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에 더 절박해진 한나라 ‘당심’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1.11.2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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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은 지금 2004년 ‘탄핵 정국’ 이후 최대 위기에 몰려 있다. 당 내부에서는 ‘쇄신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전면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당의 간판을 내릴 각오도 해야 한다”라는 주장도 곳곳에서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 대의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시사저널>이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에 의뢰해 대의원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박근혜 전 대표가 당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9월16일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시사저널 유장훈

11월21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나라당 창당 14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지난 1997년 당시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가 조순 민주당 총재를 끌어들이면서 탄생한 한나라당은 현존하는 정당 중 최장의 역사를 갖고 있다. 실질적으로는 김영삼 정권의 신한국당뿐만 아니라, 노태우 정권의 민자당, 전두환 정권의 민정당 그리고 박정희 정권의 공화당으로까지 그 뿌리가 거슬러 올라간다. 비록 1997년 12월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10년간 야당의 가시밭길을 걸었지만, 2007년 12월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정권을 재탈환했고, 2008년 4월 총선에는 과반수가 넘는 1백53석(현재는 1백69석)을 얻는 대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불과 3년6개월여 만에 환호성은 탄식과 침묵으로 변했다. 이날 창당 14주년 기념식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어색함 그 자체였다. 행사장에 참석한 의원은 3분의 1도 채 안 되는 50명 남짓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무거운 표정으로 일찍 자리를 떴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 “새롭게 거듭나겠다”라는 축사도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대의원과 당원들의 지도부에 대한 항의와 고함 소리에 묻혔다.

한나라당이 2004년 ‘탄핵 정국’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쇄신파’를 중심으로 한 일부 의원들은 “당의 간판을 내릴 각오도 해야 한다”라며 사실상 당 해체를 주장할 정도이다. 유력 대권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 주변에서는 ‘박근혜 신당설’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 이재오 의원 등 이른바 ‘비박(非朴)연대’를 중심으로 한 분당 시나리오도 나온다. ‘안철수 신당’이 출범하면 당이 사분오열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돈다. 집권 말기의 레임덕 현상이 청와대보다 오히려 여당에 먼저 찾아든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비상시국을 한나라당 대의원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시사저널>이 ARS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리얼미터’에 의뢰해 한나라당 대의원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것은 11월23일이었다. 지역 할당 추출에 따라 전국 1천29명의 한나라당 대의원들이 IVR(자동 응답 조사)에 응했다. 95% 신뢰 구간에 오차 범위는 ±3.1%이다. 전날 여당의 한·미 FTA 비준안 강행 처리와 이로 인한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의 최루탄 터뜨리기 등으로 국회가 한바탕 소란을 피운 직후였다. ‘최루탄 국회’의 여파 탓이었을까. 본지 여론조사에 응한 한나라당 대의원들은 예전보다 강한 결집력을 보여주었다. 지금의 홍준표 대표 체제를 지지한다는 응답이 60%에 달했고, 당의 변화 정도 역시 ‘당의 정책과 노선이 바뀌어야 한다’라는 소극적 변화 주문이 가장 많았다. 반면 ‘당명을 바꿔야 한다’는 요구는 상당히 적었다. 그러면서도 ‘현 상태로 재집권이 가능하다’라는 응답은 단 19.8%에 그쳐 대의원들 사이에서도 위기감은 상당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22~23쪽 딸린 기사 참조).

이번 조사를 통해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난 현상은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한 대의원들의 절박한 기대감이 지표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의 위기감이 커질수록 박 전 대표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박 전 대표가 당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의원 중 54.2%가 ‘지금 나서야 한다’라고 답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응답은 23.7%였다. 반면 내년에 있을 ‘대선 경선 때까지 나서면 안 된다’라는 대답은 10.7%에 그쳤다.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인 박 전 대표가 사실상 한나라당을 이끌어야 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대선 후보 지지도, 박근혜 전 대표 67.4%

‘여권의 대통령 후보로 누구를 지지하는가’라는 질문에서도 박 전 대표에 대한 전폭적인 기대감을 엿볼 수 있다. 질문에 응한 전체 대의원 중 무려 67.4%에 달하는 대의원이 박 전 대표를 꼽았다. 반면 ‘반박(反朴)’을 부르짖는 당 안팎의 다른 ‘잠룡’들은 모두 한 자릿수 지지율에 그치며 박 전 대표와 현격한 격차를 드러냈다. 최소한 여권 내에서만큼은 ‘박근혜와 일곱 난장이’가 다시 한번 증명된 셈이다.

박 전 대표는 특히 자신의 아성인 대구·경북(82.7%)과 강원(80.4%)에서 압도적 지지를 나타냈고, 충청권(76.3%)과 부산·울산·경남(74.2%)에서도 평균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 서울(60.2%)과 인천·경기(62.7%) 등 수도권에서는 자신의 평균 지지율에 조금 못 미쳤고, 광주·전남(47.9%)과 전북(53.6%) 등 호남에서는 저조했다.

리얼미터의 이택수 대표는 “리얼미터에서 매주 정례적으로 실시하는 일반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여권의 대통령 후보 지지율에서 박 전 대표는 통상 50%대를 유지한다. 따라서 이번 대의원 여론조사는 일반 국민들보다 박 전 대표에 대한 기대감이 더 높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다. 대의원들 중에서도 ‘친이’와 ‘친박’ 성향으로 나뉘는 점을 감안하면, 친이 성향의 대의원들도 결국 현 상태로는 경쟁력 차원에서 박 전 대표를 대신할 만한 대안이 없음을 서서히 인정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는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최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돌풍을 일으키면서 박 전 대표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여론조사 내용을 보면 침묵하던 부동층이 안원장에게 쏠렸을 뿐, 박 전 대표의 지지율에는 큰 변화가 없다. 30%대 정도의 견고한 지지층이 이미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박 전 대표가 당을 실질적으로 이끌었으면 하는 대의원들의 절박함이 느껴진다”라고 덧붙였다.

박 전 대표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7.9%에 그쳤다. 그나마 전북(17.9%)과 인천·경기(13.7%)에서 다소 높은 지지율을 나타냈을 뿐이다. 수도권과 전북을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 지역에서는 모두 5% 미만에 머물렀다. 3위를 차지한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4.7%)와 4위에 오른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4.2%) 역시 광주·전남에서만 상대적으로 다소 높은 지지율을 나타냈을 뿐, 수도권을 비롯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5% 미만의 고전을 면치 못했다. 단, 이의원의 경우 광주·전남에서 자신의 전체 지지율보다 무려 다섯 배에 달하는 20.8%의 높은 지지율을 얻은 점이 눈에 띈다. 오는 11월28일 <이재오의 정치 성찰> 출판 기념회를 광주광역시 금남로에 있는 충장서림에서 여는 등 최근 들어 이의원이 부쩍 호남 지역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말이 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지난 11월21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한나라당 창당 14주년 기념식에서 황우여 원내대표, 홍준표 대표, 유승민 최고위원(왼쪽부터)이 행사에 참석해 있다. ⓒ 시사저널 유장훈

김문수·정몽준 등 ‘비박연대’ 위력은 미약

김문수·정몽준·이재오 등 이른바 ‘비박연대’의 위력은 아직 대의원들에게는 미미한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향후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음을 전망하는 전문가도 많다. <보수 집권 플랜B>의 저자 홍기표씨는 “아직은 시간이 남아 있다. 특히 내년 4월 총선 결과에 따라 한 차례 크게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라고 전망했다.

그는 “김문수·정몽준·이재오 등 이른바 비박연대는 결국 한 명의 대표 주자를 내세울 것이고, 거기에서는 여전히 김지사가 다소 더 유력해 보인다. 또한 당 밖의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의 움직임도 있어 당 안팎에서 ‘박근혜 흔들기’를 계속할 경우 대의원들의 당심(黨心) 또한 상황 변화에 따라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다. 지난 10월26일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처음에는 한나라당 내에서 나경원 후보에 대해 다들 회의적이었으나 결국 막판 시간에 쫓기자 대안 부재로 나후보를 밀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대선 역시 시간이 흘러가고 대안부재라는 여론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박 전 대표를 밀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라고 전망했다.

그 밖에 대권 불출마를 선언한 바 있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3.3%에 그쳤고,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과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 정운찬 전 국무총리 등의 지지율은 모두 1% 안팎에 그쳐 당 외부 인사의 한계와 함께 한나라당 대의원들의 보수 성향을 그대로 드러냈다. 

‘야권에서는 누가 대권 후보로 출마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에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원장이 오차 범위 내에서 접전을 펼쳤다. 손대표가 26.8%, 안원장이 24.9%를 각각 얻었다. 여권에서는 야권의 대선 주자 경쟁을 결국 손대표와 안원장의 한판 승부로 예상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야권 빅3’ 중의 한 명인 문재인 혁신과 통합 공동 상임대표에 대한 지목률은 14.1%에 그쳤다. 그 밖에는 김두관 경남도지사(6.2%),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2.8%),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1.9%), 한명숙 전 국무총리(1.8%) 순으로 나타났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한나라당 대의원 여론조사에서 단순히 박 전 대표에 대해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나왔다는 것 자체로는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박 전 대표가 과연 여권의 대표 주자로 나섰을 때 야권 통합 대표 주자와 맞서서 이길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이번 조사에서 좀 더 중요하게 보아야 할 부분은 ‘내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재집권 가능성을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대의원들의 반응이다. ‘현 상태로 재집권이 가능하다’라는 응답이 단 19.8%에 그친 것만 봐도 대의원들은 ‘지금으로서는 내년 대선이 어렵다’라고 이미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보수 대통합으로 가야 한다’(54.0%)라고 말한 것이다. 김문수 지사, 정몽준 전 대표, 박세일 이사장뿐만 아니라 이회창 전 대표까지 중도 보수를 모두 아울러서 함께할 수 있는 인사는 모두 한자리에 모여 대통합으로 가지 않고서는 야권 통합에 맞서서 이길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한나라당은 당내 ‘쇄신’만 얘기할 뿐, ‘통합’에 대해서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국민들은, 또 대의원들은 통합을 바라고 있는데 자기들끼리만의 쇄신만 얘기하는 것이 지금 한나라당의 답답한 현실이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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