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속살인범이 된 고교생 ‘가정 잔혹사’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1.11.27 12:5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상위 1%였던 고3 모범생, 왜 어머니 살해했나

지난 11월24일 성적에 대한 압박을 참지 못해 어머니를 살해한 지군이 살고 있던 집을 이웃이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너는 서울대 법대에 가야 한다. 왜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느냐. 다 너를 위해 하는 소리이다.” 아들을 끔찍이 아꼈던 어머니의 모정은 성적에 대한 집착으로 변했다. 하지만 ‘전국 1등이 되어야 한다’라는 어머니의 강요를 견디지 못한 아들은 결국 칼을 움켜쥐고 직접 어머니를 살해했다. 

지난 11월23일 서울 광진경찰서는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사체를 8개월 동안 방치한 혐의로 고등학교 3학년생인 지 아무개군(18)을 체포했다. 지군이 어머니 박 아무개씨(51)를 살해한 시점은 지난 3월1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연 그날 이들 모자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군은 중학교 때부터 전국 석차가 4천~5천등에 들 정도로 성적이 뛰어난 우등생이었다. 지군의 어머니는 평소 자신의 아들을 끔찍이 아꼈다. 하지만 지군이 중학교 2학년 무렵인 5년 전부터 지군의 가정은 불화를 겪었다. 그러면서 부모는 별거에 들어갔고, 아들과 함께 살았던 어머니의 모정은 ‘학교 성적에 대한 집착’으로 어긋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성적이 떨어지거나 공부를 하지 않으면 밥을 주지 않거나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때로는 야구 방망이와 골프채를 이용해 아들에게 모진 매질을 하기도 했다.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와 어머니의 폭행이 두려웠던 아들은 급기야 자신의 성적표를 위조하기에 이른다. 지군은 올해 초 받았던 모의고사 성적표의 등수를 전국 4천등에서 전국 62등으로 고쳐 어머니에게 보여주었다.

“전국 1등 강요하며 과도한 체벌 가했다”

지군이 숨진 어머니의 시체를 그대로 방치했던 안방. 지난 11월24일 이곳을 찾았을 때 사체가 부패한 잔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시사저널 유장훈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은 바로 ‘위조된 성적표’ 때문이었다. 경찰 조사에서 지군은 ‘3월14일이 ‘학부모 방문의 날’이라 어머니가 학교에 오기로 되어 있었다. 모의고사 성적표를 전국 4천등에서 62등으로 고친 것이 들통 나 혼날까 봐 겁이 났다’라고 진술했다. 결국 지군은 어머니의 체벌을 피하기 위해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이었다.

지군은 범행 전날인 3월12일에도 무려 10시간 동안 어머니에게 체벌을 받았다고 한다. 지군의 진술에 따르면, 어머니는 전국 62등으로 위조한 성적표를 보고 ‘더 잘해서 1등이 되어야 한다’라며 야구 방망이와 골프채로 번갈아가며 무려 10시간 동안 지군에게 체벌을 가했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 지군은 어머니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정오께 안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어머니의 왼쪽 눈을 부엌칼로 먼저 찔렀다. 지군은 저항하는 어머니의 목을 조르고 이조차 여의치 않자 다시 흉기로 목 부분을 찔렀고, 결국 살인에 이르렀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다. 지군은 어머니의 사체를 8개월 동안이나 안방에 그대로 방치했다.

충격적인 사실은 지군이 썩어가는 사체를 방 안에 두고 지금까지 계속 집에서 함께 생활했다는 점이다. 안방의 상황을 보면, 아마도 지군은 범행 직후부터 안방에는 거의 드나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군은 사체가 썩으면서 악취가 진동하자, 안방의 문 틈새를 공업용 본드로 밀폐해 냄새가 퍼지지 않게 하는 행동까지 보였다. 또 집으로 자주 친구들을 데려와 라면을 끓여 먹는 등 오히려 더 태연히 행동했다고 한다.

지군과 같은 다세대주택에 살고 있는 한 주민은 “5년 전부터 이곳에서 살았는데 예전에는 어머니와 함께 밤에만 잠깐 외출하고 친구들을 데려온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최근 몇 개월 동안은 거의 매일 친구들을 데려오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지군은 그동안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경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군은 사건이 발생한 이후 성적이 다소 떨어져 이번에 응시한 대학 수학능력시험 가채점 결과 3등급 정도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이번에 경찰에 체포되지 않았더라면 아마 중·상위권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군의 범행이 드러나게 된 것은 아버지의 신고 때문이었다. 지군의 아버지는 5년 전 아내와 별거한 이후 매달 100만원에서 2백만원가량의 생활비를 보냈을 뿐 직접적인 교류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집으로 찾아와도 집 밖에서 잠시 아들과 만날 뿐이었다. 어머니의 행방에 대해 물어도 아들은 ‘어머니도 가출했다’고 둘러댔기 때문에 큰 의심을 품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11월23일 밤 11시께 집 앞으로 찾아갔을 때 아들이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가로막자 이를 수상하게 여겨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사건 수사를 진행한 광진경찰서 관계자는 “처음에 아버지는 살인 사건인 줄은 모르고 문을 열어달라는 신고를 한 것이었다. 사건을 알게 된 후에는 아내가 평소 아들을 훈계하는 것이 지나치다는 것을 인정했고, 이렇게 된 것을 안타까워했다”라고 말했다.

지군이 경찰에 체포된 다음 날인 11월24일 <시사저널> 취재진은 지군의 집을 찾아갔다. 건물 2층에 있는 지군의 집 현관문에 다다르자 된장이 썩은 듯한 쾌쾌한 냄새가 풍겼다. 현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투명 창문을 통해 지군의 집 안방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방에는 사체만 치워져 있을 뿐 모든 것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웃 주민들 “지군의 행동이 수상했다” 증언

사건의 참혹함을 알리듯 벽면에는 구더기가 득실거렸고, 사체를 덮어놓은 용도로 쓰인 듯한 이불에도 사체가 부패된 잔해가 남아 있었다. 안방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의 시간은 사건이 벌어졌던 3월에 머물러 있었다. 3월 달력의 일정에는 어머니 박씨가 쓴 것으로 보이는 ‘3월6일 텝스(TEPS) 시험일, 3월10일 모의고사’와 같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달력의 메모만으로도 박씨가 아들의 학업에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동안 아들 지군의 행동에 수상한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지군이 살았던 집의 위층에 살고 있는 한 주민은 “밤이면 쇠붙이나 칼 등 뭔가 던지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건물이 울릴 정도였다. 또 (지군이) 베란다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장난감 레이저 총을 쏘는 등 이상한 행동을 했다. 소음도 심하고 행동이 이상해서 신고하려고 했는데 혹시 해코지라도 할까 봐 참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주변 취재 결과, 아버지가 경찰에 신고한 11월23일보다 훨씬 전부터 주민들은 아버지에게 “무언가 이상하다”라며 지군에 대해서 계속 주의를 환기시켰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 주민은 “아이 아버지가 지난 추석에도 찾아와 건물 앞에 서 있었다. 그래서 ‘아이가 이상하다’라고 이야기했더니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은 모양이니 이해해달라’라는 식으로 말하더라”라고 전했다. 그는 “수능을 보기 전날인 11월9일에 아이의 아버지가 찾아왔었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 서 있기에 ‘아이 행동이 이상하다. 쾌쾌한 냄새가 심하니 집 안에 들어가보라’라고 부탁했다. 그는 ‘아이가 심심해서 다트를 하고 노는 모양이다. 이제 시험이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가 보니 이해해달라’라며 또 선처를 구했다”라고 말했다.

‘1등이 되어라’라는 주문을 걸며 학대하는 어머니, 심각한 스트레스로 이상 행동을 보였던 아들 그리고 집을 떠나버린 아버지 등 세 식구는 각자의 문제를 알면서도 서로 계속 덮어두고 있었다. ‘서울대 법대생’이 되어야 했던 아들 지군은 이제 어머니를 살해한 ‘패륜아’로 전락하고 말았다. 과연 무엇이 그를 범죄자로 만들었던 것일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