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묻지 마 범죄’위험 수위 올랐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1.11.0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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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사건의 절반 이상 차지…사회 예방 시스템 구축 시급

▲ 지난 10월30일 경기 파주에서 40대 남성이 길 가던 8세 여자 어린이를 흉기로 찌른 사건이 발생했다. 왼쪽 큰 사진은 사건 현장. 오른쪽 위는 범행 장면이 담긴 CCTV 장면. 오른쪽 아래는 지난 2008년 10월20일 서울 논현동의 한 고시원에서 방화 후 묻지 마 살인을 저지른 범인과 증거물들. ⓒ시사저널 정락인(왼쪽), ⓒ YTN 제공(오른쪽 위), ⓒ 연합뉴스

불특정 다수를 노리는 이른바 ‘묻지 마 범죄’가 횡행하고 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도 않는다. 길을 가거나 운동하다가,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심지어 출근하던 지하철 안에서도 당할 수가 있다. 이유 없이 흉기를 휘두르는 탓에 방어하기도 어렵다. 더욱이 묻지 마 범죄는 예외가 없다. 누구든지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저항력이 약한 어린이나 미성년자들이 최대 피해자가 되고 있다.

묻지 마 범죄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이다. 최근 수년 동안 거의 두 배로 증가했다. 살인 사건의 절반 이상이 피해자와 아무 상관이 없는 ‘묻지 마 살인’이었다.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묻지 마 범죄, 얼마나 심각한 것일까.

지난 10월30일 오전 11시쯤 경기도 파주시 금촌동에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오전 11시쯤 ㄷ아파트 근처의 세탁소 앞에서 어머니와 함께 교회에 가던 곽 아무개양(8·초등학교 1학년)이 칼에 찔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교회에서 불과 15m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사건 현장에서 직선거리로 90m쯤에는 초등학교가 있었다.

용의자는 ㄷ아파트에 혼자 살던 주 아무개씨(45)였다. 최초 목격자인 ㄷ아파트 관리실 직원 박 아무개씨는 당시 상황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주씨가 갑자기 달려들어 과도를 휘둘렀다. 얼마나 세게 찔렀는지 칼자루가 부러졌다. 아이는 등에 칼이 꽂혀 피를 흘렸다. 아이 엄마가 놀라 급히 칼을 빼내고 지혈을 한 후 구급차가 와서 병원으로 실어갔다”라고 말했다.

용의자 주씨는 범행을 저지른 후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고, 경찰에 의해 검거되었다. 다행히 곽양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평생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주씨는 경찰 조사에서 “계속되는 환청에 시달려, 아무나 찌른 뒤 사형을 받아 죽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기자는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깜짝 놀랐다. 여러 정황을 보면 이미 예고된 사건이었고, 얼마든지 사전에 막을 수도 있었다. 용의자 주씨는 원래 자신의 어머니와 단둘이서 ㄷ아파트(24평)에 살고 있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전력이 있고, 오래전부터 정신질환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주씨의 어머니가 지난 7월에 노환으로 사망하면서 주씨는 병원에 가지 못했고, 복용하던 약마저도 끊겼다. 주씨는 정신·육체적으로 정상이 아니었으나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ㄷ아파트 주민들에 따르면 주씨는 아무 직업이 없으면서 자신의 집에 고립된 채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았다. 가끔 아파트 주변을 배회하는 것이 전부였다. 주씨는 사고 당일 확실한 범행 징후를 보였다. 과도를 들고 다니다가 아파트 경비원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만약 이때 주씨가 가지고 있던 칼을 회수하고, 그가 안정을 취하거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으면 사건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파트 관리실 직원이나 주민 누구도 주씨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결국 이것이 화근이 되었다.

아파트 관리실 직원인 박씨는 “경비실에 앉아 있는데, 주씨가 손에 과도를 들고 다녔다. 평상시에는 순했고, 집안일도 잘 돕고 했기 때문에 설마 사람을 찌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적극 제지했을 텐데 아쉽다”라고 말했다. 주씨는 당일 술을 마셨다. 범행 후에 보니 입에서 술 냄새가 풍겼다고 한다. 목격자 박씨는 “그가 살던 방을 슬쩍 보니까 막걸리병과 소주병이 놓여 있었다”라고 전했다.

현재 주씨가 살던 아파트는 출가한 누나가 급매물로 내놓았다. 주씨의 누나는 아파트 관리실에 “(동생이) 정신병이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아 미안하다”라며 사과했다고 한다. ㄷ아파트 주민에 따르면 이곳에는 ‘정신이상자’로 보이는 남자가 또 한 명 거주하고 있었다. 그는 정상인과 확연히 구분되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고 이후 ㄷ아파트 주민들은 “아파트값이 떨어진다”라며 서로 쉬쉬하고 있었다.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신도의 자녀가 교회 근처에서 흉기에 찔렸지만 다른 신도들에게 주의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 지난 9월27일 경남 김해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초등생 2명에게 흉기로 중상을 입힌 뒤 투신 자살한 50대의 호주머니에서 사회 불만 등을 표출하는 유서가 나왔다(오른쪽). 왼쪽은 중태에 빠졌다가 간신히 목숨을 건진 피해자 박군. ⓒ생명나눔재단 제공(왼쪽), ⓒ뉴시스(오른쪽)

정신이상자 등에 대한 관리 전혀 안 돼

교회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언론에 보도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며 극도로 말을 아꼈다. 길을 가던 초등학생이 정신이상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지만, 인근의 주민들은 사건이 알려지는 것을 막는 데만 급급한 모습이다. 여전히 주민들의 안전은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었다. 사고 장소 바로 앞에 있는 세탁소 주인은 “기가 막히고 황당하다. 나도 손주가 있는데 남의 일 같지 않다”라며 불안해했다.

지난 9월27일 경남 김해에서 일어난 묻지 마 범죄 사건도 비슷했다. 이날 오후 2시37분쯤 삼계동 ㄷ아파트 12층 엘리베이터 안에서 김 아무개씨(52·사망)가 초등학생 두 명에게 망치를 마구 휘둘렀다. 이 아무개양(11)과 박 아무개군(11)은 크게 다쳐 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다. 박군은 중태에 빠졌다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박군과 이양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특히 박군은 김씨가 휘두른 망치에 머리 정수리와 후두 등 세 곳을 가격당해 정수리가 함몰되는 등 피해가 커 큰 수술을 몇 차례 받았다. 박군은 깨어난 후 “엄마,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그 아저씨가 나를 망치로 때렸어?”라고 묻거나 “집에 절대 안 갈거야. 엘리베이터도 안 탈거야”라며 극도의 정신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고 한다.

용의자인 김씨는 범행 직후 농약을 마시고 같은 아파트 14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김씨는 이 아파트에서 거주하다 2년 전쯤에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지금까지 독신으로 살아왔으며, 정신질환을 앓는 등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폐쇄적으로 지냈다.

김씨는 한때 서울과 김해 등에서 식당을 운영하다 실패했다고 한다. 그가 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가진 데에는 이런 것도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사회에 대한 불만, 주민들에 대한 복수심 등이 담겨 있었다.

묻지 마 범죄의 동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해 2월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는 밤늦게 귀가하던 여성이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다”라며 칼을 휘두른 남성에게 살해당했다. 이어 8월에는 서울 양천구 신정동 옥탑방에서 웃음소리가 들리자 “단란한 가족의 웃음소리가 듣기 싫다”라며 가장을 살해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 3월 경기도 부천에서는 30대 남성이 동사무소에 뛰어 들어와 여직원에게 쇠막대를 내려쳤다. 이 남자의 범행 동기는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해당 여직원은 이 남자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난 6월 서울 구이동에서는 집 나간 아내와 닮았다는 이유로 50대 남성이 길을 가던 30대 여성을 살해했다.

이렇듯 묻지 마 범죄는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묻지 마 범죄를 막거나 피해갈 방법은 없는 것일까. 범죄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는 묻지 마 범죄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사회 예방 시스템’이 거의 갖춰져 있지 않다. 정신이상자 등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묻지 마 범죄 용의자의 상당수는 ‘정신이상자’였다. 앞에서 언급한, 파주와 김해에서 일어난 사건의 용의자도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 더욱이 정신이상자에 의한 범죄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정신질환자들은 꾸준한 병원 치료나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이 가족들에게 떠넘겨지거나 그냥 방치되고 있다. 때문에 국가 차원의 정신질환자 관리·치료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들 같으면 처벌의 수위를 높인다거나 해서 제도권 내에서 관리·감독할 수 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안 된다. 전과가 많은 사람은 국립정신병원 등에서 사후 치료를 강제로 집행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물론 처벌이 아니라 치료 개념이다. 국가가 치료비 100%를 지원해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사후 관리를 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사회 불만자와 소외자 등에 대한 다양한 사회 프로그램도 절실하다. 개개인의 스트레스도 묻지 마 범죄의 동기가 되고 있다. 상담이나 치료를 통해 사회와 소통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면서 범죄 예방이 가능하도록 사회 안전망과 사전 경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노성훈 경찰대 교수는 “사회에 불만이 많고, 상대적인 박탈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범행 기회를 주지 않도록 상황적 요인을 제거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 경찰이나 경비원 등 공식적인 감시자 외에 비공식적인 감시자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지하철의 역무원, 길거리의 상점 주인 등을 감시원으로 활용해서 급박한 상황이 발생할 때 개입할 수도 있고, 평상시에는 감시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 건물에 유리창을 많이 확보해서 안팎을 서로 볼 수 있도록 한다거나, 건물 울타리를 투명하게 해서 후미진 곳을 없애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묻지 마 범죄’ 당하지 않으려면 이런 사람을 조심하라 

묻지 마 범죄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사전 징후를 잘 파악해야 한다. 지금까지 발생한 묻지 마 범죄 용의자들의 범행 동기는 크게 정신병 등 개인적인 요인, 경제적 어려움, 실직, 채무 압박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묻지 마 범죄자들의 공통적인 특성은 스스로 고립된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사회와의 소통도 끊는다. 즉 ‘자신만의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는 동안 사회에 대한 불만과 함께 개인적인 스트레스도 증가한다. 결국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데 그것이 묻지 마 범죄로 연결되는 것이다.

우선 ‘정신이상자’들이 관리 대상 1순위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주변에 있는 정신이상자들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당사자나 그 가족들은 이런 사실을 철저하게 숨긴다. 주민들이 의심을 해도 극구 부인한다. 때문에 범죄가 발생한 후에야 범죄자의 ‘정신병력’이 알려지게 된다. 우리 주변에서 비정상적인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환청이 들린다며 떠들고 다니는 사람, 아무 이유 없이 이웃에게 욕하거나 의심하는 사람, 반복적으로 괴성을 지르는 사람, 극도의 경계심을 표출하는 사람 등등이다. 이런 사람들은 특별 경계 대상이다. 아파트 관리실 등에 신고해서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관찰하거나 가급적 마찰을 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학교, 공원, 아파트, 지하철역 등을 비정상적으로 배회하는 사람 등도 의심해야 한다. 길을 가는데 누가 따라오거나 신변의 위협을 느낄 때는 동선을 바꾸어야 한다. 이때는 인적이 드문 골목보다는 대로변을 선택해야 한다. 같은 동선이라고 해도 일정 정도 거리를 두어야 갑작스런 행동에 대처할 수 있다. 음주를 하거나 맨 정신인 상태에서 극도로 사회 불만을 표출하거나 “다 죽여버리고 싶다”라는 등 범행을 고지하는 사람 등도 위험 인물에 속한다. 노성훈 경찰대 교수는 “묻지 마 범죄는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른다. 피해자 스스로 조심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야간에 혼자 외진 곳을 돌아다니면 범죄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이런 것을 피하고 자신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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