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보수는 트위터에 안 흐른다”
  • 김세희 기자 (uxmea@sisapress.com)
  • 승인 2011.11.05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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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전문연구원이 말하는 ‘사회적 이슈와 SNS 소통 구조의 관계’

▲ SNS 전문가인 강정수 박사가 소셜 네트워크상에서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네트워킹 방식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서울시장 보궐 선거가 있었던 지난 10월26일, 방송인 김제동씨는 ‘투표율 50%가 넘으면 옷을 벗겠다’라는 트윗을 남겼다. 너나 할 것 없이 그의 글을 퍼날랐고 트윗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꼭 투표하겠다’ ‘옷을 벗겨버리겠다’ ‘나도 벗겠다’ 등 각양각색의 반응이 잇따랐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일단 투표를 하겠다는 것. 김제동의 가볍고 재미있는 트윗 한 줄은 투표 참여라는 울림이 되었다. 그날 투표율은 48.6%를 기록했다. 50%를 못 넘겼으니 아무 일도 없었을까? 아니다. 김제동씨는 딱 그만큼만 벗었다. 그의 트윗 한 줄은 어느새 ‘놀이’가 되었다.

투표와 정치 참여, 다소 무겁다. 그러나 이런 주제를 가벼운 놀이로 소화할 수 있는 곳이 트위터이다. 강정수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이하 강정수 박사)은 “트위터는 퍼블리싱하기 좋은 플랫폼을 가지고 있다. 거칠게 이야기하면 지껄이고 있는 것인데, 그것에 가장 적합한 툴이 트위터이다. 트위터에서 오가는 가볍고 소소한 이야기들은 빠르게 퍼진다. 정치적인 메시지도 희화화나 무게감을 빼는 과정을 거치면서 쉽게 확산된다. 더군다나 트위터는 1 대 1 상호 관계를 요구하지 않는 비대칭적 관계이기 때문에 메시지의 발원지에 있는 사람을 내가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나에게 최종적으로 트윗을 전달한 내 옆의 사람을 내가 신뢰하느냐 안 하느냐가 중요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 한나라당은 섬에 있었다”

이번 재·보궐 선거를 통해 트위터의 힘은 여실히 입증되었다. 1백40글자가 만들어내는 힘은 정치에 무관심했던 젊은 세대를 투표장으로 이끌었고 무당파를 움직였다. 이것이 당시 나경원 후보에게 이득이 되었을지 박원순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을지 수치로 환산하기는 힘들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트위터에서 나경원 후보와 한나라당은 고립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강정수 박사는 “한나라당은 섬에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트위터는 네트워크이다. 강한 연결과 약한 연결들이 모여 관계망을 형성하고 메시지는 그 망을 타고 거미줄처럼 퍼져나간다. 한번 흐름을 타면 걷잡을 수 없다. 그것이 네트워크의 힘이자 트위터의 속성이다. 나경원 후보와 한나라당은 그 속성을 꿰뚫지 못했다.

유난히 보수적 가치가 소외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강정수 박사는 “(SNS상에서) 한국의 보수는 대부분 무거운 보수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무겁거나 극단적이다. 이러한 것들은 절대 트위터에서 소구될 수 있는 메시지가 아니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보수의 메시지가 나오지 않는 이상 보수는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없을 것이다. 설사 네트워크를 구성하더라도 확산력을 가질 수 없다. 그것이 트위터이다”라고 설명했다.

보수적 가치가 늘 외면받는 것은 아니다. 그는 미국 하원 대변인(공화당)의 예를 들었다. 유튜브를 통해서 ‘아메리카 밸류(미국 가치)’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미국 하원 대변인은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각광받고 있다. 1분30초짜리 영상을 올릴 수 있는 이 프로젝트에는 미국인들의 참여가 왕성하다. ‘가치’라는 것은 이미 이룩한 것에 대한 만족감, 현존하는 것에 대한 긍정적 의미 부여가 강하다. 참여자들은 미국의 군사적 가치, 경제적 가치 등을 찍어 올리며 공화당이 숨겨두었던 의도를 무의식중에 받아들이게 된다. 강박사는 “본인이 국수적이거나 애국적이지 않더라도 한 번쯤 생각할 수 있고 쉽게 참여할 수 있다. 이것이 사람들을 보수화할 수 있는 모멘텀이 된다. 한국의 보수는 그런 모멘텀을 못 만들어내고 무겁게만 몰아간다. 확산이 빨리되는 것은 가벼운 메시지이다. 극단으로 가면 소구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트위터가 진보들만의 놀이터라고 단정 짓는 것은 곤란하다. 그는 “트위터에는 테크놀로지와 관련한 메시지가 많다. IT 쪽 종사자들이 가장 적극적인 사용자 층이라는 의미이다. 이 사람들은 자유주의적이다. 때에 따라 보수로도, 진보로도 기울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진보 진영에서 이들에게 어필하고 있을 뿐이다. 보수적인 색채가 아직 이들에게 도달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지, 진보 진영이 4백만 트위터 이용자의 전부라고 볼 수는 없다. 대다수가 중립적인 입장에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라고 말했다.

트위터·페이스북 득세…포털은 소외 현상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과 정보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트위터를 통해 관계망을 형성하고, 정치·사회적 메시지들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확산된다. 페이스북에서는 철저한 상호 관계를 바탕으로 설득력이 더해진다. 그런데 SNS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는 반면 포털들은 힘을 잃어간다. 선거를 거치며 발견된 또 하나의 흥미로운 현상이다.

“미투데이는 지난 몇 년 동안 철저하게 사적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10대들의 공간으로 전락했다. 태생적으로도 그랬고, 네이버가 의도했던 바도 있다. 동방신기 같은 10대 중심의 아이돌을 미투데이에 가져다 붙이면서 미투데이는 이미 그쪽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정부의 직접적인 규제가 들어와서 정치색을 배제했다기보다는 정부와 괜한 갈등을 만들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네이버와 다음에서 의견 소통의 플랫폼 서비스라 할 수 있는 것은 다음의 아고라 이외에는 없다. 촛불 시위 같은 강력한 사회운동일 경우에는 아고라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강박사의 지적처럼 아고라가 다루는 주제는 자칫 무겁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일상적이고 소소한 이야기들이 순간적인 폭발력을 가지고 정치·사회 이슈로 확장되는 트위터와는 사뭇 다르다. 이것은 트위터의 성장과도 직결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힘을 발휘하는 때는 ‘바꿔보자’라는 분위기가 득세할 경우이다. 지금 오바마 미국 대통령 같은 경우 정권을 수성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바꿔보자’의 분위기를 가진 공화당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더 인기가 있는 것이다. 지금 미국에서는 정확하게 공화당이 민주당을 압도하고 있다. 변화의 동기가 부여될 수 있는 것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가벼운 것에서부터 무거운 것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포털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더 신뢰할 만한 미디어라고 판단한 상태이다. 내년 선거를 거치면서 한국 사회에서 더욱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독일의 해적당은 청바지를 즐겨 입고 예쁘게 머리를 땋아내린 20~30대 남녀가 주축이 되어 탄생한 당이다. 그들의 슬로건은 직접 민주주의와 간접 민주주의의 중간 형태인 ‘리퀴드 데모크라시’이다. 최근 해적당은 베를린 지방선거에서 8.9%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의회에서 15석을 차지했다. 강박사는 “새로운 소통의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이것은 다른 정치적 환경 또한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이고 민주주의, 미디어, 사회 성격 등 모든 것이 다 바뀔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떤 형태로 변화할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어쨌든 변화는 시작되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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