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난 ‘팬택’, 창업자 지분도 살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1.11.27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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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아웃 졸업’ 예상되면서 박병엽 부회장의 ‘오너십’ 회복 여부에 관심…매각 시 ‘옵션’ 행사할 수도

지난 10월 6일 서울 상암동 팬택 본사에서 LTE폰 ‘베가 LTE’를 공개했다. ⓒ 연합뉴스
박병엽 팬택 부회장은 애플 창업자인 고 스티브 잡스와 곧잘 비교되곤 한다. 사업의 정점에서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재기에 성공한 인생 궤적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난 뒤 절치부심하다가 화려하게 복귀했듯이 박병엽 부회장도 올해 말 팬택의 워크아웃을 앞두고 포기한 지분을 회복해 ‘오너십’을 찾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채권단을 상대로 복잡한 수 싸움을 벌여야 하는 터라 박부회장은 채권단의 의중을 파악하며 ‘정중동’하고 있다.

박병엽 부회장은 지난 1991년 팬택을 설립했다. 10평짜리 아파트를 팔아 자본금을 마련했다. 회사는 급성장을 거듭했다. 지난 1997년 휴대전화 사업에 진출한 지 4년 만에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2005년에는 매출 4조8천억원, 세계 7위의 휴대전화 제조업체로 성장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지난 2007년 4월 결국 팬택은 워크아웃(기업 개선 절차)에 돌입했다. 4천명에 달하던 직원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박부회장은 피처폰 대신 스마트폰 시장에 ‘올인’했다. 연구·개발(R&D)에도 과감히 투자했다. 그 결과 회사는 16분기 연속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 한 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팬택의 매출은 지난해보다 1조원 이상 늘어난 3조원대로 추정되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 올해 말에 워크아웃을 졸업할 것으로 본다”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워크아웃 당시 4천억원대 지분 내놓아

박병엽 부회장(사진)이 팬택의 지분을 되찾는 방법에는 여러 변수가 있어 이목을 끌고 있다.
주목되는 사실은 박부회장의 잃어버린 지분 회복 여부이다. 그는 지난 2007년 회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4천억원대에 달하는 회사 지분을 모두 내놓았다. 그동안 월급쟁이 CEO로서 회사 정상화에 전력을 기울였다. 팬택 경영이 정상화되면서 박부회장의 경영 능력 또한 다시 주목을 받았다. 향후 회사 정상화 과정에서 박부회장이 ‘오너십’을 회복할 수 있을지 관심을 끄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부회장은 이미 지난 2009년 채권단으로부터 우선 매수 청구권을 부여받은 상태이다. 전체 주식의 10%에 달하는 스톡옵션도 내년 3월부터 행사가 가능한 터여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회사측은 현재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 채권단에서 판단할 문제라는 것이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회사 매각이나, 대주주 문제는 전적으로 채권단의 판단에 달려 있다. 워크아웃도 졸업하지 못한 상황에서 박부회장의 거취를 언급하는 것은 이른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박부회장 역시 언론과 만난 자리에서 “회사를 살려내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후 거취는 다음에 생각할 문제이다”라고만 말했다. 박부회장의 측근들조차 “속내를 모르겠다”라고 토로할 정도이다. 하지만 회사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박부회장이 채권단 눈치를 보면서 은밀히 스톡옵션 행사 시기나 자금 마련 방안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물밑으로 이미 지분 회복을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팬택이 올해 말 워크아웃을 졸업하고, 채권단이 회사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박부회장이 어떤 카드를 꺼낼지 주목된다.

추정 가능한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박부회장이 재무적 투자자를 끌어들이거나, 신디케이트론을 통해 독자 행보에 나서는 것이 첫 번째이다. 팬택의 장외 주가는 현재 4백원(액면가 5백원) 안팎이다. 전체 주식 수를 감안할 때 4천억원 정도만 확보하면 최대 주주가 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회사 안팎에서도 이같은 시나리오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이다. 산업은행을 포함한 채권단은 최근 국내외 주요 기업과 사모 펀드, 기관투자가를 상대로 LOI(투자 의향서)를 제출받았다. 신주 발행을 통해 2천억~3천억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국내 사모 펀드 세 곳이 유상 증자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최종 조율 과정에서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팬택의 실적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시장에는 불안 심리가 깔려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회사측 “경영권은 채권단이 판단할 문제”

매각 작업 역시 마찬가지다. 채권단은 당초 신주 희망자 중에서 채권단의 지분(구주+경영권)을 원하면, 절차를 거쳐 회사를 매각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IT 업황 부진과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 악화로 인수자가 나서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연내 경영권 매각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증시 애널리스트는 “채권단 입장에서는 높은 가격을 써내는 투자자를 원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주인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 박부회장을 앞세운 투자자들이 경영권을 인수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전망했다.

박부회장이 우선 협상자 선정에 참여한 펀드와 손을 잡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채권단이 보유한 구주를 처분하기 위해서는 우선 회사를 매각한 뒤, 재상장해야 한다. 박회장의 경우 우선 매수 청구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입찰에 탈락한 회사뿐 아니라 우선 협상 대상자와도 얼마든지 ‘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최근 산업은행이 박부회장을 불러 우선 매수권 부여 계약사와 관련된 조항을 손본 것도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우선 매수권 행사 과정의 기준을 명확히 해서 분란을 예방하자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무엇보다 채권단의 의중이 중요하다. 채권단은 최근 박부회장에게 우선 매수 청구권과 함께 스톡옵션까지 부여했지만, 채권단이 박부회장이 인수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낄 경우 복귀하는 데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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