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팔려나가는 한국 ‘디지털 병원’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1.11.05 14:1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내 대형 병원들, 정보통신 기술과 융합한 의료 기술 앞세워 의료 시장 급성장하는 자원 부국·신흥 개발국 등에 진출 활발

ⓒ honeypapa@naver.com

예전에 병원에 가면 종이로 된 환자 차트를 볼 수 있었다. 환자의 인적 사항과 병력 등 모든 기록이 담긴 이 차트는 현재 전자 의무 기록(EMR)이라는 전자 차트로 바뀌었다. 의사는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환자 차트를 볼 수 있고, 제주도에 있는 환자는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지 않고도 처방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국내 병원 10곳 중 8~9곳은 전자 차트를 이용하고 있지만, 선진국인 미국이나 유럽 국가에 있는 병원에는 이런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다. 비단 전자 차트의 사례뿐만 아니더라도 의술과 정보통신 기술의 융합은 현대 병원의 필수 조건이다. 환자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고, 병원은 의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한국은 정보통신 기술이 병원에 잘 접목된 나라로 꼽힌다. 병원 건물과 의료진만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고 판단한 외국에서 한국에 병원을 지어달라고 요청하는 까닭이다. 국내에서도 이른바 ‘디지털 병원’ 수출을 모색하는 데에 분주하다. 과거에 선박이나 반도체 수출로 먹고살았다면 앞으로는 정보통신 기술과 결합한 의료 기술 수출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다. 해외에 설립한 병원에서 나오는 수익뿐만 아니라 의약품, 의료 장비, 교육, 인력 수출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합작 병원 신축하거나 선진 의료 시스템 제공

자원 부국, 신흥 개발국 등 의료 시장이 급성장하는 나라가 대상국이다. 예를 들어, 중국 의흥 시는 앞으로 3년간 25억 위안(약 4천5백억원)을 투자해 신도시를 개발한다. 신도시에 실버타운도 짓는데, 그 내부에 종합병원과 VIP 검진센터를 만든다. 부자들을 위한 고급 의료 시설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한국에 있는 연세의료원에 도움을 요청했다. 의료진 교육, 공간 배치, 장비 운영 등 전반적인 경영 컨설팅을 해달라는 것이다. 연세의료원은 지난 10월 중국 관계 당국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철 연세의료원장은 “디지털 병원을 수출하려면 정보 기술 시스템 개발뿐만 아니라 이를 운영할 의료진, 간호 요원, 행정 요원에 대한 교육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연세의료원은 병원 자동화 시스템(HIS), 진료 정보 시스템(EMR), 스마트 헬스케어 등의 시스템을 패키지로 만들어 수출의 발판을 다질 것이다. 조만간 일본과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진출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서울대병원도 지난 7월 중국 옌지 시 중의병원이 내년에 신축하는 건강검진센터와 관련한 운영 자문 계약을 체결했다. 옌지시 중의병원 건강검진센터의 임직원들은 서울대병원 강남센터에서 현장 교육을 받을 예정이며, 건강검진센터가 개원한 후에도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옌지 시를 주기적으로 방문해 지속적인 교육을 제공한다. 이 대가로 서울대병원은 2016년까지 5년간 일정 금액의 자문료와 브랜드 사용료를 받는다. 정희원 서울대병원장은 “이번 협약을 통해 2백20만명에 이르는 조선족 동포 및 현지 주민에게 우수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대병원의 의료 시스템을 외국에 수출한 데 큰 의미가 있다. 앞으로 서울대병원은 국립병원으로서 대한민국 의료 브랜드를 상승시키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삼성의료원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두바이에 진출했다. 지난 4월 두바이 헬스케어시티 내에 ‘삼성 인덱스 메디컬센터’를 열었다. 연면적 1천100㎡(3백30여 평) 규모에 여섯 개 진료실, 내시경실, 심장초음파실, 회복실 등을 갖추었다. 삼성서울병원은 일반내과와 심장내과 교수 두 명, 간호사 두 명, 의료기사 한 명을 파견하고, 두바이 현지 의료진을 외래교수로 진료에 참여시켰다. 두바이에 거주하는 1백77만명 중에 현지인은 20%에 불과하고 외국인이 80%를 차지한다. 한국의 디지털 병원을 홍보하기 좋은 조건이라는 평가이다. 최근 두바이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등 경제 환경이 위기를 맞았지만 현지 의료 수요는 증가하고 있어 의료기관들이 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이종철 삼성의료원 의료원장은 “국내 병원 최초로 아랍권 현지에 진출한 삼성 인덱스 메디컬센터는 국내 의료계의 해외 진출에 새로운 성공적 모델로 자리를 잡을 것이다. 두바이라는 세계화된 도시를 통해 우리의 우수한 의료 시스템을 세계인에게 알리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관동의대 명지병원은 인도네시아의 6백 병상급 아담말릭 병원의 현대화 프로젝트 입찰에서 최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2천8백만 달러 규모인 이 프로젝트의 최종 사업자로 선정되면 명지병원은 2년간 응급센터, 심장센터, 기존 병상의 의료 기기 현대화를 포함한 의료 장비 공급, 교육 훈련, 유지·보수 사업을 진행한다. 경기도 부천의 세종병원은 카자흐스탄으로부터 브랜드 사용료로만 한 해 50억원을 받을 전망이다.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현대병원은 몽골과 합작 병원을 짓기로 했다. 몽골은 한국의 첨단 의술과 장비는 물론 인테리어까지 그대로 도입할 정도로 열정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우리들병원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중국 상하이에 병원을 설립했고, 내년 상반기에 UAE 아부다비에 병원을 개원할 예정이다.

중·소 병원들, 협동조합 만들어 공동 모색

중·소 병원들은 협동조합까지 만들어 공동으로 수출 길을 모색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지식경제부 등 여러 정부 부처와 중·소 병원 등 70여 개 기관이 올해 초 ‘디지털 병원 수출사업협동조합(이하 조합)’을 만들었다. 지난 7~8월 중남미 5개국을 방문해 페루와 에콰도르 등에서 10건(4천2백억원 규모)의 수출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이 중에 한 건은 올 연말에 시작되며, 나머지는 내년 초 구축 작업에 들어간다. 페루에서 4백 병상 규모의 병원 신축과 통합 의료 영상 저장 시스템 구축 등에 대한 양해각서를 페루 육군병원과 체결했다.

에콰도르에서는 보건의료 통합 전산망 구축과 3백 병상의 공공병원 신축 등 3개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파라과이와 쿠바에서도 병원 공급을 제안받았다고 조합측은 설명했다. 이민화 조합 이사장은 “세계 디지털 병원 시장은 블루오션이다. 시장은 크지만 아직 이 시장을 지배하는 자가 없다. 개도국은 물론이고 미국조차도 병원의 디지털화가 미미한 수준이다. 한국은 IT와 의료 서비스가 잘 융합된 모델을 가지고 있어서 유리한 입장이다. 건설, 의료, IT 등을 묶은 디지털 병원을 수출하기 위한 전망이 밝다. 2020년까지 20억 달러 수출을 목표로 삼고 있다”라고 전망했다.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자, 병원과 통신사가 합작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서울대병원과 SK텔레콤은 올해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합작사는 서울대병원의 진료 시스템에 SK텔레콤의 정보통신 기술 역량을 결합해 디지털 병원을 수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연세의료원도 최근 KT와 손을 잡았고, IT 벤처회사를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단순하게 병원을 건설하는 것보다는 병원을 돌아가게 하는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연세의료원의 판단이다. 이진우 세브란스병원 홍보실장(정형외과 교수)은 “실제로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이 UAE 아부다비에 디지털 병원을 수출할 때 11억 달러가 필요한 것으로 계산되었는데, 이 가운데 6억 달러가 병원의 시스템·의료 기기·행정·교육 등 소프트웨어였다. 병원 건물보다 정보통신 기술과 결합한 의료 서비스의 질이 우대받는 시대이다”라고 설명했다.

삼성은 아예 그룹 차원에서 디지털 병원 수출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예를 들어 한 국가에 병원을 설립한다면, 삼성서울병원은 현지 의료진의 교육을 담당한다. 현지 의료진을 삼성서울병원에서 교육하고, 현지에서 수술하기 어려운 중환자는 한국으로 옮겨 치료한다. 삼성물산은 병원을 짓는 역할과 의료 장비 수급을 맡는다. 의료 장비 생산은 삼성전자가 담당하고, 삼성SDS는 의료 전산 시스템 등 IT부문을 지원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의약품 수출을 계획 중이다.

정부는 2020년까지 병원 수출 규모를 2조1천억원으로 늘릴 방침이다. 16조원의 경제적 효과와 83만명의 일자리 창출이 예상된다. 지난해 말까지 해외로 진출한 병원은 49곳으로 파악된다. 정부는 병원 기획·설계·시공, IT 시스템, 의료 기기 구입 및 설치, 진료 서비스, 병원 운영·관리, 보험·금융 프로그램 등을 한꺼번에 수출하는 방식에 방점을 찍었다. 한국의 강점인 IT와 결합한 의술이 세계 시장에서 ‘의료 한류’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