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0.1%’의 마음을 훔쳐라!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
  • 승인 2011.11.21 21:4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융권의 고액 자산가 유치 경쟁 백태 / 프로골퍼 초청 모임·PB센터 특화 서비스 제공 등 눈길

▲ 국민은행 강남PB센터 고객 상담실에서 이흥구 팀장(오른쪽)이 개인 금융 자산 관리에 대해 고객과 상담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바람의 아들’로 불리는 프로골퍼 양용은 선수가 지난 10월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 내 골프연습장에 나타났다. 연습장에서 대기 중이던 소수 고객의 자세를 교정해주고 벙커샷과 퍼팅샷 시연을 해주기 위해서였다. 이날 초청된 사람은 시중 은행에 거액을 예치해놓은 최우수 고객 30~40명. 은행 관계자는 “프라이빗뱅킹(PB) 센터를 이용하는 VVIP 고객 중 극히 일부만 초청했다. 양선수로부터 자세 교정을 받은 고객들이 흡족해했고, 향후 상품 판매를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라고 전했다.

거액 자산가들을 놓고 금융권 경쟁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유럽발 재정 위기가 끝나지 않았지만 현금을 쥐고 있는 ‘부자’들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 증권, 보험, 신용카드사 등은 자존심을 걸고 ‘상위 0.1%’ 고객을 잡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금융 자산으로만 10억원 이상을 가지고 있는 ‘큰손’들은 14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들이 금융권에 예치한 자산은 4백50조원 정도이다. 개인들의 순금융 자산이 1천2백조원 선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전체 인구의 0.3%가 37%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큰손’들 금융 자산만 수백조 원에 달해

KB금융 경영연구소의 분석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기준으로 금융 자산 10억원 이상 자산가 수가 13만명이고, 이들이 가지고 있는 금융 자산이 2백88조원이라는 것이다. 1인당 평균 22억원꼴이다. VVIP로 꼽히는 금융 자산 30억원 이상 ‘울트라 리치’도 2만명가량으로 파악되었다. 금융 자산 30억~50억원을 보유한 부자 수는 2006년 이후 연평균 23.7%씩 늘어났다.

금융업계는 올해 PB 시장 규모가 20조원 정도일 것으로 보고 있다. 거액 자산가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금융회사마다 PB 전문 인력 ‘모시기’에 혈안이 되고 있다. 특히 증권사들이 PB 업력이 오래된 은행권 뱅커들을 대거 스카우트하고 있다. 문제는 전문 인력 한 명이 이동하면 고객들이 줄줄이 떠난다는 것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잘나가는 PB 한 명이 관리하는 고객 자금은 줄잡아 1천억원 선이다. 부자 고객들은 매우 보수적이기 때문에 PB와 함께 다른 회사로 이동하는 사례가 많다”라고 말했다.

금융권이 PB 경쟁에 나서는 것은 이 분야가 떠오르는 수익원이기 때문이다. 한 PB센터장은 “최근 100억원이 넘는 돈을 수표 한 장짜리로 만들어 영업점을 방문한 고객도 있었다. 고객당 거래에 따른 관리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거액 자산가일수록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라고 말했다.

다만, 국내 금융권은 PB 서비스에 따른 별도 수수료를 받지 않고 있다. 외국 금융회사들이 PB 수수료(자산의 1~2%)를 받는 것과 대조적이다. 또 부자 고객들은 대출을 쓰지 않기 때문에 예대 마진에 따른 수익 창출이 어렵다.

PB센터들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고객은 ‘현금이 많은’ 사람들이다. 수백억 원대 빌딩을 가지고 있어도 금융 자산이 수억 원에 불과하면 ‘찬밥’ 대우를 받기 십상이다. PB센터들은 기본적으로 고객 자산을 안정적으로 굴려주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일반인들이 예·적금에 가입하면서 목돈을 마련하려는 것과 목적 자체가 다르다는 얘기이다. 한 PB센터장은 “고객들의 가장 큰 관심은 원금을 보존하면서 물가 상승률 정도의 수익을 얻는 것이다. 정기예금과 국·공채 등 안전 자산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짜고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일반 영업점에서는 팔지 않는 금융 상품도 많이 취급하고 있다. 사모 펀드가 대표적이다. 고객 20~30명만 모아도 웬만한 규모의 펀드를 운용할 수 있어서다. 사모 펀드는 주식·채권 등 시장 변화에 따른 빠른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한 PB는 “자금 모집 기간이 짧고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면 곧바로 환매하는 구조여서 호응이 크다”라고 전했다.

VIP 고객을 위한 서비스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비슷한 취미를 가진 고객끼리 모임을 가질 수 있도록 알선해주거나 무료 해외여행을 보내준다. 고객 집안의 행사와 파티를 열어주며 최고급 수입차로 공항까지 배웅을 나가기도 한다. 요트 시승 및 미술품 경매·감정 서비스도 제공한다.

예컨대 하나은행은 VIP 고객 자녀들에 대해 정기적으로 교육 세미나를 연다. 일정액 이상 예치한 고객을 대상으로 1년에 한 차례씩 무료로 해외여행을 보내준다. 신한은행은 ‘PB 2세 스쿨’을 한 해에 두 번씩 열고 있다. 고객 자녀 남녀 30쌍을 1박2일 동안 은행 연수원에 초청해 다양한 문화 강연을 해준다. 이때 커플매니저가 자녀들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해준다. 일부 증권사는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VIP 고객들을 위해 매달 조찬 세미나를 열고, 프로골퍼를 초청해 부부 동반 라운딩을 열어준다.

PB 서비스에 가장 적극적인 은행권은 최근 들어 ‘울트라 점포’를 확대하고 있다. 종전 3억~5억원이던 고객의 금융 자산 보유 기준을 30억원 이상으로 끌어올리면서 특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은행은 지난 11월11일 서울 역삼동 강남파이낸스센터에 ‘강남 스타 PB센터’를 열었다. 전체 직원이 30명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이다. 일반 PB센터에 5~6명이 상주하는 것과 달리 초대형화로 VVIP 고객을 위한 특화 서비스에 나서겠다는 전략이다. 모 그룹인 KB금융의 계열사 KB투자증권 직원도 상주하도록 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증권, 자산 운용, 보험, 세무, 부동산 등을 아우르는 맞춤형 종합 서비스가 가능해졌다”라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금융 자산이 최소 30억원인 특별 고객을 위해 ‘울트라 PB센터 두 곳을 조만간 서울에 개설하기로 했다. VVIP를 전담하는 프라이빗뱅커의 경우 최소 10년 이상 경력의 팀장급 중 근무 성적과 평판 조사를 거쳐 선발한다는 계획이다.

하나은행은 그동안 10억원 이상 고객을 대상으로 PB점을 운용했지만, 이와 별도로 30억원 이상 초고액 자산가에 초점을 맞춘 특화점을 내기로 했다. 지난 7월에는 PB센터를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고령자를 위해 원거리 화상 상담 서비스인 ‘스마트PB 서비스’를 선보였다. 우리은행은 금융·세무·부동산 등 각 분야 전문가 수십 명으로 구성된 어드바이저리 센터를 서울·부산·호남·대구 등 네 곳에 별도로 두고 있다. 이들은 전국에 포진되어 있는 PB센터에서 전문 상담을 요청하면 즉시 파견된다. 우리은행은 올 들어 부산에만 두 개의 PB센터를 개설해 임시로 운영하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금융 자산 예치액에 따른 차별화된 서비스는 당연한 것이 아니냐”라고 말했다.

연회비 2백만원인 ‘VVIP카드’의 파격 혜택

신용카드 회사들도 VVIP 유치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연회비가 100만~2백만원에 달하지만 부가 혜택이 파격적인 것이 특징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VVIP카드는 이른바 상류층만 가입할 수 있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수익성이 낮아도 연체율이 거의 제로여서 별도 관리 비용도 들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현대카드의 ‘더 블랙’ 카드의 연회비는 2백만원이다. 초청을 받은 사람만 가입할 자격을 갖는다. 이 카드를 발급받으면 비행기 좌석 등급을 비즈니스에서 퍼스트 클래스로 높일 수 있다. 동반자 한 명은 무료 항공권을 받는다. 호텔을 이용할 때 각종 할인과 함께 무료 발레파킹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삼성카드의 연회비 2백만원짜리 ‘라움’ 카드는 ‘비서’ 서비스를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예컨대 미술을 공부하는 자녀를 위해 뉴욕 유명 미술 작가의 스튜디오를 방문하도록 주선하거나 개인 교습 기회를 제공하는 식이다. 예매하기 어려운 세계적 스포츠 행사나 음악 공연 티켓을 구해주기도 한다.

하나SK카드의 ‘클럽원’도 연회비가 2백만원이다. 미리 예약만 하면 여행을 떠날 때 최고급 수입차로 공항 왕복 리무진 서비스를 제공한다. 공항 VIP 라운지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한강에서는 프리미엄 요트를 대여해준다.

신한카드는 ‘오직 한 분의 명예를 위해 존재한다’는 슬로건 아래 ‘프리미어’ 카드를 내놓았다. 공항과 골프장, 명품관, 호텔 등을 이용할 때 할인 발레파킹 등 혜택을 준다.

KB국민카드의 대표 카드는 ‘태제’이다. 하나투어로 3인 이상 해외여행을 가는 경우 100만원 한도 내에서 한 명의 여행 비용을 지원하는 혜택을 제공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