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아서 질리는 형식은 가라” 토크쇼, 시대의 코드를 묻다
  •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1.12.12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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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인기 프로그램들, 시청률 급락하자 새로운 길 모색

MBC 박찬호 편 ⓒ MBC 제공
지금 토크쇼는 정체기이다. 과거 <황금어장>이나 <놀러와> <해피투게더> <강심장> 같은 토크쇼가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던 시기는 지나갔다. 이제 고작해야 10% 남짓한 시청률을 내면 선방한 것으로 평가되는 상황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강호동의 잠정 은퇴가 가져온 영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빠져나가고 <황금어장>은 <무릎 팍 도사>가 사라진 공간을 <라디오 스타>로 채워야 했고, <강심장> 역시 그의 빈자리를 이승기 혼자 메워야 했으니까. 당장 시청률이 뚝 떨어지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관심도는 점점 떨어지는 추세이다. 그만큼 빈자리가 느껴진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렇게 시청률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이유는 이들 토크쇼의 연식(?)이 너무 오래되었다는 점이다. 이 낡아버린 형식이 개선되지 않기 때문에 시청자는 게스트가 달라져도 다른 토크쇼를 보고 있다고 그다지 느끼지 못한다. 다 그것이 그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이다. 이는 기대감을 떨어뜨리고 당연히 시청률 하락으로 이어진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시청률이 빠지고 있는 토크쇼의 주 MC가 강호동, 유재석이라는 점이다. 물론 강호동은 잠정 은퇴로 빠져버렸고 유재석은 여전히 그 똑같은 형식의 토크쇼를 이끌고 있지만, 만일 강호동이 잠정 은퇴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런 흐름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제아무리 유재석, 강호동이라도 식상해진 형식의 반복을 이겨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꾸로 말하면 이들 토크쇼에서 유재석과 강호동에 기대는 비중이 너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초반에 형식이 여전히 참신성을 가지고 있을 때, 이 두 사람이 지닌 발군의 실력은 프로그램을 훨훨 날게 만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형식의 단물이 빠지기 시작하자, 오히려 이들에게 지나치게 기댔던 토크쇼의 매너리즘은 프로그램을 더욱 식상하게 만들었다. 강호동이 사라진 자리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이른바 유재석 토크쇼가 일제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그런 점 때문이다.

SBS 추신수 편 ⓒSBS 제공
그러자 그 자리를 차고 들어오는 새로운 토크쇼가 생겨났다. 월요일 밤 토크쇼의 대명사였던 <놀러와>가 고개를 숙인 자리에 신생 토크쇼인 <안녕하세요>가 들어왔다. 같은 시간대에 <힐링캠프>가 등장한 것도 <놀러와>를 더욱 위축되게 만든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이 새로 생긴 두 토크쇼 중에서 <안녕하세요>가 더 확실하게 우위를 선점하게 된 것은 이유가 있다. 그것은 물론 공간을 바꾸고 ‘힐링’이라는 개념을 넣어 변화를 주었지만 여전히 연예인 토크쇼에 머물러 있는 <힐링캠프>보다, 특별한 일반인 토크쇼로 차별화한 <안녕하세요>가 훨씬 더 이목을 끌었기 때문이다.

일반인 출연해 커밍아웃하는 <안녕하세요> 눈길

<안녕하세요>는 커밍아웃을 전면에 내세운 토크쇼이다. <전국노래자랑>을 패러디해 만든 ‘전국고민자랑’은 매회 전국의 갖가지 희귀한(?) 고민들의 발언대 역할을 한다. 키가 너무 크고, 털이 너무 많고, 발이 너무 큰, 그런 신체적인 고민은 물론이고 특이한 이름 때문에(예를 들면 람보나 고자 같은) 고민인 사람도 있고, 발명에 미친 남편 때문에 또 너무 부려먹는 아내 때문에 고민인 남편도 있다. 이 프로를 보다 보면 느끼게 된다. 세상은 넓고 고민도 참 많다는 것을. ‘전국고민자랑’이라는 코너명이 말해주는 것처럼 이 커밍아웃 토크쇼는 그러나 고민을 서로 자랑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게 고민이에요? 내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에요.” 이런 뉘앙스가 이 토크쇼에서는 묻어난다. 그래서 고민에 대해 평소와는 다른 태도를 경험하게 된다. 자기가 가진 고민이 ‘가장 큰 고민’이라고 강변하게 되는 것. 그래서 1등에 오르면 상금도 받게 된다. 물론 떨어진다면 그것은 자기 고민은 고민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니 이 프로그램에서 고민을 자랑(?)한 이들은 모두가 즐거울밖에.

한편 목요일 토크쇼의 최강자였던 <해피투게더> 역시 새롭게 생겨난 <주병진 토크 콘서트>의 도전을 받고 있다. <주병진 토크 콘서트>는 주병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듯이 그가 가진 역량을 극대화한 토크쇼이다. 특유의 차분하게 진행되는 토크쇼 분위기와, 그 속에 과거 <일밤>의 ‘배워봅시다’ 같은 코너가 보여주었던 버라이어티쇼의 형식이 덧붙여져 있다. 첫 회에 게스트로 나온 박찬호와 함께 주병진은, 특유의 진지한 토크를 나누면서 중간에 공을 던져 속도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방청객 두 명을 불러서 공을 던지게 하고 그 속도를 합쳐 시속 1백60㎞가 넘으면 선물을 주는 이벤트도 펼쳤다. 이런, 말이 아닌 몸으로 보여주는 코너는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토크쇼에 생동감을 부여했다. 하지만 이런 것보다 이 토크쇼가 특별한 것은 비연예인 게스트를 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과거에도 몇몇 비연예인 게스트를 초대하는 토크쇼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이런 토크쇼가 거의 사라진 것이 사실이 아닌가. 유일한 비연예인 게스트를 포용하는 토크쇼가 <무릎 팍 도사>였지만, 이마저 사라졌다. <주병진 토크 콘서트>는 그 없어져가는 명맥을 이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되었다. 이것은 최근 비슷비슷한 연예인 게스트들의 반복 출연으로 식상해진 토크쇼를 생각해보면 <주병진 토크 콘서트>가 갖는 최대의 차별점이자 강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추억’ 좇지 말고 당대의 대중이 요구하는 화법과 형식에 민감해야

물론 약점도 있다. 그것은 제아무리 한 시대를 풍미한 주병진이라고 해도 시간이 만들어내는 어떤 격차를 비켜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주병진 토크 콘서트>는 지금껏 주병진이 구축해온 일련의 방송 노하우를 모두 끄집어내 보여주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이 12년 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말은 자칫 <주병진 토크 콘서트>가 하나의 ‘추억’에 머무를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지금에 맞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기보다는 과거의 익숙했던 그 모습을 반복할 때, 과거를 추억하는 시청자들은 끌어모을 수 있어도, 현재의 달라진 시각을 갖고 있는 시청자의 눈길을 끌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결국 이 시차 적응에 실패하게 된다면 이 역시 식상한 과거 토크쇼로의 회귀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가장 흥미로운 토크쇼는 <라디오 스타>이다. 강호동의 잠정 은퇴로 사라져버린 <무릎 팍 도사>의 빈 공간을 채우고 있는 이 토크쇼는 과거 최대 20분 분량에 엄청난 속도로 쏟아내던 토크를 한 시간 넘게 홀로 채워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처음에 <라디오 스타> 역시 이 시간을 감당해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후반에 ‘고품격 노래방’ 코너를 만들어 전·후반을 분리하면서 이 위기를 모면했다. 전반에 과거처럼 빠른 속도의 토크가 이어지고, 후반에는 조금 느린 템포로 음악과 함께하는 토크쇼가 덧붙여진 형국이다. 중요한 점은 이 토크쇼가 현재 대중의 기호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사적인 부분이 특유의 풍자 코드 속에 녹아들어 있고, 게스트를 대하는 방식 역시 지금의 화법과 잘 맞아떨어진다.

결국 최근 토크쇼의 부침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역시 토크쇼는 당대의 대중이 요구하는 화법과 형식에 민감해야 한다는 점이다. 제아무리 좋은 형식이라도 방치하면 낡게 되고 그것은 바로 시청자의 외면으로 이어진다.

유재석이 다시 토크쇼의 트렌드로 서기 위해서는 달라진 형식을 만나야 한다. 물론 이 시대의 화법을 대변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물 혹은 형식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스트 섭외에 있어서 연예인에게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던 부분도 과감하게 달라져야 할 것이다. 일반인이든, 비연예인(유명인)이든 대중은 이제 조금은 다른 인물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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