 감독으로 취임한 후 첫 번째 팀 훈련이다. 어느 면에서는 많은 의미가 있는데.

얼마 전 선수들을 모아놓고 그랬다. “선수 여러분 모두 미국에 갈 것이다. 물론 아픈 선수가 많다는 것을 잘 안다. 오해하지 마라. 건강 훈련을 하려고 미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충분한 휴식을 제공하면서 기본기 훈련에 매진할 생각이다”라고.

▲ SK 와이번스 이만수 감독 ⓒ연합뉴스
기본기 훈련? SK는 8개 구단 가운데 기본기가 가장 탄탄한 팀으로 알려져 있다.

글쎄. 내 생각은 다르다. 포스트시즌을 치르면서 우리 팀의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SK의 기본기가 뛰어났던 것이 아니라 다른 팀 기본기가 떨어져서 상대적으로 SK 기본기가 돋보였던 것이 아닌가 싶다.

어떤 부분에서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했나?

내 경험담이다. 1984년 삼성이 한국 프로야구단 가운데 최초로 미국 베로비치 캠프로 전지훈련을 갔다. 선수들은 미국의 선진 야구를 배우기를 바랐다. 그런데 미국 코치들이 전부 기본기만 가르치는 것이다. 불만이 생겼다. “왜 너희는 우리한테 이런 기본기만 가르치느냐, 기술을 가르쳐달라”라고 요구했다. 그랬더니 미국 코치들이 뭐라고 했는 줄 아나. “기술이 뭔데? 너희는 기본도 모르면서 무슨 기술을 배우겠다고 그러느냐” 이러는 것이다. 사실이었다. 우리는 그때만 해도 백업플레이라든가, 수비 커버플레이, 작전 수행 능력에 대해서는 거의 초보였다. 하다못해 번트 대는 법과 어떤 상황에서도 전력 질주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모르고 있었다.

지금 말하는 기본기도 야구 기술에 해당하는 부분 아닌가?

그렇기는 하다. 하지만, 정작 미국 코치들이 말하려는 기본은 그 다음이었다. “프로 선수가 술 마시고, 담배나 피고, 싸움질이나 해서 되겠느냐”라고 하더라. “그렇게 해서야 아이들이 당신들을 꿈과 희망으로 삼겠느냐”라고 했다. 가슴이 뜨끔했다. 왜? 맞는 말이었으니까. 그때 깨달은 것이 야구에서 기본을 지키려면 생활에서도 기본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서) 기본기와 함께 주문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무언가?

팀플레이였다. 야구는 구기 종목이다. 누구 한 명 잘한다고 승리하는 종목이 아니다. 이번에 포스트시즌을 치르면서 나도 그렇지만, 선수들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바로 ‘한두 사람이 없어도 이길 수 있다’라는 것이다. 포스트시즌을 치를 때 기자들이 내게 가장 많이 질문한 것이 무엇인지 아나? “부상 선수가 많은데 어떻게 시리즈를 치를 생각이냐.” 이것이다.

그때 내가 한 말은 “(선수가) 없으면 없는 대로 치르겠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이만수 야구’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감독대행이 되어 선수를 보니까 31명의 가용 자원 가운데 19명이 부상이었다. 그런데 더 가혹했던 것은 이틀이 지나니까 부상자가 두 명 더 늘었다는 것이다.(웃음)

눈앞이 깜깜했겠다.

깜깜하다마다. 하지만 SK는 정규 시즌이 끝날 때까지 2위 싸움을 벌였다. 바로 한두 선수에 의지하지 않고, 선수단이 똘똘 뭉쳤기 때문이다. 팀 주축 선수들의 정신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다. 박재상·김강민 같은 젊은 주축 선수에게 그랬다. “너희들은 부상으로 정규 시즌 때 팀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하지만, 너희들이 없다고 팀이 무너졌느냐? 그렇지 않다. 앞으로 이름값을 내세울 생각은 하지 마라. 팀을 위해 희생할 자세가 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평가의 잣대로 삼겠다”라고. 노장 선수한테도 “기회를 동등하게 줄 테니까 한번 잡은 기회는 놓치지 마라”라고 했다. SK 선수들은 워낙 뛰어난 선수들이라, 감독의 메시지를 단번에 이해하더라.

전에 ‘마무리 캠프와 스프링캠프를 통해 선수를 업그레이드하겠다’라고 말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타자들 타격 폼을 선수 개개인에 맞게 수정할 생각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처럼 우리 타자들이 공을 톡톡 갖다만 대고, 만날 다운스윙만 해서는 비전이 없다. 물론 타격 폼을 바꾸는 것은 모험이 따르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1년에 최소한 10번씩은 타격 폼을 바꿨던 친구들이다. 내년 시즌에는 달라진 SK 타자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지난 11월3일 이만수 SK 와이번스 4대 감독이 서울 을지로 SKT타워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내년 시즌 우승을 기약하며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SK의 아무개 선수가 “말로만 듣던 비활동 기간(한국야구위원회 야구 규약상 급여가 나오지 않는 12월과 1월에는 단체 훈련을 할 수 없다)을 이번에는 준수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하더라. 무슨 말인가 했더니 이감독이 12월부터 1월 스프링캠프 소집일까지 자율 훈련을 공표했다고 하던데.

맞다. 11월 중순 마무리 캠프가 끝나면 스프링캠프가 시작하는 1월15일까지 자율 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다.

일부 야구인들은 ‘한국 선수는 타율이 아니면 훈련하지 않는다’라며 자율 훈련의 효과에 대해 반신반의하는데.

나도 잘 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있다. 바로 매뉴얼이다.

매뉴얼?

그렇다. 선수 개인별로 훈련법을 다 프린트해서 제공할 것이다. 가령 어깨 부상인 선수에게는 어깨 강화 훈련 매뉴얼을, 팔꿈치 부상인 선수에게는 팔꿈치 강화 훈련 매뉴얼을 제공할 예정이다. 지금 우리 트레이너들이 밤새워서 매뉴얼을 짜고 있다. 생경해 보이지만, 이것은 미국 프로야구에서는 모두 하는 일이다. 만약 매뉴얼대로 열심히 몸을 만들어 스프링캠프에 합류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선수들은 제재를 가할 생각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