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충격’ 방향제로 전이되었다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1.11.14 15:1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공 시설·자동차 등 생활 곳곳에서 ‘위험 분사 중’

ⓒ일러스트 임성구

올해 초 임신부와 아이들을 의문의 죽음으로 몰고 갔던 폐질환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로 밝혀지면서 그 파장이 커지고 있다. 명확한 원인 규명이라기보다는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는 가습기 안에 미생물이 번식하거나 물때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물에 섞어 사용하는 화학제품이다.

보건복지부는 가습기 살균제 사용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가습기 살균제 흡입 실험을 해본 결과 화학 성분을 흡입할 때 기관지부터 폐까지 염증이 일어나고, 임신부가 숨졌을 때처럼 허파꽈리(폐포) 세포가 딱딱해지는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이 경고되면서 불안감의 여파는 방향제로 쏠리고 있다. 사람들이 냄새에 민감해지자 등장한 것이 방향제이다. 화장실이나 방안에 좋지 않은 냄새가 나면 이들보다 더 강한 향료를 사용해 사람이 나쁜 냄새를 맡지 못하도록 만드는 냄새 제거제이다.

최근에는 지하철·학교·병원·백화점 등 공공 시설에서 스프레이형 방향제를 분사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자동차 안에서도 방향제를 쓰는 운전자가 늘어났다. 집에서 방향제를 쓰지 않더라도 바깥에서 접촉할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우리는 생활 곳곳에 방향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이다. 자신도 모르게 흡입하고 있는 방향제, 과연 얼마나 위험성이 있을까.

상큼한 실내 공기 제공하기보다 오히려 폐 손상시킬 위험 커

2006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 의과대학 존 밤스 박사팀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방향제 물질 중 파라디클로로벤젠이 공기와 접촉하면 새집 증후군을 일으키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방향제에 자주 노출될 경우 호흡기질환에 걸릴 위험이 크다고 한다.

뿐만 아니다. 국내외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방향제에는 프탈레이트를 비롯해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 등의 유해물질이 들어 있다. 프탈레이트는 동물이나 사람의 몸속에서 호르몬의 작용을 방해하거나 혼란시키는 내분비계 교란 물질의 일종으로 향료, 플라스틱 가소제, 에어로졸, 접착제 등에 사용된다. 방향제에서는 향을 녹이는 용매나 향이 오래 지속되도록 하는 데 쓰이고 있다.

특히 프탈레이트는 공기 중으로 직접 분사되는 ‘스프레이’형이 ‘겔’형보다 농도가 높다. 따라서 호흡기뿐 아니라 피부 노출도 가능하다. 하지만 공기 중에 떠돌다 피부를 통해 흡수되는 비율과 폐로 흡수되는 비율에는 큰 차이가 있다. 폐로 독성 물질이 흡수될 때는 정맥주사의 원리와 비슷해, 피부보다는 호흡기를 통해 직접 흡입하는 피해의 정도가 더 크다.

프탈레이트의 종류에는 DEHP, BBP, DBP, DEP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독성이 가장 강한 것은 DBP이다. DBP는 2003년 유럽연합에서 화장품 성분 사용을 금지하고 우리나라에서도 화장품 원료 배합이 금지된 물질이다. DBP 프탈레이트에 노출될 경우 여성은 자궁의 손상이나 호르몬 교란으로 생식력이 저하될 수 있고, 남성 역시 정자의 DNA가 손상되거나 정액의 질이 저하될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

또 방향제의 물질은 두통을 일으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영국 여성 1만4천명의 임산부를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 방향제를 자주 사용한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두통이나 메스꺼움에 시달릴 확률이 25%, 산후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19% 더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방향제를 사용하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두통을 호소해, 부모가 인공 방향제 사용을 중지해달라고 건의한 사례도 있다. 아이들의 경우에는 또 귀에 염증이 생길 확률이 30%나 높았고, 설사도 더 자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레르기 환자, 방향제에 더욱 조심해야

물론 방향제 자체가 모든 사람에게 위험한 물질은 아니다. 특정 성분에 알레르기 반응이 심해 목숨을 잃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방향제의 농도가 짙을 경우에도 폐가 손상될 수 있다.

알레르기는, 보통 사람에게는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물질이 어떤 사람에게는 두드러기, 천식, 비염 등을 일으키는 현상으로 의학 용어로 표현하면 ‘면역계의 과잉 반응’이다. 즉 몸에서 병균이나 이물질(항원)이 들어오면 이를 방어하는 항체가 생겨 반응하는 면역 반응을 하는데, 이것이 심하게 나타나면서 몸에 이상 증상을 보이는 것이 알레르기이다. 따라서 향에 민감하거나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 천식 환자, 노약자들은 되도록 방향제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고, 건강한 성인이라도 오랜 시간 방향제에 노출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스프레이형 방향제는 또 폭발의 위험성이 크다. 실험을 통해 방향제를 뿌리고 가스가 차 있는 상황에서 폭발력은 얼마나 될까를 알아보았다. 방향제를 분사한 실험 장치에 공기를 주입하고 스파크를 가하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또 차량 안에서 방향제를 뿌리고 담배를 피기 위해 불을 붙였다가 폭발을 일으켜 화재가 발생한 적도 있다. 이 사고로 운전자가 얼굴 등에 2도 화상을 입고 승용차 전체가 까맣게 탔다.

그렇다면 스프레이형 방향제는 왜 이렇게 폭발하는 것일까? 스프레이형 방향제의 콕을 눌렀을 때 방향제 성분을 공기 중으로 분사하기 위해 사용되는 LP가스 때문이다. 비록 소량이라 할 수 있는 100g 미만의 LP가스가 들어 있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폭발을 일으키기에 충분하고, 자칫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방향제 한 통이 폭발했을 때 그 충격은 시속 100㎞로 달리는 차량에 치인 것과 같다고 한다. 엄청난 파괴력이다. 분사를 위해 LP가스를 사용하는 살충제, 헤어스프레이 제품들도 모두 폭발 위험성이 있다. 따라서 방향제를 꼭 쓰고 싶다면 되도록 프탈레이트가 들어 있지 않거나 미량 들어간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앞으로 가습기 살균제뿐 아니라 방향제 등 호흡을 통해 인체에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모든 제품에 대해 안전성과 유해성 여부를 조사할 예정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집안 악취를 막기 위해 방향제를 사용하지만, 향기로운 집의 기본은 ‘환기’라는 사실이다. 오염된 실내 공기와 상쾌한 바깥 공기가 자연스레 교체되도록 창문을 일정 시간 열어두어 방향 효과를 누려야 좋다는 것, 잊지 말자!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