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광고 시장 뒤흔들 ‘공룡들의 전쟁’
  • 채은하│프레시안 기자 ()
  • 승인 2011.11.0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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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렙 법안, 한·미 FTA 정국에 또다시 통과 불투명 / 종편 4사 이어 지상파도 광고 영업에 속속 뛰어들어

▲ 8월22일 국회 문방위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노트북에 ‘미디어렙법’의 즉각 처리를 요구하는 손팻말을 붙여놓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부터 방송 광고 시장에 극심한 혼돈이 예고되고 있다. 12월 출범키로 한 종합편성 채널(이하 종편) 4사가 직접 광고 영업을 펼치고 있는 데 이어 지상파 방송사인 SBS와 MBC 또한 각각 자회사를 통한 직접 광고 영업을 추진하고 나섰다. 말 그대로 ‘공룡’이 전쟁에 뛰어드는 셈이다.

먼저 방아쇠를 당긴 것은 SBS이다. SBS의 지주회사인 SBS미디어홀딩스는 지난 10월27일 이사회를 열어 자본금 1백50억원 규모의 광고판매대행사 ‘㈜미디어 크리에이트’를 자회사로 편입하기로 의결했다. 이들은 미디어렙 사장으로 전종권 전 OBS 부사장을 영입하고, 임직원 50여 명에 대한 인사 발령을 마치는 등 조직 구성도 완료한 상태이다. SBS는 오는 11월14일 창사 기념일에 맞춰 광고주들을 대상으로 광고 판매 설명회도 열 예정이다.

뒤이어 MBC도 독자 미디어렙 설립에 나섰다. MBC 관계자는 “종편과 SBS가 직접 영업을 시작하는 만큼 우리도 할 수밖에 없다”라며 연내 미디어렙 설립 방침을 정했다. MBC는 그동안 자사 광고를 위탁 판매해온 코바코(한국방송광고공사)와의 계약 해지 여부를 논의하는 한편, 서울 중구 수하동에 별도의 미디어렙 사무실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지상파 방송이 직접적으로 광고 영업에 뛰어드는 것은 12월 개국을 목표로 하는 4개 종편이 직접 광고 영업을 벌이고 있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SBS미디어홀딩스측은 “종편 채널 등장 등으로 미디어 시장의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국회의 광고 관련 입법 제정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우선 입법 논의의 범위 안에서 민영 미디어렙을 설립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라고 밝혔다.

지상파 “시장 급변 상황에서 입법 못 기다려”

전병헌 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종편은 내년 6천38억원의 광고 매출을 시작으로 해마다 그 액수를 늘려갈 것으로 예측되는 반면, 그 외 다른 매체들의 매출은 모두 감소할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료에서 지상파 방송의 광고 매출은 올해보다 1천67억원 줄어드는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 밖에 케이블 PP, 라디오, 신문 등도 모두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MBC와 SBS가 직접 광고 영업에 뛰어들면 상대적으로 다른 매체들은 더 큰 매출 감소를 겪게 되리라고 예상된다.

실제로 SBS의 직접 광고 영업 결정에 가장 우선적으로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은 그동안 SBS와 네트워크를 맺어 연계 판매 방식으로 광고 수익을 올려온 지역 민방과 종교 방송이다. 이들이 지난해 연계 판매로 얻은 광고 매출은 전체 매출의 22%에 달한다. 그러나 SBS가 직접 광고 영업에 나서면 이러한 수준의 매출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SBS측은 지역 민방에 향후 5년간 지난 3년간의 평균 매출은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한 상태이나, 결국은 SBS에 대한 지역 민방의 종속성이 더 심화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추혜선 공공미디어연구소 정책위원은 “SBS홀딩스는 지역 민방과의 연계 판매 대신 자회사인 계열 PP들과 전면적인 교차 판매를 통해 수익을 더 확대시키려는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언론 노조, “언론 생태계 망가질 것” 우려

직접 광고 판매를 통해 광고 수익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SBS 내부에서도 반발 여론이 높다. 그동안 SBS로 직접 들어오던 수익이 지주회사인 SBS홀딩스를 통해 들어오면서 경영 간섭은 물론 계열사 광고 연계 판매 등을 통한 재원 유출이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그동안 SBS 노조는 자사 콘텐츠가 계열사로 헐값에 넘어가는 문제 등을 지적하며 ‘독립 경영’을 주장해왔다. SBS 노조는 이번 자회사 미디어렙을 ‘가짜 미디어렙’으로 규정하고 농성에 나섰다.

방송의 공공성이나 여론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이들 방송사의 직접 영업 선언은 심각한 위기가 되리라는 지적이 많다. 종편뿐 아니라 지상파 방송까지 직접 광고 영업에 나서면 미디어 생태계는 ‘승자 독식’의 나락으로 빠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언론노조는 “‘보도-제작과 광고의 분리’라는 대원칙으로 지켜져왔던 방송의 공공성 시스템과 언론 생태계는 붕괴될 것이고 자본의 언론 장악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들도 성명을 내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에 위배되고 △국회의 미디어렙 관련 입법 활동을 무시하는 행위이고 △광고 시장의 혼란을 가속화시키는 일이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그러나 방통위는 지상파의 직접 광고 영업에 개입할 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있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지난 11월2일 국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의 질타에도 “관련 법안이 부재한 상황이라서 어쩔 수 없다”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최위원장은 “(지상파) 방송사의 직접 영업이 반드시 방송 광고 시장의 혼란으로 이어지리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지상파에 더 참아달라는 소리를 할 수 없다”라는 등의 발언을 했다.

최위원장의 발언대로 각 지상파 방송사가 직접 광고 영업에 뛰어드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데에는 국회가 미디어렙 입법을 차일피일 늦춰온 책임이 크다. 헌법재판소는 2008년 코바코의 독점 체제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이후 지상파 방송은 ‘국회 법안이 처리될 때까지 코바코에 광고 판매를 위탁하도록 한다’라는 방통위의 권고안에 따라 코바코에 광고를 위탁해왔다. 그러나 방통위 권고안은 법적 구속력이 없고, 이에 따라 지상파 방송이 직접 광고 영업에 나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국회가 미디어렙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을지는 여전히 매우 불투명하다. 현재 여야는 각각 ‘1공영, 1민영’ 미디어렙 안을 내는 데까지는 근접했으나 종편을 미디어렙에 포함시킬지를 두고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한·미 FTA 비준안을 둘러싼 대치 국면이 길어지면서 미디어렙 논의도 뒤로 밀려났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 지도부 차원의 타결이 필요한 상황이나 한·미 FTA로 인해 이것도 여의치 않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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