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한국 대학생은 무엇으로 사는가] 취업 희망 1순위는 “삼성이나 구글”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1.11.2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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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선호도 조사에서 국내외 1위…2~3위는 LG·현대, 취업 시 첫 번째 고려 사항은 “근무 조건”

 

지난 11월11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서 취업 준비생들이 적성 테스트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4학년 이정원씨(22)는 올해 초부터 전공 강의가 끝나자마자 학교 중앙도서관으로 향한다. 늘 그렇듯이 도서관은 학생들로 붐빈다. 오후 5시쯤 도서관에 도착하면 빈자리를 찾기 위해 열람실 복도를 바삐 오가는 학과 친구와 마주치기 일쑤이다. 열람실 곳곳에 자리 잡은 국가고시 준비생들이 눈에 띈다. 열람실 창가나 벽 쪽 자리에 앉아 칸막이까지 치고 2월 국가고시 1차 시험에 대비해 마무리 공부에 빠져 있다. 정원씨의 학과 친구 절반가량은 국가고시나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경제학과 학생들에게는 학과의 특성상 행정고시나 공인회계사(CPA) 시험이 인기이다. 정원씨는 “요즘은 일찌감치 취업에 대비하는 1~3학년생들까지 중앙도서관 열람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역에 위치한 삼성전자 빌딩. ⓒ 시사저널 임준선
정원씨는 저녁 10시까지 도서관에서 전공 과목과 제2 외국어를 공부한다. 취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 제2 외국어로 프랑스어를 익히고 있다.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데이비드 캠퍼스에 교환학생 자격으로 연수를 다녀온 터라 정원씨의 영어 성적은 우수하다. 토요일 아침에는 집 근처 도서관으로 향한다. 취업 대비 스터디 모임에 가기 전에 논의 주제나 과제에 대해 미리 연구하기 위해서다. 일요일은 쉰다. 재충전을 하기 위해서다. 정원씨는 이와 같은 일정을 쳇바퀴 도는 것처럼 지난 11개월 동안 해왔다. 

 전공이나 희망 취업 직종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으나 한국 대학생의 캠퍼스 생활은 정원씨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갖가지 자격증이나 학점, 외국어 같은 조건, 이른바 ‘스펙’이 취업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라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대학생이 부지기수이다. 대학이 취업 학원으로 전락한 것은 청년 실업률 탓이다. 전체 실업률은 3.3%에 불과하지만, 청년 실업률은 7.6%나 된다. 각종 취업 학원에 다니는 취업 준비생이나 아예 구직 자체를 포기한 이까지 합치면 청년 여섯 명 가운데 한 명은 ‘백수’이다. 박명수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실업자 통계에 잡히지 않지만, 사실상 실업 상태에 있는 취업 준비생이나 구직 단념자까지 포함하면 실질 청년 실업률은 16.7%까지 치솟는다”라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년과 상관없이 대학생들의 최대 관심사는 취업이다.

 

“안정감, 자부심, 높은 인지도가 이유”

<시사저널>의 ‘대학생 선호도 및 생활 의식 조사’ 대상 학생들이 취업하기를 희망하는 회사 1위로 꼽은 곳은 삼성이다. 삼성그룹 산하 82개 계열사 가운데 아무 곳이나 상관없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룹의 기함 삼성전자를 삼성과 동일시하는 대학생이 많다.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4학년생 임송씨(22)는 “삼성이라 하면 아무래도 삼성전자 아니겠나.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고 세계 시장에서 탁월한 경쟁력을 자랑하는 곳도 삼성전자이다 보니 삼성이라고 답한 대학생 상당수가 삼성전자를 염두에 두고 답한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비교적 높은 순위에 오른 LG·현대·SK라고 답변한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인다. LG라고 하면 LG전자나 LG화학 같은 그룹 대표 기업을 생각할 것이다.  

삼성을 선택한 대학생은 국내 최대 기업 집단에 소속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정원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에 소속되어 있다는 안정감이나 자부심을 갖고자 하는 학생들이 삼성을 선택했을 것이다. 나중에 직장을 옮기더라도 삼성 출신이라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브랜드 인지도도 한몫했다.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4학년생 유봉철씨(26)는 “(삼성이라는) 이름값이 취업 희망 회사 선택에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삼성이라는 브랜드에 익숙하다 보니 회사를 하나 고르라고 하면 삼성이 떠오르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삼성에 들어가고 싶지만, 삼성이라는 기업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생 김도형씨(28)는 “삼성은 가장 잘나가는 대기업이라 근무 조건이나 급여 수준은 좋겠지만, 노동조합이 없고 신자유주의 색채가 강해서 싫다. 학교 친구 상당수가 삼성에 대해 비슷하게 평가하고 있으면서도 삼성에 지원서를 넣고 있고 합격하면 입사하겠다고 생각하더라”라고 말했다. 취업을 앞두고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거나 타협점을 찾는 대학생의 모습이 엿보인다. 업무 강도가 세 삼성 입사를 꺼리는 이도 있다. 임송씨는 “업무 강도가 지나치게 센 삼성보다는 자동차업체에 입사하기를 원하는 친구가 의외로 많다. 여학생 일부는 화장품이나 백화점, 항공사를 선호한다”라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마운틴뷰에 위치한 구글 본사. ⓒ 연합뉴스

 

“구글·애플의 창의적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대학생들은 취업하기를 희망하는 기업 2위와 3위로 각각 LG와 현대를 꼽았다. 재계 순위에서는 현대차그룹이나 SK그룹이 LG그룹을 앞서는 것을 감안하면 SK그룹이 4위로 밀리고 현대차그룹에 대해 아예 답변자가 없는 것은 뜻밖이다. LG그룹이 오랫동안 재계 2위에 자리했던 것이 아직 대학생들의 의식 속에 남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현대라고 답한 대학생은 현대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백화점그룹을 비롯해 범(汎)현대가를 지목한 것으로 해석된다. 국내 대학생에게 신세계나 CJ 같은 범삼성가 그룹은 삼성과 별개 기업으로 인식되지만 현대차, 현대중공업, 현대백화점 같은 범현대가 업체는 별개 기업으로 구분하지 않고 ‘현대’라는 울타리 안에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현대’라는 브랜드가 회사명 앞에 붙은 데다 계열 분리가 삼성가보다 상대적으로 늦어 잘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한국 대학생들은 외국 기업으로는 구글과 애플에 취업하기를 희망했다. 인터넷과 IT(정보기술) 분야에서 창의성과 혁신을 중시하는 업체를 선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도형씨는 “구글이나 애플은 창의적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다. 아직까지 조직에 속한 적이 없는 대학생들이 창의적이거나 혁신적인 기업을 선호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정원씨는 “삼성이라면 조직이 우선시되고, 가족과 같은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지 않나. 이와 달리 구글은 임직원 개성을 중시하고 업무 분위기가 자유롭기로 유명하다. 두 회사가 대학생이 취업하기 희망하는 국내외 기업 1위에 동시에 뽑혔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라고 말했다.

취업할 때 고려하는 사항은 근무 조건, 급여 수준, 복지 수준 순이었다. 응답자의 60% 이상이 근무 환경을 우선 고려한다고 답했다. 임송씨는 “주말에 쉬느냐, 퇴근을 정시에 하느냐, 안정적이고 오래 다닐 수 있느냐를 직장을 선택할 때 우선적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이정원씨는 “연봉보다는 회사 분위기를 먼저 보겠다. 자기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회사를 원한다. 그런 측면에서 업무 강도가 지나치게 센 회사에는 가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상당수 여학생은 출산이나 육아 휴직 제도가 갖춰져 있는지도 살핀다. 임송씨는 “임직원 가운데 여자가 많은지를 보게 된다. 아무래도 여성이 많으면 출산이나 육아 관련 지원 제도가 잘 갖추어져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응답자 절반이 “희망 초임 연봉은 3천만원” 

근무 조건 가운데 급여 수준 항목을 선택한 이는 22%가량이다. 응답자 절반이 희망하는 초임 연봉으로 3천만원이라고 선택했다. 대학생에게 연봉은 단지 수입액으로 그치지 않는다. 임송씨는 “연봉은 자신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특히 동년배 친구와 초임 연봉을 비교하게 되는데 친구보다 낮으면 기분이 좋겠는가”라고 말했다. 김도형씨는 “취업 준비생과 대화하다 보면 초임이 입사 회사를 선택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말하는 이가 많았다”라고 말했다.

비전이나 미래 성장이라는 요소를 중시하는 응답자는 25.9%이다. 첫 직장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미래 성장 가능성이나 비전을 무시할 수 없는 듯하다. 유봉철씨는 “미래를 보았을 때 지렛대(레버리지) 효과가 있는 업종이나 직장을 찾고 싶다”라고 말했다. 


(왼쪽) 안철수 ⓒ 시사저널 윤성호(오른쪽) 이건희 ⓒ 시사저널 이종현

조사 대상 대학생의 절반가량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함께 일하고 싶은 최고경영자(CEO)’로 꼽았다.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4학년 임송씨는 “안철수 원장은 깨끗하고 도덕적인 기업인으로 알려졌다. 청년이 처한 현실을 이해하는 ‘시대의 멘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주식 기부 같은 자선 사업에 나서기도 한다. 이로 인해 대학가에 ‘안철수 효과’라는 조어가 회자될 정도로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라고 말했다.

2위에 오른 이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다. 네 명 가운데 한 명꼴로 이회장을 뽑았다. 경영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 가운데 무엇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졌다. 도덕성을 중시하는 이는 안철수 원장을, 성과나 안정을 우선시하는 학생은 이건희 회장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김도형씨는 “취업을 앞둔 대학생 상당수가 세계 최대 IT 그룹 총수인 이건희 회장을 멘토로 삼고 싶어 한다”라고 말했다. 임송씨는 “취업을 앞둔 대학생은 불안하다. 경제적인 안정이나 성과를 중시하는 대학생 상당수는 이건희 회장과 일하고 싶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왼쪽) 스티브 잡스 ⓒ 연합뉴스(오른쪽) 빌 게이츠 ⓒ 연합뉴스
외국인 중에서는 고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를 함께 일하고 싶은 최고경영자로 가장 많이 뽑았다. 팀 쿡 애플 회장은 4위에 올랐다. 조사에 응한 대학생 40% 이상이 전·현직 애플 최고경영자를 선택했다. 2, 3위에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와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주가 올랐다. 연세대 경제학과 이정원씨는 “국내에서는 언론사에 취직하고 싶지만 외국 기업에서 일할 기회가 생긴다면 페이스북에 입사하고 싶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좋아하다 보니 페이스북이라는 것을 만들어낸 마크 주커버그와 일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에릭 슈미츠 구글 회장이 6위에 오른 것은 의외이다. 취업하기를 희망하는 기업 1위로 구글을 선택했으나 막상 구글 최고경영자와 일하고 싶은 대학생은 5%에도 미치지 못했다. 김도형씨는 “시기적으로는 스티브 잡스나 팀 쿡 같은 애플 경영자가 주목을 받지 않느냐. 그렇다 보니 잡스나 팀 쿡은 아는 이가 많으나 에릭 슈미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라고 말했다. 유봉철씨는 “구글이 대용량 서버나 검색 알고리즘으로 사업을 하는 까닭에 CEO 역량이 애플보다 중시되지 않는다. 이와 달리 애플은 창업부터 제품 기획이나 발표까지 스티브 잡스라는 CEO의 개인 역량에 의존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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