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위기는 끝 아닌 ‘끝의 시작’
  • 조명진│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
  • 승인 2011.11.1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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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이라는 배에 무리하게 승선해 화 자초…유로존 탈퇴는 EU 회원권 포기로 이어질 가능성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은 2010년 5월에 1차 구제 자금으로 그리스에 1천70억 유로를 제공했다. 이번 10월 EU 정상회담에서는 2차 구제 자금으로 1천90억 유로를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그리스 재정 위기의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 ‘끝의 시작’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11월9일 사퇴를 발표한 파판드레우 총리는 “그리스는 가난한(poor) 국가가 아니라 ‘엉망으로 통치된(poorly-administered)’ 국가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자기 성찰의 객관적 진단으로 들리지만, 그리스가 위기에 직면한 이유 중에는 파판드레우 총리를 포함한 정치 리더십의 무능과 탈법도 마다 않는 도덕적 해이도 포함된다.

이미 알려진 대로 그리스는 2002년 유로존에 가입하기 위해 재정 적자 규모가 GDP(국내총생산)의 3% 미만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맞추려고 골드만삭스의 도움을 받아 회계 장부를 조작한 바 있다. 2010년 기준으로 그리스의 실제 부채 규모는 3천5백50억 유로로 GDP인 2천4백억 유로의 1백60%를 차지했다. 이러한 사기를 자행한 그리스에 대해서 2020년까지 적어도 4천4백억 유로를 쏟아부어야 한다면, 독일을 비롯한 여타 유로존 국가 국민들이 완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이해할 만하다.

그리스 정부는 최근 부패를 퇴치하는 차원에서 1만5천건에 이르는 3백70억 유로 규모의 탈세 리스트를 만들었다. 2010년 그리스 정부의 세입이 9백억 유로인 점을 감안하면 정부 수입으로 들어와야 할 막대한 세금이 새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탈세에 관한 실례로 그리스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선박을 소유하고 있지만, 다른 국가의 국기를 달고 항해함으로써 그리스의 선박 소유자는 그 누구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바코야니스 전 그리스 외무장관은 11월7일자 독일 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그리스 정부 시스템을 전격적으로 개편하지 않으면 그리스에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스 부채를 50% 탕감해주는 내용을 담은 EU 구제 패키지에 대해서 파판드레우 총리가 국민투표를 요구하겠다고 한 것은 국내에서 신임도를 높이기 위한 정략적인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 발표는 여타 EU 회원국들에게 충격을 주고 분노를 산 커다란 실책이었다. 사실 어떤 유럽 정부도 긴축 정책과 예산 삭감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지는 않는다.

지난 11월4일 프랑스 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석상에서 파판드레우 총리는 참석자들로부터 국민투표 발표에 대한 설명을 요구받았다. 그 자리에서 그는 국민투표의 목적은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을지 탈퇴할지를 묻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테네에 돌아간 그는 G20에서 그렇게 말할 의도는 없었고, 다만 구제책의 조건에 대해서 국민적인 의견을 묻는 것이 국민투표의 목적이라고 번복했다.

▲ 지난 11월4일 그리스 아테네의 신타그마 광장에서 그리스 공산당 당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AP연합

지도자들의 즉흥적 태도가 EU 내 불신 가중

뿐만 아니라 베니젤로스 재무장관조차 국민투표를 지지한다고 했다가, 국회에서는 반대한다고 말을 바꾸었다. 게다가 과도 연립 정부의 핵심을 맡게 될 ‘새 민주주의(New Democracy) 당’의 당수인 사마라스도 EU가 요구하는 구제책의 긴축 정책에 대해서 반대한다고 했다가, 그 구제책이 국회 승인을 받기를 원한다고 번복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그리스 정치인들이 이처럼 일관되지 않은 입장을 보여주고 있어, 그리스 정부에 대한 여타 유로존 회원국의 불신은 더욱 증폭되었다.

결국 파판드레우 총리를 포함한 그리스 정치인들의 경솔한 행보는 커다란 대가를 치르고 있다. 바로 IMF와 유럽 집행이사회가 11월 중순에 지원하려던 80억 유로를 보류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 정부는 11월 말까지 공무원들의 급여를 지불할 수 없게 된다.

독일의 경제 전문가이자 뮌헨에 있는 경제연구소 ifo의 소장인 한스 베르너 신 씨는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그리스의 구제 방안은 소용없으며, 그리스 본래의 화폐인 드라크마로 환원하는 것이 그리스의 국가 이익을 위해 좋을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신 소장은 그리스가 드라크마를 44% 평가 절하하면, 그리스 물가는 터키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그렇게 되면 그리스 상품은 다시 팔리기 시작하고 해외 관광객들도 그리스를 찾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미 부유한 그리스 사람들은 재산을 오래전에 해외로 빼돌렸다. 그 자금들은 그리스가 경쟁력을 되찾을 때만 돌아오게 된다”라고 역설했다.

또한 ‘외국 은행들과 정부들이 이미 그리스에 대출해준 자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그 모든 손실이 감당할 만한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신 소장은 “채권자들은 투자한 금액의 절반은 잃게 된다. 하지만 그 정도의 손실은 이미 감수하기로 받아들인 상태이다”라고 답했다. 결론적으로 신 소장은 그리스가 유로를 포기하게 되면, 무역 흑자를 볼 수 있어 빚을 갚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지속적으로 외국에 의존적으로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만약 그리스를 살리기 위해서 추가 구제 자금이 책정된다면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구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재정 위기를 막기 위한 유럽 금융 안정 기금(EFSF·European Financial Stability Facility)이 가진 자금 여력의 한계를 볼 때, 밑 빠진 독에 붓기에는 유로존이 가지고 있는 물의 양도 한정적이라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그리스의 GDP는 올해 6% 감소했고, 내년에 추가로 2.5%가 줄어들 전망이다. 즉, 그리스는 재정 위기에서 빠져나올 자생력조차 부족하다. 따라서 그리스의 파산이 빠르면 빠를수록  유로존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제 그리스의 파산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더불어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EU 회원권마저 보장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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