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산업 강자 다투는 3세들의 ‘불꽃 전쟁’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1.11.0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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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구본걸 LG패션 사장, 선두 경쟁 치열

▲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연합뉴스

삼성그룹과 LG그룹 창업주 손자·손녀가 패션의류 시장에서 ‘피 튀기는’ 쟁투를 벌이고 있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손녀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39)은 그룹 내 패션 사업 부문을 총괄한다. LG그룹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손자 구본걸 LG패션 사장은 패션의류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내로라하는 재벌 오너가 3세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패션 사업 규모를 키우면서 캐주얼·신사복·여성복 시장 1, 2위를 독식하고 있다. 이서현 부사장은 지난 2002년 패션연구소 부장으로 제일모직에 입사했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5년 동안 패션 사업 기획담당 상무를 거쳐 지난해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서현 부사장은 제일모직이 국내 패션의류 산업 1위라는 지위를 공고히 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부사장은 빈폴을 국내 패션 브랜드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매출 5천억원이 넘는 국민 캐주얼 브랜드로 키워냈다. 이와 함께 신사복 브랜드 갤럭시에 지나치게 의존하던 사업 구조도 캐주얼과 여성복 영역으로 확장했다. 제일모직은 캐주얼 빈폴과 신사복 갤럭시라는 시장 1위 브랜드를 내세워 2000년대 중반까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시장 선두 자리를 지켜왔다. 이부사장은 지난 2003년 여성복 브랜드 ‘구호(KUHO)’를 인수했다. 구호는 해마다 50%씩 성장하며 제일모직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제일모직 패션 부문은 삼성그룹의 모태 사업이다.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제일제당에 이어 1954년 두 번째로 창업한 회사가 제일모직이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패션 산업은 화학이나 전자 재료 못지않게 중요하다. 앞으로 패션의류 시장 1위라는 지위를 지키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둘째 딸 서현씨에게 패션 사업 부문을 맡기고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제일모직은 패션 사업 부문에서 지난해 매출 1조4천3백억원을 올려 패션의류 시장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지난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패션의류 시장은 제일모직의 독주 체제였다. 중·소 업체들이 세부 시장에서 ‘반짝’ 성과를 냈지만 제일모직의 위상을 흔들 만한 위협 요소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제일모직, 2005년까지 독주 체제 이끌어

그런데 지난 2006년 패션의류 시장에 혜성처럼 나타나 제일모직의 아성에 도전장을 낸 이가 있었다. 구본걸 LG패션 사장이다. 구사장은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사촌 형제간이다. 구사장의 부친 구자승씨는 구본무 회장의 부친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첫째 동생이다. 구사장은 지난 2004년 LG상사 패션 사업 부문 부사장에 취임하면서 패션 사업에 입문했다. LG패션이 지난 2006년 LG상사에서 분리되면서 독립법인으로 출범했다. 구사장은 LG패션 초대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당시 이서현 부사장은 제일모직 패션 사업 부문 기획담당 상무로 재직하며 빈폴의 글로벌 브랜드화 전략과 구호의 성장 방안을 마련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구사장이 이끄는 LG패션은 눈부시게 성장했다. 지난 5~6년 동안 LG패션은 실적 개선과 고속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 기존 브랜드가 약진하고 신규 브랜드가 해마다 4~5개 도입되었다. 지난 2000년 출시한 캐주얼 브랜드 헤지스는 10% 초반에서 10% 후반까지 시장 점유율이 상승했다. 지금까지 제일모직 빈폴과 랄프로렌의 폴로가 양분한 캐주얼 시장에 새 강자로 떠오르며 캐주얼 시장을 삼분하고 있다. 지난 2005년 프랑스에서 도입한 아웃도어 브랜드 라푸마는 성장을 거듭했다. 지난 2001년 이래 해마다 20% 넘게 성장하는 아웃도어 시장에서 라푸마는 올해 시장 점유율 8%를 차지해 시장 5위에 올랐다. 백화점 시장에서는 3위 업체 K2를 제치고 3위까지 올라섰다. 제일모직은 라푸마 돌풍에 자극받아서인지 내년 상반기 빈폴아웃도어 브랜드까지 선보인다. 내년에는 아웃도어 브랜드 시장에서도 LG패션과 제일모직 사이에 치열한 쟁투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LG패션은 지난 2009년부터 해마다 4~5개의 새 브랜드를 줄기차게 선보이고 있다. 지난 2009년 출시한 여성복 질스튜어트의 액세서리와 남성복 라인인 질스튜어트뉴욕을 지난 9월 새로 출시했다. 이탈리아 여성복 브랜드 막스마라 라이선스까지 인수했다. 막스마라는 백화점 10개와 면세점 8개 매장에서 팔리고 있어 연 매출 2백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LG패션은 올해 4분기 여성복 브랜드 닐바렛과 스포츠의류 브랜드 버튼을 새로 출시한다. 내년에는 버튼과 여성복 브랜드 레오나드의 제품 라인을 늘리고 여성 길거리 브랜드 레이를 출시할 예정이다. LG패션이 꿈꾸는 사업 모델은 루이뷔통 브랜드로 유명한 LVMH그룹이다. 구본걸 사장은 “LG패션은 의류업체가 아니다. 브랜드 관리 업체이다”라고 말했다. 단지 옷을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강력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관리하는 업체로 성장하겠다는 포부이다.

박희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LG패션은 국내 의류업체 가운데 가장 안정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어 외형과 이익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구사장이 내건 ‘공격 경영’ 덕에 LG패션은 제일모직 패션 사업 부문을 바짝 뒤쫓는 업체로 부상했다. 매출 기준으로는 LG패션이 지난해 매출 1조2천100억원을 거두어 제일모직 패션 사업 부문에 뒤졌다. 하지만 영업이익 기준으로는 LG패션이 제일모직 패션 사업 부문보다 낫다. LG패션은 지난해 영업이익 1천2백원억을 넘겨 6백억원에 그친 제일모직 패션 사업 부문을 2배 차로 따돌렸다.

LG패션의 추격에 제일모직도 ‘공격’ 전환

▲ 구본걸 LG패션 사장 ⓒ연합뉴스

LG패션이 턱밑까지 쫓아오자 제일모직이 공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부사장은 여성복 브랜드 전략을 강화했다. 지난 2009년 르베이지와 지난 6월 데레쿠니라는 여성 브랜드를 새로 출시해 중·장년 여성복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내년 봄에는 패스트패션(SPA) 브랜드 8 Seconds(8초)를 도입한다. 자라·유니클로·망고 같은 외산 브랜드가 장악한 SPA 시장에서 제2의 빈폴 신화를 만들어내겠다는 계획이다.  

제일모직과 LG패션이 벌이는 시장 쟁탈전은 중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두 업체가 앞다투어 중원으로 진출하면서 공격적으로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 LG패션은 올해 말까지 라푸마 중국 매장을 15개에서 30개로 늘린다. 유주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남성복 브랜드 TNGT와 여성복 브랜드 모그를 취급하는 상하이 매장 55개까지 합쳐 LG패션은 올해 중국에서 매출 1백10억원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헤지스는 라이선스 방식으로 중국에 진출해 100개 매장에서 2백50억원의 매출을 기록할 것이다”라고 추산했다. 제일모직은 빈폴을 내세워 중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빈폴은 지난 2005년 중국에 일찌감치 진출했다.

제일모직은 지난해 말까지 1백13개 빈폴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주요 도시 백화점마다 입점해 매출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제일모직은 내년까지 매장을 1백50개로 늘리고자 한다. 내년 가을에는 빈폴 아웃도어까지 진출해 중국 아웃도어 시장 공략에 나선다. 이서현 부사장은 “중국 시장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소프트 콘텐츠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중국 업체가 따라오기에는 앞으로 5~6년은 걸린다. 우리에게 이만큼 시간이 있다. 지금이 한국 패션 산업이 도약할 절호의 기회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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