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와 문재인이 든 비장의 카드 ‘한명숙’
  • 김지영·안성모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1.11.14 16:3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문재인 ‘혁신과 통합’ 상임대표가 ‘야권 통합’을 위해 손을 잡았다. 내년 총선 전까지 ‘통합 야당’을 출범시킨다는 계획이다. 그들이 추진하려는 대통합 프로젝트의 핵심은 한명숙 전 총리를 대표로 내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 내부 사정은 녹록지 않다. ‘통합전대파’와 ‘독자전대파’가 나뉘어 있다. 두 사람은 과연 이런 걸림돌을 걷어내고 대통합 고지에 오를 수 있을까.

▲ 손학규 민주당 대표(왼쪽)와 문재인 혁신과 통합 상임대표가 지난 11월9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속도 좀 냅시다.”

지난 11월9일 정오 여의도 한 호텔의 중식당.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문재인 ‘혁신과 통합’(이하 혁통) 상임대표가 만났다. ‘범야권 통합호’의 키를 쥐고 있는 두 유력 대권 주자가 자리를 함께한 만큼 언론의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농담 섞인 덕담이 오갔다. 손대표는 “서울에 집을 마련하셔야겠다”라고 했다. 경남 양산에 집이 있는 문대표는 최근 들어 서울에서의 일정이 부쩍 많아졌다. 문대표는 “정치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그 많은 일정을 챙기시나”라고 했다. 하루도 마음 놓고 쉴 날이 없을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손대표를 향한 말이었다.

지도 체제 놓고도 의견 대립

두 대표는 야권 통합과 관련해 “생각이 같다”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손대표는 “지금 통합은 시대적 요청이고 국민의 명령이다. 혁통에서도 그동안 우리와 함께 공유해온 가치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문대표도 “혁통이 추진하는 대통합은 수권 정당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이번에 손학규 대표가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결의를 거쳐 제시한 통합 방안도 같은 내용이다”라고 말했다. 두 대표는 상대방이 발언을 하는 중간 중간 고개를 끄덕이면서 공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민주당과 혁통의 통합 성사 여부는 정치 지형의 지각 변동을 몰고 올 수 있다. 그만큼 파괴력이 엄청나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이것은 바꿔 말해서 그만큼 성사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벌써부터 정치권 주변에서는 “12월의 야권 통합은 이미 물 건너갔다”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야권 통합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민주당과 혁통 그리고 진보 정당 등 범야권 세력들이 총망라된 대통합을 이루어야 한나라당으로 넘어간 정권을 되찾아올 수 있다는 데에는 공감대가 일치한다. 그런 만큼 야권 내에서 통합 논리를 공식적으로 반박하는 세력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다르다. 야권 통합은 단순 등식이 아니다. 해답을 찾기 쉽지 않은 고차원 방정식이다. 무엇보다 야권 통합의 맏형 격인 민주당 내부의 교통정리부터가 쉽지 않다.

야권 통합이 처음 제기되었을 때만 해도 민주당 인사들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혁통과의 통합 논의가 진행되면 될수록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어제의 우군이 오늘의 적군으로 돌아서는가 하면, 그 반대로 적군이 우군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총부리를 겨눈 상대가 하루가 멀게 달라지는 혼돈 양상이다 보니 급기야 “이러다가 민주당이 쪼개지는 것이 아니냐”라는 분당 가능성까지 제기될 정도이다. 그만큼 야권 통합은 높고 험한 고산준령(高山峻嶺)이다.

손학규 대표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 지도부는 ‘빠르고 넓은 통합’을 촉구하고 있다. 통합의 일차 파트너인 혁통과도 이해관계가 맞닿는 부분이다. 하지만 내부 사정부터 녹록지 않다. 민주당 내에서 야권 통합의 흐름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혁통 등과 함께 통합전당대회를 열자는 ‘통합전대파’이다. 이른바 ‘원샷 통합’을 주창하고 있다. 손대표를 비롯해 정동영·정세균 최고위원 등이 여기에 동조하고 있다.

또 한 갈래로 민주당의 내부 쇄신을 먼저 하자는 ‘독자전대파’가 있다. 민주당이 먼저 전당대회를 연 이후 새롭게 구성된 지도부가 제 정당·세력과 통합 논의를 진행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투샷 통합’을 내세우고 있다. 여기에는 당 대표로 출마할 박지원 전 원내대표와 김부겸 의원 등이 포진해 있다.

양측은 연일 공방을 펼치고 있다. 통합전대파는 “민주당이 독자 전대를 치를 경우 당 대표 후보자들이 득표를 위해 현역 의원과 원외 지역위원장 등에게 내년 총선 공천을 약속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통혁 등 다른 야권과 통합을 이루는 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반면 독자전대파는 “당원들의 의사 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상황에서 현 지도부는 통합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 통합 여부는 전당대회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라고 반박한다.

민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전당대회가 ‘투샷’이 아닌 ‘원샷’으로 치러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통합 과정에서 지분 논란이 일 수 있기 때문이다. 통합에 참여할 제 정파가 모여서 선출하는 방식이 제일 좋지 않겠느냐”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선(先)전대, 후(後)통합’을 주장하고 있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핵심 측근은 “통합 전대를 위한 계파 간 조정은 시간상 불가능하다. 총선이 임박할 때까지 공천 과정에 파열음이 나면 누가 책임을 지겠느냐”라고 되물었다.

혁통이라고 잠자코 있을 리가 없다. 벌써부터 “통합 야당의 지도부는 집단 지도 체제나 최소한 공동 대표제로 가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단일 지도 체제일 경우 민주당이 선점하려 들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민주당에서는 “총선과 대선을 지휘해야 할 지도부가 집단 지도 체제나 공동 대표제로 가서는 곤란하다”라고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유력 대권 주자인 손대표와 문대표는 대권을 포기하지 않는 한 지도부에 나설 수 없다. 대신 그들은 민주당과 혁통 양측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최상의 인물을 한목소리로 내세워야 한다.

지금 손대표와 문대표는 대선 고지를 향해 나아가기까지 가장 험난한 첫 관문 앞에 나란히 섰다. 최소한 지금 현재 두 사람의 이해관계는 일치한다. 주변의 반대 목소리를 최대한 잠재우고 내년 4월 총선 전까지 ‘통합 야당’을 출범시키는 것이다. 늦어도 올해 12월이나 내년 1월 안으로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두 사람이 나누는 귓속말 하나하나에도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손대표와 문대표의 이해관계가 일치되는 ‘카드’가 제시될 것이라는 전망은 그래서 나온다. 이른바 ‘야권 대통합 프로젝트’인 셈이다. 그 가장 유력한 카드로 ‘한명숙 대표론’이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의 통합전대파측에서는 이미 구체적인 그림까지 제시하며 ‘통합 야당’의 첫 대표로 한 전 총리 카드를 물밑에서 준비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민주당의 한 핵심 인사는 지난 10월28일 기자를 만나 “앞으로 한 전 총리를 주목해보라. 한 전 총리의 재판 결과가 조만간 나올 텐데, 99% 무죄 판결이 날 것으로 예상한다. 그렇게 되면 12월의 통합 전당대회를 통해 한 전 총리가 초대 대표로 선출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민주당 내 통합전대파와 혁통측에서도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한 전 총리도 통합 신당의 대표직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인사의 예상은 불과 사흘 만에 적중했다. 서울중앙지법이 10월31일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에게서 9억여 원의 불법 정치 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한 전 총리에 대한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한 전 총리는 지난해 4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서 5만 달러의 뇌물을 받은 혐의에 대해서도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이로써 한 전 총리는 자신을 옭아맸던 ‘돈 문제’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 정치적 운신의 폭도 넓어진 셈이다.

▲ 지난 10월31일 한명숙 전 총리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민주당 백원우 의원과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명숙 대표’가 떠오른 세 가지 이유

민주당 통합전대파와 혁통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 전 총리가 통합 야당의 대표감으로 떠오른 까닭은 크게 세 가지이다. 먼저 한 전 총리는 야권 통합의 핵심 축인 민주당과 혁통 인사들 사이에서 당 대표로 가장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대중 정부에서 초대 여성부장관을 역임했고, 노무현 정부에서도 첫 여성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현재 민주당 상임고문을 맡고 있으며, 문재인 대표와 이해찬 전 총리 등 친노 진영이 포진해 있는 혁통 사람들과도 상당히 가깝다. 민주당과 혁통 내 ‘최대 공약수’라는 것이다. 여기에 유시민 대표의 국민참여당까지 전선을 확대할 수도 있다.

두 번째는 한 전 총리가 이명박 정부에서 탄압받아온 대표적인 야권 정치인으로 각인되어 있다는 점이다. ‘곽영욱 5만 달러’와 ‘한만호 9억원’ 사건으로 재판을 받으면서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고배를 맛보았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재판만 없었다면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을 제치고 당선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그동안의 재판이 야권의 유력한 대선 주자인 한 전 총리에게 정치적으로 큰 상흔을 남긴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세 번째는 내년에 총선과 대선이 치러진다는 점에서 한 전 총리가 야권 대표로 적합하다는 것이다. 호남 지역이 텃밭인 민주당과 영남 지역이 주요 기반인 혁통이 통합을 할 경우, 유권자들에게 ‘통합 야당=지역 정당’이라는 인식을 지워야 하는 과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런 측면에서 통합 야당의 대표는 비호남은 물론 비영남 인사가 맡는 것이 낫다는 설명이다. 이를 통해 ‘통합 야당=전국 정당’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 전 총리는 평안남도 평양 태생으로 경기도 고양시 일산 갑 지역구 의원을 지냈다. 영·호남 지역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민주당의 한 핵심 전략가는 “내년 선거에서 호남 출신 당 대표가 전국 유세를 돌아다니면서 지지를 호소하기보다는 비호남 출신 대표가 나설 때 득표에 더 유리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내년 총선에서 ‘여당 간판’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한명숙 당 대표’에 무게를 두게 한다. 한 전 총리와 가까운 민주당의 한 의원은 “여권에서 박근혜 대세론이 내년 선거 정국까지 계속 이어질 경우 야권에서는 한 전 총리가 여성 정치인으로서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을 상쇄시킬 수 있는 대항마가 될 수 있다”라고 내다보았다.     

성사 여부 따라 선거 정국의 최대 변수 될 듯

한 전 총리측에서도 통합 야당의 당 대표를 맡을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한 핵심 측근은 “당 대표 출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상황은 지켜봐야 한다. 민주당 내부를 포함한 여러 세력이 가장 반대하지 않는 대표감이 한 전 총리라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거꾸로 한 전 대표를 모든 세력이 껄끄러워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권 도전에 대한 고민도 있다. 당 대표로 내세우는 것은 결국 대선 출마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오는 12월17일 통합 전당대회를 개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때까지 참여하는 정당과 세력으로 통합 전당대회를 열겠다는 것이다. 최고위원회의에서 확정한 일정이지만, 당내 반발을 어떻게 수습할지에 대한 뾰족한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 만큼 아직까지 물밑에서 꿈틀대고 있는 ‘한명숙 대표론’이 향후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어느 정도 위력을 발휘할지가 야권 통합 가능성의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이는 민주당과 혁통의 통합은 물론 향후 진보 정당을 아우르는 야권 대통합 논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내년 선거 정국의 최대 변수 중 하나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통합 야당만 출범하면 ‘야권 연대’는 쉬운 일이다?
민주당 전략가 “민주당 사고 지역구 진보 정당에 내주고, 비례대표 앞 순위 주면 가능” 주장…
현역 의원들은 “일방적 양보 안 돼”

“내년 총선에서 야권 연대는 별것 아니다. 아주 쉬운 일이다.” 야권 통합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는 민주당의 한 유력 인사가 지난 10월 말 야당 정치인들을 사석에서 만나 한 말이다. 전략가로 통하는 이 인사가 내놓은 ‘야권 연대 방식’을 요약하면 이렇다.

“현재 수도권과 호남의 민주당 지역구 가운데 사고가 발생한 지역에 후보를 내지 않으면 된다. 대신 그 지역구를 민주노동당 등 다른 진보 정당들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 ‘통합 야당’이 진보 정당들에게 당선 가능성이 있는 비례대표 앞 순위를 주게 되면 야권이 연대하는 모양새로 총선을 치를 수 있다.”

이는 내년 총선에서 기호 1번은 한나라당, 2번은 통합 야당, 3번(혹은 4번)은 민주노동당 순으로 치르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민주당 의원은 “총선에서 어느 지역구를 진보 정당에게 내줄지도 이미 계산해놓은 듯했다. 다른 야당에게 줄 호남의 특정 지역구까지 거론했다. 물론 해당 지역 의원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른다. 만약 알게 되면 한바탕 큰 소동이 벌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야권 통합을 주도하는 민주당 지도부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는 통합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크다. 통합을 추진하는 측에서야 ‘양보’를 쉽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내년 총선에 출마해 ‘배지’를 유지하려는 쪽의 입장에서는 ‘양보’는 입에도 담기 싫은 말이다.

중진 의원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최근 한 언론에서 자신에 대한 ‘총선 불출마’ 관련 기사를 내보내자 호남의 한 중진 의원이 항의에 나섰다고 한다. 한나라당 내에서 이미 불출마 선언을 했거나, 중진급을 대상으로 공천 배제론이 불거지자, 민주당 다선 의원들에 대한 불출마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특정 의원을 겨냥한 기사가 아닌데도 이 의원은 자신의 이름이 거론된 것 자체에 불만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야권 통합 과정에서 수도권과 호남에서 대대적인 물갈이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이 지역 의원들에게는 극도로 예민한 사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