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이상한 집값
  • 안성모·이규대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1.11.0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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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그룹 재벌가 주택 공시 가격 조사 결과 / 땅값 포함한 전체 집값이 땅값보다 낮은 경우 많아
▲ (큰 사진)구본무 LG그룹 회장의 한남동 자택.(작은사진 왼쪽)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이태원동 자택.(작은 사진 오른쪽)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논현동 자택. ⓒ시사저널 이종현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사저에 대해 주택 공시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주택의 공시가가 지난해보다 무려 16억2천만원이나 적은 19억6천만원으로 책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택이 들어선 부지만을 대상으로 한 공시 지가는 39억4천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땅값만 40억원에 이르는데, 거기에 지은 전체 집값은 땅값의 절반인 20억원밖에 되지 않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주택 공시 가격(집값)은 토지가(땅값)와 순수 건물가를 합한 것이다. 강남구청측은 “담당 직원의 행정 착오였다”라고 해명하면서 “실수를 정정해서 재산세를 추가해 징수하겠다”라고 밝혔다.

 이대통령의 논현동 사저가 주목을 받으면서, 고가 주택의 공시 가격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특히 단독주택의 경우 과세의 기준이 되는 주택 공시 가격이 시세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은 물론, 정부가 같은 해 발표한 공시 지가와 비교해도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사저널>이 국내 20대 그룹 총수들의 단독주택 가격을 분석한 결과, 실제 상당수 주택의 공시 가격이 토지 공시 지가와 별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낮게 책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재벌가 1번지’ 한남동 자택들 상당수 해당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에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자택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집이다. 올해 발표된 주택 공시 가격이 97억7천만원이다. 지난 2005년 주택 가격 공시 제도가 도입된 이후 한 차례도 ‘최고가 주택’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세 개의 필지에 한 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은 이회장 소유이고, 토지는 두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소유로 되어 있다.

이 주택 부지의 올해 1㎡당 개별 공시 지가는 3백70만원이다. 대지 면적은 세 필지를 합해 총 2천1백34㎡이다. 공시 지가를 기준으로 해도 땅값이 79억여 원인 셈이다. 주택 공시 가격에서 이 금액을 뺀 나머지 18억7천만원이 순수 건물 가액이 되는 셈인데, 이것은 최고급 자재와 최신 설비로 지어진 이 건물의 가치를 감안할 때 너무 적다는 지적이다. 이회장은 지난 2003년 전낙원 전 파라다이스 회장으로부터 이 집을 매입한 후 삼성물산 건설 부문이 2년3개월 동안 내·외부 공사를 마친 뒤인 2005년 5월에 입주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 8월 이회장의 이태원 자택에 대해서 “주택 면적 기준으로 3.3㎡(1평)당 5백만원으로 간주해 시세를 추정해도 건물 가액은 52억원이 나온다. 이 역시도 보통 일반 주택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며, 이회장 자택의 경우 고급 자재가 동원되었기 때문에 이보다 훨씬 더 높게 책정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논현동 자택은 이대통령 사저로부터 한 집 건너에 있다. 지난 2005년 5월 최신원 SKC 회장으로부터 매입한 주택이다. 두 필지로 되어 있는 대지 면적이 약 9백8㎡이다. 공시 지가를 기준으로 땅값이 35억5천여 만원이다. 그런데 주택 공시 가격은 이보다 겨우 1억5천여 만원이 많은 37억원으로 책정되었다. 순수 건물 가액이 1억5천만원에 불과하다는 것인데, 지하 1층에 지상 3층인 현대식 건물로 연면적이 1천1백59㎡나 된다.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가격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도 많다.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자택은 공시 지가에 따른 토지 가격이 주택 공시 가격보다 오히려 더 높았다. 공시 지가는 1㎡당 약 3백61만원으로 대지 1천6백55㎡ 전체 가격은 59억8천여 만원에 이른다. 하지만 주택 공시 가격은 이보다 약 6억원이 적은 53억8천만원이다. 주택 공시 가격이 공시 지가에 따른 땅값보다 더 낮은 것이다.

이런 모순은 더 발견된다. ‘재벌가 1번지’로 불리는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일대에 있는 그룹 총수들의 자택 대부분도 마찬가지였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자택은 공시 지가에 따른 토지 가격이 30억1천여 만원인데 반해 주택 공시 가격은 25억3천만원에 불과하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자택은 토지 가격이 36억7천여 만원, 주택 가격이 34억원이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자택의 경우 토지 가격이 29억6천여 만원, 주택 가격이 26억원으로 책정되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자택은 토지 가격이 27억9천여 만원인데 주택 가격은 23억7천만원이다. 땅값을 포함한 전체 집값이 순수 땅값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주요 재벌 총수가 소유한 주택 가격 

기업 

이름 

주소 

공시 지가에 따른 토지 가격 

주택 공시 지가 

비고 

삼성  

이건희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79억원 

97억7천만원

18억7천만원

SK 

최태원 

서울 강남구 논현동 

35억5천만원

37억원

1억5천만원

LG 

구본무 

서울 용산구 한남동 

64억1천만원

38억2천만원

-25억9천만원

한화  

김승연 

서울 종로구 가희동 

59억8천만원

53억8천만원

-6억원

두산 

박용만 

서울 용산구 한남동 

30억1천만원

25억3천만원

-4억8천만원

금호아시아나 

박삼구 

서울 용산구 한남동 

36억7천만원 

34억원

-2억7천만원

신세계 

이명희 

서울 용산구 한남동 

29억6천만원 

26억원

-3억6천만원

동부 

김준기 

서울 용산구 한남동 

27억9천만원

23억7천만원

-4억2천만원

누가 봐도 비상식적인 가격을 정부가 발표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자택은 공시 지가에 따른 토지 가격이 주택 공시 가격보다 두 배 가까이 높게 나타났다. 두 필지로 나뉜 부지의 개별 공시 지가는 1㎡당 3백81만원으로 전체 대지 약 1천6백83㎡의 가격은 64억1천여 만원에 이른다. 이에 반해 주택 공시 가격은 26억여 원이나 적은 38억2천만원에 불과하다. 해당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지하 2층·지상 2층, 연면적 1천1백39㎡인 건물에는 미술관 등 문화 시설도 갖추고 있다. 이 건물도 이건희 회장의 이태원 자택과 비슷한 시기인 지난 2005년에 신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주택 공시 가격이 토지 공시 지가보다 오히려 더 낮게 책정된 것은 상식적인 가격 책정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경실련 부동산감시팀 관계자는 “토지와 건물을 함께 평가한 가격이 토지 평가액보다 낮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 누가 보더라도 상식적이지 않은 가격을 정부에서 발표하니까 국민들이 어이없어 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정부는 어떤 입장일까. 국토해양부 부동산평가과 관계자는 “개별 공시 지가는 해당 토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했을 경우를 기준으로 책정된다. 주택 공시 가격에 적용되는 토지에 대한 평가와 다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현재 있는 건물이 오히려 주택 가액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주택의 상태에 따라 기존의 건물을 허무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주택 공시 가격에 반영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감정평가협회 관계자도 “공시 지가의 경우 나대지를 기준으로 평가한다. 아무것도 없다는 가정하에 순수 땅값만 계산하는 것이라서 주택 공시 가격과 괴리가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건물이 오히려 주택 가액을 낮추는 것은 일반적으로 건물이 상당히 노후화된 경우에 해당한다. 재벌 총수들의 자택 상당수가 막대한 건축 비용이 들어간 고급 건물이라는 점에서 땅값을 포함한 주택 가격이 땅값보다 적다는 것은 여전히 설득력이 떨어지는 가격 책정이다. 토지 공시 지가 자체부터 이미 시세에는 훨씬 못 미치는데, 여기에 주택 공시 가격이 이보다도 더 낮다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평가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공시 지가와 주택 공시 가격을 따로 매기고 담당하는 부서도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표준지의 공시 지가와 표준 주택의 공시 가격은 국토해양부가 책정하는데 전국적으로 50만 필지와 20만호가 여기에 해당된다. 나머지 개별 공시 지가와 주택 공시 가격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책정한다. 한 감정평가사는 “공시가는 과세를 목적으로 책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단독주택의 경우 거래도 잘 안 되고 표준 주택을 선정하는 것도 마땅치가 않다. 그렇다 보니 과표를 낮게 잡는 경향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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