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정들었던 ‘친정’을 박차고 나갔나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1.11.2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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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프로야구 스토브 시즌에 자유 계약 선수만 28명 쏟아져…각 구단 영입 경쟁 과열 양상

이택근 ⓒ 연합뉴스
“그야말로 FA(자유 계약 선수) 광풍이다. 역대 이렇듯 FA 신청자가 많았던 적도, 또 변수가 많은 스토브 시즌도 드물었다.” 한 구단 단장의 말이다. 사실이다. 이번 스토브 리그에서 FA 대상자는 총 28명이었다. 이 가운데 FA 신청을 한 선수는 17명. 이대호, 김동주, 정대현, 조인성, 이택근, 송신영 등 특급 선수들이 죄다 FA 시장으로 몰리며 올해 FA 시장은 과열 양상을 띠었다. 여기다 주요 FA 선수들이 소속팀에 남지 않고, 다른 팀으로 유니폼을 갈아입으며 내년 시즌 전력 판도가 순식간에 뒤바뀔 것으로 보인다. <시사저널>이 새로운 FA 풍속도를 살펴보았다.

나는 왜 떠나야 했나

잭팟(Jackpot)은 당첨자 없이 쌓은 복권 상금을 탔을 때를 뜻한다. 다른 의미로는 좋은 패를 들었을 때 돈을 거는 행위를 말한다. 야구계에서 FA를 잭팟이라고 부른다. 프로야구 선수는 9년간 규정된 이닝을 소화하면 FA 자격을 취득한다. FA 취득 해에 좋은 성적을 내면 십중팔구 몸값이 오르고 잭팟에 성공한다.

예년만 해도 선수가 잭팟을 터뜨려도 친정팀에서 터뜨렸다. 친정팀이 알아서 선수의 몸값을 챙겨주었다. 선수도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다른 팀보다는 기존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는 친정팀에 잔류하는 것을 선호했다. 하지만, 올 시즌은 각 팀의 FA들이 대거 친정팀을 떠났다. 선수들이 친정팀을 외면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구단의 소홀함이다. 대표적인 예가 있다. LG이다.

14년 동안 LG에 몸담았던 포수 조인성은 FA 신청 후, SK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애초 LG 잔류를 강력히 희망했지만, 구단의 미온적인 태도에 SK로 방향을 틀었다. LG는 조인성에게 총액 12억원에 2년 계약을 제시했고, 조인성은 계약 기간 2+1년에 총액 18억원을 바랐다. 마지막 협상에서 조인성이 2년에 총액 17억원까지 양보했지만, LG는 수정안을 내놓지 않았다.

SK 입단을 결정짓고서 조인성은 “돈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라고 털어놓았다. “우선 협상 기간에 구단과 세 번 만났다. 세 번 모두 당일이 되어서야 갑작스럽게 연락하거나, 전날 저녁 늦게 연락이 왔는데, ‘몇 시까지 구단으로 들어오라’라는 일방적 통보였다. 협상이라면 최소한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만은 보여야 하지 않나.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넥센과 한화를 선택한 이택근, 송신영도 “조금이라도 진정성을 보였다면 트윈스 유니폼을 계속 입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들 역시 “LG가 협상 내내 제시된 금액 이외에는 별도의 수정안을 내놓지 않았다. 되레 협상을 마치고 나오니 언론에서 나를 ‘돈밖에 모르는 선수’로 표현했다. 누가 그런 악의적인 정보를 흘렸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이대호 ⓒ 시사저널 박은숙
LG가 선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실패해 FA들을 놓쳤다면 롯데는 보이지 않는 힘 때문에 이대호와 임경완을 놓쳤다. 투자에 인색하다고 소문난 롯데는 이대호를 잡으려고 역대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고액인 100억원을 베팅했다. 하지만 롯데의 구애는 전혀 효과를 내지 못했다. 오릭스는 이미 내부적으로 롯데가 제시한 100억원을 웃도는 몸값을 이대호 영입 자금으로 준비한 터였다. 롯데는 “보이지 않는 손이 방해하고 있다”라며 오릭스를 겨냥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오릭스는 이대호 영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결국, 이대호는 한국 프로 출신 가운데 가장 높은 몸값을 받고 일본 진출을 매듭지었다.

보이지 않는 손 때문에 팀을 떠나기는 임경완도 마찬가지였다. 올 시즌 내내 임경완은 구단 최고위 관계자로부터 미움을 샀다. 이 관계자는 급기야 코치에게 대놓고 “임경완을 기용하지 마라”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양승호 감독은 되레 임경완을 중요한 순간마다 기용하는 강수를 두었다. 결국, 임경완의 대활약으로 롯데는 정규 시즌 2위까지 차지했다. 그럼에도 임경완이나 롯데나 틀어진 관계를 회복하기는 어려웠고, 임경완은 SK로 떠났다.

 꿈을 좇아 팀을 옮긴 선수도 있다. 정대현이다. 정대현의 시장가는 4년에 최대 35억원이었다. 어떤 팀에서 그만큼의 실탄을 준비했다. 하지만 정대현은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다. 정대현이 밝힌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계약 조건은 2년간 3백20만 달러(약 36억7천5백만원)이다. 세금 45%와 에이전트비 5%를 빼면 실제 수령액은 18억원 정도이다. 3% 정도만 세금으로 나가는 한국과 비교하면 17억원가량이 손해이다. 그러나 정대현은 “미국 진출은 오랜 꿈이었다”라며 전혀 후회가 없다는 표정이다.

우리는 왜 보내야 했나

임경완 ⓒ 연합뉴스
구단은 선수와 다른 입장이다. 하나같이 “보낼 마음이 없었는데 선수가 떠나갔다”라는 태도이다. 팀의 주축 선수 세 명을 떠나보낸 LG는 할 말이 많다. 구단 핵심 관계자는 “우리가 계약에 미온적이었다는 선수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선수들이 애초부터 높은 몸값을 제시했고, 구단의 중재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택근은 처음부터 50억원, 송신영은 15억원, 조인성은 20억원 이상을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LG는 그보다 더한 요구도 순순히 받아주었었다. 그런데 어째서 유독 올 스토브 리그에서만 짜게 나온 것일까.

이 관계자는 “최근 모그룹 사정이 좋지 않다. 모그룹으로부터 운영비를 지원받는 야구단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라며 궁핍해진 구단 살림살이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일부 LG 관계자는 “이참에 본격적인 팀 리빌딩을 하자”라는 자세이다. 젊은 선수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기존 스타일을 과감히 바꾸자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야구 관계자는 “성적 부진으로 박종훈 전 감독이 잘린 마당에 과연 LG가 리빌딩이 성공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겠느냐”라는 회의적 반응 일색이다.

SK는 이승호와 정대현을 잡는 데 실패했지만, 조인성과 임경완을 영입했다. SK 내부 관계자는 “이상보다는 현실에 치중한 결정이었다”라며 조인성, 임경완을 영입한 배경을 설명했다. “재활 중인 박경완이 과연 내년 시즌 초반 주전으로 뛸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 코칭스태프와의 불편한 관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상호는 허리에 미세한 금이 간 상태이다. 두 선수 모두 포수 마스크를 쓰지 못한다면 대안이 필요했다. 항간에는 조인성이 지명타자로 뛸 것으로 알려졌지만, 코칭스태프는 내심 포수를 원하고 있다. 임경완도 정대현이 떠나며 팀의 사이드암 투수가 부족해 이를 메우려고 영입한 경우이다. 이승호는 부상 우려가 있었다.”

SK가 현실에 치중했다면 한화는 미래를 내다보고 FA를 영입했다. 애초 한화는 이택근에 관심이 많았다. 이택근을 영입해 중심 타선과 외야진을 강화하려 했다. 하지만 이택근의 몸값이 50억원대로 치솟으며 관심을 접었다. 구단 내부에서는 “어차피 김태균이 돌아온다면 투수진을 강화하는 편이 낫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덧붙여 “박찬호가 입단한다면 선발진이 강해질 것이고, 그렇다면 수준급 FA 불펜투수가 필요하다”라고 결론 내렸다. 한화는 LG와 협상이 결렬된 송신영과 빠르게 연락을 취했고, 결국 사인까지 받아냈다. 한화의 이러한 적극적인 전력 강화 움직임은 창단 이래 처음이라는 것이 야구계의 중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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