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한국 대학생은 무엇으로 사는가] '비밀스런 성’ 문 크게 열어젖히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1.11.27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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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전 성관계에 대해 89%가 “긍정적”21%는 미성년자일 때 성경험

서울 연세대 교정에서 우산을 함께 쓰고 있는 대학생 커플. © 시사저널 임준선

대학생들의 성(性) 의식은 자유분방하다. 캠퍼스에서 진하게 애정 표현을 하는 것이 자유스러울 만큼, 성이 금기시되던 시대는 지났다. 친구들과 ‘성 고민’과 ‘성 경험담’도 스스럼없이 공유한다. 대학에서 ‘성(性)’은 이제 하나의 ‘문화’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성 개방으로 인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원하지 않은 임신이 낙태로 이어지는 등 정신·육체적인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사회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대학생 ‘성문화의 현주소’는 어디인지 살펴보았다.

한때 ‘혼전 성관계’가 죄악시되던 시기가 있었다.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혼전 성관계는 결혼의 큰 결격 사유였다. 혼전 성관계가 탄로나 이혼하는 부부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결혼 전의 성관계는 일종의 ‘불문율’처럼 되어 있었다.

하지만 요즘 대학생들의 생각은 판이하게 다르다. ‘혼전 성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무려 89%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물론 ‘결혼이 전제되어야 한다’(18.5%)거나, ‘서로 동의해야 한다’(35.0%)라는 조건을 내건 대학생도 있었다. ‘절대 안 된다’라고 한 부정적(10.1%) 입장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명지대 3학년에 재학 중인 박민환씨(가명·23)에게는 1년 넘게 사귄 여자친구가 있다. ‘결혼 상대’냐고 묻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박씨의 여자친구도 자신과 같은 생각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이들은 일주일에 서너 번씩 만나 데이트를 즐긴다. 술도 마시고, 여행도 간다. ‘둘의 관계가 어느 정도냐’라고 묻자 “보통의 연인들과 똑같다”라고 말했다. 스킨십은 물론 성관계도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두 사람은 왜 미래가 없는 ‘위험한 만남’을 지속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씨는 “연애와 결혼은 엄연히 다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연애 상대와 결혼 상대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결혼을 하느냐, 안 하느냐’일 뿐이다. 나머지는 다른 연인들과 같다. 서로 좋으면 결혼과 상관없이 ‘성관계’는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박씨에게 ‘여자친구가 임신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라고 묻자 “그럴 일은 안 생기겠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때 가서 생각해보겠다”라고 말했다.

“성관계 경험 있다” 39.9%

대학생들이 피임을 소홀히 하면서 생기는 부작용은 심각하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대학(원)생의 낙태율(15~44세 가임기 여성 1천명 기준)이 2009년 3.8건에서 지난해에는 8.8건으로 두 배 이상 상승했다. 전체 가임기 여성의 낙태는 줄어들고 있지만 유독 대학(원)생들의 낙태율은 급상승하고 있었다. 개방적인 성관계에 비해 뒷수습이 잘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보건 당국과 각 대학에서는 대학생들의 인공 임신 중절(낙태 수술)을 예방하기 위한 ‘생명 사랑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 등을 통해 다양한 홍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대학생 임신이 증가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가 혼전 성관계가 임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점이다. 게다가 성관계가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임신이 늘어나는 원인이 된다.

그렇다고 임신이 결혼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대학생 부모들도 ‘아이가 생겼기 때문에 결혼해야 한다’라는 생각에는 망설여진다. 자신의 미래를 상당 부분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상대방이 ‘결혼 상대’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 것에도 이유가 있다.

임신과 출산으로 ‘대학생 부부’가 되는 것은 흔한 경우가 아니다. 아이의 부모인 학생들과 양가 부모가 만나 결혼에 합의해야만 가능하다. 이것은 그나마 행복한 결말에 속한다. 부모에게 결혼 허락을 받지 못하면 공개 입양 절차를 밟는다. 출산 자체를 숨기려는 일부 대학생 부모는 ‘비밀 입양’을 가장해 돈을 받고 아이를 밀매하는 파렴치한 행동에 나서기도 한다. 지금도 ‘아기 매매’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대학생들이 어느 정도 성경험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설문 대상 1천명 중 39.9%가 ‘성관계 경험이 있다’라고 털어놓았다. 첫 성관계 시기는 대학생 때(77.6%)가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고등학생 때(15.5%), 중학생 때(3.4%) 순이었다. ‘초등학교 때 성경험을 했다’(2.1%)는 의외의 답변도 있었다. 이를 토대로 보면 미성년자일 때 성경험을 한 대학생들이 전체의 21%나 되는 셈이다.

대학생들의 성관계 대상은 누구였을까. 최근 대학가의 ‘연애 풍속도’는 크게 달라졌다. 눈에 띄는 것이 ‘나이 파괴’이다. ‘연상 연하’ 커플이 마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누나 같은 여자친구’ ‘동생 같은 남자친구’가 짝을 이룬다. 영화나 드라마의 주요 소재로도 등장하고 있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없다’라는 말이 실감 난다. 보통 남자 대학생들은 서너 살까지의 연상녀를, 여자 대학생은 한두 살 연하남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관계 상대는 이성 친구가 압도적

서울 연세대 캠퍼스에서 팔짱을 낀 채 나란히 걸어가는 남녀 대학생. © 시사저널 임준선
국민대 2학년생인 유지니씨(가명·21)는 “소개팅을 통해 만난 연하남을 5개월 정도 사귄 적이 있다. 처음에는 ‘누나, 누나’ 하면서 잘 따라서 좋았다. 또 내가 나이가 많아서인지 항상 존중해 주었다. 그런데 사귀다 보니 요구하는 것도 많고, 너무 의지하려고만 했다. 나도 힘들고 기대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헤어졌다. 스킵십 정도는 했지만 성관계까지는 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조사 결과 대학생들의 ‘성관계 대상’으로는 ‘이성 친구’(90.7%)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학교 선배’(2.5%)와 ‘학교 후배’(1.9%)라고 응답한 숫자는 비슷했다. 성관계 상대자가 ‘유흥업소 종사자’(집창촌 포함)라고 밝힌 대학생은 1.4%에 불과했다. 


우리 사회에서 ‘동거’와 ‘혼외 출산’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주변 사람들의 눈총도 따갑고 여러 가지 제약도 따른다. 반면 ‘동거’를 보는 대학생들의 인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대학 내에서는 간간히 동거하는 커플도 찾아볼 수 있다. 기성 사회와 대학생들의 ‘동거’를 보는 시각이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이런 현상은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대학생들에게 혼전 동거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괜찮다’가 36%였다. ‘결혼을 전제로 하면 괜찮다’(34.6%)까지 합치면 전체 70.6%가 동거에 찬성했다. 하지만 인식과 현실의 차이는 상당했다. ‘이성과 동거한 경험이 있다’라는 응답은 3.4%에 불과했고, 96.6%는 ‘없다’라고 답했다. 동거를 해볼 생각은 있지만 실제 동거까지는 실행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김영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동거와 혼외 출산에 대한 인식을 바꿔 ‘저출산’ 문제의 해결책으로 삼자”라는 주장을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 김연구위원이 제기하는 핵심 골자는 기성세대의 부정적인 인식을 깨고, 젊은이들의 생활 양식이 우리 사회에 정착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말하는 ‘대학생들의 성 상식’

성인인 대학생들의 성관계는 본인들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다. 다만 성관계에 대한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임신을 원하지 않을 경우 제대로 된 피임법을 알고 실천해야 한다. 성 지식이 짧고 가볍게 생각하면서 생기는 부작용은 걷잡을 수 없는 후회를 남길 수가 있다. 산부인과 전문의에게 ‘대학생의 올바른 성생활’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성하 더와이즈황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최근에 대학생들을 상담해보면 아쉬울 때가 있다. 첫 성경험을 한 후 불안해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혹시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하고 고민한다. 어떤 학생은 질에 염증이 생기거나 냉(여성 생식기에서 분비되는 분비물)이 안 좋아져서 오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이성하 과장은 여대생들이 자신의 몸을 잘 돌보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 성관계를 하는 만큼 몸 관리도 철저하게 하라는 뜻이다. 그는 “병원에 오는 학생들 중에는 병이 크게 악화되어 오는 경우가 있다. 그때까지 병을 숨기고 혼자 끙끙 앓다가 참지 못할 때가 되면 병원을 찾는다. 성관계를 시작하는 시기에는 정기적으로 산부인과 검진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라고 강조했다.

남자 대학생들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성관계는 여자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남자들의 경우는 중·고등학교 때에는 성이 많이 억눌려 있다. 그렇다 보니 포르노물 등을 통해 해소하려고 든다.

이성하 과장은 “남학생들은 대학에 와서 성 욕구를 분출한다. 그렇다고 여자친구를 성을 해소하는 창구로 보아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을 허락받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여자친구가 다 받아줄 수 없는데도 일방적으로 관계를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성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실천하고 사랑을 키우는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홍영재 산부인과 의원의 홍영재 원장은 “불건전하고 무분별한 성관계로 성병에 걸린 대학생을 상담한 적이 있다. 어떤 학생은 배란기에 각기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한 후 임신을 했는지 여부를 두고 불안해했다. 가만히 보면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성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 미리 알고 대비하거나 사후에 조치를 취해도 임신은 얼마든지 막을 수가 있는데도 말이다. 성생활을 하면서도 피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알려고 하지 않는다. 사전에 피임을 하지 않았어도 당황하지 말고 72시간(만 3일) 이내에만 사후 피임을 하면 임신을 막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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